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41)
141.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까짓 상하나가 대체 뭐라고.
그거 없어도 잘나가는 배우는 여전히 잘나가고, 못 나가는 배우가 상을 받는다고 월드 스타가 되지는 않는다.
즉,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배우로서 자존감을 높여주는 ‘심벌’이 되기는 한다.
레오가 ‘오스카의 저주’에 콤플렉스를 느끼듯.
나 역시, 태생적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한국 팬들이 내게 갖는 기대감.
한국의 몇몇 배우들이 나를 향해, 미국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질투 섞인 시선.
이들에 반응해주는 확실한 방법은, 남우주연상을 수상 하며 두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것.
이러한 측면으로 볼 때 [게라드 쇼>는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나라는 인간을 사람들에게 공고하게 알린 기회였다.
‘나, 그렇게 물렁 하지 않아.’라고 온몸으로 뿜어냈으니까.
적어도 나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레오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Q2. 내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끝나고 레오파드 비트리오는 약간의 평정심을 잃은 듯 보였다.
생방송이라 대놓고 싫은 기색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와의 문답에서는 의도적으로 대답을 단문으로 짧게 취했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나를 견제한다기보다는, 내 도발적인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방송이 끝나고 카메라가 꺼지자, 레오는 내게 이렇게 말했으니까.
“적당히 하지 그랬어.”
“… 예?”
“정말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심사를 누가 하는데?”
심사위원단은 주로 백인.
모두 할리우드에 전반적인 영향을 끼치는 저명한 영화인들.
즉, 내 편은 아니다.
이를 정확히 꼬집으며 레오가 말했다.
“생방송에서 말을 함부로 뱉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이미 늦었지. 전 세계 사람들이 당신의 그 허황된 각오를 들었을 테니까. 얼마나 부끄럽겠어.”
“….”
나는, 그렇게 잘 알고 있는 너는 왜 12년간 헛물을 마셨냐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굳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하수다.
“어디 한 번, 있는 힘껏 해보라고”
그의 마지막 충고를 끝으로 만남은 끝났다.
다음 날, 할리우드 연예계 일간지에서는 쓴웃음을 짓는 레오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고 ‘레오의 기선제압 완패’라는 문구를 달았지만.
정확히 반나절이 지나고 사라졌다.
그 반나절 사이, 할리우드를 뒤덮은 연예계 문구는, 내 자신만만한 얼굴과 함께.
‘할리우드 제왕에게 도전장을 내민 오만한 신인 배우’라는 문장이었다.
“이렇게 유치하게 나온다 이거야? 빌! 보고만 있을 거예요?”
이는 다분히 나를 견제하는 내용이었고, 레오의 에이전트에서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재익이 형이 화를 잔뜩 낼 만큼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형, 저는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방송은 그렇게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을 본 사람은 안다.
누가 더 생방송에서 침착했는지를.
– 레오, 엄청 긴장했던데요. 그건 제가 알아요. 이제껏 저런 표정을 본 적 없거든요. 재희 말이 신경이 쓰이긴 쓰였나 봐요?
영화 [디트로이트 피플>을 통해 레오와 인연을 맺었던 벤자민 찰리가 문자를 통해 직접 보증했다.
생방송에서 오히려 감정을 드러낸 사람은 레오였다.
– 재희. 쓰레기 같은 일간지 따위는 무시해요. 적어도 제게는, 재희가 레오보다 좋은 배우입니다. 그건 둘 모두와 작업해본 제가 잘 알아요.
–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벤자민.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벤자민에게 문자를 보내고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밀어 넣었다.
일간지에서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모양이지만, 그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궁금하다는 반응이다.
올해에는 레오가 수상할 것인가.
아니면, 커리어가 범상치 않은 동양인 루키에게 자리를 내줄 것인가.
아니면 아예 다른 새로운 배우가 탄생할 것인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결과로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대중들이 원하는 싸움을 시작했으니, 이제 이겨야지.
“어떻게?”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유치하게 또 말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다.
언론을 이용하여 레오를 물어뜯을 생각도 없고, 심사위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굽힐 생각도 없다.
나는 내 마지막 ‘결정구’인 [알카트로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전화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전화 한 통화만 할게요.”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이 영화가 [리벤지 아메리카>보다 더 대단한 획을 그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개봉 시기만 맞출 수 있다면, 문제없다.
