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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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52화. >52.
자주색 셔츠에 검은 세미정장 바지. 셔츠 아래쪽은 벨트 위로 슬쩍 빼내어, 펑퍼짐하게. 신발은 갈색 로퍼.
샵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나와 재익이 형은 [피셔> 개봉 하루 전날, 마지막 시사회를 위해 용산으로 향했다.
가을의 밤은 빠르게 찾아온다.
슬슬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6시. 용산역 3층 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빠르게 영화관 내부로 입장했다.
하지만 입구부터 재익이 형이 걸음을 멈추며 땀을 삐질 흘렸다.
“… 빨리 가야겠는데?”
이유는.
나를 알아볼 만한 여고생, 20대 여성들이 입구부터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헉! 도재희다.”
“도재희?”
옆구리에서 칼자루를 꺼내어 백병전을 치르는 병사들 마냥 제각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내게 들이밀었다.
“아앗”
재익이 형이 육탄방어전을 치르며 나를 보호했고, 나는 안전하게 상영관이 있는 4층에 도착했다.
이번 시사회는, 조승희가 메인모델로 있는 유명 치킨 프렌차이즈인 ‘CCH’ 가 주최하는 행사다.
[치킨과 함께하는 무비데이> 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배우 무대인사.“여보세요! 네, L&K 황재익 입니다! 네, 이사님 지금! 앗 밀지 마세요! 밀지 마세요! 지금 4층 앞에 도착했… 아! 찾았다.”
재익이 형이 손을 흔들어보이자.
“여기요!”
일명 ‘이사님’이라고 불리는 CCH 직원이 손을 흔들어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레드라인을 넘어가자, 레드라인 뒤쪽에서는 시사회 현장을 기다리며 나를 향해 꺅꺅! 소리지리는 여성 팬들의 비명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CCH 이사님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거, 정말 요즘 ‘대세’가 맞긴 맞나보네요.”
“네?”
“승희 씨가 오실 때도 이정도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에이, 무슨 말씀을.”
내 말에 CCH 이사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정말입니다. 승희 씨는 [피셔> 말고 활동을 안하셨으니까요. 또, 승희 씨는 유부남이지 않습니까? 팬덤이 차이가 있죠. 하하.”
일 년에 한 작품만 해도, 전 국민이 다 아는 탑 스타와.
요즘 한창 다작을 하며 이제 막 얼굴을 알리는 신예가 어찌 비교가 되겠냐만.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어리둥절할 만큼 엄청난 반응이다.
물론 오늘은 ‘시사회’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톡톡 누구세요> 도재희 편, 시청률 껑충!]최근 예능을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갔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겠지.
우리는 CCH 이사를 따라 대기실을 안내 받았다.
대기실은 영화관 내부의 VIP 룸.
빨간 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룸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히터 공기가 나를 먼저 반겼다.
대리석 테이블에서는 CCH에서 준비한 치킨과 요깃거리가 차려져 있었고, 널찍한 룸 내부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눈에 익은 매니저들과, 배우들.
그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수많은 스텝들에게 둘러싸여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조승희다.
그런 조승희가 나를 발견하고는.
“아니, 이게 누구야?”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등짝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잘 지냈어? 이거, 요즘 제일 잘나간다고 얼굴 한 번을 안 비추네.”
“앗. 아파요.”
하지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 이 사람들 대체 몇 달 만에 보는 거지?
“요즘 어때?”
“죽다 살았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드라마는 잘 보고 있다. 내일 모레가 마지막 방송이지?”
“네.”
“촬영은 끝났어?”
“네. 어제요.”
“언제 다 찍었어? 엄 부장 말로는 그 드라마 완전 생방으로 들어갔다던데.”
그 때, 꽃다발을 든 유아름이 내 팔뚝을 두드리며 말했다.
“오빠, 대사 암기의 신이잖아요. NG없이 후르륵!”
“진짜?”
하하… A, B팀 풀로 돌리고 대본을 통째로 외우면 가능합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CCH 직원이 들어와 말했다.
“시사회 시작하겠습니다.”
*
2018년 추석은, 내게 있어 다나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이 강하다.
촬영은 없지만, 시사회, 무대인사, 영화제 같은 온갖 일정들로 빼곡하다.
