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0)
150.
물과 기름.
나와 레오는 얼핏 보기에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것 같이 보였다. 처음에는 현장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과연 박진우 연출의 디렉션을 잘 들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 우려는 점점 사라져갔다.
레오는 어지간한 디렉션이 필요 없는 수준으로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었고, 카메라에 담긴 ‘결과물’ 만큼은 물과 기름이 아닌, 그 어떤 쉐이크 보다 달콤했으니까.
나와 레오의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같은 목표를 향한 사람들임은 부정할 수 없다.
오스카상, 그리고 ‘훌륭한 연기.’
이 작품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캐릭터 티저 영상의 조회수와 LIKE 개수를 합산하는 일명, ‘좋아요’ 게임.
‘게임’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이 영상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면, 우리 사이에는 철저하게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된다.
이 게임에서 진 플레이어는.
“아웃.”
할리우드에서 사라질 것.
이렇게 레오가 내게서 취할 전리품은 할리우드에서의 내 수급이다.
반대로.
“너는, 내게 뭘 원하지?”
내가 레오에게서 원하는 것은.
“당신의 영향력.”
레오의 명예.
“그게 무슨 말이지?”
내 아리송한 대답에 레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별 것 아닙니다. 인터뷰하세요. 제게 했던 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인정하세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인정할 것.
“고작?”
레오는 피식 웃더니 ‘그깟 게 무슨 소용이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지.”
그리고는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레오가 호주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사이 [알카트라즈>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레오가 호주에 도착한 첫날,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신경전 같은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호의적인 무언가가 오간 것은 아니다. 조금 전과 같이, 아주 ‘짧은 용건’ 정도가 사적인 대화의 전부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카메라 앞에서 주고받는 대사가 전부.
이게 우리의 대화 방식.
함께 촬영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나와 레오의 거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촬영장 분위기는 좋았다.
“레오도 작년에 비해 훨씬 안정감 있지 않아?”
“맞아요. 몸에 맞는 옷을 입었다고 할까? 작년에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되었던 [디트로이트 피플> 때 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느낌인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얼굴을 봐. 완전 칼을 갈았다고. 그에 반해 재희는 어떤 것 같아?”
“재희요? 재희는 항상 똑같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제자리걸음. 축구의 신 ‘메시’처럼 ‘언제나’ 환상적이죠.”
촬영 스태프들의 극찬이 연일 이어졌다.
마치, 메시와 호날두가 수년간 발롱도르를 양분하며 매해 서로를 의식하지만, 사적인 친분은 나누지 않아 훨씬 신비로운 것처럼.
오히려 이런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관계에서 높은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고 믿는 듯했다.
맞는 말이다.
확실히, 내 눈앞에 넘어야 할 ‘산’이 있으니, 노닥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루라도 빨리 넘어가고 싶은 조바심뿐이다.
이는 레오 역시 마찬가지.
처음과는 다르게 레오는, 매일 매일 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있었다.
“연기 신들의 대결이라. 정말 매일 새롭군. 새로워.”
“예고편 나가면, 할리우드 분위기 뒤집어 버리겠는데요.”
“그러게. 촬영 감독님도 이 작품으로 ‘촬영상’ 오스카 하나 받으셔야죠.”
스탭들 역시, 우리들의 영상이 세상에 공개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스카에는 배우들을 위한 상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배우와 스탭.
이들 모두에게 영광을 가져다줄 황금 동아줄.
[알카트로즈>이 동아줄이.
할리우드를 꽉 붙잡고 끌어 내릴 것이다.
내 앞으로.
*
‘악마 섬’에서의 촬영도 어느새 막바지에 달했다.
영화 내용은 교도소장(2)인 레오의 명령을 받아 알카트라즈 내부의 불순자들을 내가 직접 고발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포인트’를 획득했다.
“99포인트에, 이제 마지막 100포인트. 정확히 16개월이 걸렸군. 정말이지 악착같이 모았어. 동료들을 죄다 팔아넘기면서까지 내게 얻고 싶은 소원이 뭐야?”
교도소장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떨며 말했다.
“동료들이 아닙니다.”
