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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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5화. >5.
오랜만에 회사에서 빠져나와 문성이형을 만났다.
이문성.
나와 L&K에서 함께 브라운관에 데뷔하며 오랜 무명 시간을 함께 버텼던 형이다.
하지만 오랜 무명을 버티지 못하고 연기를 그만뒀고, 이제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곱창 집을 물려 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형이다.
가장 친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나와는 다르게 연기를 곧 잘했기 때문이다. 코미디면 코미디, 정극이면 정극. 장르를 가리지 않고 놀라운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준비된 ‘배우’ 였다.
하지만 스타성이 부족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것이라는 내 조언에도 불구하고 형은, 연기를 완전히 포기해버렸고.
또, 빠르게 후회했다.
“젠장, 삶이 이렇게 재미없을 줄 알았으면 끝까지 버텨볼 걸 그랬어.”
“적당히 마셔, 형.”
“근데, 그거 알아? 또 막상 너 하는 거 보면, 다 포기하고 이렇게 가게 물려받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웬 줄 아냐?”
문성이 형은 술을 한 잔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이렇게 너한테 술이라도 한 잔 살 수 있잖아? 으흐흐.”
형의 서글픈 웃음에 나도 피식하며 술잔을 털어 넣었다.
“크으-! 옛날 생각나네.”
세상에 안 그런 일이 어디 있겠냐만, 배우를 꿈꾸는 일은, 끝없는 터널을 걷는 일이다.
조그만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함께 걸으며, 우리는 소주 한 병에 벌벌 떨고는 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닭똥집에 소주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자.”
“형, 고마워.”
“… 오글거린다. 이 자식아. 술이나 마셔.”
물론, 이제는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고, 문성이 형이 회사를 뛰쳐나간 이후로 그 여정은, 나 혼자 하고 있다.
“문교는? 여전히 혼자 해 먹냐?”
“뭐, 똑같지 뭐.”
“… 의리 없는 새끼. 셋 중 하나가 성공하면 서로 끌어당겨 주자고 먼저 말한 사람이 바로, 송문교 그 새끼잖아. 이제 좀 먹고 살만해지니까…”
“됐어, 그만 해 형.”
“내 말이 틀렸어? 태세 전환 한번 빠르다… 나쁜 새끼.”
그리고 또 연거푸 술잔을 들이킨다.
송문교, 나, 그리고 문성이 형은 연습생 생활을 함께 했으며, 가장 힘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였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았지만. 단언컨대, 우리들 사이에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었다고는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문교가 성공한 뒤부터 우리와의 사이는 겉잡을 수 없이 멀어졌고, 이제는 남보다 못한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쁜 새끼가 제일 먼저 성공한다더니, 딱 맞아. 개새끼.”
문성이 형의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말없이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송문교의 성공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왜, 그렇게 까지 모질게, 우리와의 인연을 잘라버리려 했었는지가 궁금하다.
뭐, 이제 와서 물어보기엔 이미 늦어버렸지만.
“물이나 빼러 가자.”
문성이 형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 뒤,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치익, 라이터 불과 함께 허여멀건 한 담배 연기가 저녁 하늘을 수놓는다.
“한 대 줄까?”
문성이 형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있다가.”
돈 때문에 강제로 끊었지만, 완전히 끊지는 못하겠다. 언제라도 담배를 필 수 있는 여지를 인정하며, 나는 술집 앞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러자 문성이 형도 내 옆에 앉으며, 무심하게 물었다.
“오디션 봤다며?”
“어, 뭐. 봤지.”
“잘 봤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설레발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그러자 문성이 형의 얼굴이 밝아진다. 내게서 쉽게 볼 수 없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오오, 으흐흫. 이제야 자신감이 좀 생겼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근데, [청춘열차> 라고 했나? 누가 주연인데?”
“…. 송문교.”
“어, 어?”
“송문교 원톱 주연에, 여주랑 남주는 각각 소윤, 김균오. 시청률은 잘 나올 것 같아.”
“…. 야.”
아이돌 출신 여배우 소윤과, 10대들의 라이징 스타라 불리는 모델 출신, 꽃미남배우 김균오.
