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3)
153.
내가 [청춘열차>로 얼굴을 막 알리기 시작한 신인배우인지,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할리우드 스타던지.
어머니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저녁 먹자.”
그저, 아들.
언제나 한결같으신 우리 어머니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저녁상을 준비하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익 씨는 어디 계셔? 아직 멀리 안 가셨겠지?”
“재익이 형이요? 네, 아마도. 집 가까운 스탭들 내려주고 있을걸요.”
“잘됐네. 그럼 같이 밥 먹게 얼른 불러. 전부다.”
“네? 여섯 명도 넘는데요?”
매니저 한 명도 아니고.
한국에 오면 나를 따라다니는 스탭이 여섯 명도 넘는다.
경호원을 포함하면 여덟 명.
밴 한 대로도 모자라 축제 차 한 대가 더 따라다닌다.
그런데도.
“괜찮아. 이 기회 아니면 언제 밥 한번 먹이겠니?”
어머니는 끝내 스탭들에게 밥 한끼 먹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셨고, 결국 나는 재익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익이 형은 아직 멀리 가지는 못한 듯 전화가 끝나자마자 함께 움직이던 스탭들을 데리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손에는 과일 바구니가 하나 들려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어서들 와요. 아, 뭐 이런 걸 다 사왔어요?”
우리 집은 넓지 않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시고, 어머니는 평범한 주부.
L&K 사내 기숙사 생활을 하기 전에는 나까지. 세 사람이 살던 그저 평범한 주택.
30평 내외의 특별할 것 없는 공간.
“우와, 냄새 좋다!”
“어머니! 몇 달 사이에 피부가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 조금 특별해졌다.
우리 집이 이렇게 시끌벅적하던 때가 있던가.
이런 곳에 남자 셋, 여자 다섯.
여덟 명의 사람이 들어서자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복작복작해졌다.
집에서 쓰는 4인용 테이블에 모두가 앉을 수가 없어 결국 거실에 상하나를 더 펼쳤다.
메뉴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소갈비와 찜닭.
“자! 맛있게 먹어요!”
“우와! 잘 먹겠습니다!”
“미국에서 아들이랑 같이 고생하는데. 언제 밥 한번 먹이고 싶었다니까.”
“우음, 정말 맛있어요 어머님.”
단순히 집에 놀러 온 ‘손님’이 아니라, 어머니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 모두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아들, 딸처럼 대하셨고.
“다들 맛있게 먹으니,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네.”
어머니는 이제야 마음이 편하신 듯 활짝 웃으셨다.
기분이 묘해진다.
이렇게 시끌시끌한 자리를 어머니가 좋아하셨던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뿐인 아들이 곁에 자주 있지도 못하고- 홀로 타지 생활하는데.
어머니가 조금 외롭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외롭지 않으시냐, 미국에 같이 넘어가서 사는 것은 어떠냐는 재익이 형의 질문에.
“TV 틀면 매일 아들 얘기뿐인걸.”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기도 하셨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재익 씨. 아들이랑 매일 붙어있죠?”
어머니의 질문에 재익이 형이 황급히 입에 있는 음식을 삼키며 답했다.
“우웁. 네. 그럼요. 미국에서는 24시간 붙어있습니다.”
“만나는 여자는 없어요?”
“푸흡-!”
어머니의 돌발 질문에 재익이 형이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했다.
“예? 저요? 어, 없어요!”
“아니, 재익 씨 말고. 우리 아들.”
“… 아.”
재익이 형은 자신에게 한 질문이 아닌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얼굴을 붉혔다.
“재익 씨가 왜 민망해하고 그래?”
“….”
어이, 이봐요.
형이 얼굴은 왜 붉히는 건데.
그때, 어머니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아들. 여자 친구 없어?”
“네? 없어요.”
“그래? 스타면 뭐하니? 서른 넘도록 연애도 제대로 못 해봤는데.”
“….”
