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64)
164.
내가 아카데미 정상에 선 것은.
내 자신감과는 별개로,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동양인 최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도재희] [6,000여 명의 아카데미 멤버 인터뷰. “남우주연상 고르는 일, 힘들지 않았다.” 어차피 수상은 도재희?]최초의 동양인 배우 수상.
2위와 더블에 가까운 압도적인 표 차.
그래.
이례적이다.
언론들은 이를 단순하게 동양인 배우 한 명이 미국의 정상에 깃발을 꽂은 ‘사건’ 하나로 다루지 않았다.
[유색인종 출신 할리우드 배우들의 희망된 한국의 작은 별]모든 배우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
성공을 위해 달려왔던, 지난 3년에 대한 보상을 아주 제대로 받은 순간이다.
그리고 이런 내게 쏟아진 할리우드 언론의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차기작이 뭐야?’
할리우드 언론들의 질문 세례에 나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내게는 차기작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스케줄이 존재 하니까.
[도재희 차기작에 대한 관심, 각종 외신 언론에서 메인에 올라.] [할리우드 도재희 몸값. 하루아침에 두 배 이상 상승.] [도재희, 당분간 작품 없이 휴식을 취할 것.] [할리우드 최정상 배우 도재희. 비밀리에 국내 귀국. 차기작은 한국에서? 추측만.].
.
.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
“[스타를 찾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진행을 맡은 MC 한세혁 입니다. 오늘! 지난주에 예고 드렸던 대로, 아주 특별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도재희 배우님의 소식인데요. 시상식 이후 공식석상에서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많이들 궁금해 하셨지요. 몸이 아픈 것이 아니냐, 은퇴를 하는 것이 아니냐, 추측들이 많았었는데요. 오늘, 그 도재희 배우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자! 그럼 만나보시죠. 오채연 기자!”
“네 안녕하세요. [스타를 찾다>의 오채연입니다. 저는 지금, 전 세계가 사랑한 배우. 도재희 배우를 만나기 위해 강남의 어느 결혼식장 앞에 나와 있습니다.”
“결혼식장이요? 자세한 현지 상황 설명 좀 해주십시오.”
[스타를 찾다>를 제외하고도, 이미 바글바글한 취재인파로 정신이 하나 없는 이곳.강남의 에버가든 예식장.
진행자의 질문에 도재희가 신인이던 시절부터 인연이 깊었던 오채연 기자가 미소를 머금었다.
“네. 결혼식장입니다. 할리우드에서도 궁금해 했던 도재희 배우의 행보는, 다름 아닌 결혼식 사회자였습니다.”
“결혼식 사회자요? 조금 의외인 모습인데요.”
“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놀라운 모습은 아닙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바로, 도재희 배우와 국내 스크린 데뷔를 함께했던 영화감독, 박진우 감독이기 때문이죠.”
“아. 그렇군요!”
“도재희 배우의 회사 관계자 말에 따르면, 신랑 박진우 감독과 신부 김민희 PD 두 사람의 결혼식 소식을 듣고, 자신이 꼭 사회를 보고 싶다고 먼저 청했다고 합니다. 다른 스케줄은 일절 잡지 않고, 오늘 결혼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을 확인할…. 어, 어맛!”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도중, 사고가 터졌다.
진행을 보고 있던 오채연 기자가 인파에 밀려 옆으로 밀려난 것.
순식간에 화면은 진행석에 앉아있는 MC에게로 돌아갔고, MC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생방송 사고에 능숙한 듯 말을 이어갔다.
“현지 사정이 인터뷰를 이어가기에 조금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도재희 배우가 나타난다는 소식에 각국의 외신 기자들까지 몰려든 탓이 아닐까 싶은데… 아, 지금 소식이 들어왔네요.”
진행용 모니터를 읽던 진행자의 눈동자가 커졌다.
“엘라니 오코너…. 18세에 그래미 상을 수상한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하죠. 도재희 배우와 각별한 우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낸 적이 있는데, 그런 그녀가 지금 한국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현지 연결해보겠습니다. 오채연 기자?”
“네! 오채연입니다. 이곳은 지금 아수라장입니다. 결혼식장 앞에 너무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든 탓에 원활한 방송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요. 어쨌든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엘라니 오코너. 조셉 이든 캣맨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한 명도 쉽게 보기 힘든 할리우드 스타들이 지금도 줄지어 등장하고… 아아앗! 밀지 마세… 도재희? 도재희? 앗! 도재희 배우가 등장했습니다!”
카메라가 요동치듯 움직였다.
잠시 화면 조정이 이루어지는 듯하더니, 이내 원활하게 방송이 나가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은,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영화감독 박진우와, 그와 인사하는 할리우드에서 날아온 셀럽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며 모든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집중시킨 배우 도재희였다.
“도 배우님! 여기 좀 봐주십시오!”
“도재희 배우님!”
“재희 씨!”
아수라장에도 도재희는 줄곧 한 곳만을 바라보았다.
바로, 신랑 박진우였다.
박진우에게 다가간 도재희가 입을 열었다.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아주 장난스럽게 웃으며 예식장 직원에게 ‘식순’이 적힌 종이를 받아들며 말했다.
“저는 리허설 하고 오겠습니다.”
*
누구에게는 고작 결혼식 사회 일수 있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다음은, 아름다운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참석해주신 분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아름다운 신부를 축하해주십시오. 신부 입장!”