생방으로 치러진 [숨 닿을 거리>가 끝나자마자, 그 바통을 [피셔>가 넘겨받았고.
[피셔>의 개봉에 맞춰 모든 스케줄이 그 쪽으로 쏠렸다.용산, 영등포, 강남, 신사 등 서울 각지를 돌며 시사회 및 무대 인사를 진행했다.
이번 시사회는, 개봉 하루 전날 치러진 마지막 시사회.
“후후, 오빠. 저 평가에 엄청 냉정하거든요? 잔뜩 기대해요.”
내 옆자리 앉은 유아름이 으름장을 놓았다.
스타, 일반관객들 너나할 것 없이 뒤섞여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나 역시 조금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같은 것은 털어버리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영화를 즐겼다.
내가 나오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집중했고, 웃었고, 몰입했다.
총평은.
조금은 가볍고, 스토리에 구멍이 조금 보이지만. 추석 연휴 동안 가족 전체가 즐기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는 킬링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까지, 나는 긴장감을 숨기지 않고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켰다.
“후.”
지금 내 기분은.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 혹은 채점을 기다리는 학생.
쫄깃쫄깃한 무언가가 심장을 옥죄어 온다.
120분 러닝타임 내내 영화와 직접적으로 호흡했던 관객들과 곧 바로 대면하는 자리는.
묘하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라는 본능적인 호기심 뒤에 숨겨진, 내재된 두려움.
제발, 나쁘게 보지 않았기를.
하지만.
“[피셔>의 주역들을 이 자리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만희 감독을 필두로, 조승희, 임강백, 임명한, 배명우, 나. 배우 5인방이 앞으로 나섰다.
“조승희! 조승희!”
“도재희! 도재희!”
사람들은 내게 이러한 걱정은 기우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조승희를 연호하는 목소리 틈바구니에 묻혀 들려오는 내 이름.
영화를 본 사람은 알아본 내 진가.
“도재희 도졌다!”
이 말 못할 뜨거움이 주는 알맹이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 나 그래도 제대로 했구나.
유아름, 곽철 같은 조모임 멤버들이 제일 앞장서서 다가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유아름은 조금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후후, 연기는 좋았네요.”
“….”
영화는 안 좋았다는 뜻인가.
어쩐지, 감이 좋지 않다.
*
꿈같은 나날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 꿈 조각은, 내가 느꼈던 뭉클함에 비해 비교적 초라한 성적에 직면하고 있다.
유아름의 말에 ‘가시’가 있던 이유.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팔은 안으로 굽었기에 애써 무시하려고 했던 영화의 단점들.
천만 감독과 ‘조승희’가 투입된 [피셔>가 품고 있던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성적이 이어졌다.
[피셔> 개봉 10일차.추석 연휴가 다 지났음에도 누적 관객 수의 앞자리는 숫자 3에서 멈추다시피 했다.
현재 380만 명이지만, 400만을 넘어서기 까지가 유독 길게만 느껴진다.
물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극장에 보름 이상 걸릴 것이고, 어떻게든 손익분기점인 420만은 넘길 것이라는 추측.
하지만 딱, 거기까지.
대박은 물 건너가고, 쪽박만 면하는 상황.
“생각보다 저조하네.”
“그러게요.”
여러 이유가 거론되었다.
먼저. ‘AC 애니멜’에서 제작한 [환생히어로 : 포식자> 시리즈가 [피셔>와 동시개봉하면서 관객 수를 나눠먹었다. ‘가족 오락 액션 영화’라는 이름에 더욱 부합하는 이 히어로 영화는, 젊은 층을 공략하며 완벽하게 시장을 압도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drinkWater93 : 배우들 연기는 괜찮은데, 뭐랄까. 그냥 그저 그럼. 사실 이 정도 영화는 널렸다.
lieSight : 천만 감독 거품 빠지면, 300만도 안 나올 듯.
winterfall30 : 스토리가 따로 논다. 그냥 나쁜 놈이랑 나쁜 놈이 누가 더 나쁜지 겨루기 하는 영화임. 예고편이 전부임.
단순히 [피셔>가 가진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 더욱 지배적이었다.
“….”
