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62)
162.
– “올해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다들 아시겠죠?”
– “음, 제 아들 때문인가요?”
– “맞아요! 자 일단, 이거 한 잔 받으세요.”
할리우드 레드카펫 행사의 최고봉은 역시 지기엘카 쇼.
진행자 지기엘카는 올해에도 역시 데킬라를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권하며 시상식을 더욱 북돋았는데, 그의 레이더망에 어머니가 걸렸다.
어머니는 지기엘카가 건넨 데킬라를 넙죽 받아 마시시더니,
“어맛!”
하며 몸서리 치셨고, 이를 두고 지기엘카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으하하! 조심하세요.”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지기엘카를 노려보시더니 더듬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 아들이 왜 놀라운 일이라는 거죠?”
“그야, 이제껏 아카데미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니까요. 남우주연상 후보라니!”
그러자 어머니가 반박하듯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남우주연상 후보인 것이, 이상하다는 말로 들리네요?”
“….”
우하!
그야말로 핵폭탄 급 돌직구나 다름없다.
그제야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인지한 지기엘카는 자신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콩콩 때리며 말했다.
“제가 술에 취했나 보네요. 사과할게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죠. 재희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에게 입증했으니까요.”
그러자 어머니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셨다.
데킬라 한 잔을 마시고 긴장이 싹 풀리신 듯 어머니는.
“햐”
괴상한 탄성과 함께 당당하게 레드카펫을 밟아 들어가셨고, 그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네 엄마. 지금 취했다.”
“….”
그러게 말이에요.
지기엘카 쇼가 끝나고 레드카펫 끝에 서서 우리는 기자단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불청객이 아니라, 극진한 환영을 받는 내 모습을 보자 조금 편해지신 듯, 함께 손을 흔드셨다.
하지만, 내 시선의 끝은 한 곳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내 다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은 할리우드 스타.
레오파드 비트리오.
이 씬의 화룡점정을 찍은 그가, 십수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등장했다.
어김없이 지기엘카가 나타나 그에게 물었다.
“이봐요, 레오! 올해에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어요. 이게 몇 년 연속이죠?”
“십년은 넘은 것 같은데.”
“14년이죠. 이제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어요. 올해에는 제발 레오가 받기를!”
“하하! 고마워요.”
“그러니 이거 한 잔 받아요.”
레오가 플라스틱 잔에 담긴 데킬라를 받아들고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잔을 비워냈다.
그리고는 양 손을 위로 번쩍 들자,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친구지?”
어머니가 레오를 향해 힐끔거리며 물으셨다.
“남우주연상 경쟁하는 배우.”
“네.”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실제로 보니 별로다.”
“….”
제 생각도 그래요 어머니.
*
작년 아카데미 가장 다른 점은.
올해에는 도재희 전용 ‘프레싱 섹션’이 존재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L&K의 이무택 대표와 권우철 대표가 회사 직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고, 내 에이전시인 UAA 사람들이 대거 자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이마운트 픽쳐스나, 19세기 무비베어 같은 대형 영화사에서도 나를 보기위해 방문했고, 나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감독과 배우들은 이 섹션을 꼭 한 번씩 들러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니 사람으로 바글바글할 수 밖에 없다.
서버들이 샴페인이 담긴 트라이를 들고 움직이고, ‘내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술과 파티를 즐긴다.
나와 어머니는 빼고.
“재희, 저를 기억하나요?”
“물론이죠.”
“작년에 ‘외국어 영화상’ 수상후보로 아카데미를 찾았던 재희를 제가 인터뷰 했었죠. 그런데 불과 1년이 지났어요. 그 사이,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죠. 남우주연상 후보라니! 어떻게 생각해요?”
“환상적입니다.”
“환상적이죠. 옆에 계신 분은 어머니인가 보군요?”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진행자의 인사에 어머니가 싱긋 웃어 보이셨다.
“반가워요.”
확실히 이 자리를 즐기고 계신다.
“이런 질문을 드리기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만, 아드님이 이례적일 정도로 할리우드에서 큰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긴 지문에 통역사가 옆에 붙어서 통역을 시작했고, 어머니는 질문을 유심히 듣더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것도 한국어로.
어머니의 당당함에 진행자가 신이 난다는 듯 말했다.
“재희의 대단한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왔나 했더니, 어머니를 닮았군요.”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펴며 맞장구 쳤다.
“그럼요. 저를 쏙 빼닮았죠.”
“재희는 할리우드의 새 바람이죠. 만약 오늘, 재희가 오스카를 품에 안게 된다면, 분명 특정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할리우드에 어떤 메시지가 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재희의 수상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어요. 보고 싶지 않나요?”
“아, 그런 게 있나요? 보고 싶어요.”
“좋아요. 그럼 저기 화면을 만나 보시죠.”
진행자가 화면 한 곳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오스카 제작진들이 준비한 영상이 담겨있었다.
– “헬로우, 재희”
영화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에 출연했던 배우들이었다.
다른 말로는, 내가 선언했던 인클루전 라이더.
다양성은 존중하자던 내 제안 덕분에 늘어난 T.O로 캐스팅 되었던 유색 인종 배우들이었다.
