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47)
147.
레오의 첫 세트장 방문.
꽤 극적인 순간에 등장했다.
일단, 현장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은 들지만, 그다지 반가운 인상은 아니다.
“어서 오세요. 레오파드.”
박진우 연출이 앞으로 나와 레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는 감독을 맡고 있는 박진우라고 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
‘그렇군요.’
이게 전부다.
이름도, 나이도, 식사 여부도, 촬영에 대한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레오는 박진우 연출의 손을 맞잡았지만, 감독님께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과 구면인 할리우드 출신의 촬영감독, 조명감독, 배우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오! 폴!”
“레오, 왔군요.”
“이럴 수가! 제임스 딘 감독님도 계셨군요. 은퇴하신 줄 알았는데.”
“은퇴는 무슨. 아직 팔팔한데? 레오파드가 갓 데뷔했을 때가 생각나는군. 카메라 앵글도 모르던 코흘리개 꼬마 얘기, 여기 사람들에게 들려줄까?”
“이런, 감독님 입담은 못 이기겠군요. 제가 졌습니다.”
“으하하! 앞으로 잘 부탁해.”
등장부터 기 싸움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자신의 인맥을 내게 과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놓고 면박을 당한 박진우 연출은, 기분 나쁜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나를 바라보고는,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히려, 내가 다 기분이 나쁠 정도.
내가 주먹을 살짝 말아쥐자, 재익이 형이 이를 눈치채고 내 팔을 붙잡았다.
“일단, 넘어가자.”
“… 가관이네요.”
스탭들이 오늘의 촬영을 마치고 철수 준비를 하는 동안, 레오는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레오, 늦는 줄 알았어요.”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지. 놀랬나?”
“그럼요. 마지막 촬영 때 기가 막히게 도착하시다니. 하하! [리벤지 아메리카> 촬영은 다 끝나신 건가요?”
“응. 사흘 전에. 덕분에 피곤해 죽을 것 같다고.”
할리우드 배우들 옆에 딱 달라붙어, 연신 낄낄거렸다.
마치, 엄마 아빠에게 삐진 아이가 형과 누나하고만 이야기하듯.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내가 먼저 인사해주길 원하는 듯 보였다.
그래. 전형적인 어린아이.
자, 이미 한국에서도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주연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품격’이 있어야 하고, 동료 배우들을 이끌어갈 ‘포용력’이 있다는 것을.
어린아이와 쓸데없이 심력 소모할 필요는 없다.
나는 레오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또 뵙네요. 레오.”
그와 두 번째 만남.
카메라는 없다.
그렇기에 다분히 공격적인 언사를 예상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레오의 입에서는 멀쩡한 인사가 튀어나왔다.
“오랜만이군. [게라드 쇼> 이후, 삼 개월 만인가?”
“… 뭐, 대충요.”
“그렇군. 그때는 내가 자네를 잘 몰랐어. 그런데 알고 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더 유명하더라고?”
“….”
“할리우드 차세대 스타를 못 알아봤다니, 이것 참. 미안하군.”
하지만 그는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저번 일도 있고 해서, 도와주려고 왔어. 할리우드에서 얼굴 팔이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선배 도움도 좀 받고. 안 그래?”
요새 좀 뜨고 있는 ‘후배’에게 내가 도움 좀 주겠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핑계까지.
너저분하다.
할리우드 입성 이후, 계속해서 관리하고 있던 이미지가 조금씩 금가기 시작한다.
내가 싸늘하게 분위기를 바꾸었다.
“뭐,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고.
“…..”
그러자 레오의 얼굴이 똑같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나는, 분위기를 풀어내려 대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근데, 감독님께 인사는 하셨습니까?”
“….”
“안 하셨군요. 어쩐지. 박 감독님!”
내가 난데없이 박진우 연출을 불러내자 레오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봐, 지금 뭐 하는…”
“레오가 아까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해서 인사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이리 오셔서 인사 나누세요.”
“아! 그렇습니까!”
“….”
레오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쏘아봤지만, 박진우 연출이 다가오자, 레오는 눈빛을 거두고 박진우 연출과 손을 제대로 맞잡았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작업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곤 나를 힐끔 그렸지만, 나는 깔끔하게 웃는 얼굴로 무시해주었다.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요.
“하하! 남은 인사는 섬을 빠져나간 뒤에 하시죠. 파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촬영의 분기점 이상 넘어간 오늘.
영화 [알카트로즈>팀의 단체 파티가 잡혀있다.
근육질 배우 폴의 촬영종료, 그리고 레오파드의 촬영 시작.
이를 기념하는 파티.
“…. 음, 그거 저도 함께 하는 겁니까?”
“네.”
당연히 너도 함께 지요.
*
할리우드 스타들이 하는 그런 파티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한국 영화팀들의 ‘파티’라 함은, 역시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에 소주가 딱! 이지
오늘을 위해 준비한 [알카트로즈> 팀의 특별한 회식.
호텔 야외 가든에 숯불을 피워놓고 한 명씩 달라붙어 삼겹살을 구웠다.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에 맞춰 타이밍 좋게 김치, 콩나물, 버섯을 함께 올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든으로 나온 레오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입을 쩍 벌렸다.
“… 오, 이게 대체.”
‘파티’라는 단어에 우아하게 레드와인에 연어 샐러드나 곁들여 먹을 줄 알았나 본데.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미안하지만, 이게 바로 한국식 파티지.
“혹시 술은 못 하십니까?”
내 질문에 레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리가.”
“한잔 받으세요. 소주는 드셔 보셨습니까?”
“소주?”
“한국에서는 술을 권하는 문화가 있지만, 미국은 아니지요. 드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레오는 처음 본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것도 잠시.
별것 아니라는 듯, 당당하게 잔을 들어 올렸다.
