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58)
158.
이제껏 국내에 방문했던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뉴스, 예능, 콘서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환영 받아왔다.
이들의 체류기간은 고작 며칠 밖에 되질 않지만, 하루를 세 번씩 쪼개는 타이트한 일정을 보내게 된다.
나 역시, 신인 배우일 때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한 일정을 TV를 통해 보고는 했다.
공항 입구부터 철통같이 주변을 지키는 경호원들이며,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레쉬 까지.
“도 배우님! 여기 좀 봐주세요!”
“한성일보에서 나왔습니다. 한 말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이제껏 TV로 보아왔던 스타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순간.
짧은 감격에 젖어들었지만, 오랫동안 취해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채연 기자의 말마따나, 내 이름 앞에는 이제 무수히 많은 타이틀이 붙어있으니까.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니니까.
“대표님! 재희 씨 인터뷰는 어떻게 하십니까.”
“기자회견은 올림픽 홀 팬미팅에서 한 번에 진행 하겠습니다. 자자, 지나갈게요! 비키세요!”
대표님 두 분은 대표라는 직함 따위는 잊어 버린듯, 로드 매니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경호원들과 함께 일선에서 나를 가드 했다.
“자자, 재희 지나갑니다.”
“….”
슬쩍 본 이무택 대표님은 잔뜩 신난 듯 보였다.
체질이신가.
스무 명의 경호를 받으며 나는 무탈하게 주차장 차량에 올라탔고, 프레싱 존을 지나자 기자들은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우리도 올림픽 홀로 가자고!”
기자들은 분주하게 철수 준비를 하며 우리를 따라 올림픽 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차량이 출발하고 공항 대로에 들어섰다.
내 앞 뒤로 고급 리무진 여섯 대가 줄지어 움직인다.
무슨, 대통령 경호도 아니고 말이야.
“적응 안 되지?”
“… 네.”
그럼.
몇 달을 주기로 한국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온도차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너무 뜨거워져,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던 인천 공항의 모습이 아니랄까.
“이제 적응해야 할 거다. 네가 어떤 배우인데. 흐흐”
보조석에 앉은 이무택 대표님의 흐뭇한 미소에 내가 물었다.
“근데, 올림픽 홀은 또 뭐예요?”
“응? 재익이가 팬 미팅 한다고 말 안했어?”
“아뇨. 그건 들었는데. 왜 올림픽 홀에서 하냐고요. 강남에서 하는 것 아니었어요?”
“호텔은 너무 좁으니까.”
“….”
도대체 얼마나 많이 부른 건데.
극장, 카페, 호텔, 회사.
팬 미팅을 진행하는 곳은 규모에 따라 다양하다.
그런데, 올림픽 홀이라니.
거긴, 수천, 수만 명의 관객이 들어서는 ‘콘서트 무대’가 아니던가.
보여줄 것이라고는
“새벽부터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고 하더라. 팬 카페 회장님인 ‘도졌다리’님 피셜로는, 2만 도재희 팬들이 오늘 총집결 한다던데.”
2만 명이란다.
“….”
“지난번에 한국 들어 왔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 잘 안 비췄잖아. 그래서 팬들이 다들 궁금해 한다고. 기자들 질문에 잘 웃어주고. 대답 잘 해주고. 알지?”
“….”
“뭐,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 만은. 으흐흐.”
아, 그러세요.
깜짝 이벤트도 좋지만, 사람 엄청 많을 거라고 미리 좀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괜히 긴장되잖아.
“자, 우리 재희 팬들 만나러 가보실까.”
회사가 준비한 ‘할리우드 스타’ 방한 스페셜.
시작부터 시끌시끌하다.
올림픽 홀 주차장을 통해 차량이 들어서자, 팬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있다.
“꺄아아아아아!”
2만 명까지는 되지 못했고, 어림잡아 1만 명이 조금 안 되는 듯 보인다.
차량이 입구로 들어서자 1만 여명의 팬들 함성에 송파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 했고, 개중에는.
“오빠!”
“으흑흑.”
