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48)
148.
레오는 이제껏 이런 취급을 어디서도 받아본 적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좋았던 현장 분위기를 망치는 빌어먹을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위치.
영화 한 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는, 명실상부한 할리우드의 왕이니까.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지금.
단 한 마디만으로 좌중을 얼려버리는 그런 사람이니까.
내 도발에 레오가 눈에 쌍심지를 켰고.
“도 배우님.”
박진우 연출은 한껏 당황하며 그만하라는 듯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곤, 레오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레오. 스케줄을 수정해드리죠. 내일 하루 촬영장 나오지 말고 푹 쉬세요.”
하지만 박진우 연출의 말은 우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오. 저희가 우습게 보이나요?”
“적당히 까불어야 귀엽게 보이는 법이야.”
“그럼, 당신도 적당히 하시죠.”
“….”
자,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심장에 바늘 하나씩을 꽂았다.
이렇게 되면 동률이지만.
레오는 나와 ‘동률’이라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여기요, 레오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어요.
“… 재밌네. 이런 불쾌한 현장은 처음이야.”
“저 역시, 이렇게 무례한 사람은 처음이네요. 당신에게 우습게 보일 정도로 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죠.”
“이봐요! 그게 무슨 말 버릇입니까!”
레오와 동행한 에이전트가 내게 빼액 소리를 질렀지만 레오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만류했다.
“쯧.”
레오는, 욕을 하거나 잔뜩 흥분하는 대신, 경멸스럽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머리 위에서 손을 번쩍 들었다.
뒤에 있던 경호원 한 명이 이를 제지하려 했지만, 레오는 나를 후려치는 대신.
탁탁.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고 보면 알겠지.”
“….”
레오는 나를 노려보더니 등을 돌렸다.
“내일 촬영장에서 보지.”
차라리 면전에다 욕하고 흥분하는 타입이 상대하기 쉬운 법이다.
저런 타입은 언제 뒤통수를 후려칠지 모른다.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저 자식은, 뱀이고.
나를 언제고 삼킬 수 있는 먹잇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 먹잇감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는, 자기 손에 달려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아.”
박진우 연출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움켜쥐었고.
“내일 촬영 때 볼게요. 다들 들어가세요.”
김민희 PD님의 말에 자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파했다.
스탭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일 뵙겠다며 숙소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치워도 될까요?”
호텔 직원들만이 청소 용품을 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테이블에는 내 사람들과 박진우 연출밖에 남지 않았다.
어딘가 갑갑한 표정의 박진우 연출이 내게 말했다.
“후, 도 배우님.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주무세요.”
“….”
배우 두 명의 신경전이, 이 자리를 망쳐버렸다.
내가 참았어야 하는 상황이었나?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감정을 컨트롤 하지 못했고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박진우 연출이 말했다.
“아뇨. 제가 화나는 이유는 도 배우님 때문이 아닙니다.”
“… 네?”
“저 자신한테 화가 나요. 솔직히, 저도 한마디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쉬고 싶으면 네가 하루 일찍 오면 될 것 아니냐고. 아니면, 평생 쉬면 되지 않느냐고.”
“….”
“그런데 말 못 했어요. 그의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도 배우님이 말씀하실 때 속이 좀 시원하기는 했습니다.”
번개같이 말을 쏟아낸 그가, 나를 향해 미약하게 웃어 보였다.
“잘 하셨습니다.”
그는, 친구의 ‘일탈’ 덕분에 조금 시원해 보이는 모범생의 얼굴이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개 숙이지는 말아요. 감독님.”
내 자신감에 덩달아 힘을 입었을까.
박진우 연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맞아요. 뭣 하면 한국에서 활동하죠. 뭐.”
혹자들은 배우를 꽃에 비유하고는 한다.
내가 본 레오는, ‘군자난’ 이다.
꽃이 피기까지 짧게는 4, 5년씩. 길게는 10년 12년까지 꽃을 피우지 않는 꽃.
인고의 기다림 끝에 꽃이 피면 피보다 진한 붉은 색 꽃잎으로 화려한 아름다움을 뿜어내지만.
그 성격이 고약해, 비위가 틀리면 금방 스스로 죽어버리는 꽃.
레오.
그는 분명 내년에도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다.
13년째 아름다운 꽃망울을 보지 못하고, 14년째에도 그럴 것이다.
이는, 내가 확신하지.
*
레오파드 비트리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숙소로 들어섰다.
숙소라고 주어진 방은, 다른 배우들과 다를 것 없는 4성급 호텔.
이 현장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항상 최고의 대우만을 받아오던 레오에게는 ‘찬밥 신세’로 느껴졌다.
그렇다고 레오가 직접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의 에이전트가 대신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싸구려 호텔 잡아놓고 큰 소리는. 감히 레오에게 이런 취급을 해? 건방진 동양인 놈들. 레오, 그냥 LA로 돌아가 버릴까?”
레오 역시 이 자체만으로 불쾌함을 느꼈지만, 시드니에서도 160km 떨어진 해안 마을에서 촬영하는 영화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됐으니까 조용히 해.”
조용히 분노를 감추었다.
호텔에는 보는 눈이 많다.
“그, 그렇지만 저 시건방진 놈들을 그냥 넘어 갈…”
“똑같은 얘기 밤새 할 건가?”
레오는, 얼굴 가득 분노를 감추고 에이전트를 쏘아보았다.
“… 아, 아니 그게.”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불쾌해? 그럼, 가서 에이전트인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아, 알았어.”
레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자신의 숙소 문을 열었다.
끼이익! 쾅!
문을 닫자마자, 레오의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이 금이 가기 시작했고, 곧 분출하듯 욕설을 뿜어냈다.