어머니가 가슴에 비수를 아주 제대로 꽂으시는데.
너무 아프잖아.
어머니는 이런 내 반응이 재미있는 듯 빙글빙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외로울까 걱정돼? 그럼 여자친구 데려와.”
“크흡”
“흠흠”
아, 어머니.
여자 친구라니.
“어머니. 재희처럼 여자 문제 깔끔한 친구는 보기 힘들어요.”
어머니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말씀하셨다.
“그래요? 조금 덜 깔끔하면 어때요. 이제 서른이 넘었는데. 설마, 회사에서 연애 못 하게 막는 건 아니죠?”
재익이 형은 웃음기를 지우고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저희는 재희가 원하는 건 모조리 다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 이건, 재희가 안 하는 거라고요.”
“으음- 그래요?”
어머니는 게슴츠레한 눈을 거두시고는 내 쪽을 흘깃 쏘아보셨다.
“왜 그런데요?”
“…..”
아, 어머니.
어머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며느리라고 강조하셨다.
아무래도 다른 의미로 외로우신 것 같지?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확! 응? 알지?”
“아, 몰라요.”
“푸하!”
어머니의 폭탄 발언에 주변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스탭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어이, 다 들려요.
“아무튼, 우리 아들 좀 잘 부탁드려요. 촬영 끝나면 자유시간도 주고 그래요. 알아도 모른 척. 알죠?”
“그럼요. 저도 재희가 연애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거, 한국 들어와야겠는데.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고, 영화 [알카트라즈>의 LA 촬영이 진행되었다.
메인 촬영지는 하이마운트 픽쳐스의 오픈 세트장.
7-8월의 무더운 여름을 촬영으로 보내는 사이.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는 제대로 훨훨 날았다.미국에서는 총 상영관 2,000개와 수익은 5천 4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할리우드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기록이었다.
단숨에 할리우드를 집어삼키며 ‘외국어영화상’ 차기 후보로 거론되었고, 일각에서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개봉 11일 만에 천만 관객 돌파! 역대 최고]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개봉 3주 차 1,700만 스코어 돌파] [한국 영화 역대 최다관객 신기록 갱신까지, 앞으로 50만.] [돌파! 한국 영화 사상 최대 관객! 1820만 종합.]1820만이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하며 영화가 마무리 되었다.
1820만 명.
한국 역대 최다 관객 수 1위를 갱신한 역사적인 작품이 된 순간.
한국인에게 딱 알맞은 입맛의 영화가 시장 저격을 제대로 성공했다.
“올해 한국 영화가 극장가에서 유독 힘을 못 썼거든. 한국 영화 팬들한테는 한 줄기 빛이었다고 할까?”
한국 영화계의 한 줄기 빛이 된 작품.
확실히 이 라인업은 쉽게 볼 수 있는 라인업이 아니지.
“지금 한국은 난리야. 누가 연기를 잘했네, 누가 별로였네.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자기들끼리 투표도 한다니까?”
팬들이 직접, 왕좌를 가리고 있다.
신뢰할만한 정보는 아니지만, 내가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품을 보는 눈이 없다는 네티즌들의 타겟이 되었던 조승희는 ‘역시 조승희’ 라며 명예 회복에 성공했고.
설강식 선배는 명불허전 최정상의 연기파 배우로 군림했다.
그리고 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인지도가 날뛰었다.
[도재희 3연속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 [올해는 ‘도재희의 해’ 감독과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 [설강식, 조승희, 도재희. 남우주연상 삼파전. 연예계 왕좌는 누구에게?]3연속 남우주연상.
그리고 3연속 천만 배우.
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정조준한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 할리우드 감독들의 극찬이 이어지다.] [세기의 명장, 오웬 형제. “우리는 다시는 저런 영화인을 만나기 힘들 것.”]내 영화의 성공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할리우드 분위기에 정신이 없었다.