눈시울을 붉히며 닭똥 같은 눈물을 똑똑 흘리는 팬도 있었다.
“….”
그, 그러지 마세요.
주차장에서 대기실로 직통으로 연결되어있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기실에 들어가 분장을 마치고 진한 남색의 깔끔한 슈트로 갈아입었다.
팬들이 홀로 입장하기 전에 복도와 무대를 살펴봤는데, 힘을 준 티가 팍팍 풍긴다.
내가 할리우드에서 출연했던 작품들 포스터가 복도에 가득 붙어있고, 내 얼굴이 박혀있는 대형 현수막에, ‘할리우드 스타 도재희’라는 문구가 적힌 LED전광판이 눈을 어지럽힌다.
팬 미팅장이 아니라 A급 가수의 콘서트 무대에 가깝다.
박찬익 팀장이 뿌듯한 듯,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노래도 한 곡 하는 게 어때? 팬 서비스 차원에서.”
“노래요?”
“큭큭. 아, 농담이니까 부담 갖지 마.”
“….”
농담이 아닌 것 같은 얼굴인 걸.
“그런데, 노래 한 곡 하면 정말 멋질 것 같긴 해. 그렇지?”
… 부담 갖지 말라면서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대표님이 은근슬쩍 내게 말했다.
“야. 찬익아. 재희 부담 주지 말고 가만히 있어. 노래는 무슨? 그런 거 안 해도 돼.”
“….”
“물론, 재희가 팬서비스로 노래 한곡 딱! 하면 그림은 살겠다만. 죽이긴 하겠다. 그치?”
“어우 저 방금 재희가 노래하는 그림 상상했거든요? 여기 소름 돋은 거 보이시죠?”
“진짜네!”
“….”
뭐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무래도, 하라는 것 같지?
“… 할까요?”
내 반응에 곁에 있던 이무택 대표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부담 되지는 않겠어?”
“그야…”
“이야! 역시 재희가 놀 줄 아는 구나. 재희 네가 하겠다면 나야 좋지! 노래 할 거면, 리허설 해봐야지. 노래는 뭘로 할까? [아다지오> OST가 좋겠지? [Along Drive>가 분위기 있을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준비해놨거든. 지금 바로 리허설 해보자.”
“….”
사전에 준비된 MR 까지 튀어나왔다.
아마, 박찬익 팀장과 대표님 사이에 대본이 짜여져 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물어버린 것이고.
“그, 그래요.”
뭐, 아무렴 어때.
노래 한 곡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팬들이 여기까지 왔는데 노래라도 한 곡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나는 리허설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대기실에 걸려있는 모니터에는 무대와 객석을 보여주었는데 기자들과 일반관객들이 쉴 새 없이 밀려들어왔고 2천 5백여 명의 관객이 들어섰다.
“너무 많이 오신 것 아니에요?”
“여기 입장 못해도 먼발치에서나마 너 보려고 자진해서 오신 분들이야. 그래서 밖에도 모니터 설치해 둔거고.”
“아.”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구하고 싶었는데, 연말이라 예약이 다 차있어서 구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그게 제일 아쉽지.”
추운 연말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는 것이 조금 더 피부로 와 닿는다.
“노래하길 잘했네요.”
“그렇지?”
“네.”
“자, 이제 슬슬 들어가자고.”
객석가득 흰색 도재희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바로 LA현지 팬미팅 때, LA까지 직접 공수해 오셨던 ‘도졌다리’ 회장님이 만든 반팔 티셔츠.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기괴하면서도 재밌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금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 등장에 맞춰 할리우드에서 공개되었던 내 영화의 하이라이트들이 흘러나왔고, 영상이 끝나는 타이밍에 내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도재희! 도재희!”
수많은 팬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듯,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최대한 많이 웃고.
성실히 대답하기.
“노래 한 곡 할게요.”
“와아아아!”
영화 [아다지오>의 OST인 [Alone Drive>를 부를 때에는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달려와 준 팬들의 마음에 답하듯 열과 성을 다해 노래했지만.
결국, 떼창이 되어버렸다.
대략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미팅의 끝은 당연히 사진 촬영.
