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7)
157.
‘도재희’라는 네임드 가치가 올라갈수록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존재는, 올라간 이름값을 등에 업고 이득을 볼 다음 작품의 제작진들.
영화사 ‘19세기 무비베어’와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감독인 앤소니 옐친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도재희 후폭풍’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영화 촬영을 진행하던 올해 초 만하더라도, 도재희의 네임드 가치는 레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에 비한다면 약세인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뒤바뀌었다.
영화사 19세기 무비베어의 이사는 이 어리둥절한 상황에 의문을 가졌다.
“재희가 하루가 다르게 주목받고 있어요. 덩달아 저희 영화의 검색어 트래픽 역시 급상승 중이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한국의 정서만을 놓고 본다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국내에 아무리 이름 높은 외국인 스타가 활약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한계 이상 성장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여기는 할리우드.
앤소니 옐친 감독이 자신있게 말했다.
“드디어 사람들이 그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 본거죠.”
애초에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 이런 곳에서 유색인종이라는 넘기 힘든 ‘허들’이 사라진다면.
“그는 해낸 겁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주력으로 원하는 높이까지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앤소니 옐친 감독은,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도재희를 보며 연신 감탄했다.
“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재희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봤어요.”
앤소니 옐친.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감독이자, 러시아계 백인.천재, 괴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신예 감독.
그는 도재희가 언젠가 할리우드 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영화를 통해 날아올랐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 부터 이미 도재희는 날아올랐다.
예상보다 훨씬 가파른 성장.
이로써 가장 이득을 보게 될 작품은, 앤소니 옐친X도재희가 만들어낸, ‘낯선 이방인의 영화’가 되었다.
앤소니 옐친 감독은, 손에 잡혀있는 육각 큐브를 보지도 않은 채 돌리며 말했다.
“보이지 않으십니까?”
손에 잡히듯, 모든 퍼즐이 딱딱 맞춰 떨어진다.
“거대한 해일이 캘리포니아를 덮치고 있는 모습이? 그리고 이 해일은.”
앤소니 옐친의 쭉 찢어진 눈에 약간의 광기가 스쳐지나갔다.
“도재희라는 파도를 타고 북미 전체를 뒤덮는군요. 두고 보십시오.”
“…..”
“그는, 전 세계를 집어삼킬 겁니다.”
앤소니 옐친의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
10월.
할리우드에 때 늦은 쓰나미가 한바탕 몰아쳤다.
여름도 다 지나간 마당에 밀려오는 이 쓰나미의 이름은, 앤소니 옐친 감독이 판을 만들고 도재희가 화룡점정을 찍은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레오파드 비트리오가 도재희와의 게임에서 패배하고, 도재희의 소원대로 기자들 앞에서 사과와 극찬을 동시에 한 것이 불과 열흘 전.
인터뷰의 뜨거움이 채 가시지 않은 열흘 사이에 개봉한 도재희의 차기작.
이 영화의 개봉은- 이제껏 개봉했던 도재희의 영화들에 비교해 가장 화려했다.
‘19세기 무비베어’라는 이름의 굴지의 영화사는 첫 날 개봉부터 3,000여개가 넘는 상영관을 지정했고.
도재희의 이름이 여전히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틈새를 공략하여 본격적인 ‘북미 사냥’에 들어갔다.
미국과 캐나다에 동시에 개봉한 주말 사이에 6천3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개봉 2주 만에 누적수익 2억1,655만 달러를(한화 2,200억) 기록했다.
세계 전체로 보면, 수익은 더욱 어마어마하다.
영화의 성수기가 한풀 꺾이는 개봉 4주차에도 무려 11억 달러를 돌파하며 여전한 화력을 과시했으니까.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는 앤소니 옐친 감독의 확신대로, 전 세계를 쓰나미 열풍으로 이끌어낸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가 되었고.도재희의 입장에서도 가장 큰 흥행과 수익을 가져다 준 영화가 되었다.
물론, 모든 일이 잘 풀릴 수만은 없다.
