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49)
49.
임주원은 수목 극에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비록, [숨 닿을 거리>에 살짝 못 미치는 시청률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대세 중의 대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평균 시청률 11%.
다시보기 서비스가 워낙 활발히 되어있고, 케이블 드라마 시청률이 6, 7% 씩 나오는 시대에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성적이다.
“그만 하면 잘 했다.”
L&K 권우철 대표도, 그런 임주원을 다독여주었다.
“어쨌든 2주 동안, 시청률 1위 했잖아. 거기다 지금 시청률도 곤두박질이 아니라 평행 유지고. 안 그래?”
이만하면, 도재희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잘 키워서 제대로 써먹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표와의 독대를 요청한 L&K 대표 효자배우의 심경은 급격히 요동치고 있었다.
지난 해 KTN 연말 시상식에서 남자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상 욕심이 다분해진 임주원은 고개를 저었다.
“부족해요.”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그러자 권우철 대표 옆에 앉아있던 기획본부장이 조금 목소리를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 더 이상 뭘 바래? 기자들은 달라는 대로 붙여줬어, 예능도 줄기차게 물어다줬어. 회사에서 팬클럽이라고 포장해서 밥 차도 불러주고. 이 이상, 뭘 더 해야 하는데?”
“제 연기 대상은요?”
“… 뭐?”
“[계약 동거>가 2018년 KTN 유일한 히트작인데, 그럼 저 연말에 연기 대상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대상? 연기 대상?”
기획본부장이 허탈하다는 듯 말했다.
“야. 주원아. 연기 대상이 무슨 동네 체육대회 트로피도 아니고.”
“올해에도 상 받아야죠. 그리고 내년에 영화도 찍고…. 영화에서도 주연 하고…”
딸깍!
임주원은 불안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습관적으로 손톱이 입술로 향한다.
초조했다.
성공을 맛보는 배우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이 자리에서 추락하지는 않을까. 내 계획은 이러이러한데, 왜 자꾸 제동이 걸리는 걸까. 위에서 왕좌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놈들은 내려올 생각을 안 하는데. 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놈들은 이렇게 많은 거지?
임주원이 삐딱한 눈으로 말했다.
“근데, 왜 재희 형은 자꾸 제 앞길에 태클을 거나요? 꼭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이렇게 맞붙는 게 재미있겠다고 말한 사람이 누군가? 임주원이다.
“허허 나, 참….”
뚜껑이 열리고 시청률이 공개되자, 180도 돌변해버린 임주원을 바라보며 기획본부장은 황당함에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일 좀 더 주세요. 올해 저 상 꼭 받아야 해요.”
“주원아. 지금도 충분히 좋고. 상에 너무 부담 가지는 건 오히려 독…”
“아니면, 재희 형 일을 줄여주시던가. 그 형 몫까지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
“…. 뭐?”
둘의 대화를 바라보며 L&K 권우철 대표는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오랫동안 연예계에 몸담으며 이런 상황을 많이 보아왔다.
‘왜 쟤가 나보다 더 잘나가?’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 질투심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의 목에 단두대를 채우는 연예인들.
‘아쉽네.’
욕심, 시기, 질투. 이것만 조금 숨기면 참 좋은데. 조금 숨겨서 그걸 동력 에너지로 바꿔내면 몇 년 뒤 크게 대성할 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질투심이 화를 불러온다.
이런 건 고칠 수 있는 약도 없다. 힘을 실어 줬다가는 나중에 치우기 힘든 거대한 쓰레기가 되어버릴 테니까.
권우철 대표는 씁쓸함을 지워내며 입술에 립 밤을 발랐다.
슥슥-
‘대충, 이 정도 그릇인가.’
임주원은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키가 작은 것이 흠이지만 이십 대 배우들 중 재능도, 비주얼도 수위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배우들은 차고 넘친다. 어쩌겠는가?
임주원의 자리를 탐내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잠룡처럼 움크리고 있는 잘생기고 연기 잘하는 신인들이 득실거리는데.
밀림의 왕이 불안해하면, 그 밑에서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낸다.
