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6)
156.
감히, 누가 할리우드에서 레오와 인지도로 싸움을 붙는단 말인가.
더군다나 데뷔 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신인이?
이곳에 있는 스포츠 스타들도 한 수 접어주는 남자가 레오가 아니던가.
여기 모인 모두가, 아마 다른 이야기를 예상했을 것이다.
‘게임이라니, 그럼 당연히 레오의 압승이겠구나!’
하지만.
“…..”
그 익숙함이 깨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익숙함이 깨지면, 사람은 불편함을 느낀다.
이는 레오의 표정이 조금씩 꿈틀거릴 때마다 요동치는 셀럽들의 불편함이 말해준다.
레오는 이들에게 여유로운 승리자로 기억되는 남자였고, 그에게서 처음 보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마치, 저들에게는 아끼던 만화 속 캐릭터가 갑자기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레, 레오.”
이런 레오가 졌다.
자신만만하게 제안했던 게임에서 스스로 패했다.
레오가 태블릿 PC를 공개했다.
이것은, 단순한 숫자 놀이일 뿐이지만.
그 숫자의 차이는 꽤 극명하게 갈렸다.
[도재희> 2,987,221. [레오파드> 1,971,523애초에 앞자리부터 다른 조회수와.
[도재희> 589,202 [레오파드> 256,113메인 이벤트였던 ‘좋아요’ 숫자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벌어 졌다.
나조차도 얼떨떨할 만큼 큰 차이다.
고작, 24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유튜브 같은 동영상 스티리밍 사이트에 공개된 것도 아니고, 하이마운트 홈페이지와 포털사이트에만 공개된 예고편인데.
어떻게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일까.
“….”
알고 있잖아.
나는 승리자의 여유로움을 등에 업고 미약하게 미소지었다.
난 올해 누구보다 많은 영화를 미국 현지에 소개했고, 조금씩 쌓이던 필모그래피가 한 방에 터지고 있다.
인지도는 화약이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뻥! 하고 터져버리는 화약.
태블릿 PC를 손에 꽉 쥐고 있던 레오가 나를 표독스럽게 쏘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내게 따져 묻는 투가 역력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레오가 지금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하든 손해일 것이다.
“아.”
식어버린 탄성과 함께 장내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고요해졌고,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이겼네요.”
오직, 나만이 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웠다.
나는 레오를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레오, 약속은 지킬 것이라 생각해요.”
‘그 정도로 추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요.’라는 서브텍스트로 숨어있는 내 비수를 직격으로 맞은 레오가 얼굴을 붉혔다.
아마, 확실히 이해한 모양이다.
나는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벽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재익이 형에게 말했다.
“형, 숙소로 돌아가죠.”
“어, 어? 어어.”
재익이 형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고, 에이전트와 경호원들이 내게 다가왔다.
본관 1층 로비로 들어서자 재익이 형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 살 떨려 죽는 줄 알았네.”
“….”
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지어 보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세하게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마치 초등학교 때 막 싸움을 끝낸 직후처럼, 잔뜩 분비된 엔돌핀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다.
*
바하마의 오후에는 레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한바탕 폭우가 쏟아졌다.
쏴아아아!
하늘에서 구멍이라도 뚫린 듯 퍼붓는 빗소리가 꽤 듣기 좋다. 나는 엘라니 오코너와 함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렇다고 왁자하게 떠드는 것은 아니었다.
빗소리를 조용히 들으며, 물에 젖어가는 섬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엘라니가 정적을 깨뜨리며 말했다.
“신선하네요.”
“그렇네요. 비 때문에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아뇨. 아까 재희 모습이요.”
“예?”
“할리우드는 이방인에게 그리 따뜻한 곳이 아닌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신선했다고요.”
“아.”
“레오의 그런 얼굴 처음 봤다니까요. 조금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달까. 그러게 왜 그런 유치한 싸움을 해서는.”
엘라니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불과 1년 만에. 이제는 정말, 아무도 못 건드리는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파티의 주인공인 레오는 오후 내내 자신의 숙소에 틀어박혀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결국, 저녁 시간이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고 레오의 에이전트는 레오 없이 식사를 할 것을 권했다.
식당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고 있는데,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레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나타났다.
마침, 비도 그친 상태였다.
이런 레오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이었다.
“오셨어요?”
“….”
아무런 말 없이 저녁을 먹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난 레오는 내 맞은편에 서서 나를 조용히 내려보며 말했다.
“약속은 지키지.”
그게 끝이었다.
그말 만을 남기고는 등을 돌려 다시 사람들 틈으로 사라졌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져버리네.”
레오의 이 말 한마디가, 갑갑하게 막혀있던 장내 분위기가 일순간 풀어지는 열쇠였다.
게임 결과에 대한 인정.
레오의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그제야 내게 슬금슬금 다가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재희, 같이 먹어도 될까요?”
“대체 레오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승자와 관심에 목마른 승냥이 떼들이 밀림의 새로운 지도자에게 굽신거리는 그림이 떠올랐고, 나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럼요. 앉으세요.”
“고마워요.”
“다음에는 저희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데, 재희.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나요?”
“….”
나는 이런 관심들을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며 조용히 음식을 음미했다.
평범한 음식일 뿐인데.
이거, 이렇게 맛있던가.
“재희, 제발요. 연락처를 알려줘요.”
내가 이 섬에 와서 얻은 수확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났다는 점도 있지만.
종잇장처럼 구겨진 레오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째선지 음식 맛이 더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
2박 3일간의 파티가 끝났다.
배를 타고 나소로 귀항한 스타들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으로 흩어졌다.
