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44)
44.
제작사와 MKC 드라마국 CP, 본부장, 그리고 이성균 PD의 의견은 확고했다.
“도재희 배우의 경우에는… 제작사의 강력한 추천도 있고. SBC에서 보여준 능력도 있고 하니까,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력’의 경우에요.”
실력은 믿는다.
하지만.
“너무 신인이에요. 시청률 파워는 미니시리즈의 기대치에 충족이 안 됩니다. 그 대신, 여주에서 급을 확 높여야지요.”
미니시리즈를 혼자 이끌기에는 인지도가 역부족이다.
그리하여 거론된, 여주 후보들은 한 둘이 아니다.
김아영, 신소명, 유아름, 채리현, 황지애 등등.
당대를 쥐락펴락 하는 연예계 소문난 미인 배우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여배우는, 다름아닌 유아름이었다.
“유아름 씨가 [술김에> 소주 CF도 같이 했었고… 도 배우랑 드라마에서 호흡을 맞추면 덩달아 효과가 좀 있지 않겠습니까?”
“CF 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일 것 같은데요?”
“유아름 씨 대표작이 뭡니까? 영화 [가면놀이>에 나오는 그 서슬 퍼런 싸이코패스 악녀에요. 그런데 분위기 180도 다른 CF로 이번에 이미지 변신 성공했죠? 그럼, 이번에도 무리 없습니다.”
“아니 물론… 유아름 씨가 하겠다고만 하면 이런 불안감도 없죠. 좋아요. 좋죠. 좋긴 한데… 중요한 건, 아름 씨가 승낙했습니까?”
*
‘배우덩쿨’
조승희, 임명한, 유아름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포진되어있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기획사다.
그리고 ‘배우덩쿨’의 매니저는 며칠 전, 유아름에게 대수롭지 않게 건넸던 시놉시스를 돌려받으며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 뭐라고?”
귀를 의심했다. 분명 유아름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재미있겠다고요.”
“엇, 정말?”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 돌려받은 시놉시스를 흔들었다.
MKC [숨 닿을 거리>.
“드라마인데?”
100% 사전제작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서는 드라마는 하지 않을 정도의 ‘급’.
스타 배우 유아름의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는 냉혹한 편이었다.
특히, 드라마에 대한 시선은 유달리 차가웠는데 그건, 유독 커리어에서 대박 난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 좋은 얘기를 보태자면, ‘영화용’ 이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돌정도.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소문을 날려버리기 위해 좋은 드라마 시놉시스가 들어오면 이렇게 유아름에게 건네고는 했었다. 하지만 모두 거절.
그런데, 이번에도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 여겼던 것과는 다르게 긍정적인 반응이다.
매니저가 다급하게 말했다.
“구, 궁금한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네가 한다고만 하면 개런티도 세게 부를 수 있고. 또….”
왤까?
이성적인 엘리트지만, 유독 ‘무명’에게는 감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정신질환 전문 의사라는 캐릭터?
아니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토리 진행?
신인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문장력?
무엇이 유아름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하지만 유아름이 제일 먼저 물어본 질문은 의외의 질문이었다.
“재희 오빠가 남자주인공인거 확정이에요?”
“… 응? 누구?”
“남자주인공이요. 도재희 오빠라면서요. 맞아요?”
도재희.
이게, 드라마를 선택할 만큼 중요한 문제일까. 매니저가 말했다.
“화, 확정이긴 한데… 왜?”
그러자 유아름이 고양이 같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가 하면, 저도 해볼까 해서.”
*
지이이잉!
전화가 걸려온다.
발신자는 유아름.
“누군데?”
“… 유아름.”
내 짧은 대답에 재익이 형이 펄쩍 뛰었다.
“유아름? [가면놀이>의 유아름? 왜? 왜 전화했데?”
“… 저 아직 전화 안 받았거든요?”
“그럼 얼른 받아 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전화를 받으려했지만, 그새 전화가 끊겨버리고 말았다.
“끊었네요.”
“그럼 다시 걸어 봐.”
내가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띠링!
문자가 왔다.
유아름 : 오빠. 저랑 같이 드라마 콜?
[숨 닿을 거리>의 시놉시스를 들고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헤벌쭉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와, 이거 의왼데.
재익이 형이 관심을 보였다.
“뭐야? 뭔데?”
“유아름 씨, 섭외 성공 했나 본데요?”
“뭐?”
재익이 형이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휴대폰에 온 문자를 같이 확인하더니.
