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63)
163.
무대 전체를 아름답게 수놓은 화려한 샹들리에.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 화려한 샹들리에들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수상자들의 눈물과 수상소감.
이렇게 자리에 앉아 수상소감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다.
작년.
‘외국어영화상’ 수상 실패로 짧게 끝났던 수상에 대한 단꿈과 오늘은 다르다.
수상자들이 늘어날수록,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이들의 기쁨에 공감하며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나는 이 경연장에 100% 몰입하여 수상소감이 끝나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너무나 진솔한 수상소감에 공감하며 마음 한 구석이 찡해지는 경험도 했고, 옛날의 내가 떠올라 북받쳐 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어 손수건이 필요하기도 했다.
왜 일까.
왜 유독, 여기서만 이런 것일까.
부모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도 격하게 원하던 상이기 때문일까.
나조차도 모르겠다.
왜, 가끔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이유는 알지 못하는데, 괜히 실없이 울고 웃고 싶은 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아니, 어쩌면 쌓이고 쌓여있던 감정의 둑이 단번에 무너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응원해준 저들 앞에서 당당하게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싶으니까.
“다음 남우주연상 시상은, 전년도 수상자인 지미 니콜라이가 시상을 도와주겠습니다.”
시상을 도와줄 전년도 수상자인 지미 니콜라이가 달콤한 황금색 피부를 가진 오스카와 흰 봉투를 손에 들고 무대로 걸어나왔다.
“반갑습니다. 지미 니콜라이입니다.”
시상자의 짧은 인사가 흘러나오는 사이.
내 심장은 계속해서 뜨겁게 펌프질을 했고, 다섯 명의 후보의 얼굴이 스크린에 공개되고 대망의 남우주연상 발표가 남았을 때.
나는 두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긴장한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최대한 덤덤한 얼굴로 스크린을 응시했다.
*
남우주연상.
6,000여명의 아카데미 멤버들의 수상자 선정기준은 까다롭다.
수년 전.
#OscarSoWhite.
아카데미 연기자 부문 수상후보 모두가 백인으로 구성되어 논란이 된 이후, 여성과 유색 인종 멤버의 숫자가 확연히 늘어났다.
거기다, 작년 도재희에 동양인 비하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던 존 미켈과 #Do 이후엔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현재, 수상을 결정짓는 6,000여명의 아카데미 멤버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기에, 변수가 많았다.
가장 큰 변수는, 동양인인 도재희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들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올해는 보다 더 특별하다.
남우주연상은 특히,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라인업이었다.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지미 니콜라이가 무려 두 작품이나 공개했음에도,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배우들이 즐비했다.
동성애의 사랑을 다룬 [오션 오브 스트릿>.
바하를 연주하며 맨하튼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노숙자를 다룬 음악영화 [맨하튼의 시인>.
우주 SF 상상력을 극대화 시킨, [스텔라 어웨이크>
레오가 주연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화제가 되었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서부의 복수활극을 다룬 영화 [리벤지 아메리카>.
그리고.
[알카트라즈> 까지.이 영화들에서 주연으로 열연한 다섯 명의 배우는 2021년 한 해동안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들이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품 배우들이다.
이 다섯 명의 배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미 니콜라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수상자는.”
찰나의 순간이 억겁처럼 느껴지는 순간.
모두가 지미 니콜라이의 입술만을 주시했고, 그 입술이 열림과 동시에 환희와 실망감이 교차했다.
“[알카트라즈>! 재희!”
“와!”
지미 니콜라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한 마디가 불러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터져 나오는 함성소리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객석을 가득 채운 모든 영화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었다.
그 틈에는 레오도 있었다.
레오파드 비트리오.
벌써 14년 째 남우주연상 수상과 멀어진 그는, 씁쓸한 얼굴로 객석 정면을 응시했다.
스크린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와 포옹하는 도재희의 얼굴이 걸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 레오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런 그 앞에 누군가 섰다.
“….?”
도재희였다.
*
지미 니콜라이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환한 웃음.
“꺄아!”
내 옆에 앉아있던 어머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탄성을 내질렀고, 아버지는.
“예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왈칵 껴안아 주었다.
나는 미소가 만연한 얼굴을 유지한 채 어머니와 뜨겁게 포옹을 하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카메라가 나를 비추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지만, 내 움직이는 동선은 반대였다.
내가 향한 곳은 레오.
“…..”
레오가 찰나의 순간 당황스러운 듯 뒤로 몸을 물렸지만, 나는 두 팔을 벌렸고- 레오는 머쓱한 얼굴로 내 포옹 제의를 받아드렸다.
툭툭.
나는 레오의 등을 두 번 두드리고는 몸을 떼어내었다.
존경의 의미이자,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해 주었던 배우에 대한 예의였다.
“….”
레오 역시,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은지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이제껏 보여준 적 없는 아주 솔직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당당하게 걸어올라가 지미 니콜라이와 가볍게 포옹한 뒤, 그렇게나 들고 싶어했던 오스카를 들어올렸다.
더 이상, 술잔에 비친 오스카가 아니라- 내 품안에 안긴 실제 오스카.
작년의 나는, 온갖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이 자리에 서서 오스카를 들어 올리고 싶어 했었다.
막상 서보니 알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스카를 들어 올리는 승자와 들어 올리지 못하는 패자. 이렇게 둘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지만.
이는, 이 시상식을 좀 더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것을.
이곳은, 파티다.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즐기는 파티.
“워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머쓱한 얼굴로 옆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상을 주신, 아카데미와 6,000여명의 아카데미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는 최대한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나와 같은 수상 후보들을 가리켰다.