“먹어보면 알겠지.”
쪼르륵.
우리는 서로 잔을 채워 목으로 털어 넣었다.
나는 레오에게 건넨 술잔을, 일종의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다.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의미.
하지만, 레오는 아닌 듯 보였다.
“퉤.”
술잔을 채 넘기지도 않고 물티슈에 뱉어버린 레오는 불쾌하다는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물을 마셨다.
그가 이 현장에 온 것은, 철저하게 ‘사’적인 이유다.
영화가 좋은 것은 핑계고, 내가 궁금했던 것 이다.
“냄새가 역하군.”
“….”
나는 이 남자를 잘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둘은 서로가, 서로를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다는 것.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지지 않기 위해 칼을 바짝 갈아놓고 기다린다는 것.
틈만 보이면 찌르기 위해, 손에 바늘을 들고 있으며.
살짝 방심하는 순간.
“아, 참. 얼마 전에 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오웬 감독 영화를 보고 왔는데.”
“재희가 출연했던 거? 어땠어? 재미있었나?”
“음, 영화는 그저 그렇더군. 감독이 수상에 실패한 이유가 보인다고 할까. 감이 떨어졌어.”
“….”
찌른다.
계속해서 찌른다.
아플 때 까지 계속 찌른다.
타겟은 나뿐만은 아니다.
“그럼, 나는 내일부터 촬영하는 건가?”
“아, 네. 맞습니다.”
“이런, 도착해서 하루 정도는 쉬게 될 줄 알았는데… 저 멀리 LA에서 왔는데, 이 현장은 배려 하나가 없군. 폴, 여기 원래 이런가?”
“어, 어?”
“아니면, 한국 스타일인가?”
“….”
박진우 연출 들으라는 식으로 말을 던진다.
싸하다.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자.
“후후, 농담이야. 감독이 찍자면 찍어야지.”
라고 말하며 재미도 없는 농담을 하며, 혼자 웃어버린다.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면박 주기 위해 던지는 말들.
이런 종류의 멘트는 주변을 얼어붙게 만든다.
나를 포함해서,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이 분위기 뭐야.’
‘말이 너무 심하잖아.’
모두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일부러 하는 것이다.
“아, 하하… 그거 참 재미있군.”
“… 레오 농담이 늘었군.”
그 누구도, 자신에게 쓴소리하지 못할 것을 아니까.
그게 권력이니까.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말 한마디’를 어떻게 무기로 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현장 분위기를 쥐고 있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세뇌하는 것이다.
까불지 말라고.
내가 너보다 높다고.
아주 은근하게-.
이걸 잘 이용하면, 나나 박진우 연출이 자신에게 자청하여 고개 숙이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분위기 왜 이래? 다들 자는 건가?”
의도적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과장되게 취하는 제스쳐.
주변 공기가 차가워진다.
레오가 들고 있던 바늘이 날아가 주변 사람들의 목젖을 찔러 숨도 못 쉬게 만들어버렸으니까.
뻔뻔하기도 하지.
“흠흠. 먼저 일어나지.”
촬영감독이 불편함을 느꼈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도.”
“음, 저도요.”
“내일 뵙겠습니다.”
스탭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일어나자, 레오가 물잔을 들어 올려 입가에 댔다.
사람들은 보지 못했겠지만,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게는 보인다.
웃고 있었다.
박진우 연출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나는 순간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힘들었다.
박진우 감독이 얼마나 많이 참아야 하지?
자기를 위해 준비한 이 ‘환영파티’가 그렇게 우습게 느껴지나?
나는 소주잔을 바닥에 쪼르르 따라버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감독님!”
“에, 예?”
박진우 연출이 조금 낯선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저 술 한 잔만 주십시오.”
“… 아, 네.”
박진우 연출이 내 잔에 소주를 따랐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감독님. 해외 영화제에서 상 타신 게 몇 번째 작품이었죠?”
내 뜬금없는 질문에 박진우 연출이 벙찐 얼굴로 답했다.
“첫 번째요? [양치기 청년>이니까.”
“그렇죠. 선댄스였죠.”
“옛, 예에.”
“그 다음은 어땠나요?”
선댄스, 베니스, 베를린, 로테르담, 아일랜드, 홍콩.
전 세계를 주유한 우리 영화는 당당하게 국내 독립영화의 신기록을 세웠고.
차기작으로 한국에서 천만 감독이 되었으며, 그 영화로 미국 진출 1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밟았다.
“첫해에 밟았어요. 얼마나 대단한 감독님입니까. 안 그래요?”
내 질문에,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힘을 실어주었다.
“마, 맞아요. 대단하죠.”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나는 소주잔을 잡고 말했다.
아주 감격스러운 목소리.
“첫해에 아카데미라니…”
그리고 아주,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이 정도면, 12년 안에 오스카 하나는 받지 않겠습니까. 무려 12년인데요. 안 그래요?”
내 질문의 칼 끝이 레오를 향했다.
무려 ‘12년’.
[게라드 쇼>에서도 조차 언급하길 피했고,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절대 꺼내지 않는 금지어.레오파드 앞에서는 절대 ‘12년’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말 것.
그 누구도 서로에게 충고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암묵적인 룰.
이 룰이 깨지자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레오의 톱니바퀴가 멈췄다.
레오의 입에 걸린 웃음은 더이상 비웃음이 아니었다.
“…. 뭐?”
분노. 모멸감.
주변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을 넘어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봐, 다들 집에 돌아가.
파티는 끝났다고 친구들.
나는 룰을 파괴했고, 그대로 레오를 쏘아보며 물었다.
아주, 시원하게.
“레오. 안 그런가요?”
우리가 우스워보여?
[ 책 먹는 배우님 – 147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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