또르르, 착신음이 끝나고 박진우 연출이 전화를 받았다.
“감독님, 저 도재희입니다.”
나는 영화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박진우 연출에게 말했다.
“한번 찾아뵐까 하는데, 언제가 좋으신가요?”
*
[게라드 쇼> 생방송이 끝난 직후.레오파드 비트리오는 차량으로 돌아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때.
“아, 잠시만.”
덜컹! 엘리베이터를 붙잡으며 지미 니콜라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같이 내려가자고.”
“…. 그러시죠.”
그리고는 넉살 좋게 웃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루루.”
생방송이 꽤 즐거웠던지 지미 니콜라이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콧노래를 불렀고.
이를 조용히 바라보던 레오가 지미에게 물었다.
“아까 O/X 쇼에서, 저랑 도재희. 둘 중 한 명이 오스카를 들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응? 그랬었지.”
“그게 누굽니까?”
레오파드의 질문에는 ‘가시’가 있었다.
잘못 대답하지 말라는 가시.
이를 잘 알고 있는 지미 니콜라이가 레오파드를 슬쩍 바라보더니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왜? 궁금해?”
“네.”
“그야 당연히 자네지.”
“….”
“당연한 걸 묻는군. 라이브 쇼에서 재희에게 대놓고 ‘너는 절대 받지 못할 거야.’라고 면박을 주면 되겠어? 고향 떠나 먼 길까지 온 새싹을 그렇게 밟아버리길 원해? 그래야 속이 풀리나?”
“…. 아니죠.”
“이해 한번 빠르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지미 니콜라이가 내리며 말했다.
“그럼, 또 보자고. 레오.”
“….”
덜커덩!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의 공기는 얼어붙었다.
레오는 듣고 싶은 대답을 들었음에도, 그의 표정이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
아니, 오히려 딱딱하게 굳었다.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레오는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황망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늙은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
질문과 동시에 짧은 순간에 흔들린 지미의 동공.
맹수 같은 관찰력으로 그 찰나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지미 니콜라이. 게라드 윌리엄 주니어. 두 늙은이들이 오늘따라 내 빈정을 상하게 하는군.”
“…..”
레오는 이 엄습해오는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지.
‘도대체 어떤 배우길래?’
뭔데 지미 니콜라이가 자신과 도재희 사이에서 거짓말까지 해가며 고민하느냔 말이다.
“그 영화 뭐라고 했지?”
“무슨 영화요?”
“그 도재희라는 친구가 출연한 오웬 감독 영화.”
“[패브리케이터>요.”
“그거 한 장 준비해. 가장 빠른 시간으로.”
“네.”
아무래도 돌아가자마자 도재희 연기를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박진우 연출을 찾았다.
박진우 연출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하이마운트 픽쳐스 인근에 있는 직원 레지던스.
레지던스라고는 하지만, 3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높고 쾌적한 건물 외관을 자랑했다.
나와 에이전트, 그리고 경호원 두 명이 함께 이곳을 찾았다.
이곳과 하이마운트를 오가며 영화 준비에 한창인 박진우 연출은 며칠 동안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한 몰골이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 꼴이 말이 아닙니다.”
“아, 괜찮습니다. 요즘 많이 바쁘십니까?”
“아, 뭐 조금. 필요한 소품 및 대도구 디자인 작업 중인데 디자이너가 일을 영 시원찮게 하는군요. 그것 때문에 잠을 설쳤더니…”
“안 좋은 타이밍에 찾아온 제가 나빴네요.”
나는 웃으며 테이블 가득 너저분하게 놓여있는 종이들을 흘깃 보고는 물었다.
“좀 자세히 봐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영화 세트 디자인 시안.
현지 기용 가능한 보조출연자 인원 및 장비 분출 현황.
캐릭터 의상 디자인과 컨셉 시안.
크루 명단, 캐스팅 현황, 로케이션 스케줄 표.
현재 짓고 있는 세트 사진.
촬영 전에 준비를 마쳐야 할 모든 정보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요 며칠간, 정말 전쟁터였습니다.”
“… 그렇군요.”
박진우 연출이 얼마나 다량의 업무를 소화하고 있는지 대번에 드러나는 순간.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이, 바로 ‘세트’ 였다.