“… 와, JW 영업력 대박.”
입을 쩍 벌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보도자료 준비하고… 그쪽 실장도 한번 만나봐야겠다. 도재희X유아름. [술김에> CF에 이어서 2탄이잖아. 화제는 덤이고 이거… 무조건 연말에 ‘베스트 커플상’ 감인데.”
잔뜩 바빠 보이는 얼굴이다.
나 역시 덩달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그나저나 유아름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든든한 아군이다.
나는 시원한 냉수 한 잔을 들이 키고 스마트폰 키패드에 손을 얹었다.
음, 유명 여배우와 개인적인 문자는 처음이라.. 이럴 때 답장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하지만 고민과는 다르게 손가락은 가벼웠다.
도재희 : 콜
역시, 심플 is 베스트다.
*
[도재희X유아름 MKC [숨 닿을 거리> 캐스팅 확정.] [CF 대세 커플에서! 드라마 커플로! [숨 닿을 거리>!]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미니시리즈 전쟁! 집중 탐구!]관련 기사가 쏟아진 것은 당연하고.
타 방송사와 미니시리즈와 본격적인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유아름의 인지도를 등에 업었음에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우세하지는 않았다.
[숨 닿을 거리>를 통해 2년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유아름, 그 자체에 순간 관심이 쏠리긴 했지만. [[술김에> 유아름. 2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 ‘이번에는 과연?’ 흥행여부에 귀추 주목]유아름이 원체 드라마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
[KTN [계약 동거> 임주원X차지애 촬영 현장 공개!]임주원X차지애의 30, 40대 여성 층의 폭발적인 지지력은 가히 압도적이었기 때문.
주말드라마, 일일드라마의 저녁 8시 시청 타겟들을 밤 10시 안방까지 그대로 끌고 온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아직 방송이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댓글과 트위터에서는 이미 KTN 쪽의 승기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L&K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숨 닿을 거리>의 작가 라인업이 정리가 되고나자, 회사 내부의 최대 관심사는 임주원VS도재희의 대결 구도였다.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임주원을 높이 평가했다.
“이거, 주원이가 역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네.”
“드라마는 해본 놈이 잘해. KTN에서 2017년에 상 괜히 줬겠어? 봐봐, 주원이가 지금 실검 장악한 거.”
“유아름이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섭외긴 하지만… 그 친구 ‘영화용’이잖아. 드라마는 마라톤인데 체력이 약해서 괜찮겠어?”
“이제껏 작업 했던 드라마는 죄다 성적 안 좋았지 아마?”
“그런데도 매번 미니시리즈 여주 순위에 오르내리는 것 보면, 확실히 인지도는 괴물이구나.”
도재희X유아름.
도재희VS임주원.
어딜 가나 시끌시끌하고 흥미로운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6월 초의 어느 낮.
나는 이런 세간의 관심들을 나름대로 즐기며 이미지 메이킹에 돌입했다.
“약간 시선 삐딱하게 해 볼까. 눈은 좀 흐리멍텅하게.”
미니시리즈 주연의 의상 및 컨셉은, 단순히 영미 씨 하나로 결정되지는 않았다.
“지금 눈빛 좋아. 어, 지금 여기서… 안경 한 번만 써볼까. 거기 검은색 뿔테로.”
의상부터 헤어. 심지어는 눈썹과 사소한 악세사리 하나까지 L&K 스타일리스트 팀장이자, 이미지 메이커인 장 팀장과 함께 협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화해야 할 배역은 자그마치, ‘일곱 개’에 달했으니까.
저 마다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다중인격 인물을 영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면 그에 맞는 이미지 메이킹이 필수니까.
장 팀장님은 아예 나와 함께 움직이며 의상, 걸음걸이, 손짓 등을 봐주었고.
나는 헤어, 눈썹, 피부 미용 등, 관리를 받으며 포스터 촬영 준비에 매진했다.
요즘 딱, 좋았다.
슬슬 몸에도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냉탕에 빠진 노인네마냥 얼어있던 몸이, 뜨뜻하게 예열되는 기분.
아무래도, 나는 일을 해야 뜨거워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떠한 ‘동기’가 있으면 나는 더 빠르게 달아오른다.
[청춘열차>에는 송문교가 있었고. [양치기 청년>에서는 내 가치를 스스로 올려야 했으며. [피셔>에서는 엄 부장과 윤민우가 있었다.정말 끊임없이 나타나는 내 안의, 혹은 외부의 적.
