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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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154화. >154.
섬.
할리우드 스타들의 고상한 취미 중 하나가 ‘섬 수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적게는 수십억 원대부터 많게는 100억 원대를 호가하는 섬을 구입하는 것인데, 이는 대부분 투기를 위한 목적이 아니다.
호텔과 골프장을 짓고 스케줄 없는 공백기에 찾아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온전히 혼자만의 자유로운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다.
내게도 일전에 에이전트 빌이 은근슬쩍 알려준 정보가 있다. 피지에 괜찮은 매물이 하나 나왔는데, 생각 있냐고.
24시간 파파라치가 따라다니는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는 이미 유행이고, 아마 좋은 취미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휴식 기간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어지간하면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 내게는 생소한 문화라 거절했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쓴다.
내 통장에 몇백억이 들어있건,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내게, 자신의 ‘섬’에 놀러 오라는 레오의 제안.
“레오 그 사람도 [리벤지 아메리카> 촬영 끝났으니 쉬나 보네. 한가하게 섬에서 요트 타고 골프나 치고. 팔자 좋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런데 너를 왜 초대해? 그 사람, 너 싫어하는 거 아냐?”
재익이 형은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는 영미 씨도 마찬가지.
“섬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죠, 뭐.”
“….”
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초대한 날짜를 주목했다.
앞으로 2주 뒤.
10월 12일.
대중들에게 영화 [알카트라즈>의 메인 티저 예고편과 캐릭터 티저 영상이 공개되는 날이다.
그 말은?
나와 레오의 게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나와 레오, 둘을 위한 게임.
이를 아마 라이브로 함께 지켜보자는 의미인 것 같다.
“갈 거야? 단순히 둘이 서핑이나 하자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죠.”
그의 일그러질 그의 얼굴이 기대되는 걸.
*
[데드 매니악 시즌2>는 전미 1위라는 명성에 걸맞는 시청률을 또 다시 입증했고, ‘시즌 1,2’는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120개국으로 퍼져나갔다.내가 주연급으로 활약한 시즌2에 대한 반응은 특히 한국에서 열렬했는데, [데드 매니악> 제작팀에서는 홍보 차 방한일정을 꾸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관심이 지대했다.
하나의 드라마가 흥행하면, 스케줄은 그만큼 다양해진다.
토크쇼 같은 방송을 제외하고도, 드라마 이름이 전면에 붙는 소아 환자를 위한 기금 행사라 던지, 함께 발매되는 OST를 지원사격 할 콘서트 행사에도 참여하고, 영화 관련 행사들에는 얼굴을 비춰주는 것이 관례다.
나는 이제껏 바쁜 촬영일정으로 미뤄두었던 행사들을 줄기차게 다니며 할리우드에서 저명한 영화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사실은.
“오, 재희. 여기서 벌써 만났네요? ‘그 날’ 만나게 될 줄 알았는데.”
“네?”
처음 보는 영화 관계자들이, 마치 나와 약속이라도 잡혀있는 마냥 굴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 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저와 약속이 있으셨던가요?”
“음? ‘바하마’에 가기로 한 것, 아닌가요?”
“….”
아.
나는 ‘바하마’라는 단어에 아차 싶었다.
바하마는 중앙아메리카의 쿠바 북동쪽 카리브해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바하마에 있는 ‘델케이’라는 섬의 주인이 바로 레오다.
“…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저도 초대받았으니까요. 아, 모르셨구나.”
“….”
이거, 아무래도 단둘만의 잔치가 아니었던 모양새다.
이런 이야기는 아주 비밀스럽게 오가는 듯했지만, 할리우드 전반에 골고루 퍼져있었다.
초대 대상은 기자를 제외한 대형 영화인들과 할리우드 스타, 팝스타 및 스포츠 스타들.
내가 행사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최상급’ 대우를 받는 스타들은 대부분 이 초대를 받았다.
개 중에는 나와도 각별한 벤자민 찰리와 조셉 이든 캣맨, 엘라니 오코너도 포함되어있었다.
레오가 주최하는, 할리우드 연말 샴페인 파티.