하지만 문성이 형이 가장 놀란 이유는 이들 때문이 아닐 것이다.
“송문교 주연 작품에 오디션 봤다고?”
“응.”
“… 왜? 송문교가 보라고 했냐?”
“아니.”
“그럼 이유가 뭔데?”
“이유? 구구절절한 이유는 없어.”
하지만, 다른 작품도 많은데, 왜 하필 [청춘열차>를 골랐는지에 대한, 이유는 없지 않겠지.
“그냥 작품이 좋았으니까.”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거짓이다.
내 속에는 가시를 품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이건, 아주 커다란 가시다.
삼키려고 한다면, 못 삼킬 것은 없겠지만 목구멍을 크게 찌를 그런, 가시.
그 가시는 내게 묻고 있다.
‘복수 하고 싶지 않아?’
그래, 솔직하게 인정하자.
송문교 옆에서 연기하며 그 놈의 씬을 갉아먹고, 어떻게 해서든 놈의 연기를 죽이고 내가 돋보이고 싶은, 그런 좀팽이 같은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을.
어제, 감독님이 ‘배역이 커지면 소화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내 합격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희희낙락 거릴 때, 내가 속으로 그들을 얼마나 비웃었는지를.
인정하자.
내 속에도, 남들을 찌르고 싶은 뾰족한 가시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말자.
“… 내가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는 아니니까. 오디션 볼 수 있는 건 모두 다 봐야지.”
내가 싫어하는 놈들과 똑같아 보이지는 말자.
나는 최대한 공격적인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담담하게 눈을 감았다.
그 때.
지이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 재희야. 지금 어디냐?
박찬익 팀장에게 온 문자였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직감했다.
오디션, 됐구나.
*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사무실로 들어섰다.
“… 재희다.”
시끌벅적한 사무실 분위기가, 내 등장과 동시에 아주 조금, 수그러드는 듯한 느낌이다.
“주원이 대신, 도재희 오빠가 뽑혔다던데?”
일각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의 시선 일부가 내게 꽂혔다.
주원이 대신? 그 말은, 내가 임주원의 자리를 뺏기라도 했다는 건가?
… 실컷 떠들라지.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저들의 말을 무시하며, 박찬익 팀장의 자리로 다가갔다.
박찬익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제껏 내게 보여준 적 없는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재희 왔어?”
그리고 미리 사두었는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자, 우선 이거 받고. 우리는 휴게실로 갈까?”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나는 어제 밤, L&K 최고 유망주인 임주원을 제치고.
[청춘열차> 김도훈 역의 합격 통보를 받았으니까.박찬익 팀장을 따라 몸을 돌렸는데, 사무실 문 복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임주원과 눈이 마주쳤다.
“…..”
“…..”
그는 나와 박찬익 팀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주 찰나에 스친 임주원의 눈빛은, 매우 익숙한 눈빛이었다.
질투심 섞인 부러움.
나도 잘 아는 눈빛이다.
매일 아침마다 거울 속에서 짓고 있던 내 눈빛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에 반해 지금 내 눈은.
“….”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임주원이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재희 형. 오디션 붙으셨더라고요? 축하드려요.”
“어, 그래. 고맙다.”
“…. 그럼, 저는 촬영이 바빠서 먼저 가볼게요.”
그리고 임주원은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촬영하러 간다는 이야기는 굳이 안 해도 되는데, 나한테 밀렸다는 것이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사실 합격보다 더욱 감격적인 일은, 배우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내가. 이렇게 당당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겐 고작 오디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배우로서의 가치는, 누군가가 찾아준다는 것에 있으니까.
나에게는 그 만큼 간절했고, 아주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입술이 씰룩거릴 만큼.
“재희,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이 내 얼굴을 보며 지나가듯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다.
“… 기분이 좋아 보여?”
나는 자리에 멈춰서, 한쪽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어느 때 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나.
얼굴 근육 자체가 연신 씰룩거려, 웃음을 참기 힘들어 하는 내 모습.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어쩌면, 임주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던 놈도, 별 볼일 없던 나도.
결승선이라는 지점을 본다면.
아직 시작도 안 한 애송이들이다.
[ 책 먹는 배우님 – 5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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