– “재희는 정말 특별한 배우입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진작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 “솔직한 의견이요? 할리우드에 한 방 먹여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할 수 있다고요.”
– “만약 오스카보다 위대한 상이 존재한다면, 그건 재희를 위해 주고 싶어요. 이건 분명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배우들의 응원.
이뿐만이 아니었다.
– “제가 보았던 친구 중 가장 당돌하고 패기 넘치는 친굽니다. 하지만 겸손할 줄도 알죠. 그는 매우 스폐셜 해요.”
– “재희요? 함께 작업해서 매우 즐거웠던 친구에요. 그는, 마치 기계같이 정확한 연기만을 보여주죠. 모두 계산되어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친구입니다.”
– “입 닥쳐 오너. 내 대사까지 하면 어쩌자는 거야?”
코너 오웬, 오너 오웬.
영화 [패브리케이터>의 오웬 형제가 투닥 거리는 모습도.
– “재희는 인간적으로는 소박한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기도 해요. 약자에겐 한 없이 약하고, 강자에겐 누구보다 강하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친굽니다.”
내 할리우드의 첫 번째 인연인, 조셉 이든 캣맨도.
– “재희의 재능은 끝을 알 수가 없어요. 이건, 정말! 미친…! 아, 죄송합니다. 어쨌든,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요. 저와 비슷하게 말이죠.”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앤소니 옐친 감독도.– “재희가 오스카에 어울리냐고요? 푸하,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그럼 제가 반대로 물을게요. 대체 누가 어울리죠?”
자신만만한 팝(Pop) 스타 엘라니 오코너도.
마지막으로.
– “도 배우님이요?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도 배우님이 안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없을 정도입니다. 가능하다면 제 작품에 평생 출연해 주셨으면 할 정도로. 그는 제 첫 번째 페르소나입니다.”
박진우 연출의 얼굴이 스크린 가득 나오자, 카메라가 나를 비추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빵! 터지며 뒤에 있던 박진우 연출의 어깨를 붙잡았다.
“푸하! 감독님, 대체 저런 것은 언제 찍으신 거죠?”
그러자 박진우 연출이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비밀로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영상이 끝이 났다.
“어떠셨어요?”
진행자의 물음에 나는 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적이며 탄성을 내뱉었다.
“아.”
마지막에 웃어서 다행이다.
눈물이 핑글 돌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티 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저는 평생 오늘 이 날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전화 드리겠습니다.”
내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자 진행자가 능숙하게 정면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의 수상을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남우주연상 후보인, 도재희 배우를 만나보았습니다.”
우리를 향하던 카메라에 빨간 불이 꺼지며 인터뷰가 끝났다.
제 94회 오스카의 메인 방송은 마지막 남우주연상 후보인 레오의 인터뷰 쪽으로 넘어갔고, 나는 복잡해진 속을 부여잡고 진행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가슴 한 구석이 복잡해진다.
당당하게 싸우고, 쟁취하자는 전투적인 마음으로 왔는데 조금 감성적으로 변하는 느낌이다.
“후.”
짝짝.
나는 이를 털어내려 노력하며 뺨을 두어번 두드렸다.
그러자 영미 씨가 내 앞에 서며 말했다.
“분장 지워져요.”
영미 씨는 등이 파인 까만 블랙 드레스를 입은 채로 나를 따라다니며 분장을 체크해주었는데.
“오빠, 울었어요?”
눈물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놀라며 되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자 영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분장을 수정해주었다.
“오빠 우는 거 처음 본 것 같은데.”
분장 수정이 끝나고,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은근히 약한 모습도 있네요.”
“푸하.”
그 말을 듣자, 실소가 터져 나와 그만, 웃어버렸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뭐 난다고 하던데. 못 들어 봤어요?”
“됐거든요.”
“진짠데.”
아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울다가 또 웃다가.
시상식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분이 멜랑꼴리하다.
“재희! 입장해주세요.”
그때, 시상식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제 진행요원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나는 박진우 연출과 함께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힘내. 재희.”
이무택 대표님과 권우철 대표님 등. L&K직원들이 내 등을 토닥여 주며 3층 객석으로 올라갔고,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1층 가장 앞 줄로 들어섰다.
객석 위치부터가 작년과 여러모로 달라져있다.
언제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수 있도록, 굵직한 수상 후보자들을 앞에 몰아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 앉은 수많은 영화인들이 내게 눈인사를 보내왔고, 나는 자연스러운 미소로 이에 화답했다.
그러다, 내 바로 건너편 객석에 앉아있는 레오와 눈이 마주쳤다.
레오파드 비트리오.
올해, 남우주연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거물급 영화배우.
그의 여유로운 미소 뒤에는, 나에 대한 견제보다는.
‘너를 인정한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정정당당하게 한번 붙어보자.’ 라는 의미로 비춰지는 것은, 그저 내 감성적인 기분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그와 있었던 과거 논쟁이나, 개인적인 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배우로서 그를 존중하고.
그 역시, 나를 존중할 것이다.
“….”
내가 슬쩍 미소를 짓자, 레오도 장난스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 역시.
“이제,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장내에 계신 분들께서는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검독수리들의 경연장.
“시작하겠습니다!”
그 화려한 막이 올랐다.
[ 책 먹는 배우님 – 162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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