나는 이 성적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68/100](+7)내 능력은, 대본에 기재된 대본의 완성도를 본다.
완성도가 높으면 당연히 흥행할 가능성은 높아지겠지만.
단순히 완성도만으로 영화가 흥행한다는 공식은 절대 성립되지 않는다.
연출, 배우, 개봉시기. 반전을 심어줄 수많은 조건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오서독스>.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대본 점수 91점의 이 영화는, 손익 분기점인 160만을 가볍게 넘기고 복싱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470만 명에서 그 역사를 멈추었다. 그야말로 한국 스포츠 영화의 한 획을 그어버렸다.“….”
정확한 것은 [양치기 청년>이 영화제에 상영되어 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는 ‘완성도=흥행’ 이라는 공식이 가깝다.
이쯤 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보는 것은 혹시, 단순한 대본의 완성도가 아닌 것일까?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예측한다던지…
모르겠다.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재익이 형이 말했다.
“넌 너무 걱정이 많아. 네가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야. 너만 잘한다고 모든 작품을 성공시킬 수는 없어.”
“….”
“네 역량이 아니라, 감독님과 조승희 씨 그리고 임강백 씨의 역량이었던 거지. 그 쪽 분량이 어마어마했잖아. 그리고 이 정도 스케일 영화면, 손익분기점만 넘겨도 성공이라고. 400만이야, 400만.”
아무래도 [피셔>의 성적에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복잡한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대답했다.
“네.”
“좋게 생각해. 성공한 거야.”
그래. 맞는 말이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피셔>라는 영화 자체의 재미로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지만, 내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네 커리어만 타격 없으면 돼.”
잔인할 수는 있지만, 재익이 형 말마따나 내 커리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망고’ 열연한 도재희의 재발견, 배우‘만’ 낚은 [피셔>]하지만. 가끔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고는 하더라.
문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하등 문제가 안 될 사소한 문제.
이런 사소한 것들이 진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굴러가야 하는 ‘특별대우’를 바라는 사람 때문이다.
*
국내 아주 유명한 원로 배우의 명언이 있다.
“(배우에게)절대 용서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지각, 특별대우, 틀린 발음”
연기를 못하는 배우도 아니고 대사를 못 외우는 배우도 아닌, 배우에게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세 가지에 ‘지각’과 ‘특별대우’를 꼽은 것에는 다 그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
그만큼 비일비재하다.
촬영장 주차장에서 기다리며 다른 여배우가 먼저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고의적으로 늦게 들어가는 배우들이나.
‘특별대우’를 바라며 자기 위주로 세상이 굴러가야만 속이 풀리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 판, 개 같은 곳이야.”
누군가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만 알고 있을 뿐, 아직 그 더러운 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제껏 내가 해왔던 우물 안의 싸움은, 흙탕물 싸움일 뿐이니까. 나는 이제 막 우물 밖에 발을 걸쳤을 뿐이고.
송문교, 임주원 같은 동 나이 대 같은 회사 배우들과의 경쟁에서 조금 앞섰을 뿐이다.
세상은 ‘남 위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싸움은, 항상 끊이질 않는다.
나는 [피셔>를 통해 정말 의외의 도전을 받았고.
어제의 아군이 적군이 되는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헤드급 스텝들과 주 조연 배우들이 모인 회식자리.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등장한 내게, 임강백이 한 마디를 던졌다.
“너무 기분 좋아하는 거 아냐?”
“…. 예?”
임강백.
데뷔 15년 차.
한 때는 대한민국 몇 대 얼짱이라 불리며 인기몰이를 했던 청춘스타 출신. 나와는 붙는 씬이 많지 않아 대화조차 몇 번 나누지 못했던 주연 배우.
그가, 내게 말했다.
“웃는 얼굴 좀 지우지?”
“…”
“요새 좀 대접 받는다고 만만하지. 분위기 파악 못해?”
난데없이 날아든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갑자기 왜 저럴까.
하지만 나는 머리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한만희 감독을 보고,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임강백을 바라보았다.
내 눈은 의도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였어?’
…. 유치하긴.
덕분에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하지만 나는 임강백 쪽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 균열은, [피셔>개봉 며칠 전, 관객 GV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책 먹는 배우님 – 52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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