“퍽!”
젠틀한 척, 여유 있는 척.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져있던 감정들이 몽땅 깨지고, 참기 힘든 솔직한 분노만이 남아있었다.
“상종도 못 할 새끼들이.”
제아무리 할리우드에서 인클루전 라이더 (inclusion rider)라니, 뭐라니 새바람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동양인 배우가 자신을 무시했다.
그런데, 당연히 자신의 편을 들어야 할 에이전트를 제외하고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았다.
왜?
그 자식들이 뭐길래?
“… 제기랄.”
레오는 거칠게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치익, 칙.
담대 연기가 베란다 가득 피어올랐다.
사라져가는 담배 연기처럼, 레오의 분노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알고 있다.’
왜 할리우드에서 도재희라는 이름에 열광하고 있고.
이 현장의 그 누구도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았는지.
직접 눈으로 보아서 알고 있다.
리틀 아일랜드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고.
모니터 속의 도재희가 얼마나 소름 돋는 리얼리티를 보여주고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까.
도재희는, 확실히 다른 배우들과는 레벨이 달랐다.
짧은 시간 안에 레오는 그 점을 정확하게 보았지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자식, 대체 뭐지.”
필터 끝까지 타버린 담배처럼 속이 타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복잡하다.
지금 속에 들어있는 감정은 여러 가지다.
자신에게 도발한 애송이에 대한 분노.
이상한 질투심.
정체가 궁금할 만큼 짙은 호기심.
복잡한 감정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밤에 잠 자긴 글렀군.’
레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들고 있던 담배를 허공에 던져버렸다.
파앗-
불꽃이 허공에서 흩뿌려졌고- 담뱃재는 시들시들 해져버린 군자난 꽃잎처럼 사라졌다.
*
[청춘열차>의 송문교.L&K 후배인 임주원.
[피셔>의 임강백.이 셋의 공통점은.
모두가 내 커리어의 제물이 되었고, 같은 작품 혹은 동 시간대 작품에서 연기대 연기로 붙었던 사람들이라는 점.
레오는?
철저하게 송문교, 임주원, 임강백과 같은 부류다.
그 1차전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니라, 오늘 이곳.
[알카트라즈> 촬영현장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했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 조식을 먹고 난 뒤, 콤비 차량을 타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재희 왔어요?”
“네. 식사는 하셨어요?”
“그럼요. 조금만 기다려요. 카메라 먼저 보내고.”
선착장에서는 매일 아침 그러하듯, 카메라 같이 중요한 촬영 장비를 보트에 실고 있었다.
무거운 조명이나 모니터 같은 장비들은 섬에 만들어둔 컨테이너 보관함에 넣어두지만, 카메라는 반드시 직접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
나는 선착장 어귀에서 촬영용 보트가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새하얀 연출용 보트가 도착했고, 나와 박진우 연출이 함께 보트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박진우 연출은 보트를 출발시키지 않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왜요?”
“레오를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레오파드.
할리우드 스타께서, 여기까지 친히 방문해주셨는데 감독이 직접 가장 좋은 보트로 모셔야지.
암.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보트에 앉아 기다리자, 레오가 도착했다.
선글라스에 화려한 자수가 수 놓인 셔츠에 하얀 백바지를 입고 있었다.
확실히 매력적인 배우다.
그림만 보았을 때,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어젯밤 일 때문이다.
섬으로 향하는 짧은 배 위.
어색한 공기가 어깨를 짓누른다.
“으흠흠.”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 되면 안 된다고 판단한 박진우 연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잘 주무셨습니까?”
예의 있는 감독님의 질문에 레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독님은요?”
“저도 잘 잤습니다.”
감독님이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나 역시 가만이 있을 수는 없다.
“레오, 어제는 제가 좀 심했습니다.”
내 사과에 레오는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긴 아는군.”
“….”
아, 그러세요.
제기랄. 괜히 사과했다.
내가 진 기분이잖아.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얘기인데 말이야.”
그때, 레오가 말했다.
“나랑 게임 하나 하지.”
게임?
“… 무슨 게임이요?”
“하이마운트 픽쳐스 웹 채널에 캐릭터 예고편을 넣어달라고 하는 거야. 너와 나.”
“… 그래서요?”
“‘좋아요’가 몇 개 달리는지를 두고 판단하는 거지. 지는 사람은,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
외국인들은 SNS의 팔로워 수나, ‘좋아요’ 숫자 등이 인기의 척도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청자들은 모르는 관계자들끼리의 이런 내기 아닌 내기는 성행한다고 들었지만, SNS를 하지 않아 회사 계정을 통해 내 근황을 업로드 하는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다.
“할리우드에서 인지도는 내가 높겠지만, 너는 이 영화의 주연이잖아. 핸디캡은 서로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정확한 우위를 가리기 힘들 때는, 뷰어 숫자, 좋아요 숫자 같이 드러나는 수치는 결과의 척도가 된다.
레오가 내게 이런 싸움을 제안하는 이유.
그러니까.
“한번 해 보시자는 거죠. 저랑?”
내 솔직한 질문. 앙큼한 도발에 레오가 여유롭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여기에 온 이유.”
…. 그래. 알고 있지.
‘한 판 붙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물어나 봅시다. 소원이 뭐길래 제게 이런 유치한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레오는 아주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할리우드에서 꺼져.”
“…..”
아하.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데?
“12년간, 기다린 사과나무를 눈앞에서 도둑맞는 기분을 네가 이해할까?”
나는 레오의 말에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재익이 형, 박진우 연출의 벙찐 얼굴을 뒤로하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시죠.”
물론, 이해한다.
레오 이 인간.
나랑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다.
[ 책 먹는 배우님 – 148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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