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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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31화. >31.
[술김에> CF는 정말이지 빵! 터져버렸다.“재희 오빠!”
“예?”
“저 할 말 있는데요.”
“어떤 거요?”
“저… 아무래도 오빠 좋아하는 거 같아요.”
“….”
[피셔>의 의상 팀 여자스텝들은 나를 마주칠 때면, SNS를 장악한 [술김에> CF의 유아름 흉내를 내며 장난을 쳤다.“… 앗! 말해버렸다. 술김에….”
물론, 유아름처럼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깔깔깔깔!”
“….”
내 컨디션에는 치명적이다.
어이, 그만하지.
벌컥!
그 때, 재익이 형이 의상실로 들어서며 내게 말했다.
“옷 다 갈아 입었어?”
“네.”
“그럼 얼른 가자. 스케줄 바쁘다.”
“깔깔깔! 오빠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나와 재익이 형, 영미 씨는 축제 차량에 몸을 실고 서울로 내달렸다.
나는 잠시 눈이라도 붙일까 싶어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는데, 그 때 영미 씨가 내게 말했다.
“오빠 이것 좀 봐요.”
응?
영미 씨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동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 앗! 취해버렸다…. 술김에. 술김에 취했어!
여기도 술김에, 저기도 술김에.
[술김에> CF는 개그 프로그램의 패러디 소재가 되어 인터넷에 회자 되고 있었고 SNS에는 짤방이 떠다녔다.“오빠. 이거 요즘 엄청 핫한 거 알아요?”
“알죠.”
스텝들이 얼마나 장난을 많이 치는데.
“제 친구들이 오빠 궁금하다고 난리에요. 술자리에 불러달라고 막. 사귀고 싶다고 막막.”
아, 그러세요.
‘오빠 좋아하는 것 같아요.’
술집에서 특히 빛나는 유아름의 사랑스러운 눈빛 연기는 수많은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어, 어?’
그 옆에서 훈훈한 비주얼로 순수한 매력을 발산하며 황금 케미를 선보인 내 얼굴도 덩달아 화제가 되었고.
‘저 남자 누구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지?’
‘[청춘열차> 도재희!’
CF로 본 홍보 효과는 아주 성공적인 셈이다.
그 덕분에 대중들과 멀어져있던 요즘. 대중들과 관심을 유지시킬 수 있었고. 덩달아 ‘제작사’의 관심도 생겨났다.
“요즘 까고 있는 작품이 몇 갠 줄 알아?”
재익이 형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기분 좋은 듯 보였다.
“[청춘열차> 끝나고 너한테 들어온 책만 벌써 세 개야.”
세 작품 모두 주연은 아니었다.
주말드라마 서브 남주, 일일드라마 여주의 남동생. 미니시리즈 조연.
스케줄이 안 될 것 같다고 모두 고사했다.
이제부터 아주 바빠질 예정이니까.
2018년, 어느새 초봄이 시작된 지금.
요즘 가장 핫한 배우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지만, 가장 도드라진 성장세를 보인 ‘바쁜’ 배우라고 부르기엔 충분하다.
최근에는 조연이지만 CF도 찍어보고. 영화도 동시에 두 작품이 진행중이며, 틈틈이 액션도 배우고.
“오빠!”
“네?”
“저 할 말 있는데요.”
내 눈이 가늘어졌다.
“… 영미 씨도 그거 하려고 하죠?”
“아닌데? 뭘요?”
“… 크흠. 할 말이 뭔데요.”
영미 씨가 샛노란 머리카락을 옆으로 휘익- 넘기며 말했다.
아주 느끼한 목소리로.
“저 오빠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역시.”
아, 치명적이다.
내 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팝콘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영미 씨는 뜬금없이 주머니에서 [술김에> 소주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소주병을 턱밑에 딱! 붙이며 말했다.
“…. 말해버렸다. 술김에.”
아니, 이 여자. 이런 건 대체 언제 준비한 거야?
“….”