결혼식의 꽃.
신부 입장.
치마보다는 청바지를 자주 입고, 원피스 보다는 후드티가 잘 어울리던 여자.
박진우 연출의 뒤를 받쳐 몇 년간 현장에서 구르고 구르던 강인한 여성인 김민희 PD는, 행진곡에 맞춰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되어 나타났다.
새하얀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아버님의 손을 잡고 수줍은 미소로 나타난 그녀는.
“워우!”
수많은 셀럽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주 천천히 신랑인 박진우 연출에게 다가갔다.
박진우 연출의 얼굴이 수줍은 홍당무 마냥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내내 유지했는데,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 마음이 이상해진다.
5월의 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나지만, 내심 부럽다고 할까.
이거, 연애라도 해야 하나.
엄숙해야 할 결혼식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며느리에게 읽는 시아버지의 편지 시간을 갖겠습니다. 아버님. 자리에…”
“잠깐!”
예식장 문을 박차고 들어와 깽판을 부리는 남자.
[알카트라즈>에서 나와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근육남 마초 배우, 폴이었다.“감히 나를 두고 결혼을 해!”
거구의 배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와 전형적인 아침드라마 급 대사를 치자,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 긴.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내 사랑!”
그런 폴이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이를 주시했고, 신랑을 한 대 칠 기세로 앞으로 달려 나간 폴은 난데없이 누군가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다.
끌어안은 사람은, 신부가 아닌.
“으엇.”
박진우 연출이었으니까.
“감독님! 어떻게 나를 두고 결혼을 하십니까! 엉엉.”
신랑인 박진우 연출을 와락 끌어안은 채 폴은 아침드라마 급의 오열을 보여주자, 장내가 발칵 뒤집어 졌다.
“깔깔깔!”
“으하하하!”
폴은.
“으아앙! 감독님! 미워!”
100점짜리 찌질이 연기를 선보이며 뒤로 돌아 달아났고, 박진우 연출의 어색한 얼굴이 그대로 스크린에 담겼다.
감독님.
이거 전부 촬영되고 있는 거 아시죠?
편집도, CG도 아무것도 없는 생방송입니다.
“여기계신 예비 신랑 분들. 모두 명심하세요. 결혼 전에는 반드시 옛 연인 관계를 잘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 관리에 주의하세요.”
내 말에 다시 한번 폭소가 터져 나왔고, 결혼식은 신나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 분위기의 화룡점정은 역시.
“축가는, 엘라니 오코너 양이 도와주시겠습니다.”
축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세계적인 팝 스타의 축가 공연.
엘라니 오코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와 축가를 불렀고.
“우와.”
순식간에 장내를 콘서트로 만들어 버렸다.
오묘한 그녀가 달달한 러브 송을 부르니, 정말이지 환상적이다.
노래가 끝나자, 엘라니 오코너는 나를 향해 윙크를 지어보였고, 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우정으로 이 먼 곳까지 와서 축가를 불러준 그녀에게 박수를.
“앵콜! 앵콜!”
앵콜 요청이 쇄도했지만, 시간 관계상 더 부를 수는 없었다.
“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웨딩 촬영이다.
신부를 빼앗으려는 친구들이나, 턱시도와 드레스를 바꿔 입은 신랑 신부 등등.
다양한 컨셉으로 찍는 웨딩 촬영은 미국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기라고 한다.
여기 참석한 셀럽들은 유명한 배우와 가수들이 대부분이다.
으음, 벌써부터 어떤 그림일지 예상되지 않나?
그래.
그야말로 기막힌 사진들이 대거 생산되었고- 실시간으로 박진우 연출의 결혼식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나는 이 결혼식을 진행하며 무수히 많은 명장면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는데.
“오.”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 중 하나는.
“엘라니 오코너가 받았습니다!”
신부가 던진 부케를 얼떨떨한 얼굴로 받아든 엘라니 오코너였다.
“나, 곧 결혼 하는 건가요?”
그녀가 부케를 받아들고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나를 향해서.
“….”
으음.
그렇게 웃지 말아요.
기분이 이상하잖아.
*
결혼식이 끝나고 박진우 연출과 김민희 PD는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단 둘만의 신혼여행.
여행이 끝나는 날짜는 잡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도대체 얼마나 쉬려고 하시는 거죠?”
“하하,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정리되는 대로 돌아오겠습니다. 재밌는 아이디어를 들고요.”
“으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조카 얼굴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거겠죠?”
나는 장난스런 질투심을 드러내며 이들을 보내주었다.
“하하! 연락드리겠습니다.”
둘은 행복한 뒷모습을 보이며 비행기에 올랐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확히 이주 뒤에 내 앞으로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그 편지에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찍은 박진우 연출과 김민희 PD의 사진이 담겨있었다.
둘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너는 결혼 언제 할래?”
사진을 대뜸 들여다보신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엘라니인가 그 친구. 아들한테 관심 있는 거 같던데. 아들도 알고 있지?”
“….”
“엄마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외국인 며느리도 괜찮다는 말이야.”
“험험, 이 아빠 생각도 같으니까. 언제든지 환영이다. 알지?”
“….”
부모님은 엘라니 오코너가 부케를 받고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낸 사진을 두고 틈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신다.
어머니. 아버지.
연애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엘라니 오코너와의 다음 저녁 식사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책 먹는 배우님 – 16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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