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67)
167.
외전2.
10년 전의 영웅.
10년 전.
스물 두 살의 나.
“야, 재희. 왔냐?”
“어, 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형이 국밥 쏜다.”
“오, 웬일이냐?”
그 당시의 나는, 군대를 막 전역하고 대학교 복학을 기다리고 있던, 많고 많은 배우 지망생 중 한명 일 뿐이었다.
내가 다니던 지방대 연극영화과는 학과 정원이 40명이 조금 넘었는데, 나는 이 40명 중에서도 특출한 실력을 뽐내지 못했고, 학기 중 연극 워크샵에서 주연 한번 해보지 못했다.
“… 아.”
벌써 가슴 아픈데.
쉽게 말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력 없는’ 배우 지망생.
“….”
뭐.
그렇다고 눈치가 없거나 나태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한 번에 알아들을 때, 두 번 세 번씩 곱씹었으며.
남들이 한 걸음 걸어갈 때 나는 두 세 걸음씩 달리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로, 학교생활과 함께 대학로 극단 생활까지 병행하는 것으로 발전했지만.
뭐, 알다시피 결과는 좋지 못했다.
내가 대학로에 둥지를 틀었던 [장미 컴퍼니>는 대학로 상업극단의 부조리한 점은 죄 빼다 박은 곳이었고.
결국, 무대에는 제대로 서보지도 못한 채– 실컷 노동 착취만 당하다 내 발로 대학로를 떠났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호구 마냥 뛰어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야! 09 내 밑으로 다 집합.”
언젠가 한 선배가 술자리에서 같은 학년 동기들을 모아놓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술에 잔뜩 취해서 얼굴을 붉히고는 조금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너네, 나중에 연기 하고 있을 것 같지?”
“….”
“그렇게 열심히 해봐야, 결국 힘만 빠진다니까. 연기는 말이야. 슬로우야, 슬로우. 천천히- 가늘고- 길게. 오케이?”
“….”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꽤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연기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다들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자기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연기하라고 집에서 등 떠미는 경우가 몇이나 된다고.
열심히 하는 모습 응원은 못해줄망정.
왜 재를 뿌리는 거야?
연기는 못해도 자존심만큼은 그 어떤 프로들보다 강했던 나는 그 선배에게 물었다.
“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선배가 가소롭다는 듯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야. 꼴깝 떨지 마.”
“…. 네?”
“단언컨대, 10년 뒤에 여기 모인 40명 중에서 연기하고 있는 사람, 많아야 두 명이다. 내기할래?”
많아야 두 명 이란다.
… 정말? 그렇게 적다고?
“아니지. 두 명이 뭐야. 어쩌면 ‘올 킬’일 지도 모르지. 그래. 그 쪽이 맞겠다. 네들 싹 올 킬이야.”
“….”
올 킬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반박하고 싶었지만, 연극영화과는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체대만큼이나 강하게 잡혀있는 집단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선후배간의 우정으로 아름다워야 할 오티(O.T 오리엔테이션)를 ‘오지게 터지는 데이(O.T)’ 라고 부를 만큼 선배라면 바짝 엎드려야 했고.
실제로, 엎드려뻗친 상태로 매를 맞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 한 두 살짜리들이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그 당시의 나는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선배의 말을 듣기만 했다.
저항하고 싶지만, 현실을 넘어설 수 없는 소시민 도재희만 남았다고 할까.
“뜰 것 같은 애들은 척 보면 싹수가 보이거든? 근데, 네들 중에는 그럴 만한 애들이 없어.”
“….”
“너희 돈 많아? 빽 있어? 아니면 설강식 만큼이나 연기 잘 해? 아니면 조승희랑 비주얼로 비빌 수 있어? 꿈 깨, 이것들아. 너희 같이 평범한 애들은, 바짝 엎드리고 천천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야.”
이십년 차 매니지먼트 대표나 꺼낼 법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 하며 후배 가슴에 못질하던 이 선배의 이름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김명수.
명수 선배는, 자신의 예언대로 40명 중 39명이 되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연기를 그만두었고, 10년 뒤 살아남겠다는 포부는 온데간데없이, 곧 바로 장난감 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2년 뒤, 결혼을 하더니 지금은.
‘재희? 걔 내 후배야. 내가 걔 반쯤 키웠지. 친하냐고? 당연하지. 전화 한 번 해볼까? 지금 부르면 당장 달려올걸?’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추억을 꺼내먹고 사는, 평범한 두 아이의 가장이 되었다.
뭐, 본인이 본인 말처럼 되어 버렸지만. 어쨌거나 명수 선배의 말은 사실이었다.
A 연극영화과 09학번 동기 44명은 해가 갈수록 자퇴생과 휴학생이 늘어나더니 졸지에는.
졸업식 날, 인원은 절반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대부분 졸업 이후에 연기학원에 취직을 하거나, 그 마저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전공과 상관없는 직장에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학로로 향했지만.
잔혹한 현실 앞에 가로막혀 꿈이 한풀 두 풀씩 꺾이더니, 끝내 생존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아.”
잔혹한 현실이여.
생존자 중 한 명인 나는, 대학로 생활을 청산하고 L&K에 들어갔다.
“그거, 데뷔가 가능하긴 하냐?”
“도재희.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려는 거냐? 거기 다 신인들 등쳐먹으려는 악덕 매니지먼트 뿐이야.”
“실력으로 인정받아서 캐스팅되어야 진짜 배우지!”
대학로에서 ‘예술’ 타령하는 동기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약간 그런 것들이 있는 시기다.