“깍깍깍깍!”
내 황당한 얼굴에 영미 씨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익이 형이 룸미러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이, 협찬 받은 거 가지고 장난 칠 거야? 영미 씨?”
“협찬이요?”
재익이 형이 손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동문소주에서 사무실로 보내왔더라. 사무실에도 있고, 트렁크에도 잔뜩 있어. 영미 씨! 그거 도로 집어넣어.”
뒷자석을 보니 정말로 [술김에> 라고 찍혀있는 소주 박스가 한 가득 실려 있다.
“….”
아무리 소주 회사라도 그렇지.
고맙긴 하다만, 저거 다 마시고 죽으라는 건가.
“근데 차에는 왜 실으셨어요?”
“시골에 촬영 갔는데 편의점 없으면 어떡해? 비상용이지.”
“….”
너무 준비성이 철저한걸.
그 때, 영미 씨가 [술김에>의 병뚜껑을 휘리릭! 따며 말했다.
“앗, 따버렸다! 술김에….”
“영미 씨! 그거 마시면 안돼!”
*
[양치기 청년>의 주조연급 라인업이 모두 구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SAFA 건물을 찾았다.오랜만에 만난 박진우 연출과 그 휘하 스텝들은 나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도 배우님!”
“헉! 도졌다!”
도졌다.
‘도재희 오졌다’라는 뜻의 인터넷 합성어.
몇몇 여성 팬들에게는 ‘도재희의 매력이 내게 도져버렸어.’ 라고 쓰이기도 한다고.
영미 씨가 알려줘서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진짜 연예인이 돼서 오셨네요. 나중에 저희 영화 홍보 좀 부탁드릴게요. 호홋!”
일전에 내게 팬이라고 수줍게 고백하던 제작부장을 맡았다는 여자는, SAFA를 찾을 때 마다 나날이 인지도가 올라가는 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스텝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박진우 연출 맞은편에 앉았다. 박진우 연출은 내게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도 배우님 요즘 오르시는 인지도에 비해 개런티가 너무 섭섭한 것 같아서요. 약소하지만, 계약에 러닝개런티 조항을 삽입했으면 합니다.”
러닝개런티.
작품의 흥행 결과에 따라 개런티가 추가적으로 지급되는 구조. 배우에게 지급되는 기본 개런티를 줄여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고, 배우나 감독은 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박진우 연출이 제안한 러닝 개런티는 기본 개런티 천만 원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시 1인당 100원 조금 못 미치는 돈이 들어온다.
내게도 나쁠 것 없는 좋은 제안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제가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독님 편하신 대로 하셔도 됩니다.”
팔천만원 정도가 들어가는 총 제작비에 상영관이 몇 개 나오지 않을 독립 영화. 유명무실한 러닝개런티 일지도 모르지만. 추후 DVD와 TV 판매 조항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만하면 훌륭하다.
박진우 연출은 프로필을 꺼내 책상에 펼쳐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확정 되었습니다.”
프로필에는 배우들의 사진과 이력이 상세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한 눈에 보기에도 눈에 익은 배우들은 안 보였다.
“독립 영화계에서는 그래도 연기력으로 촉망받는 유망한 분들인데, 대중적인 인지도는 전무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
하지만 정말 ‘개성’ 있는 배우들이 많이 보인다.
비주얼 보다는 강렬한 연기로 승부하는 연기파 배우들.
이들 프로필 사이에 문성이 형 역시 나란히 끼어있었다.
박진우 연출도 마침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도 배우님이 추천해주신 이문성 배우님. 연기 정말 좋았습니다.”
“다행이네요.”
“지금 옆방에 배우들이 모여 있는데, 천천히 살펴보시고 들어가시면 되겠습니다.”
“아, 네.”
박진우 연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익이 형에게 말했다.
“그럼 매니저님. 첫 촬영 날짜를 잡을 예정인데….”
“아, 네. 저랑 얘기 하시죠.”