“바하마에서 아주 진탕 놀아보자고!”
초대받은 이들은 이를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게 생각했다.
‘섬’과 ‘파티’를 사랑하기로 유명한 레오의 초대는 일상적인 듯했으니까.
하지만, 내게 보낸 초대장도 과연 일상적일까.
모르겠다.
“초대받은 사람이 많다 이거지?”
재익이 형은 여전히 골치 아프다는 투로 말했다.
“사람들 잔뜩 불러모아서 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 주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감독과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할리우드 영화사에 이례적인 기록을 쓴 거물이 되었다.
이는, 레오 역시 잘 인지하고 있을 것.
“아마, 제가 보고 싶었나 보죠.”
내 일그러진 얼굴이 보고 싶을 것이다.
나도 그 때문에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이고.
할리우드에 새롭게 개관하는 MK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서 초청배우 도재희의 손바닥 도장을 찍는 행사를 끝으로 10월 둘째 주가 되었다.
그리고 바하마 섬으로 향하는 날이 되었다.
“[알카트라즈> 티저 영상 공개 시간이 언제죠?”
“오전 열 시. 아마 나소(Nassau)에 도착하면 공개되었겠는데?”
우리는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마이애미(Miami)로 이동했다.
바하마는 지도상 마이애미 바로 아래에 위치 해있다.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를 경유한 우리는 오래 걸리지 않아 바하마 제도의 제1 항구도시이자 미국인들에게 쾌락의 섬이라 불리는 나소(Nassau)에 도착했다.
“으아”
긴 비행을 마치고 나소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캐릭터 티저 영상’은 하이마운트 픽쳐스 공식 홈페이지를 더불어 온갖 검색사이트에 올라간 상태였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좋아요’를 의미하는 하트 표시가 올라가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는 ‘재난 영화’다.
이 재난 영화 속의 파괴된 대도시의 이미지들과 극명한 반대를 이루는 나소(Nassau)의 작고 아름다운 풍경은 한눈에 나를 사로잡았다.
“우와.”
700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
바하마.
투명한 바다.
아기자기한 건물.
1년 365일 내내 따뜻한 곳.
할리우드 스타들이 왜 이곳에 환장하고 수십 수백억을 들여 섬을 사서 겨울 휴식기만 되면 찾아오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재익이 형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재희야. 너도 섬 하나 사라.”
“….”
물론, ‘소장’ 하고 싶다는 욕구보다는- 이런 아름다운 절경에 흠뻑 빠지는 정도일 뿐이지만.
나와 재익이 형이 공항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의 남자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저기 있네.”
누군가 했더니, 일전에 [알카트라즈> 촬영 때 보았던 레오의 에이전트였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Go to Dell-K’라고 써진 피켓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나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지만.
에이전트는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깁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음침한 미소를 날리며 악수를 청했다.
“와주셨군요. 레오가 무척이나 기뻐할 겁니다.”
정말 기뻐할까?
정말로?
하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아, 네.”
“공항 앞에 차량을 준비해뒀습니다. 차량을 타시면 항구까지 안내받으실 겁니다. 아, 그리고 이것도 받으십시오.”
에이전트가 건넨 것은 일종의 ‘티켓’이었다.
“항구에서 전세 여객선 한 대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탈 수는 없는 배죠. 저희를 위한 배입니다. 선장 이름이 바로 레오죠.”
레오가 소유한 호화 여객선.
이들이 향하는 곳은, 레오 소유의 향락의 섬 ‘델 케이’ 아일랜드.
“파티! 배에서부터 즐기시면 됩니다.”
에이전트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했다.
그리 호감 가는 사람은 아니라, 나는 사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지나쳐 걸었다.
곁에 있던 에이전트 빌이 다가와 말했다.
“왜 저번에 레오가 기자들 이용해서 재희 공격했던 때 있죠?”
“네.”
“그거 저 사람이 꾸민 짓일 겁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손속이 안 좋기로 소문난 에이전트 입니다.”
역시.
어쩐지 인상이 안 좋더라니.
