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60)
160.
제58회 대종상 영화제가 열렸다.
세종문화예술센터 시상식장으로 향하는 계단 칸칸마다 늘어서있는 취재진들.
이들이 뿜어내는 카메라 플레쉬의 뜨거운 열기.
이 빛들의 향연보다 더욱 빛나는 것은.
단연, 스타들의 행렬.
유명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작한 슈트와 드레스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으며 이 자리의 주인공임을 만천하에 뽐내고 있다.
이 행렬에서도 유독 빛나는 그룹이 있었으니.
오늘 시상식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영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팀.
[올해의 작품상 수상한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연말 시상식도 휩쓸까.]올 한해 대한민국 극장가에 광풍을 휘몰아치게 만들었던 영화의 주인공들.
주인공은 가장 늦게 등장한다고 했던가.
“잘 하고 와!”
시상식의 백미인 나와 조승희, 설강식 선배는 가장 마지막에 리무진에서 내렸고.
“꺄아아아아아!”
가장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한 명 한 명, 걸어 들어가자 포토존 단상에 서자, 마이크를 쥔 MC가 우리의 이름을 순서대로 연호했다.
“먼저 설강식 배우님!”
가장 먼저, 설강식 선배님이 포토라인 위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고, 다음은 조승희, 마지막은 나.
가장 끝에는 우리 세 사람이 나란히 서서 인사했다.
이미 여러 차례 겪었던 영화제며, 시상식이다.
포토존에 설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눈부시다.
카메라로 얻어맞는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딱 그 꼴.
360도 우리를 겨누지 않은 카메라의 쉴 틈 없는 공격을 정면으로 맞이하고 있자면,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보일 만큼 눈부시다.
이런 시상식을 벌써 수십 년간 해왔던 설강식 선배는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손을 흔들며 복화술을 이용해 옆자리의 내게 조용히 말했다.
“언제 끝나냐 이거.”
“푸하!”
그 말을 들은 조승희가 빵! 터졌고, 카메라는 더욱 강렬하게 우리를 쏘아 붙혔다.
아마,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나가지 않을까.
[레드카펫에서도 사이좋은 남우주연상 후보들]우리는 왁자하게 웃으며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배우들이 시상식장 내부로 들어서면, 아주 잠깐 카메라로부터 해방되는 틈이 생긴다.
광고가 흘러나가고,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
“화장실들 다녀와. 지금 아니면 가기 힘드니까.”
설강식 선배님은 언제 화장실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며 화장실로 향했고, 조승희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둘러싸여 바람에 휘날린 머리를 다시 정리 받았고.
“오빠, 잠시만요.”
영미 씨는 돌돌이를 꺼내 슈트에 묻어있는 아주 조그만 먼지마저 다 털어냈다.
“관리해야죠. 우리 오빠, 오늘 상 받을지도 모르는데.”
“으음, 고마워요?”
“자! 가자, 가자.”
설강식 선배님이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나오셨고, 우리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객석으로 다가갔다.
“꺄아!”
아카데미 시상식과 국내 시상식의 다른 점이라면, 객석 뒤에는 일반 관객들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와, 설강식 선배님!”
“승희 형님! 꼭 수상 하십시오! 기원하겠습니다!”
수많은 환호성을 등에 업고 빽빽한 인파들 사이로 들어갔다.
우리가 지나가자, 마치 길이 열리는 느낌이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사람들은 우리에게 길을 비켜주었고 뻥뻥 뚫린 복도를 지나 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센터에서 세 번째 줄 자리에 섰다.
조승희, 도재희, 설강식.
우리 이름이 붙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자.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주변에 앉아있던 배우들과 감독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깎듯하게 인사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필드의 주인공은 우리.
가장 열렬한 환호를 끌어내는, 대한민국의 세 명의 대표 배우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 앉아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잠시 기다리자.
“제58회 대종상 영화제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우주연상’ 이라는 메인 매치는 가장 늦게 시작되는 법.
1시간, 아니 2시간.
느긋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어, 차분한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려 했다.
“영광의 58회 대종상! 기획상 수상자는!”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박진우! 축하드립니다!”
“….”
시상식의 포문을 여는 수상작부터 내 영화였고, 내 영화의 기획을 맡아준 김민희 PD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무대 앞으로 나갔다.
제작 총괄을 맡았던 박진우 연출이 미국 영화 개봉 때문에 바빠 참석하지 못했기에 대신 받는, 대리 수상이었다.
동시에 카메라 한 대가 이동차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나를 비춘다.
“….”
아무래도.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겠다.
*
조승희.
조승희에게는 올해가 자존심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2년 연속 굵직한 상들은 모조리 도재희에게 빼앗겼고,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은 연달아 흥행에 실패했다.
이미 정상을 한번 경험해본 조승희지만.
‘조승희의 시대는 끝’
‘도재희에게 밀렸다.’
‘언제적 조승희냐’
이런 이야기가 맴돌 때마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논란을 불식시켜야 한다.
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의 남우주연상은 반드시 자신이 가져가야 했다.
자신감도 충분했다.
영화는 성공했고,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가장 강렬한 장면은 본인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작품상.’
‘도재희는 감독상’
‘남우주연상은 조승희.’
이게 조승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
시상식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는 ‘기획상’을 시작으로, ‘편집상’, ‘조명상’ 등. 굵직한 상들을 하나, 둘씩 독점해갔다.매우 이례적일 만큼.
시상식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마치, 이 자리가 ‘도재희’를 위해 만들어진 자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
그리고.
“촬영상 수상자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촬영 감독을 맡으신 강장수 감독님!”
아직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이 공개되지도 않았는데 ‘촬영상’으로 4관왕을 거뭐지는 모습을 보고는 이 불안감이 명백한 ‘현실’이었음을 확신했다.