이놈들은 점점 강해지며, 내가 커가는 만큼 어디선가 커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앞에는 해결해야하는 두 가지의 과제가 있다.
첫째, 드라마를 대표하는 주연으로서 유아름이라는 재능 가득한 스타에게 꿀리지 않는 배짱을 증명해야 하며.
“형. 담배 한 대 필까요?”
임주원.
둘째. 이 을씨년스러운 새벽 청담동 샵에서 마주친 이 시건방진 후배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2018년에 어떻게 이놈과의 격차를 벌릴 것인지.
“그럴까.”
물론, 단순히 ‘시청률’이라는 측면만을 보자면, 드라마는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작가의 도움이 절실하겠지.
하지만, 정이연 작가는 자신의 능력을 공모전을 통해 증명했고, 기성작가의 첨언에도 굴하지 않는 깡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을 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나’다.
작가를 믿어야지.
항상 그래왔듯, 나는 누군가를 제치며 보다 빠르게 성장해왔다.
송문교를 밟아 [피셔>에 들어갔고, 윤민우를 밟고 [숨 닿을 거리>에 안착했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1층 야외 테라스 의자에 앉았다. 내가 잠자코 자리에 앉자, 임주원이 내게 담배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담배를 받았지만. 입에 물지는 않았다.
임주원도 딱히 불을 붙여 줄 생각은 없는 듯, 담배를 입에 물고 새벽 공기에 연기를 뿜었다.
푸우우우.
내 눈에는 벽 한 켠에 쓰여 있는 ‘금연’ 딱지가 눈에 들어왔지만. 임주원은 딱히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임주원이 말했다.
“어때요? 요즘 작품 준비는 잘 되어 가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 그래요?”
임주원이 들고 있던 커피를 홀짝이며 말끝을 흐린다.
내가 물었다.
“너는?”
마치, 물어달라는 얼굴이었거든.
그러자 임주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도 요즘 너무 좋아요. KTN이 MKC 보다 방영이 2주 빠르더라고요? 다음 주면 첫 방인데, 벌써 사람들 기대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시청률 1위하네, 마네…”
“….”
“팬클럽에서는 또 무슨 커피차를 보내준다는데… 벌써 두 번째에요. 가끔은 부담스럽다니까요.”
이 자식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자기 자랑 좋아하고, 주절주절 늘어놓기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얼굴로 내 속을 긁으려고 한다.
“형은 팬클럽 없어요?”
그리고 나는 말을 자르며 말했다.
“주원아.”
“네?”
“알잖아? 회사에서 우리 둘이 경쟁구도 만들려는 것도 결국 화제성 키우려는 거라는 거. 그냥 각자 맡은 바만 잘 하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 역시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임주원은 조금 더 심각하게 몰입하고 있었다.
과거 얘기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다.
[청춘열차> 김도훈 役의 오디션.“어떻게 그래요? 이미 제 자존심이 상했는데.”
임주원은 쿨 해보이고 싶은지 입 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노골적인 적대감이 가득했다.
“저, 오디션 누구한테 밀려본 거.. 그 때가 처음이에요. 근데, 더 짜증나는 게 뭔지 알아요?”
“….”
“상대가 하필 형이라서 더 자존심 상했어요. 회사에서 존재감도 없던 형한테 밀렸다는 게.”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임주원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임주원은 털어버리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쓰레기통에 비벼 끄며 말했다.
“후- 그래도 이번에는 제가 이겨요. 그건 변함없어요.”
배우의 가치를 확인하는 절대적인 지표.
시청률.
임주원은 자신 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 지고는 못살거든요.”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기대해요. 올해도 상하나 더 받아서… 진짜 L&K 효자 배우가 누군지…”
“주원아.”
나는 임주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 예?”
“괜히 그렇게 도발할 필요 없어.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잘 알아. 왜 인줄 알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적당히 구기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톡.
“나도 너를 똑같이 생각하거든.”
이 놈이나 나나 똑같은 놈이다.
개똥밭임을 알면서도. 그 과정에 상처밖에 남질 않더라도. 이기기 위해 결국, 굴러야 하는 똑같은 놈.
임주원은 꺾여버린 담배마냥, 구겨진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내가 비릿하게 미소지었다.
뭘 물어 임마.
꼭 총 칼을 들어야만 싸움이고, 전투인가.
이미, 전쟁이야.
[ 책 먹는 배우님 – 4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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