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42)
142.
호주는, 할리우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영화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자연을 품고 있는 곳이다.
상상해보라.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사막과 거대한 바다가 맞닿아 있는 대자연 속을 단신의 몸으로 달아나는 한 명의 인간.
이를 하늘에서 핼리캠을 통해 찍는다면.
그 인간은, 얼마나 작고 하잘것없이 보이겠는가.
아마, 개미 한 점처럼 보이며 작고 가냘프게 느껴질 것이다.
박진우 연출이 원하는 그림도 바로 이런 그림이었다.
그래서 결정된 장소가 바로 호주.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 있는, 바다와 사막이 맞닿아 있는 자연 항 ‘포트스티븐즈.’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카루아 강 동쪽으로 해리 3km 가까운 곳에 떨어져 있는 작은 섬. 리틀 아일랜드.
‘악마 섬’ 세트가 지어지고 있는 곳이며, 영화 [알카트로즈>의 메인무대가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대략 1개월 반에서 두달 정도가 걸릴 호주 현지 촬영.
약 한 달의 미국 촬영.
총합 두달 반에서 세달 정도가 소요될 이번 일정은, 후반작업 일정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CG를 최소화하고 특수효과를 총동원할 블록버스터.
액션도 많고, 위험천만한 촬영이 예정되어있다.
그렇기에 미리 준비할 ‘사전 훈련’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나는 LA에서 15시간을 날아와 호주 시드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미리 도착해있는 하이마운트 픽쳐스 현지 팀들과 만나 시드니에서 북동쪽으로 160km 떨어진 포트스티븐즈(포트스테판)를 향해 차로 내달렸다.
3시간 정도를 달려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 되었다.
“다 오셨습니다.”
“아, 여기가…”
“네. 포트스티븐즈입니다.”
척박한 토양 때문에 거대한 항구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 이 도시의 분위기는, 적당한 도심과 작은 해안 마을이 절묘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해야 할까.
눈만 돌리면 아름다운 강가와 선착장이 즐비하다.
메인 여행지라고 할 수는 없고, 시드니 여행 코스에 끼어있는 정도로 인기 있는 휴양지.
낚시, 크루즈, 사막에서 타는 썰매인 샌드 보드로 유명한 이곳.
첫 느낌이 나쁘지 않다.
“숙소로 안내 해 드리겠습니다.”
“네.”
호텔은 리조트 형태부터 최대 4성 이상급 호텔들이 있었는데, 주로 내륙이 아닌 해안을 빙 둘러싼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즉, 어디로 가나 훌륭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라는 것.
그중에서 만트라 아쿠아라는 호텔로 안내받았다.
바다가 인접해있지는 않지만, 인근에 식당도 많이 밀접 해있고, 가장 시설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이마운트 픽쳐스 측 직원은 ‘5성급 이상’의 숙소가 근방에 없다는 것을 매우 미안해했는데.
내가 충분히 만족해하자, 조금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빌이 말하기를, 5성급 이상 호텔이 아니라면 시외로 나가서 묵겠다고 암묵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꼴통들은 넘쳐흐른다.
“이야, 여행 온 기분이네.”
재익이 형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영미 씨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오늘 한 잔 어때요”
영미 씨가 내게 술자리를 제안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피곤해서요. 오늘은 쉴게요. 내일 준비도 해야 하고.”
놀러 온 것이 아니잖아.
“아…”
영미 씨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재익이 형이랑 마시고 와요.”
“네? 실장님이랑요?”
“응? 나? 영미 씨랑 둘이서?”
“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둘이 다녀오세요. 초희 씨도 데리고 가시던가.”
“에엑?”
둘은 질겁하면서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대로 뒤 돌아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술도 좋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다.
먼 길을 오기도 했고, 내일 있을 훈련에 대비하여 충분을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호텔 가운을 걸친 채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지 잘 기억은 나질 않는데.
정말, 흠씬 두들겨 맞는 꿈이었다.
