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2)
152.
언론 시사회의 날이 밝았다.
오늘은 꽤 기념비적인 날이다.
내 ‘연출’ 데뷔를 기념하는 날일뿐더러, 영화의 본고장에서 기자들에게 찰진 직구를 날리게 되는 날이니까.
“떨리지 않아?”
‘직구’
오늘, 내 영화는 평론가와 기자들 아래에서 철저하게 분석되고 자체적으로 별점이 매겨지게 되고, 이 비평과 별점은 전미 영화 사이트들에 골고루 뿌려지게 된다.
참고로 작년에 개봉한 [7년의 기억>의 별점은 9.4점.
내가 던지는 공이 저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는 모르지만.
“떨리죠.”
떨린다.
오늘 받게 될 평가 하나로, 여기 모여있는 기자들이 아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 가려지게 될 테니까.
상영관이 어두워지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제일 앞줄에 앉아 관람했는데- 옆좌석, 뒷좌석에 앉아있는 기자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Buy your memories>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내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기자들의 시선을 훔쳤다.아름다운 CG에 혼을 빼앗긴 기자들에게서 ‘오’ 하는 탄성이 수차례 터져 나왔다.
할아버지의 삶을 찾아주고픈 나.
특별한 존재인 조승희.
‘할아버지’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 설강식.
세 명의 배우가 만들어 내는 하모니는 울림이 있었다.
쥬세페 감독의 [시네마 천국>과 비교되는 이 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1:1 스크린 비율에서 와이드 스크린으로 넓어지는 장면은 이 모든 하모니의 기폭제 역할을 단단히 했다.
“언빌리버블!”
상영관이라는 것도 잊은 어느 기자의 경악스런 탄성이 튀어나올 정도로.
영화가 끝난 뒤에는 기자들에게서 이례적인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상영관 가득 울려 퍼진 박수 소리에, 나는 온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대단한 쾌감을 느꼈고, 객석 제일 첫 줄에 서서 이 박수 소리를 즐겼다.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신인 감독이 이런 감성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완성도가 너무 높아요. 배우들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는데 연출을 너무 잘했어요. 재희. 말해주세요. 이거, 연출 데뷔작이 아니죠?”
“보고 말하라더니,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군. 난 10점이야.”
나는 그때야 비로소 진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와서 이제껏 꽤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데드 매니악 시리즈>, [아다지오>, [패브리케이터>.한국 영화인 [7년의 기억> 까지.
이 작품들은 모두 ‘성공’과 인지도를 가져다주었지만, 확실한 내 ‘무기’가 되지는 못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 ‘힘’은, 나를 할리우드에서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
미국에 영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가 공개되었다.
외국어 영화의 태생적인 한계.
처음에는 상영관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날 17개의 상영관에서 32만 4천694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상영관이 급격히 늘어나더니 개봉 1주 만에 900여개의 상영관으로 늘어났다.
불과 900여 개의 와이드 스크린에서 개봉 1주 만에 1천 5백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는 [7년의 기억>을 한참 뛰어넘는 기록인 동시에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거두어들인 수익 1위에 올랐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 실패 이후.
아카데미 아래에서 호시탐탐 수상을 노리던 하이에나 한 마리가 위로 급부상했다.
이는 할리우드라는 생태계를 뒤흔드는 파괴자였으며, 이 두꺼비는 멈출 줄 모르고 커져갔고.
어마어마한 수익을 보장하는 영화가 된 내 영화는, 단숨에 상영관이 2000여 개로 늘어났다.
별점은 9.6점을 받았다.
독립영화, 외국어영화의 흥행 신화를 새로 쓰는 순간.
미국이 이런데.
애초에 메인 타겟으로 잡았던 한국은 어떨까.
난 미국의 일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방문하는 한국이다.
부푼 가슴을 안고 13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꺄아아아아아!”
L&K는 내 입국 소식을 교묘하게 흘렸고 나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 100여 명과 암암리에 입국 소식을 접하고 우르르 몰려든 팬들 때문에 공항이 북새통을 이뤘다.
“재희 씨! 한국 팬들과 오랜만에 만나셨는데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미국행 이후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고 계신데요! 레오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팬들이 궁금해하고…”
인터뷰는 간단명료하게.
용건만 간단히.
오래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회사로 들어갔다가, 시간 맞춰 제작발표회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와, 반응 장난 아니네. 무슨 종교네, 종교야.”
“어, 팀장님!”
“후후, 재희 오랜만이다.”
박찬익 팀장이 나를 직접 기다리고 있었고, 곧바로 차에 올라 공항대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선 뒤 L&K 사옥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 배우님!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L&K 사옥 앞에도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하이고, 여기도 난리네. 레오 때문인가?”
재익이 형의 말에 박찬익 팀장이 말했다.
“몰랐어? 한국 팬들 커뮤니티에서 짤로 엄청 돌아다닌다고. 레오 대 재희. 여기서도 반응 장난 아니야.”
확실히 할리우드에서 레오와의 이슈는, 한국에서도 난리였던 모양새다.
“나중에 제작발표회 때 다 이야기하겠습니다.”
취재진들을 피해 회사 로비로 들어서자 L&K 정문 로비에 버선발로 나를 기다리는 두 명의 남자들과 마주쳤다.
이무택 대표와 권우철 대표였다.
“재희야!”
둘은 명절날 1년 만에 만난 ‘손주’마냥 반겨주었고, 대표님들과 함께 대표실로 이동해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느라 정말 고생했다.”
“휘유,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온도 차가 달라졌다.
“허구언날 기사가 나온다니까. 재희는 미국에 있는데 한국에서 차기작을 한다는 얘기는 도대체 왜 나오는 거야?”