진짜 상위 0.2%에 드는 배우가 되려면, 욕심을 숨기고 얼굴에 가면을 쓰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할 말 다 끝났어?”
지금은, 어쨌든 자기 새끼다.
임주원의 저 꼬라지를 바깥사람들이 모르게 숨길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뿐이다.
“아뇨. 대표님 제 말은…”
“네 뜻 알았으니까. 일단 가서 좀 쉬어.”
권 대표가 축객령을 내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랄 하고 있네.’
*
“푸히히히”
실성한 것 마냥 미친 듯이 웃기도 하다가.
“… 다 집어치워.”
세상 다 잃어버린 듯, 연신 비관적이기도 했다.
“지금 쳤냐? 이 새끼야?”
또, 때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열혈 양아치이기도 했다가.
“나 배고픈데에…”
순식간에 일곱 살짜리 꼬맹이가 되기도 했다.
자살시도 상습범에, 허세 가득한 거만 남, 방구석 백수.
모두 한 사람이야기다.
해리 정체성 장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정이연 작가의 판타지 캐릭터.
이 ‘무명’이라는 캐릭터는,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곱 가지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연기력.
일곱 가지의 개성 뚜렷한 이미지.
L&K와 [숨 닿을 거리>의 의상 팀이 공들여 디자인한 의상 및 헤어들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이 머리 가능해요?’
‘도재희가 입은 옷, 어디서 파나요?’
‘[숨 닿을 거리>에 나온 도재희 머리띠, 제가 하면 이상할까요?’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한 사람이 표현하는 이미지가 일곱 가지니까. 일곱 배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확실히 드라마의 효과는 직격타다.
나는 MKC 1층 로비를 지나가다, 1층에 도배되듯 걸려있는 내 프로모션 사진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내 개인 포스터 사진만 일곱 버전이었다.
명실상부, MKC 여름분기 간판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다는 반증.
“신기하지?”
“네.”
“나도 신기하다. 너 무명일 때부터 봤는데, ‘무명’으로 이렇게 뜰 줄이야.”
“…”
그거 참 재미있는 개그인걸.
오늘 촬영할 씬은 세트 촬영이다. 하지만 파주 세트장에 파출소 세트를 지을 공간이 부족했기에, 급한 대로 지은 곳이 MKC 별관 지하에 위치한 드라마 세트장.
그랬기에 이렇게 MKC를 방문한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던 재익이 형이 말했다.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갈까?”
“좋아요.”
로비 1층 카페에서 재익이 형이 커피 두 잔을 주문하는 동안 나는 카페 의자에 앉아 벽에 걸려있는 내 프로모션 사진에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
기가 막히다.
전광판에서는 [숨 닿을 거리> 라는 타이틀과 함께 일곱 버전의 사진이 슬라이드 된다. 하루에도 로비를 지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
스타들이 왜 뜨고 나면 사람이 변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MKC라는 거대 방송사에서 유동인원이 가장 많은 1층 로비에 대문짝만하게 자기 사진이 걸리고, TV에서는 자기 이름이 연일 오르내리는데, 허파에 바람이 안 들어가고 배기겠는가.
거기다.
이렇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 마디씩 던진다.
“도재희 아냐?”
“맞네! 촬영 왔나봐.”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볼까?”
[청춘열차>로 뜻뜨 미지근하게 얼굴을 알렸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하지만 일종의 결계라도 둘러진 듯, 힐끔거리기만 했지 그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 때, 이 결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파고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안녕하세요.”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웬 젊은 인상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누구….”
내가 경계심을 보이자, 남자가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목에 걸려있는 MKC 사원증을 들어보였다.
“아아, 놀라지 마세요. 저는 PD입니다. 예능국 임완영 이라고 합니다.”
“… 아, 네.”
예능국?
“응?”
마침 재익이 형이 다가왔고, 재익이 형은 남자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자 곧 바로 인사를 건넸다.
“아, 저는 L&K 황재익이라고 합니다. 재희 매니접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임완영 PD는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거,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재희 씨를 딱! 발견해서. 너무 욕심이 나서 그랬습니다.”