“응?”
“알카트라즈에서도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저는 동료를 팔지 않았습니다.”
“… 재밌군. 그래. 원하는 소원이 뭐야?”
알카트라즈 죄수들의 비리를 고발하며, 100포인트를 다 모은 내가 교도소장에게 빈 소원은.
“환경미화 구역을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옮기고 싶습니다.”
“…..”
하루에 세 번씩 진행되는 환경미화 시간에 내 청소 담당구역을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옮기는 것.
내 소원에 교도소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고작, 그게 소원이라고?”
‘게임’에서 이기면 자신에게 원하는 소원이 뭐냐고 묻던 레오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나는 단호하게 답했다.
“네.”
“난 더 큰 소원도 들어줄 용의가 있는데 말이야. 맛있는 사식을 넣어준다 던지, 아니면 조금 넓은 독방으로 보내준다 던지 하는.”
100포인트를 모으는데 16개월이 걸렸다.
내 억울함을 돌이켜 본다면 길고 긴 시간.
하지만, 내게는 이 소원이 꼭 필요하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보내주십시오.”
“진짜 이유가 뭐야? 화장실 청소만큼 편한 것이 없을 텐데?”
교도소장 집요하게 물었다.
나는 지난 16개월간 알카트라즈 최상층에 위치한 교도소장의 개인 화장실 청소를 담당해왔다.
개인 화장실 청소는, 탄광, 작업장, 소각장 청소에 비해 오히려 편한 편에 속한다.
그런데, 16개월간 매달린 일의 결말이 고작, 청소구역을 바꿔 달라는 요구라니.
교도소장 입장에서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화장실 냄새가 너무 역합니다.”
화장실 냄새를 참지 못하겠다는 말에 레오가 무표정하게 입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내 탈출 방법.
알카트라즈는 건물이 많이 낡아있고, 지난 반란 때 일어난 폭발의 후유증을 여전히 안고 있는 건물이다.
거기다 바다의 염분과 습기 때문에 시멘트와 철근이 많이 삭아 있는 상태.
난 이 점을 공략한다.
교도소장의 개인 화장실, 천장 바로 위가 지붕이다.
나는 지난 16개월간 이곳 천장을 수색하며 지붕으로 향하는 통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이 통로의 통풍관을 타면 알카트라즈 건물 외벽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문제는, 바다를 어떻게 건널 것이냐.
보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청소구역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장에는 보트를 만들기 위한 재료가 존재한다.
메인재료는 바로 비옷.
죄수들이 입는 비옷은 질긴 고무로 만들어져있고, 이런 못 쓰는 비옷들을 조금씩 모아 고무보트를 제작하기로 한 것.
교도소장은 조금 의심쩍어하기는 했지만.
“별 개 같은 소원도 다 있군. 하지만.”
그 간의 내 행동을 보며 나를 신뢰하고 있었다.
“들어주지. 소원은 소원이니까.”
그렇게 나는,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또 다시 6개월을 버티며 수용성 접착제와 바늘을 이용해 고무보트를 만들었다.
나무판자로 노를 만들어 교도소장 화장실에 숨겨두기도 했다.
반란 이후, 장장 2년이 넘는 시간을 공들였고- 내가 알카트라즈에 수감 된 지도 벌써 4년.
드디어, 이곳을 탈출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
내가 탈출을 시도할 시간대는, 저녁 일곱 시.
죄수들이 알카트라즈 여기저기에 퍼져있고 분위기가 부산스러운 저녁 ‘청소시간’.
모두가 잠든 새벽 보다, 이 시간이 좋은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새벽에 교도소장의 개인 화장실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
둘째는 보다 실리적인 이유다.
이 시간에 바닷물이 만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자연스럽게 밀어내듯 흐르는 물살을 타고 바람까지 받쳐준다면 대략 두 시간 이내에는 육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서쪽의 가장 가까운 내륙.
청소시간이 시작하자마자 교도소장의 화장실로 숨어든 나는 천장 다락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벽과 평행으로 설치되어있는 통풍관을 타고 30m 이상 미끄러져 내려갔다.
