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46)
146.
영화 촬영이 시작한 지도 벌써 1달 반이 흘렀다.
7월의 호주는 적당히 쌀쌀한 초겨울 날씨다.
하지만, 그만큼 촬영하기에 좋은 날씨기도 하다.
“일하기 참 좋은 날씨다.”
재익이 형의 말에 나는 담배 생각을 간절하게 느꼈다.
내가 맡은 배역이 담배를 피우다 보니, 반쯤 끊었던 담배가 자꾸 아른거린다.
역한 담배 쩐내가 가득한 이곳.
[알카트라즈>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채로 진행된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회색빛 작은 섬에서 펼쳐지는 추악한 인간군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죽어 마땅한 악인들이 모인 작은 사회.
악인은 비단 죄수만이 아니다. 이 사회를 운영하는 교도소장과 간수들 역시 똑같은 인간들.
죄수를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실험이 자행되고, 살인을 묵인하는 곳.
폐쇄된 공간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인간들의 위험성.
인간이 얼마나 더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시사하며, 우리에게 경고한다.
상급자를 암살하라는 대령의 뜨악한 비밀명령을 거부한 나는, 갖가지 이유로 강제 퇴역당하게 된다. 퇴역 후 숨죽여 살기를 3개월.
그 사이, 부대는 내게 명령한 사실조차 지워버리기 위해 기밀을 훔쳐 달아났다는 오명을 뒤집어씌운다.
죄목은 ‘테러리스트’
국가 전복을 꾀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죄명을 갖다 붙였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군경들에게 붙잡혀 들어오게 된, 이곳.
‘알카트로즈.’
들어오자마자 폭력과 구타가 이어지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텨낸다.
흔한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는 내게 붙은 별명은 ‘독종’ 이지만. 이것조차 못마땅하게 연기는 거구 ‘폴’의 폭력의 강도는 점점 거세진다.
선택해야 할 상황이 왔다.
계속 참아야 할 것이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냐.
이 두 가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탈옥.’
하지만, 쉽지가 않다.
얼핏 보기에 아주 작은 자유도시처럼 느껴지는 이 감옥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정문으로 빠져나가거나, 60m가 넘는 담벼락을 맨몸으로 넘어야 한다.
설사 벽을 넘는다고 쳐도 문제다.
섬의 사면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다. 헤엄쳐서 달아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겠는가.
영화의 초반은 이런 극악한 환경에 처하게 된 주인공이 현실에 순응하는 척하며, 몇몇 죄수들과 손을 잡고 영리하면서도 과격하게 알카트라즈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조금씩 세를 불리며, 알카트라즈 권력의 정점인 ‘교도소장’과 직통으로 통하는 핫라인을 개설하고, 교도소장에게 신임을 받으며 암묵적인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종국에는 거구의 행동대장인 ‘폴’ 패거리와 식당에서 패싸움을 벌여, 폴까지 쓰러트리며 ‘알카트라즈’ 명실상부 실세로 거듭나기도 한다.
어느 날에는 교도소장이 주인공 이신을 불러, ‘폴’이 하던 역할을 맡겼다.
“이신. 군인 출신이라고? 그럼, 앞으로 저 뇌까지 근육으로 만들어진 근육 덩어리 대신, 네가 신입 쓰레기들 교육을 담당하라고.”
폴 대신, 알카트라즈의 중심이 된 것.
이대로 신임을 계속 얻는다면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타이밍을 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날도 잠시.
‘위기’가 찾아온다.
죄수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
「#79. 친한 간수의 열쇠를 훔쳐 목 졸라 죽인 폴은 늦은 밤 감옥을 빠져나와 알카트라즈 복도를 활보한다. 잠겨있는 철창의 문을 모조리 열고, 죄수들은 포효하며 뛰쳐나온다. 이를 발견한 간수의 총성이 알카트라즈 전체에 울렸다.」
「#80. 죄수들은 불나방처럼 간수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반란의 선두에는 교도소장에게 버림받은 ‘폴’이 있었고, 그는 감옥을 나가는 것이 목적이 아닌 듯 보였다. 폴의 목적은 오직 하나. 교도소장을 죽이는 것.」
「# 82. “큰일이다. 교도소장은, 절대 죽으면 안 된다.”」
“오늘, 이 씬만 찍으면 끝입니다. 자! 다들 힘냅시다!”
알카트라즈 1차 반란.
가장 화려하고 위험천만한 액션이 예정되어있는 장면으로 촬영 날짜는 바로, 오늘이다.
폴과 교도소장(1)의 촬영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자, 레오가 LA에서 호주로 도착하기로 약속 한 날.