이 시상식.
오늘 사고를 쳐도 제대로 치겠구나.
나는 새로운 역사의 중심에 있구나.
어쩌면.
‘도재희가 3년 연속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겠구나.’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을.
“…..”
딸깍.
조승희는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불안한 모습의 자신을 돌아보며 황당함을 느꼈다.
‘욕심은 버린 줄 알았는데.’
헛웃음까지 튀어나왔다.
이건, 자신이 알고 있는 조승희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승희라는 이름의 가치.
그 가치에 진심을 더하려면, 설강식이 말했듯- 결과를 누구보다 진실하게 축하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조승희가 아름답게 조승희로 남을 수 있고.
도재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다음은! 대망의 남우주연상 시상입니다. 시상자로는 백현석 배우가 도와주시겠습니다!”
“….”
기대감을 내려놓았기 때문일까.
조승희는 ‘남우주연상’ 시상이 시작되었는데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덤덤한 얼굴이 스크린에 나왔고, 도재희와 설강식 선배님 얼굴이 나올 때까지.
“대망의 수상자는!”
다섯 개로 분할되어있던 다섯 명의 배우들의 스크린이 하나로 합쳐지며, 도재희의 얼굴 하나가 화면 가득 비추어졌다.
“축하합니다! 도재희!”
팡!
꽃가루가 터져 나오는 그 짧은 순간.
‘…. 아!’
조승희는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
묵은 체증이 싹 가시는, 아주 시원시원한 감정이었다.
조승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하게 웃으며 도재희를 끌어안아 주었다.
“축하한다.”
그리고 도재희의 팔 한쪽을 잡고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아!”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
“남우주연상 도재희! 축하합니다!”
“배우 도재희.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를 통해 배우와 감독, 모두 역량을 드러내었죠.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20대의 청년상을 잘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네! 지금 영상에 나오고 있는 저 장면이 바로, 평론가들이 뽑은 올해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죠. 우는 연기가 정말 일품이지 않습니까.”
“네. 보는 제가 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습니다.”
“배우 도재희. 단상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3년 연속 남우주연상이죠. 다시는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대기록이네요.”
3연속 남우주연상.
“축하한다.”
조승희는 내 손을 잡아 위로 치켜세워주었고, 설강식 선배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남은 왼손을 들어 올려 주었다.
처음 내가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 내게 향하던 시샘과 질투의 시선은 없었다.
3년 연속.
누구도 이룬 적이 없고, 어쩌면 앞으로도 이루지 못할 경이로운 기록 앞에, 모두가 내게 경외심을 보냈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고생했다.’
고생했다고.
아주 조금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드러내지 않고 아주 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자 재익이 형과 영미 씨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팀들이 내 뒤로 동그랗게 모여 섰다.
“도재희! 도재희!”
“….”
내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아주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먼저, 영광입니다. 승희 형, 설강식 선배님. 두 분 모두,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 배우이던 시절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입니다. 이런 선배님들 사이에서 경쟁하여 함께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습니다.”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직, 울컥하기엔 이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리고 오늘도. 이날은, 제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날입니다. 절대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매일 가슴속에 묻어두고 꺼내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왜냐고.
내가 받아야 할 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내 시선의 끝이, 무대 좌측 끝에 있는 대종상 트로피를 향했다.
손과 머리를 이용해 하늘을 받치고 있는 아틀라스Atlas가 떠오르는, 대종상의 트로피의 모양.
거대한 대종을 손에 짊어지고 있는, 대종상에는 아직 두 개의 부문이 남아있다.
감독상과, 작품상.
‘꼭 받고 싶다.’
그리고.
이런 내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감독상 수상자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도재희! 축하합니다!”
“대망의 작품상을 가져갈, 올 한해! 최고의 평가를 받은 영화는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
2021년 12월 22일.
영화사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오늘.
오늘은, 내 날이 되었다.
*
[도재희白 “감독 데뷔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박진우 연출. 오래 인연 이어가고파.” [“배우들이 잘 해줘서 감독으로서 딱히 한 것 없다.” 겸손한 도재희의 수상소감.] [막 내린 대종상. 올 한해는 도재희 한 해. 무려 ‘7관왕’.] [3년 연속 남우주연상. 이제 도재희가 바라보는 화살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무대에만 총 일곱 번 섰던 도재희. 굵직한 상을 모조리 독식하며, 한국 영화의 거인이 되다.]시상식이 끝났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걸린 사진은, 일곱 개의 트로피를 양팔 가득 들고 있는 내 사진과 우리 영화 팀의 사진이었다.
– 역시, 도재희다.
– 도졌네… 이거 진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받는 거 아님?
– 그건 오버고. 후보에만 들어도 영광이지.
나는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기사와 댓글들을 확인했지만.
띠링! 띠링!
– 축하드립니다! 재희 선배님!
– 재희야. 수상 축하한다^^.
계속해서 울리는 문자 메시지 때문에 온전히 기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수상을 축하하는 문자가 벌써 수백여 개를 넘어섰다. 300개 이후로는 아예 세지도 않았다.
“바로 회식 장소로 갈까?”
“아뇨.”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잠시 쉬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리고, 슈트의 넥타이를 풀어헤치고는 재익이 형에게 말했다.
“형, 3월 초로 LA행 티켓 두 장만 예매해줘요.”
“응? LA? 두 장? 왜?”
재익이 형은, 아차! 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 부모님?”
“네.”
나는 이제껏, 내 시상식에 부모님을 부른 적이 없다.
이유는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것을 기피하시는 부모님 성향 때문도 있지만.
가장 높은 자리에서 왕좌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부모님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 책 먹는 배우님 – 16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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