흥행능력과는 별개로, 진짜 영화 마니아들의 성에는 차지 않는 영화의 ‘수준’ 때문이다.
애초에 영화에 잔뜩 버무려진 ‘클리셰’ 논란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었고, 영화가 흥행할수록 조그만 흠집 하나라도 찾아내려고 기를 쓰는 비평가들이 많아졌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워터 슬라이딩 영화.] [흔한 왕도적인 전개에 가미된 고급스러운 물놀이 쇼.]이렇게 클리셰 범벅인 시나리오와 화려한 CG는 비평가들에게 줄기차게 까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우의 연기력은 논외 대상이었다.
[도재희가 기대 이하로 낮았던 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렸다.]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도재희의 연기력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었고, 이는 집중력을 잃게 만드는 장면에서도 끝까지 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연기력.
마치, 절대 부술 수 없는 결계라도 존재하듯 신성시 되었다.
영화의 흥행에 ‘도재희’라는 이름값이 톡톡히 작용했다는 반증이다.
11월.
북미 상영을 마친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가 한국에 들어왔다.
박스오피스 1위.
이미 성적 입증이 끝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포스터에 이례적으로 동양인의 얼굴이 메인에 박혀있다.
도재희.
거대한 쓰나미를 피해 달아나는 도재희의 모습이.
한국 정식 개봉을 앞두고 영화 포스터가 공개되자, 도재희의 팬들의 반응은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불타올랐다.
‘이건 꼭 봐야해!’
‘난 이미 미국에서 영화 봤음. 솔직한 후기 써봄. 도재희가 도재희 했다. 그냥 도재희가 영화 내내 멱살 잡고 캐리한다.’
‘혼자 멱살 캐리? 대박이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도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이거 꼭 봄.’
‘도졌다 진짜.’
‘우리나라에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성공한 배우가 나오다니… 이거 실화냐’
‘개봉이 12월인가요? 현재 개봉예정작 중에 가장 기대하는 작품! 꼭 극장에서 보겠습니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긴장한 사람은, L&K의 두 명의 대표들이었다.
이무택과 권우철.
한국 연예계에 입성한지 20년이 넘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에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
이런 베테랑에게, 도재희의 미국 현지 에이전시인 UAA에서 공문 하나가 날아 들어왔다.
「Special management required 특별 관리 요망.」
이는, 수십 년을 한국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일하며 처음 받아보는 공문이었다.
“이게 뭐야?”
이무택 대표의 물음에 권우철 대표도 황당하다는 듯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재희 얘기죠.”
“알지. 아는데… 그러니까, 왜 이걸 우리한테 보내냐고.”
이무택 대표의 이런 의문은 매우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자신이 좋은 것만 먹여가며 키운 곱디고운 딸내미를 머나먼 외국으로 시집보냈는데, 그 딸이 명절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온다.
그런데, 오히려 시댁에서 ‘우리 며느리 잘 부탁한다’며 두 번 세 번씩 전화를 하는 꼴이 아닌가.
“우리가 키운 자식인데 몹쓸 짓이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당연히 특별 관리지. 이거 당연한 거 아냐?”
이무택 대표가 흥분하자 권우철 대표는 조금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이런 전례가 이제껏 없었으니까 그런 거겠죠.”
“… 음?”
국내에 처음으로 탄생한 할리우드 탑 스타.
도재희 커리어는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인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재희의 귀국을 스페셜하게 대해야 한다는 걸 겁니다. 더 이상 국내에서 유명한 스타가 아니라. 할리우드 탑 스타급으로. UAA는 아마 그걸 말하는 걸 겁니다.”
허울뿐인 경호 인력 하나 둘.
한국에서는 콘서트나 대형 행사장이 아니고서는, 그마저도 거의 쓰이질 않는다.
국내는 총기 소유가 불법이니까. 그다지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UAA 입장에서는 ‘시집 온 며느리’가 너무 잘 해주고 있으니, 한국에서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고.
‘혹시 모를 위험성을 대비하자.’