활동은 미국에서 하고 있는데, 한국 팬들의 반응이 더 뜨거워졌다.
“재희는 요즘, 국가대표 수준이지.”
권우철 대표님의 말마따나, 해외 활동을 국내 팬들에게 응원받는 느낌이랄까.
“소식 들었다. 미국에서 영화 대박 난 거.”
이무택 대표의 입이 귀에 걸렸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에서 투자 지분이 가장 큰 기업 중 하나가 L&K다.미국에서의 성공으로 회사는 어마어마한 돈을 만지게 되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물론, 아직 한국 시장도 남아있다.
“N포탈에서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예고편 조회 수가 몇인 줄 알아? 100만이야, 100만. 이건 개봉한 지 몇 년 지난 영화 조회수라고.”
“최소 천만부터 시작하지 않겠어?”
“천만뿐이겠어요? 최초로 이천만 돌파하는 느낌 아닙니까? 한국인 감성에 딱 맞잖아요.”
한국 시장에 딱 맞는, 웰메이드(wellmade) 영화.
만약, 이 영화로 천만을 돌파하게 되면.
나는 삼 연속 천만 배우가 된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연출&배우를 동시에 해내며 천만을 획득한 영화인이 된다.
이거, 가능한 일일까.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나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가능하죠.”
가능하다.
매일 매일 미국에서 신기록을 달성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한국 팬들에게 뜻깊은 선물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오래전 찍은 영화를 개봉하는 일은 마치, 어릴 때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내는 어른의 마음과도 같다.
아, 그때는 그랬지.
이렇게 찍었었지.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지켜보고 영화를 촬영하던 때의 감성을 끄집어낸다.
한국 제작발표회.
시사회.
미국시장에서 개봉할 때 마음 졸였던 때와는 정반대로, 한국에서는 온전히 영화에 집중해서 본 것 같다.
이는,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해준 조승희와 설강식도 마찬가지.
“와.”
미국에서 후반 작업을 마쳤기 때문에, 조승희와 설강식 선배님은 영화를 한국에서 처음 보셨는데.
이들은 영화 상영 내내 연신 울고 웃으시더니,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생했어. 도 감독.”
설강식 선배님은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해하셨고 조승희는.
“내가 시나리오 보는 눈이 나갔다는 팬들한테 한마디 할 수 있겠어. 이걸 보라고.”
이제껏 팬들에게 먹었던 ‘욕’을 단박에 날려버릴 기회를 잡았다고 기뻐했다.
그래.
조승희는 시나리오를 아주 제대로 보았다.
자, 이제 평가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평가는, 정식 개봉 첫날 A+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우와! 대박!”
오프닝 스코어 71만명.
한국 역대 최고 기록이던 67만 명을 가뿐하게 넘어선 수치.
호랑이 등에 제대로 날개가 달렸고, 승승장구하던 L&K 사옥이 축제분위기로 바뀌었다.
“1위! 신기록입니다!”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홍보팀 너나 할 것 없이 휴대폰을 들고 일제히 흥분했으며, 복도와 휴게실로 몰려들었다.
온라인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었고, 예매율 1위로 한동안 이 독주를 막을 영화는 없어 보였다.
“이렇게 되면, 올해 연말 시상식 싹쓸이 아닙니까?”
유독 한국 영화가 부진했다는 올해.
혜성처럼 등장한 영화 한 편은 시상식 ‘올킬’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럼, 남우주연상은 누가 받지?”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설강식, 조승희, 도재희 셋 중 누가 될 것이냐는 추측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당연히 재희지!”
L&K에서는 압도적으로 나를 지지했으나, 몇몇 신중한 매니저들은 조승희나 설강식의 우세를 점쳤다.
“설마 3년 연속 주겠어?”
연기력은 그 누구도 논란이 없을 만큼 훌륭했던데다, 내가 2년 연속 받았으니 3년은 주지 않지 않겠냐는 추측.
뭐가 되었든.
“이제는 재희 세상이야.”
작년에 시작했던 조승희라는 왕좌를 빼앗기 위한 이 행보도 올해 끝이 난다.
말마따나, 내 세상이다.
미국 스케줄 때문에 잠시 막아두었던 스케줄이라는 이름의 내 댐이 무너졌다.
예능, TV쇼, 라디오, 광고, 패션모델.
가릴 것 없이 들어오는 스케줄들 속에서 L&K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만.
“밤 비행기지? 하루면 충분해. CF 촬영하고 비행기 타도 스케줄상 늦지는 않거든.”
“죄송해요. 좀 쉬고 싶어요.”
광고료로 10억 이상이 측정되었지만 나는 스케줄 대신, 가족과의 휴식을 택했다.
“아, 재희 네가 원하는 대로 해야지.”
영화도 무사히 개봉했고, 이제 곧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국 전날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내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나는 모처럼 오랜만에 사당동 집에 도착했다.
한국은 여전하다.
[청춘열차> [피셔>를 통해 번 돈으로 힘겹게 구했던 투룸 오피스텔 전세방도 여전하고.사당동에 있는 내 본가도 여전하고.
“아들.”
어머니, 아버지도 여전하다.
몇 년 전에 [청춘열차> 데뷔 소식을 말씀드리고 아이 같이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얼굴과.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되어가는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묘하게 겹쳐진다.
“왔니? 밥은?”
“아직이요.”
내 대답에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그래? 어서 들어와. 밥 먹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또 언제 볼지 모르는 아들내미 밥은 먹이고 보내야 내 속이 편하지.”
“푸흡. 네.”
역시, 한결같으시다.
[ 책 먹는 배우님 – 152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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