빌은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
“오늘 재희를 부른 것도, 어쩌면 저 사람 머릿속에서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알카트라즈> 촬영 때 호주에서 있었던 일을 빌미로, 재희에게 무슨 짓을 벌일지도 몰라요.”
무슨 짓?
아무리 대단한 에이전트라도 그가 이곳에서 나를 ‘쪽’ 줄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전제부터가 틀렸다.
“저 사람이 저를 부른 게 아닙니다.”
“네?”
“오늘은 레오가 저를 부른 겁니다. 확실해요.”
내 단호한 어투에 빌이 되물었다.
“….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라도 있나요?”
“나중에 알게 되실 겁니다.”
그야, 오늘이 바로 게임 날이니까.
나는 덤덤한 얼굴로 걸었다.
주차장에는 미국에서 온 스타들을 환영하기 위한 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단 하나에 올라타자, 기사가 티켓을 확인하더니 운전을 시작했다.
핀들링 국제 공항에서 나소 항구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하마 제1의 항구도시라는 명성답게 항구에는 거대한 여객선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항구와 항구 사이를 잇는 다리도 아름답고, 마치 이 항구를 위해 만들어진 섬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
우리는 차에서 내려 어렵지 않게 여객선을 찾을 수 있었다.
레오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찍혀있고, 가장 화려한 배를 찾으면 되었으니까.
“티켓을 주시겠습니까?”
누군가 했더니, 이 사람 역시 레오파드 비트리오 에이전트 중 한 사람이다.
조금 전, 공항에서 받았던 초대장을 건네자 에이전트가 싱긋 웃어 보였다.
“재희, 미안하지만 휴대폰을 꺼주시겠습니까?”
“네?”
“손님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휴대폰을 끄라니.
무슨, 예비군도 아니고.
휴대폰이 없으면 나와 레오의 ‘게임’ 스코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휴대전화를 에이전트에게 건네주었다.
“환영합니다.”
그제야 우리는 무리 없이 배에 승선했다.
도대체 이런 배는 얼마나 할까.
일 년에 탈 일이 몇 번 있다고 이런 배를 구입하는 거지?
레오의 스케일.
아니, 비일비재한.
“할리우드 스케일이란, 정말.”
재익이 형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역시, 조금 얼떨떨한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이 배에만 수백여 개의 객실 칸이 존재했고, 공용 로비로 쓰이는 곳에는 얼굴만 봐도 이름이 튀어나오는 스타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와, 로버트 캔드로 아냐?”
“이럴 수가, 이곳에서 NBA 스타를 다 만나다니.”
“엘라니 오코너야!”
영화, 농구, 테니스, 팝.
장르를 가리지 않은 ‘레오’의 인맥들이 줄지어 있다.
레오의 초대를 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정도다.
나 역시, 한국에서 데뷔할 당시 ‘조승희가 아끼는 후배’라는 타이틀 덕을 꽤나 보았으니까.
“이런! 재희! 이게 얼마 만이죠!”
엘라니 오코너가 내 쪽으로 한걸음에 다가왔다.
“엘라니!”
나는 악수를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이, 이봐요.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주변의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이곳은, 카메라와 기자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니까.
스타가 아니라, 개인이다.
엘라니와 도재희가 실은 연애 중이야! 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
아니, 실제로 커플로 보이는 이들도 몇몇 존재한다.
만약 내가 기자라면, 이 배에 오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건드리면 터지는 잭팟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서 있자, 엘라니 오코너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는 마요. 레오의 파티는 그래도 꽤 건전한 편이니까.”
“네?”
“후후, 마약이요. 그런 건 없다고요.”
“….”
그건, 당연한 거 아냐?
지극히 한국적인 나에게는 이런 광경이 생소할 뿐이다.
엘라니가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음, 재희를 여기서 만나니 이상하네요. 저희 영화 작업할 때만 하더라도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런가요.”
나도, 어색하다.
그때 에이전트들이 우르르 배에 오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마지막 손님까지 다 오셨군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스타들은 태운 초호화 여객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하마, 델 케이 아일랜드.
레오의 섬으로.
[ 책 먹는 배우님 – 15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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