“후보에 올랐던 다른 배우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이 하나 같이 훌륭했고, 흠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승부가 아니라,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스크린이 레오를 가리켰다.
레오도 기분 좋은지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나는 박진우 연출을 가리키며 말했다.
“감독인 박진우에게도 감사합니다. 당신은 지난 5년간 제게 언제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했고, 저는 그것을 충실하게 연기했을 뿐입니다.”
스크린이 박진우 연출을 가리켰다.
박진우 연출은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저를 매일 나아가게 만드는 존재인 부모님에게도 감사합니다.”
스크린이 부모님을 번갈아가며 가리켰다.
부모님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고, 이를 응원하기 위한 환호성이 짧게 터져 나왔다.
“지금 뿌듯해 하시는 얼굴을 보니 너무 기쁩니다. 당신들은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이때, 가장 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잠시 소감은 소강상태가 이르렀지만- 아직 내 소감은 끝나지 않았다.
“저는 오늘을 기억할겁니다. 오늘의 저는, 제가 배우의 꿈을 품었던 어린 시절부터 만나길 꿈꿔왔던 영웅이니까요. 오늘 영웅이 꿈꾸던 어린 소년에게 잡혔습니다. 그럼 제 영웅이 사라졌냐구요?”
장내가 고요해졌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10년 후의 제 모습은, 오늘의 영웅일 테니까요. 저는 다음 영웅을 붙잡기 위해 달려가겠습니다. 솔직히 잡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 영웅이 여기에 있을지, 한국에 있을지, 어디에 있을지도 잘 모르겠군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10년.
20년.
30년.
매일, 매달, 매년 멀어져가는 내 영웅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지만, 쫓아가겠습니다. 왜냐구요.”
계속해서 달려 나가겠다.
평생 잡을 수 없는 허상일지라도, 계속해서 쫓아가겠다.
“그게 제 삶의 원동력이 될 테니까요.”
박수가 더욱 커졌고, 나는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마지막이다.
“저와 함께 달려갈 사람들의 곁에 항상 머물겠습니다. 그들에게 외치겠습니다. 인클루전 라이더. 감사합니다.”
내 마지막 외침과 동시에 수상소감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클래식 반주가 흘러나왔다.
어마어마한 박수갈채와 함께, 나는 그 자리에서 황금색 오스카를 들어올렸다.
10년 후의 나?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이 꿈같은 순간을 아주 천천히 즐겼다.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는- 옛 기억의 조각들.
대사 한 줄.
지나가는 배역 하나.
연기가 하고 싶어 대본을 달달 외우고 읽어보던 나.
그 풋내기, 아니 이상한 배우 하나가 오스카 무대에서 정상을 소리친다.
“감사합니다.”
오늘 만큼은 동양인 배우가 아니라.
한 명의 배우로서.
가장 값진 인정을 받은 배우가 되었다.
그래.
나는 오늘, 할리우드의 왕이 되었다.
*
150여명의 인원이 참석한 아카데미 뒤풀이는 아침이 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마셔!”
“예!”
리조트 하나를 통째로 대관하여 진행된 파티에는, L&K, UAA, 나와 함께 영화를 진행했던 다수의 사람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 중에는,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뉴욕에서 LA까지 날아 왔다는 팝스타 엘라니 오코너도 있었다.
그녀는 신난다며 술을 잔뜩 마셨고, 기분이 좋은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덕분에 우리는 세계적인 팝스타의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었다.
엘라니 오코너는, 처음 이탈리아에서 마주쳤던 그날처럼 아주 매력적으로 웃어보였다.
“감독님, 결혼 축하드려요오.”
엘라니는 잔뜩 꼬부라진 혀로 박진우 감독의 결혼을 미리 축하해주기도 했고.
“정말 불러준다니까요!”
축가를 불러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약속까지 해버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엘라니 오코너와 한참을 대화했는데,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아, 어지러워.
세상이 핑글핑글 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여기까지가 내 기억이다.
“…..”
정말, 진탕 마셔버렸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건배를 해주며 술을 받아 마셔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잠든 곳은 숙소.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는데 발아래에 무언가가 걸렸다.
푹신.
멈칫했다.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이건…. 사람이다.
‘설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겁지겁 이불을 들쳐 내었는데, 이불 아래에는 재익이 형이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하.”
다행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고, 내 인기척에 깬 재익이 형이 입가에 묻은 침을 슥- 닦으며 말했다.
“일어났어?”
“아, 네. 왜 여기서 주무셨어요?”
“응? 모르겠네.”
“….”
“씻고 나와. 밥 먹자.”
씻고 리조트 로비로 나가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식당이 아니라 기자단이었다.
할리우드 왕의 세부적인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리조트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할리우드 연예부 기자단.
“한 마디만 해 줘. 그리고 밥 먹자.”
권우철 대표님이 나를 직접 에스코트 했고,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하지만 내 표정은 밝았다.
그 어느 때보다.
한 기자가 물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지만, 우선 모두가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차기작은 어떻게 되나요? 너무 많은 추측들이 오가고 있는데요. 한 마디로 정리해주시죠.”
내 차기작.
할리우드냐, 한국이냐.
무슨 영화를 하느냐.
이걸 묻는 거 맞지?
“음.”
아이고, 속이야.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는걸.
“아주 중요한 일 하나가 남았습니다. 다른 계획 다 제쳐두고, 우선 그것부터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국수’라든지 말이야.
[ 책 먹는 배우님 – 163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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