*
눈을 뜨니, 푸르스름한 새벽이다.
시간은 6시 10분.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던데, 왠지 모르게 온몸이 쑤시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니면 예지몽일까.
오늘 내가 흠씬 두들겨 맞는 건가.
씻고 방으로 나오자 재익이 형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일어났네? 푹 쉬었어?”
“아, 네. 형은요? 술 드셨어요?”
내 질문에 재익이 형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음, 어어. 뭐, 간단하게. 아침 먹으러 가야지?”
“네.”
호텔 1층에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핫도그 하나 먹은 게 전부였구나.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영미 씨가 건네준 검은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현지 파견된 하이마운트 직원의 안내를 받아 시내로 들어섰다.
목적지는, 넬슨 벨리에 있는 트릭킹 짐(Tricking Gym).
마샬아츠 트릭킹(인간이 맨몸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보여주기식 무술.)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곳을 말한다.
호주로 오기 전에 찾아본 동영상들에서는 맨몸으로 하는 동작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화려한 동작들이 주를 이뤘다.
신체 훈련이라고는 한국에서 잠깐 액션 스쿨을 다닌 것이 전부고. 그 뒤로는 틈틈이 맨몸운동을 한 것이 전부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우리는 트릭킹 짐 앞에 도착했다.
“어라, 그냥 체육관이네?”
“그러게요.”
하지만, 트릭킹 짐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그냥 어디에나 있는 체육관이었다.
“여기엔 당연히 트릭킹 짐이 없죠.”
“아아.”
그래.
작은 휴양지인 이곳에 그런 곳이 있을 리 만무하지.
조그만 체육관을 하나 통째로 빌려 사방에 매트리스를 붙여놓고 곳곳에 매트리스를 이용해 ‘구조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구조물’을 지지대 삼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 우와.”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는 입을 쩍 벌렸고.
하이마운트 직원이 설명하기를, 모두 촬영 때 투입될 무술팀 배우들이라고 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다가온 한 동양인 남자가 있었다.
“반가워요.”
능숙한 영어로 말을 건 이가, 영화 [알카트라즈>의 무술 코치를 맡은 자이라 첸.
태국 출신의 유명 무술 감독이라고 한다.
“재희, 정말 보고 싶었어요.”
“아, 네네.”
“하루라도 빨리 훈련에 들어가야죠. 안 그래요?”
이 자가, 내게 훈련을 제안한 남자.
“… 아, 네. 그런데 며칠 만에 제가 이런 걸 할 수 있나요?”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자이라 첸이 눈을 껌뻑였다.
“아뇨.”
“… 네?”
“당연히 안되죠. 고작 열흘에서 보름 사이에 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런데, 어차피 와이어를 달고 할 거니까 자세만 익히면 됩니다.”
“….”
그럼 그렇지.
몸에 와이어를 매달고 진행될 촬영.
와이어가 나를 띄어주면 나는 360도 회전하고 기가 막힌 자세로 발차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 러닝의 기본 골자를 이해해야 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기에, 이렇게 빨리 부른 것이고.
즉, 여기서 훈련을 내가 성실히 임할수록 영화는 빠르게 끝난다.
나는 양팔을 붕붕 돌리며 소리쳤다.
“좋아요. 시작하시죠.”
“오, 꽤 의욕적이네요.”
“그럼요. 뭐부터 할까요?”
옆돌기? 360도 회축? 발차기? 살인 무술을 배우나?
하지만 자이라 첸은, 입꼬리를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 상상력을 무참하게 짓밟으며.
“체육관 100바퀴. 서전트 점프 100회. 푸시업 100회. 이게 한 셋트. 총 3셋트 반복하세요. 모두 오전 안에 끝내세요.”
“….”
꿈에서 흠씬 두들겨 맞은 꿈은, 아마 예지몽이었나보다.