“네. 저희는 휴게실로 가실까요.”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프로필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름, 얼굴, 프로필 약력을 간단하게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곧 바로 옆방으로 들어섰다.
“헐, 도재희다.”
들어서자마자 여배우 한 명이 나를 보며 입을 손으로 가린다. 그리고는 황급히 입을 찰싹! 손으로 때리며 중얼거렸다.
“앗…!”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도재희라고 합니다.”
시선이 내게 일약 집중됨을 느꼈다.
강의실로 보이는 곳에 듬성듬성 앉아있는 배우들. 나는 그들 모두와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추었다.
이들에게서는 옛날의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
배역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욕망.
내가 송문교를 바라보던 적대감과는 조금 다르지만.
본질은 흡사하다.
‘아, 쟤가 주연이야?’
‘최근에 얼굴로 뜬 놈이지?’
‘연기는 잘 못할 것 같은데.’
뭐, 호의적인 시선들도 있었다.
문성이 형.
형은 이런 내 모습이 재밌는지, 배를 잡고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여유롭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조승희에게서. 임명한 선생님에게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많다.
주연의 품격에 대해.
*
“어땠어?”
“뭐가요?”
SAFA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익이 형이 물었다.
“[양치기 청년> 배우들이랑 오늘 인사했잖아. 분위기 어땠냐고.”
“흐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콧대가 높은지는 말 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그런데 조승희 처럼 정점을 찍어 본 여유로운 자들이 아니라, 아직 성공의 맛을 보지 못한 젊은 늑대들이라면?
당연히 호전적일 수 밖에.
“괜찮았어요.”
물론 그들은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등장과 동시에 무거워진 공기를 숨길 수는 없다.
‘얼마나 잘 하나 보자.’
주연이란 그런 자리다.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연의 품격에 어울리는 자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청춘열차>의 송문교가 선배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내게 연기력으로 도전을 받고. [청춘열차> 안 밖으로 겉돌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텃세 같은 거는 없어 보였어?”
재익이 형, 괜히 7년 차 베테랑 매니저가 아니라는 건가.
한 눈에 이상 기류를 알아보았다.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래? 네가 뜬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야. 특히 너처럼 얼굴 반반하면, 비주얼로 떴을 거라고 지레 짐작 하는 애들이 많은 거지.”
얼굴로 떴을 것이라 짐작하며, 연기로 나를 갉아먹으려는 자들.
분명 존재하겠지.
나는 조금 전의 상황을 돌이켜 보았다.
이름이, 차영호라고 했던가.
이 사람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뜨고 싶지만, 뜨지 못한 ‘부심’만 강한 배우.
그가 내게 물었었다.
“독립 영화 왜 하세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일일드라마나 하면서 아줌마들한테 웃음이나 팔지.’
‘네가 예술을 알아?’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새파란 놈이 주연이야?’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분위기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었다.
“작품 좋아서 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콧등을 긁적였지만, 속은 꽤나 끓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게 ‘동료배우’로서의 예의를 차려준다면. 나는 이들을 조승희와 다르지 않는 ‘선배’로 대접 할 텐데.
차영호는 아슬아슬하게 그 예의라는 이름의 외줄을 타고 있다.
재익이 형이 말했다.
“텃세 없으면 다행이고. 그래. 열심히 해봐. 그렇게 하고 싶던 거잖아?”
나는 차창 풍경을 주시하며 고민에 빠졌다.
‘주연’이 하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 [양치기 청년>.
기분 좋게 작품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오히려 인간관계는 [피셔>보다 어렵게만 느껴진다. [피셔>는 내가 조금 숙이면 그만이지만, [양치기 청년>은 모두를 이끌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뭐.
어찌되었든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다.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이었으니까… 잘해야겠죠.”
내가 잘 하면 된다.
주연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품격을, 저들에게 각인시키면 된다.
‘나, 쉬운 놈 아니야.’
라는 것을 연기로 보여주면 된다.
[ 책 먹는 배우님 – 31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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