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53)
53.
[피셔> 개봉 며칠 전, 기자들을 초청하고 일반 관객과 함께 한 GV에서 한만희 감독은, 세 명의 배우의 이름을 언급했다.“조승희, 임명한, 도재희 같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여 영광이었습니다.”
주연들 이름 뒤에 내 이름이 포함 되어있었지만.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투톱 주연 특수 검사 役의 ‘임강백’의 이름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기자 한 명이 물었다.
“임강백 씨가 빠졌네요?”
그제야, 한만희 감독은 “조승희, 임명한, 임강백, 도재희”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정정했다.
이후, 요즘 [숨 닿을 거리>를 통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도재희’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맴돌아, 무심결에 나왔을 뿐이라고 부연하듯 설명했지만.
이미 GV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중계되고 있고, 기자들도 잔뜩 모여 있던 터라.
–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임?
– 도재희 주연임? 그럼 보러가고.
– 임강백 의문의 1패.
이런 인터넷 반응이 다수였다.
종국에는,
‘한 감독에게 더 각인된 배우는, 임강백이 아닌 도재희.’
라는 그럴듯한 소문이 돌았다.
또 영화가 극장에 개봉을 하고 나니,
분량은 임강백이 많았지만, 씬을 뺏는 존재감은 내 쪽이 우세라는 의견이 절대다수를 차지했고. 자연스럽게 위의 가설은 ‘확정’처럼 이어졌다.
임강백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한만희 감독의 실수였지만, 임강백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미니멈 개런티 +@ 러닝개런티’로 계약했다는 임강백은 개봉 10일이 되었지만 손익분기점도 넘기지 못하는 자신의 영화에 불만이 쌓인 것이다. 거기다 GV 당시, 감독과 배우가 불화설이라도 있는 것처럼 포장되는 현 상황도 걷잡을 수 없이 삐딱선을 타는 이유에 한 몫 단단히 했을 터.
이 무슨 유치한 일인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사소한 ‘말 한 마디’나, 이름을 순서대로 부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곳이 청문회요, 연예계다.
지금으로 돌아와서.
임강백은 연기력 논란에, 불화설, 미니멈 개런티만 회수했다.
그에 반해, 나는 다르다.
첫째, [피셔>에서 호평 받은 배우는, 오직 나 뿐 이다.
둘째, [피셔> 배우들 중, 나 혼자 ‘기세’를 얻었다.
“…..”
그래.
따지고 보자면 너무나 같잖은 이유.
누군가에게는 정말 같잖은 이런 이유가,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의 태도를 한 순간에 바꾸기도 한다.
“표정 관리 좀 잘하자?”
“….”
아니, 원래 저런 놈이었는데 그 동안 숨겼거나, 내가 몰랐던 걸지도 모르지.
“뭘 자꾸 쳐다 봐?”
나는 그런 임강백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노려보았다.
임강백이 술잔을 비우고는 눈에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눈 깔고 꺼져 새끼야.”
임강백의 얼굴이 점점 달아오른다.
하지만 이런 임강백의 축객령에 좌중 분위기는 일순간 싸해졌다.
나는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는 쪽을 택했다.
“재, 재희야.”
재익이 형이 다급히 내 팔을 붙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일단은 분위기상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뭘 잘못 했나요.”
그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피셔>팀이 전체 대관한 좁은 고깃집.그 중심으로 걸어들어가는 내 모습에 임강백은 황당하다는 듯, “미친 새끼네.” 헛웃음을 지어보였고. 나는 아예 임강백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 뭐하냐?”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잔에 소주를 따라냈다.
꼴꼴꼴꼴.
그리고 한 입에 털어 넣고 말했다.
“저는 선배님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너, 또라이냐? 지금 분위기 파악 안돼?”
“….”
정말, 조승희 같은 부류는 흔치않은 부류구나.
질투심에 꽁해있는 것들은, 인지도에 관계없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디서 튀어나온 신인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나는 그런 임강백의 말을 잘라내며 말했다.