UAA의 뜻을 정확히 파악한 권우철 대표의 올바른 지적에, 이무택 대표가 미간을 찡그렸다.
“끄응. 어쨌든, 할리우드 탑스타 급으로 대하라는 거잖아.”
“예.”
“그게 뭔데?”
“글쎄요. 이런 적이 있어야 알 텐데 말이죠.”
“끄응. 할리우드 스타 대접 받는 배우가 나와 봤어야 알지.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뭐가 되었든, 이제는 재희가 ‘기준’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건, 그렇지.”
“저희 손으로 첫 번째 ‘전례’를 만들텐데… 중요하겠죠.”
“… 그렇지.”
권우철 대표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재희 한국 오면, 아끼지 말고 쏟아 부으시죠.”
*
나는, 여전히 정신없는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레오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내 인지도가 상승곡선을 타던, 아무리 유명해지던, 상관없다.
이를 체감하기도 힘들 만큼 끊임없는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가 북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비행기를 자가용 삼아 홍길동 마냥 북미 전체를 쏘다녔다.
캘리포니아에서 뉴욕. 텍사스에서 캐나다까지.
3,000여개의 상영관을 배정 받은 만큼, 일도 세 배 가까이 많다.
거기다 내일 모레에는 한국 개봉이 기다리고 있어, 오늘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한다.
“한국 갔다가, 미국에 다시 들어왔다가. 또 한국 갔다가. 정신 하나도 없네.”
데뷔하기 전에는 해외여행이라고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서울 촌놈인데.
이제는 공항을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든다.
아아, 옛날이여.
“이번에 한국 팬들 반응 장난 아니라던데. 도재희 역대급 영화가 나왔다고 난리야, 난리.”
“그래요? 역대급 영화는 아직 편집도 다 안 끝났는데.”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기대 이상의 성적을 낸 어마어마한 영화지만, 이 영화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엔 부족하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작품성이 완벽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카트라즈> 개봉하면 다들 기절하겠네요.”
작품성, 흥행능력을 모두 갖춘 [알카트라즈>는, 올해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영화다.
“흐흐. 그건 그렇지. 어쨌거나 한국 팬들한테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영화인 것은 사실이잖아? 한국인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으로 성공해서 국내로 들어오는 건데.”
이제껏 ‘조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흥행시킨 사례는 몇 있었다.
하지만, 오직 한국 팬들만 주목할 뿐. 할리우드에서는 금세 시들시들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는 내게 있어 강력한 ‘한 방’이 된 영화다.
우리는 이 한방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는 중이고.
재익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의 귀국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이번에 회사에서 힘 좀 쓴다고 하더라.”
“응? 힘을 쓴다뇨?”
“UAA에서 L&K로 공문 보냈데. 재희 너, 신경 좀 써달라고. 그래서 역대급 환영 행사를 준비한다고 하던데.”
“….”
에?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여하튼 회사에서 공들이고 있다는 건 사실이야.”
회사에서 나를 위한 환영회를 준비한다니.
대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재희 씨! 여기 좀 봐주세요!”
“…. 아니, 무슨….”
몰려든 기자만 100여 명.
공항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우르르 달려와서는 그 누구의 접근도 불허하는 철통같은 경호 인력만 20여 명이 나를 에워 쌓고.
주차장에는 동원된 벤츠만 여섯 대.
수백 여 명의 팬들이 ‘도졌다리’ 티를 맞춰 입은 채 한 자리에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올림픽 홀에서 치러질 대규모 팬 사인 일정에.
“어서와 재희!”
“여기가 미국이었다면, 전세기라도 보내 줬을 텐데. 아쉽다.”
두 팔을 펼치고 나를 환영하는 두 명의 대표님들까지.
전세기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한국 활동 내내 나를 따라다니던 오채연 기자가 눈썹을 치켜뜨며 내게 말했다.
“이런, 할리우드를 들썩이게 만드는 톱스타가 ‘방한’했네요.”
“…..”
방한이라니.
저기요.
저는 고향에 돌아왔을 뿐이라고요.
[ 책 먹는 배우님 – 157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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