빠르게 알카트라즈 외벽을 빠져나온 나는, 경비탑의 눈을 피해 준비한 고무보트를 절벽 아래로 던졌다. 나무판자를 품에 안은 채 나 역시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고무보트를 저으며 이 지긋지긋한 섬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람도 좋고, 물살도 제격이다.
두 시간.
저녁 청소시간이 끝나고 알카트라즈 점호시간과 겹치는 시간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점호 때 내가 사라진 것을 들키게 되고 추격자가 따라붙을 것이다.
나는 있는 힘껏 노를 저었다.
어느새 어두컴컴한 바다가 나를 일렁이듯 집어삼킨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바닷물이 안면에 마구 튀었고, 금방이라도 빠질 듯 고무보트가 휘청거렸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그대로 물에 빠져 죽을 테니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알카트라즈에서 죽을 때까지 갇혀 사느니, 차라리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하지만 ‘복수’를 하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바다가 요란해졌다.
웽웽웽웽웽-
– 비상. 비상.
요란스러운 비상 사이렌이 울리며, 저 멀리, 알카트라즈의 경비탑에 전조등이 들어오며 인근 바다가 밝아졌다.
어두컴컴하던 바다가 환한 낮으로 변한 것.
…. 들켰다.
그 말은, 점호시간이 되었다는 말이고 대략 한 시간 삼십 분 남짓을 달려왔다는 말.
하지만 나 역시, 육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나는 이가 부서져라, 악 깨물었다.
기다려라.
*
– “그 자식을 내가 너무 믿었군. 당장 육지에 연락해서 해안 경비대를 대기시켜! 너희들도 빨리 나가서 저 개자식을 잡아 와! 아니, 내가 직접 가지!”
레오의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악마 섬’ 에서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와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씬은 포트스테판 사막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알카트라즈 세트에서 더 이상 찍을 촬영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촬영은, 포트스티븐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인 바다와 사막이 맞닿아 있는 포트스테판 ‘사막 횡단’ 촬영 씬이 남았다.
알카트라즈에서 탈출한 내가,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 사막을 횡단하여 도망친다. 이런 나를 추격하는 교도소장과 간수들, 해안 경비대와의 액션 씬.
보트가 폭발하고, 바다를 헤엄치고, 잠수하고, 4WD 사륜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장면.
이 장면을 끝으로 해외 로케이션을 마치고 LA로 돌아가서 나를 알카트로즈에 버린 군인들에게 복수하는 장면과, 알카트로즈에 수감 되기 직전, 프롤로그 장면을 촬영하면.
영화 [알카트라즈>의 촬영이 모두 끝난다.
“드디어 끝이 보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는 악마 섬에 남겨둔 모든 촬영 장비들을 선박 가득 싣고, ‘악마 섬’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모두 숙소로 돌아가 푹 쉰 다음.
다음 날 해 질 무렵, 포트스테판 사막에 집결했다.
사막이라 하면, 물이 부족하고 삭막한 느낌을 들지 않는가.
헌데, 이곳은 사막과 바다가 맞닿아 있다.
쉽사리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에 모두가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여기가, 촬영장소를 이곳으로 섭외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
나는 한참을 바람을 맞으며 사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 내게 다가온 사람.
“오늘이 마지막이군.”
레오였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레오의 마지막 촬영이었다.
“LA로 돌아가십니까?”
“그래. 오늘 촬영이 끝나고 나면, 아마 내년 3월에나 얼굴을 보겠군.”
내년 3월.
아카데미 시상식.
그래.
아마, 그 전에 그와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 그렇겠네요.”
“섭섭한 표정인데.”
“그럴리가.”
“우리 ‘게임’은 잊지 않았겠지?”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
“그럼요.”
“좋아. 약속 잘 지키라고.”
“풉, 당신이야말로.”
눈앞에 촬영할 영상들이 스쳐지나가듯 그려진다.
아, 얼마나 또 굴러야 할까.
레오와 나의 마지막 라운드.
미리 말하지만.
이 싸움은.
내 판정승이 확실하다.
[ 책 먹는 배우님 – 15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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