*
이제껏 [7년의 기억>이나 [데드 매니악>에서는 전문적인 액션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형사, 유학생 정도 캐릭터가 막 싸움을 하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총을 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동안 액션은 꽤 괜찮게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전문적인’ 액션 영화는 달라도 확실히 다르다.
내가 100% 기술을 구현할 수 없기에 와이어와 편집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데도, 숨이 벅찰 만큼 힘들다.
“집중!”
자이라 첸이 내게 불호령을 쳤다.
이 태국인 무술 코치에게는 ‘설렁설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보고 싶었다며, 동양인 배우의 워너비라며, 순수한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은 오직 첫날뿐.
“벌써 지쳤습니까! 이래서는 아무것도 못 찍습니다! 하루 종일 대역배우랑 씨름하고 NG만 내고 싶습니까!”
벌써 사흘 넘게 진행된 훈련 동안, 내게 채찍질만 해댄다.
아이고, 코치님.
죽을 것 같다고요.
영화 [알카트라즈>는 억울하게 감옥에 수감 된 군인 출신 병사의 탈출기를 그린다.
‘닌자’마냥 담벼락을 타기도 하고, 고층 건물을 멀리뛰기 하여 이동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란한 액션 씬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 내가 소화할 수만 있다면.
첫날엔 온몸에 알이 배겨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둘째 날에는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으면 더 힘들다고 내 등을 떠밀며 억지로 움직이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셋째 날부터는 몸이 조금씩 적응을 하는 듯하더니. 넷째 날에는 지옥 같은 체력단련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프리런닝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벽을 두 손으로 집으며 측면으로 빙그르르 회전하여 추진력을 얻어 튀어나가는 동작부터, 내 몸에 와이어를 매달고 장정 셋 넷이 달라붙어 익히는 고급 기술까지 이어졌다.
“안 힘들어?”
“한 번만 더 하죠.”
“너도 참. 다치면 큰일 난다?”
정신만 제대로 차린다면 다칠 일은 많지 않다. 바닥에는 매트리스가 깔려있고, 내 몸에는 전문가들이 묶어 놓은 와이어가 달려있으니까.
약 열흘간 미친 듯이 훈련에 훈련만 거듭한 것 같다.
처음에는 힘들기만 했던 기초 체력 훈련도 점점 적응되었고, 비록 와이어의 힘을 빌렸지만- 허공에서 540도 회전하며 착지하는 동작도 가능해졌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보름.
그 사이, 미국에서 작업을 마무리 지은 박진우 연출이 호주에 도착했다.
*
박진우는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가지 않고 제일 먼저 도재희가 있는 체육관을 찾아왔다.
“감독님 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도 배우님은 어디 계십니까?”
“저기요.”
무술 코치 자이라 첸이 가리킨 곳에는 도재희가 벽을 타고 몸을 빙그르르 돌려 착지하고 있었고, 와이어를 마치 제 몸의 일부처럼 이용하며 자연스럽게 동작을 선보이고 있었다.
“아?”
얼핏 보았을 때, 무술팀인 줄 착각할 만큼 어색함은 없었다.
불과 보름 만에 달라진 도재희의 모습에 박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 어떻습니까?”
두서없는 질문이었지만, 무술코치 자이라 첸은 용케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운동에 재능이 있어요. 무엇보다 겁을 먹지 않아요. 와이어 액션이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잘합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박진우는 체육관을 휘젓고 다니는 도재희의 모습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썼던 글 속에 있는 배역의 모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 것이다.
‘똑같아.’
도재희는 어느덧,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에서 가족들을 위해 몸을 내던지던 가장의 모습을 쫙 빼고 [알카트라즈>에 어울리는 인물로 변해있었다.
카리스마, 전사, 군인.
박진우 머릿속에 있는 캐릭터 그 자체.
‘머리 스타일만 바꾸면 되려나.’
도재희는 투 블럭 컷트에 차분한 생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 스타일만 조금 손 보면 완벽할 것 같았다.
‘어떤 스타일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박진우가 미소지었다.
[ 책 먹는 배우님 – 142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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