“찍을게요!”
내가 무대 위에서 셀카봉을 들었고.
팬들은 객석에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팬미팅이 끝난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기사화되어 뿌려졌다.
제목은.
[도재희와 함께한 1만 팬들의 황홀한 데이트.]꿈같은 시간이다.
*
내가 한국에 방문한 이유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한국 개봉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화팀의 방한스케줄이 꾸려졌다.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참여할 수는 없었고, 앤소니 옐친 감독과 벤자민 찰리, 굵직한 두 명의 할리우드 무비 스타가 참여했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에요. 무척이나 흥분되는군요.”
“재희는 어디 있나요?”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남다른 기대감을 품게 만든 두 사람은, 강남 OGV 아트하우스에서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 기자회견을 열고 홍보에 모든 화력을 쏟아 부었다.
“관객 수를 얼마나 예상하시나요? 참고로 한국에서는 ‘천만’이라는 수치가 초대박을 의미합니다.”
“천만? 달러인가요? 하하! 구체적인 수치는 모르겠으나, 저희는 자신 있습니다. 그렇죠. 재희?”
“그럼요.”
“도 배우님은 어떠신가요? 이번에도 ‘천만’ 영화 대열에 합류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자, 이미 성적을 입증 받은 영화다.
북미 전체를 집어 삼킨 이 쓰나미가 또 한바탕 얼마나 광풍을 휘몰아칠까.
모르긴 몰라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마, 천만은 넘지 않을까.
그랬게 되면.
4연속이다.
이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
할리우드 스타들의 지원사격이 끝나고 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영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더 재미난 이야기가 들려왔다.
“연락 받았지?”
“네.”
대종상 영화제의 남우주연상 후보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감독상 작품상의 후보도.
재미있는 점은.
“나 참. 매니지먼트에 20년을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18개 부문 모두에 내 이름, 혹은 내 영화가 올라갔다는 점이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가 올해 한국 영화 자존심을 그나마 살려줬거든. 계속 죽 쓰다가 한방 터뜨렸지.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영화 시상식은 다양하고, 그 상마다 가지는 의미는 제각각이다.
대종상은 다양한 의미로 구설수에 오르긴 하지만.
확실히, 연말에 진행한다는 점에서 그 임팩트가 강력한 영화제중 하나다.
이 모두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쉽게 보기 힘든 기이한 풍경이다.
거기다.
“만약, 감독상이랑 남우주연상을 재희 네가 동시에 석권한다면?”
“….”
“최초야 최초.”
역사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부가적인’ 것들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확실한 ‘남우주연상’.
그럴 수밖에.
애초에 ‘조승희’와 싸워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역대급 라인업이니까.
남우주연상의 후보는 총 다섯 명.
하지만,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는 세 명.
뻔하디 뻔한 그 명단.
설강식, 조승희, 도재희.
진정한 왕좌를 가리는 승부처가 되는 올 연말.
이 싸움의 끝에서,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여기야!”
“아, 선배님.”
기자들이 본다면 실로 재미있는 풍경이리라.
올 한해 한국을 들썩였던 영화의 주인공들.
남우주연상 후보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까.
“이야, 이렇게 셋이서 보는 게 얼마만이야?”
“영화 개봉 할 때 보고 처음 만나니까, 대충 5개월 가까이 되었네요.”
“그렇지. 앉아, 앉아.”
설강식, 조승희, 도재희.
우리 세 사람은 강남의 어느 프라이빗 룸에 자리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는, 반년 전과는 조금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했다.
화기애애한 웃음 속.
‘수상은 당연히 재희가 하겠지.’
겉으로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제각기 다른 마음일 것이다.
아마,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리라.
‘상은 내가 받을 거야.’
이제껏 내가 봐온 배우들이란, 대게 그런 존재들이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모인 이유가 뭐야?”
설강식 선배가 조승희에게 물었다.
조승희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이유요? 그냥 얼굴이나 보는 거죠 뭐.”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유.
아마, 미리 예측해 보는 시상식이랄까.
[ 책 먹는 배우님 – 158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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