– “이번 주 헤이첼의 무비 쇼에서는 미국 데뷔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된 도재희를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연출과 배우를 병행하며 어메이징한 성공을 거둔 이력은 확실한 내 무기가 되었다.
– “재희를 처음 본 때가 3-4년 전 선댄스에서였죠. 그 친구의 재능을 저는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 친구는 자격이 있어요.”
– “제가 [아다지오>의 뮤직 프로듀서로 참여했을 때, 가장 바라던 점 하나는. 제 노래에 어울리는 배우를 만나고 싶었다는 점이죠. 그런데, 그게 재희였어요. 재희는, 제가 만들었던 노래를 100% 소화해주었어요.”
조셉 이든 캣맨, 엘라니 오코너.
나를 사랑하는 스타들은 인터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내 인지도에 기름을 부어주었고.
내 이름이라는 장작은, 할리우드 중심에서 아주 활활 타올랐다.
나는 기사의 제목 말마따나, 올해 가장 정신없는 한 해를 보냄과 동시에, 이례적인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대기록.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이 두 가지를 해낸다면.
“끝나는 거지!”
내 짧고도 긴 할리우드행이 끝나는 거다.
“월드 스타 도재희. 너무 흥분된다. 후. 그럼, [알카트라즈> 이후 차기작은 어떻게 할까?”
그 이후에는?
이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미국에 남거나.
하지만 이 선택에는 ‘수상 결과’라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잘 모르겠어요.”
즉, 내년 3월 초까지는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다.
내년에 내가 수상하지 못한다면.
미국에 남아야 하나?
아니면, 패잔병처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아카데미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
“일단, 시나리오 좀 볼래?”
[알카트라즈> 촬영이 막바지에 달했다.재익이 형은 으레 그렇듯, 작품이 끝나고 차기작에 대한 갈증이 달하는 시기에 내게 두툼한 시나리오 뭉치를 건네주었다.
“[알카트라즈> 효과인가 봐. 아직 개봉하지도 않았는데, 이제껏 동양인들이 맡아본 적 없는 비중 있는 역할도 몇 개 있어.”
“….”
나는 조용히 시나리오들을 바라보았다.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데뷔도 하지 못하던 몇 년 전.
저렇게 한데 모여서 작품의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을 보며 상상에 빠져들고는 했다.
아주 간절한.
저 작품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온전히 내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바램.
하지만 그 간절함이 조금 시들었을까.
나는 대본들을 받아들지 않았다.
“형, 저 잠시 쉬고 싶어요.”
아니.
시들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차기작은 잠시 접어두고 주변을 좀 둘러보면서 조금 쉬어가고 싶은 거다.
내 말에 재익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좀 쉴 때도 되었지.”
조금 쉰다고 문제는 없다.
아직 공개할 작품은 많으니까.
*
[알카트라즈>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으레 그렇듯, 쫑파티를 진행하고- 술에 잔뜩 취하고- 차기작에 들어갈 준비를 하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나는 [알카트라즈>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베벌리힐즈 숙소에 눌러앉아 휴식을 취했다.
빡빡하게 돌아가던 촬영 스케줄에서 해방되자 영미 씨가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9월 한 달 동안은 한량이라는 거네요.”
“한량이라니. 쉬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왜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휴식기’라는 게 있잖아.”
“아아.”
그래.
나도 일종의 ‘휴식기’를 맞이했다.
기왕 쉬기로 한 거, 한국으로 돌아가 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촬영은 없지만, 할리우드에서의 스케줄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촬영‘만’ 없다뿐이지.
[알카트라즈>의 후반 작업도 염두 해둬야 하고. [데드매니악 시즌2>도 현재 방영 중이다.거기다,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근데 이거, 휴식이 맞긴 맞나?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애매한데.
영미 씨가 늘어지듯 기지개를 켰다.
“으으! 그래도 지루한데.”
하지만, 그때.
절대 지루하지 않는 연락 하나가 도착했다.
– 섬으로 초대하지.
레오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 책 먹는 배우님 – 153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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