“정말 오늘 오겠지?”
“오늘 안 오면, 큰일이죠.”
‘교도소장(1)’이 오늘 죽고, 내일부터 ‘교도소장(2)’가 촬영에 필요한 상황이다.
오늘, 만약 레오가 포트스티븐즈에 도착하지 않으면 내일 하루를 통으로 날리게 된다.
나는 김민희 PD님에게 물었다.
“레오 쪽에서 아직 연락은 없나요?”
“네. 아직.”
… 오지 않을 생각인가.
김민희 PD님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오겠죠. 연락은 없지만.”
“….”
“도 배우님은 우선, 촬영에만 집중하세요. 이런 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아, 네.”
나는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앞서 액션 리허설을 진행했다. 내 운동을 매일 점검해준 태국 출신의 무술코치 자이라 첸이 사람들 사이에서 동선을 짜고 있었고, 나는 내가 움직일 동선을 확인했다.
“저 따라 똑같이 하시면 됩니다.”
직선으로 달려가 둔턱 하나를 손으로 짚으며 허들을 넘듯 빠르게 장애물을 통과하고 구석에 놓인 폐드럼통을 밟고 맞은편 벽으로 점프. 벽 두 개를 번갈아 가며 뛰고 2층 창문으로 들어선다.
“이렇게요?”
“아, 훌륭해요.”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는 카메라 리허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선과 카메라 워크가 꼬여버리면 정작 찍어야 할 알맹이를 못 찍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수차례의 리허설을 통해 완벽한 타이밍을 찾아내었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롱테이크(테이크를 길게 하나로 찍어 이용하는 기법)로 갈게요. 지금 쓰일 장면은 편집 없이 통으로 쓰일 장면이니까, NG 없이 갑시다.”
촬영감독의 신신당부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액션 연기는 정말, 힘들거든.
*
액션에도 이유가 있다.
내가 지금 계속해서 뛰고.
“헥, 헥.”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힘들어도 이 뜀박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
“헉… 허억.”
이 ‘이유’를 온몸으로 뿜어내야 한다.
액션 연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몸은 뛰고 있으면서, 눈빛으로는 관객들에게 말해야 한다.
내면 연기와 동시에 외면 연기를 하는 거지.
이렇게 내면과 외면이 적절하게 만나면, 배우에겐 관객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설득력’이 부여된다.
이 설득력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연기하는 배역 ‘이신’이 속으로 외쳤다.
‘교도소장을 지키고, 폴을 막아야만 한다.’
‘그가 죽어 서는 안된다.’
‘그가 죽어버리면, 내가 이곳에서 ‘인간성’을 저버리면서까지 얻었던, 모든 권력 들이 사라져버리니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배역이 느끼는 이 혼란을.
‘차라리 이 혼란을 틈타, 달아날까. 어떻게? 헤엄쳐서? 100리 바다를 부표처럼 떠돌아다니다, 상어 밥이 될까?’
눈빛 하나로 표출해야 한다.
‘지금은 탈출할 때가 아니다.’
나는 와이어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죽어라 뛰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낙법을 이용해 착지하고. 흙바닥에 온몸을 뒹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정확한 타이밍에 특수효과팀의 폭약이 내 곁에서 터졌고, 나는 와이어에 매달린 채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혔다.
머리에서 피가 흥건하게 흘렀고, 피가 눈가를 적셨다.
“어? 저 자식!”
그때, 평소 내게 ‘열등감’을 가지던 폴의 부하들이 내게 다가왔다.
“너 잘 만났다.”
나는 지체 없이 몸을 날려 놈들을 때려눕혔다.
약속된 동선, 약속된 액션.
서툰 감정은 없었다. 액션은 생각을 많이 하는 순간, 곧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 나는 창문을 이용해 고개를 위로 들었다.
알카트라즈 최정상에서 폭발이 있었고, 폭발한 건물 내벽의 잔해가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기세를 몰아 최정상을 향해 내달렸다.
작은 핼리캠 하나가 알카트라즈 머리 위 상공에서 나를 내려찍고 있었다.
핼리캠이 알카트라즈 상공을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듯 돌았다. 곳곳에서 치솟는 불길.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비명소리. 밤을 쩌렁쩌렁 깨우는 총성.
이 모든 것들이 마치,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합창이라도 이루는 듯했다.
그렇게 도착한 알카트라즈 최정상, 교도소장실.
나는, 불길이 바닥을 집어삼킨 교도소장실 앞에서 그대로 멈춰섰다.
“안돼!”
그곳에는 피떡이 된 교도소장이 있었고, 교도소장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는 폴이 있었다.