‘나는 배우다.’
막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잔뜩 ‘겉멋’에 잔뜩 드는 시기.
연극이 예술이고, 영화를 하려고 하거나 연기를 포기하면 변절자 취급을 받는 시기.
뭐, 이마저도 몇 년 지나고 나면.
“야. 오디션 하나 없냐?”
“아아악! 또 떨어졌어!”
“너희 회사. 신인배우 오디션 나이 제한 있지?”
어떻게 하면 영화에 한 장면이라도 더 나올 수 있을까 한데 모여 고민하는 분위기로 바뀌게 되지만.
그래.
꿈은 꿈이고, 돈은 현실이더라.
확실히.
10년 전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
L&K에서의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다.
연습. 스터디. 오디션.
이 세 가지 루틴의 끝없는 반복.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그래도, 작은 역할이지만 무대에 서서 공연도 하고, 적지만 페이도 받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
내가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나?
나, 배우라고 말할 수 있나?
누가 알아주는데?
직업란에 무언가를 기입해야할 때면, 돈도 못 벌면서 ‘프리랜서’라고 적던 날들의 반복.
매일 똑같은 고민만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야. 도재희. 요즘 잘 되 가냐?”
“… 나야 똑같지.”
“그래? 오디션은? 계속 보는 거야?”
“어, 어.”
“그래? 열심히 해. 나는 며칠 전에 대리 달았다. 이제 월급 230은 넘어.”
“….”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잠시 한 눈 팔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며 뺨을 찰싹 때리던 시기.
그래도, 이런 방황 속에서도 항상 ‘준비’는 했던 것 같다.
“아아. 흠. 내가 네 친오빠다. 흠흠.”
내게는 오지 않는 ‘남’의 대본을 읽으면서, 잘나가는 배우들이 하는 연기를 매일 같이 모니터링하고.
작품이 끝나고 회사에 비치된 대본들은 정말 ‘닳을 때’ 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늘도?”
“네.”
“연습 끝나고 불 끄는 것 잊지 말고. 뭐, 알아서 잘 하겠지만.”
내 선생님은 책과 TV 속에 있었다.
끝없이 반복하고 연구하는 것.
사실, 이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재희, 또 떨어졌어?”
“….”
“뭐. 다음에는 붙겠지. 잘 하자. 알았지?”
“…. 네.”
오디션에는 질리도록 낙방했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키를 똑바로 잡고 지도를 잘 살피며 ‘기본기’를 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달려가다가도.
이따금씩 맥이 쭉 풀릴 만큼 힘 빠지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나, 그만 둬야 할 것 같아.”
“네?”
“내년이면 서른인데, 나도 미래 걱정은 해야지.”
“…. 너무 아깝지 않으세요? 그래도 1년은 더…”
“앞으로 1년을 더 하면, 뭐가 달라질까?”
“….”
함께 터널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이탈해 가는 일은, 대학교에서도 익숙하리만큼 많이 겪었던 일이지만.
언제 겪어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짓. 시간 버리는 거야.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너무 늦게 알았다.”
“….”
이들이 무너질 때마다.
왜 흔들림 없이 걸어가던 내 가슴까지 덩달아 함께 무너지는 걸까.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지만, 왜 내게 하는 말처럼 들릴까?
나보고 늦었다고 경고하는 걸까?
제기랄.
이럴 때 마다, 내 기분은 정말이지 X 같다.
“너는, 끝까지 포기하지 마. 알았지?”
“….”
하지만 이들의 ‘선택’을 비난 할 수는 없다.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왕좌왕 거리다가 졸지에 난파되는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내 끝은 저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이들이 기울 때 덩달아 흔들리면 손해 보는 것은 나다.
“저는 끝까지 해볼게요.”
“….”
“뭐라도 되겠죠.”
그래.
어쨌거나, 명수 선배의 질문이 내 삶에 일종의 ‘트리거’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겠다.
‘네가 10년 뒤에 연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아?’
이 질문은, 내게 있어 중요한 한 가지를 결심하게 만들었으니까.
40명 중 살아남은 한두 명이 되는 것.
반드시 연기를 해서 살아남자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으니까.
‘두고 봐. 10년 뒤에 나는,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테니까.’
막연한 꿈일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매일 다짐했던 것 같다.
‘난 너와는 달라. 난 적어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잖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의 괴리감.
사람들은 저마다 꿈 한 조각씩을 가슴속에 품고 산다.
나는, 무명배우 시절.
반드시 이 바닥에서 살아남겠다는 꿈을 독기 하나로 버텨냈고.
친구의 성공을 바라보며 질투심에 허덕이던 그 날.
내 마음 속에 소심한 영웅 한 명이 나타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웅.
아니면, 기연.
지금은 너무 소심해서 영웅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10년 뒤.’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이.
10년 뒤 쯤, 누군가 ‘그 영웅은 어디로 갔니?’ 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그런 녀석이.
이 소심한 영웅은.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덩치를 불려갔고.
정확히 10년 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 영웅을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하지만 이 얄팍한 영웅 녀석은.
오스카 남우주연상과 등가교환이라도 한 듯, 그 짧은 수상 소감을 끝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렸고.
내 곁을 떠나며, 10년 후의 만남을 기약했다.
“….”
아.
10년 뒤라니.
대체 10년 뒤의 내 영웅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달라지고, 성숙한 모습일까.
모르겠다.
그 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부디, 보기 좋은 모습이기를.
[ 책 먹는 배우님 – 외전2. 10년 전의 영웅.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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