도재희가 레오와의 게임에서 이겼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싣고.
LA에 도착한 시간은 야심한 새벽이 훌쩍 지나서였다.
에이전시에서 불러준 차량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쓰러져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벌써 느지막한 점심이 지나있었다.
“오빠 일어나셨어요?”
“아, 네.”
“오셔서 식사하세요.”
식당으로 내려가자 영미 씨와 재익이 형이 뜨끈한 양송이 스프에 모닝빵을 찍어 먹고 있었다.
“어서 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영미 씨가 내 앞에 스프 한 그릇을 놓아주었고, 재익이 형이 말했다.
“빵이랑 같이 먹어.”
“빵은 됐고, 밥 없어요?”
“밥? 있어. 근데 밥은 왜? 반찬 줄까?”
“아뇨.”
나는 빵 대신, 하얀 쌀밥을 한 숟가락 떠 스프에 말기 시작했다.
으음, 향긋한 냄새.
영미 씨는 스프에 밥을 말아 먹는 내 모습을 보고 경악하듯 말했다.
“으엑, 멀쩡한 빵 놔두고 스프에 웬 밥? 그렇게 먹으면 맛있어요?”
“그럼요. 안 먹어 봤어요?”
“네.”
“….”
반응들을 보아하니,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인걸.
나는 재익이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 군대에서 이렇게 먹었는데. 형도 먹었죠?”
하지만 재익이 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안 먹었는데?”
“….”
내가 이상한 건가.
스프에 밥 말아 먹는 게 어때서.
“다들 이렇게 안 먹어요?”
“네.”
재익이 형이 나를 보며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넌 독특해.”
“….”
아, 그러세요.
그렇다고 별종 취급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흥, 쳇.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
맛있기만 한데 왜?
“독특해서 좋아.”
“아아, 그래요?”
내가 스프를 다시 한 움큼 떠먹자 재익이 형이 물었다.
“기사 아직 못 봤지?”
“기사요?”
“응.”
“무슨 기사요? 아니, 무슨 기사던지, 당연히 못 봤죠. 이제 막 일어났는데.”
“한국인 배우 도재희! 동양인 최초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도전할까!”
“…”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재익이 형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레오가 인터뷰했어.”
“… 네?”
서양인의 땅에서 동양인이 휘두른 주먹.
이 주먹에 맞은 레오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나와의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했다.
“이것 좀 보라고.”
[레오파트 비트리오 “도재희는, 내가 이제껏 만난 젊은 배우 중 가장 인상적이다.”] [레오파드의 극찬을 받은 한국인 배우. 도재희.] [도재희, 그는 이미 할리우드 씬의 주목받는 크랙.](크랙Crack:혼자 승부를 결정짓는 선수)
[도재희, 할리우드 한계를 확장한 배우, 사상 첫 번째 동양인 남우주연상에 도전할까.] [할리우드가 주목한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도재희. 극한의 재능을 선보인 영화 [알카트라즈>]“이게 뭐죠.”
“레오. 그 사람 다시 봤어. 문교처럼 얄미운 타입인 줄 알았는데, 할 일은 하는 사람이더라고. 바하마에서 할리우드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뷰했어. 이거, 전부 1시간 전에 쏟아진 기사야.”
“아.”
레오의 인터뷰는 확실히, 효과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성공 이후에 쏟아진 기사량과 비교해 지금이 두 배는 더 많다.레오가 인정한 배우.
그때.
삐리리리!
재익이 형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만.”
UAA 에이전시였고, 5분가량의 긴 통화를 마친 재익이 형이 흥분된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뜨거운 감자’가 되니까 놓치면 아쉬운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잡아 달라고 난리네.”
“네?”
“UAA에서 재계약 요청을 해왔어. 3년 재계약이고, 훨씬 좋은 조건이야. 비율도 8:2로 올려준다고 하던데.”
미국 현지 에이전시의 재계약 문의.
그리고.
“또 [데드 매니악> 시즌3에서 훨씬 상향된 개런티로 제계약 요청을 해왔어. 회당 90만 달러(10억)로 합의하길 원해.”
“….”
치솟는 내 몸값.
90만이라니.
이 정도면 할리우드 내에서도 최정상급이다.
“근데 에이전트 말로는 방송국 측에서 재희 너를 반드시 붙잡길 원한다고, 100만 이상 불러도 가능할 것 같다고는 하거든? 어떻게 할까?”
시즌3.
최소 10회 차만 뽑아내도 드라마가 끝나면 100억이다.
하지만 [데드 매니악>은 16부작짜리 드라마.
100만 달러로 재계약을 한다면, 최소 160억 이상.
“….”
“이제 진짜 시작인가 보다.”
재익이 형이 감격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는 감히 상상하기를 거부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스프를 마저 떠먹었다.
할리우드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하던 흑인.
그 흑인보다도 보이지 않는 취급을 받아오던 동양인 한 명.
[“재희의 단점이라고는 동양인이라는 것뿐인데. 이제는 재희의 마스크가 미국인들에게 이질적이지 않아요. 지난 한 해 동안 다작을 통해 다양한 대중들에게 친숙해졌고, 이제는 동양인이 맡지 못하던 배역들을 하나둘씩 맡기 시작했죠. 보세요. 이제는 이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죠. 동서양의 콜라보랄까.”]양송이 스프에 밥 말아 먹는 별종 하나가 움직이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판.
[도재희의 필모그래피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역사.]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재익이 형은 시작이라고 했지만, 할리우드 활동도 끝이 보인다.
[ 책 먹는 배우님 – 156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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