“욕심이라고 하심은…?”
임완영 PD가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재익이 형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제 명함입니다. 다시 소개드리겠습니다. 저는 [톡톡, 누구세요>를 연출하고 있는 임완영 입니다.”
“아… !”
[톡톡TalkTalk 누구세요>국내에서는 요즘 흔치 않은 일대일 토크 프로그램으로, 독특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흔히 토크 예능이라 함은, 99% 스튜디오 예능을 떠올리지만. 이 프로그램은 야외 예능이다.
스타의 집, 추억이 서린 공간. 혹은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공간에서 촬영되고, 비교적 진솔한 대화와 ‘특별한 손님’ 같은 코너 속의 코너를 통해 스타의 인맥도 함께 즐길 수 있다며, 호평 받는 예능.
나 역시, TV에서 몇 번 본적 있는 예능이다.
또 일전에 재익이 형이 ‘예능 몇 개 생각해 둬’ 라고 말했을 때 스쳐지나간 예능 중 하나다.
이 프로그램의 총괄 PD인 임영완이 말했다.
“저희가 꼭 모시고 싶습니다. 재희 씨.”
“아, 그게….”
내가 대답을 주저하자, 임영완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요즘 바쁘신 거. 스케줄은 저희가 조정해 볼 수 있으니, 언제 하루만 시간 내주십시오.”
“…. 아.”
졸지에, 캐스팅 되어버렸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임영완 PD는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지만, 재익이 형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저 프로그램, 이미지에도 나쁘지 않아. 아니 확실히 좋지. 시청률도 준수하고. 무례한 질문도 없을 거고. 오히려 대중들에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예능이라니.
“그나저나 PD가 한 눈에 알아보고 섭외할 정도면, 요새 확실히 솟아오르긴 한 모양이다.”
그런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
“예능이요?”
조금 전, 1층 로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유아름에게 얘기하자, 유아름이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에이, 오빠 예능 해본 적 없잖아요.”
“그렇죠.”
“벌써부터 상상되는데요? 엄청 재미없을 것 같은데.”
“….”
고오맙다.
“제가 가르쳐 줄게요. 저 이래봬도 예능 베테랑이거든요. 엣헴.”
“….”
예능 베테랑이라.
그것 참 못미더운데.
어쨌든, 예능에 나가는 목적이라면, [피셔>와 [숨 닿을 거리>의 홍보다.
지금 8회까지 방송에 나갔으니까.
언제 하루 시간 내서 찍기만 하면, [숨 닿을 거리> 종영 시즌에 맞춰서 내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프로그램 은근히 재밌던데. 저희 모임 중에 곽철 오빠도 나갔었잖아요.”
“아, 그래요? 몰랐네.”
“네. 추억이 서린 공간을 주제로 했는데..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고등학교 연극부 찾아갔데요. 반응 괜찮았다던데.”
“아아.”
“오빠는 한다면 어디에서 하고 싶은데요?”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겠구나.
혼자 사는 것도 아니라, 집을 공개할 수도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추억이 있는 공간…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당장에 떠오르는 것은 L&K의 매니지먼트 사무실, 연습실 따위가 고작이다.
나, 참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구나 싶다.
“….”
하지만.
추억은 아니지만, 인생의 계기가 된 공간은 있다.
… 대학로.
인생의 결정적인 교훈을 준 공간.
다수의 배우가 그렇듯, 나 역시 대학로에서 꿈을 시작했다.
대학로는 누군가에게는 밟고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그렇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대학로 찾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곤 했으니까.
상업극단 [이루 컴퍼니>, 악덕 대표까지.
“모르겠네요.”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할지도 안 할지도 모르는데 뭐.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아니, 오히려 부탁 드립니다.”
스케줄 조정을 해 줄 테니,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나가주면 감사하겠다는 이성균 PD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하하…”
나는 나가겠다고 말 하지도 않았는데.
방송국 놈들.
다 한편이구나.
[ 책 먹는 배우님 – 49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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