촬영의 메인무대는 ‘알카트라즈’라는 지옥의 섬에 세워진 감옥이다.
세트만 잘 준비되어있으면, 감옥 내에서 이동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상 촬영은 어렵지 않다. 오래 걸릴 것도 없다.
문제는, 세트를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잘 준비하느냐가 관건.
하지만 사진에는 벌써 어느 정도 ‘감옥 섬’의 윤곽이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거무칙칙한 아스팔트 색감의 콘크리트 벽 외관. 100m는 될 법한 거대한 담장.
핼리캠으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옥 섬의 모습은 악마의 얼굴을 닮아있었고, 알카트라즈 감옥 내부도 이미 디테일하게 잡혀있었다.
나는 놀라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세트를 벌써 지었나요?”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심플했다.
“아. 영화사에서 일전에 [어웨이크 프리즌>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세트가 있었는데. 그곳을 아예 리모델링해서 싹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 아!”
텅 빈 부지에 새롭게 짓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다른 작품에 쓰였던 세트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내부 디자인과 외부 색감만을 고치는 작업 중인 것.
이렇게 하면, 확실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네요.”
“네, 다행이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많이 바쁘신 것 같은데.”
“응? 그냥 가신다고요?”
“네. 진행 상황을 눈으로 좀 보고 싶었습니다. 언제쯤 촬영에 들어가게 될지 궁금해서.”
만족스러운 방문이다. 영화의 이미지를 촬영 전에 한번 훑어볼 수 있었으니까.
오랫동안 박진우 연출의 시간을 뺏을 수 없지.
“되도록 빨리 들어갔으면 했는데, 다행히도 조만간 들어가게 될 것 같군요.”
내가 빙긋 미소짓자 박진우 연출이 물었다.
“자, 잠시만요. 지금 빨리 들어가고 싶으시다 하셨나요?”
“네? 네.”
“그, 촬영 중이시던 영화 스케줄은 다 끝나셨습니까?”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 말씀이라면, 촬영을 모두 마쳤습니다. 못 들으셨나요?”
박진우 연출이 갑자기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 일전에 분명히 전해 들은 것 같습니다. 그때 너무 경황이 없어서 그만 잊어버렸군요. 잊을 게 따로 있지. 젠장.”
박진우 연출이 조금 얼빠진 얼굴로 달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세어가며 날짜를 계산하는 듯했다.
당연히 당장 내게 잡힌 스케줄은 특별한 것이 없다.
물론, 에이전시에서 쓸데없는 행사 따위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내겠지만, 그런 것에 참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 스케줄이 없다고 하셨죠.”
“…. 네.”
지금 스케줄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주 진하게.
아니나 다를까, 박진우 연출이 달력을 펼치며 말했다.
“도 배우님. 촬영을 열흘이라도 빨리 들어갈 수있는 방법이 있는데.”
열흘이나 빠르게?
“뭡니까?”
그게 뭘까.
박진우 연출의 입에서는 아주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호주에 먼저 가주실 순 없겠습니까?”
“네?”
호주에 먼저 가라고?
“왜요?”
“현지에 무술팀을 꾸렸습니다. 세트를 넘나드는 프리 러닝(파쿠르) 동작에 대한 숙달과 이해도가 필요하니까요. 무술팀 쪽에서도 가장 많은 합이 필요한 도 배우님과 미리 만났으면 하더군요.”
“….”
무술팀과 내가 미리 만나야 하는 이유.
건장한 신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트릭킹짐에서 프리 러닝을 훈련하고, 코치들에게서 러시아 실전 무술인 시스테마를 배워야 한단다.
실컷 구르고 뛰고, 몸을 날리자는 것.
이제껏 찍은 영화 중, 가장 다양한 액션이 들어가는 영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액션도 그냥 막 싸움이 아니라, 살인 무술.
“일찍 내려가셔서 다른 배우분들과 먼저 훈련하고 계시면. 저희도 모든 준비 마치고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
물론, 대역 배우가 존재하지만, 내가 동작의 기본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꽤 차이가 크다.
영화를 위해서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아니, 내가 미리 요청해서라도 해야하는 일이다.
“언제 가면 되나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출발할게요.”
호주로 간다.
[ 책 먹는 배우님 – 141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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