폴은 나를 보며,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
“왔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중얼거리고는, 교도소장을 한 손으로 들어 그대로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 아, 안돼.”
황급히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바닥에는 참혹한 상태로 찌그러진 고깃덩어리가 전부다.
내가 이 감옥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죽어버렸다.
“….”
이 상황에서 난 뭘 할 수 있을까.
폴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저 자식을 잡아!”
도망가는 것뿐.
“꺄하!”
“….. !”
이 짧은 모습이 마치 귀신처럼 느껴졌다.
선두에서 달려오는 놈 하나의 얼굴에 주먹을 밀어 넣었다.
파앙!
경쾌한 타격음과 동시에 나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뒤 역시, 폴의 부하들이 잔뜩 있었다.
이 상태로 가만히 있다간, 죽을 것이다.
도망갈 곳이라고는- 창문 밖이 전부.
“크흐흐, 도망갈 곳이 없나 보지?”
“….”
악당1의 대사 한 줄이 내 폐부를 찌른다.
“내일 나는 죽겠지만, 오늘 넌 내가 반드시 죽인다.”
… 죽인다니.
섬뜩한 폴의 대사에 나는 멋쩍게 웃으며, 별다른 차선책 없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저, 저런!”
“죽고 싶어서 아주…”
폴의 욕지거리가 뒤에서 들려왔고, 나는 60m가 넘는 높이에서 360도 빙그르르 돌며, 수직 낙하했다.
다이빙 점수가 있다면, 10점 만점을 줄 완벽한 자세로.
아무런 생각 없지 자살하고자 한 행동은 아니다.
난, 이곳에 있는 동안 매일 매일 탈옥을 계획했으니까.
감시탑과 연결된 전신주의 전깃줄을 붙잡고, 바닥에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그리고 손바닥을 훌훌 털어냈다.
“후.”
알카트라즈 최정상에서는 머리를 내민 채, 이런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는 폴 일당이 있었다.
“저 똥물에 튀겨 죽여버릴 자식을 당장 잡아!”
폴이 바락바락 소리 질러, 흩어져있던 부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안심하긴 이르다.
족쇄가 풀린 죄수들이 몇 달 만에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들처럼 신나게 알카트라즈 곳곳으로 흩어져있으니까.
간수들의 총을 빼앗아, 이 섬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곧, 뭍에 있는 세계정부의 군인들이 몰려오겠지.
그리고 저들은 바로 총살될 것이다.
나는 긴 고민 없이 몸을 날렸다.
우선은 도망쳐야 한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절벽으로 달려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바다를 건널 수는 없다. 바다 속에서 간수보다 더 무서운 죄수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어야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의 체온이 점점 내려가는 것을 느낄 무렵.
‘알카트라즈’를 휘감은 피의 새벽이 끝나가고 있었다.
총성은 점점 줄어들었고, 저 멀리서 까만 바닷가에서 환한 라이트가 번뜩였다.
뒤이어 들리는 뱃소리.
배였다.
거대한 배 한 척이 부두에 정박했고, 군인들이 일제히 알카트라즈로 몰려 들어갔다.
총성이 빗발쳤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상태로 부둣가를 향해 걸어갔다.
항복.
나는 적이 아니라는, 명백한 항복의 표시.
거대한 라이트 하나가 나를 비추었다.
눈을 강하게 찌르는, 거대한 전조등이었다,
반란은 끝났다.
「# 90. 교도소장(1)은 결국 ‘폴’에게 맞아 죽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피떡이 된 채 알카트라즈 잔디밭에 버려져 시체로 발견된다.」
「# 91. 교도소장(1)이 죽고, 군인들이 알카트라즈를 점거했다. 반란을 주도했던 모든 이들이 총살당했고, 간수들이 가지는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교도소장(2)가 부임했다.」
내 눈을 찌르는 거대한 라이트 뒤로, 한 남자가 까만 실루엣을 걷어내며 등장했다.
「# 92. 그는, 뭍에서 근무하는 해양안전팀 공무원 출신으로 새롭게 알카트라즈의 주인이 되었다. 새 교도소장(2)으로, 내 탈출의 운명을 쥐고 있는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영화와 현실이 디졸브 된다.
“… 레오.”
“컷! 오케이!”
내 눈을 찌르던 조명팀의 LED 라이트가 꺼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내 주변의 스탭들이 썰물처럼 빠지자- 사람들 뒤에 숨어있던 남자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레오였다.
레오파드 비트리오.
그가 왔다.
“… 으음,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늦진 않았겠죠?”
아주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그는, 미소조차 교도소장(2) 그 자체였다.
[ 책 먹는 배우님 – 146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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