“표정관리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님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 뭐?”
“선배님이 저를 싫어하셔도, 저는 선배님의 연기 스타일을 너무 좋아합니다. 선배님이 들어가시는 차기작에도 꼭 함께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임강백의 얼굴에 물음표가 떴다.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
왜냐면 말이야.
나는 입을 열기 전, 옆으로 시선을 흘깃 돌렸다.
그러자 우리 쪽을 주시하던 스텝들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임강백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그래야 내가 돋보일 수 있거든.”
*
내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이들과, 임강백의 차이점이라면.
임강백은 호락호락하게 쓰러뜨릴 수 없는 굳건한 커리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임강백은 스텝들이 보던 말 던, 카메라만 없다면 휘두를 수 있는 무소불위의 칼이 있고.
그런 그가 내게 물 잔을 집어던지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는 것은, 그리 예상하기 힘든 일도 아니다.
“그래 이 개새끼야! 계속 개겨 봐 이 씨발 놈아!”
“아이, 참! 강백 씨!”
“그만 하세요 강백 씨. 강백 씨 매니저 어딨어요!”
사람들이 단체로 들러붙어 임강백의 팔을 붙잡고 만류할 때.
슥, 슥-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휴지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내 얼굴은, 비 맞은 강아지 마냥 처량한 꼴이 되었다.
전형적인 피해자.
“뭐하는 짓입니까! 그만 하세요!”
가만히 앉아있던 한만희 감독이 임강백을 향해 소리 질렀다. 술 취해서 후배에게 폭행을 가하는 가해자가 된 임강백은 잔뜩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이 씨발! 시건방진 새끼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데!”
임강백이 또 다시 내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끌려고 하자, 재익이 형이 번개같이 달려와 임강백의 손을 쳐냈다.
“그만 하세요.”
“넌 뭐야 이 새끼야!”
“가자.”
“….”
“… 얼른!”
재익이 형은 나를 강압적으로 일으켜 세웠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자, 임강백이 소리쳤다.
“그래! 씨발 새끼야! 차기작? 나랑 같이 하고 싶다고? 뭐? 네가 돋보여…? 하, 씨발. 어디 한 번 해보자 이거야?”
터벅.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말이 터져 나왔다.
“스케줄 비워놔 이 새끼야! 씨발, 요새 좀 오냐오냐 한다고 선배도 못 알아보고…”
발악하듯 소리치는 임강백의 말에 나는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시선을 앞으로 던졌을 때엔, 뒤늦게 도착한 조승희와 임명한 선생님이 얼굴을 구기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임명한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시더니, 등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가셨다.
조승희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가.”
나는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
“임강백. 도대체 왜 저래?”
“… 모르겠어요. 영화 성적에 많이 실망했나 봐요.”
재익이 형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시발, 제 아무리 러닝개런티로 영화 망쳤다고 너한테 이럼 안 되지. 300만 넘게 멱살 잡고 끌고 온 게 누군데.”
조승희, 그리고 나.
바로 그 이유가, 내게 화를 냈던 이유.
띠링! 문자가 왔다.
[한만희 감독님 : 미안합니다. 재희 씨.]나는 어떻게 답장을 보낼지를 고민하다가, 잠시 휴대폰을 닫아두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임강백이지만, 일을 크게 만든 것은 나였으니까.
내게 던져진 그 수모를 눈 딱 감고 조용히 참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임강백은 뒤에서 여전히 나를 씹었을 것이고 내가 빠진 회식자리는 어영부영 조용히 끝났을 것이다. 또한 오늘 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겠지.
맞다. 내가 일을 크게 벌인 것이다.
“차기작 얘기는 무슨 말이야?”
재익이 형의 질문에 나는 주차장 콘크리트 둔턱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인터넷에 그런 글들 많잖아요. 저한테 연기로 깨졌다는.”
“나, 참. 신인 데리고 뭐하는 짓이야? 그래서, 다시 붙어보자는 거야?”
“제가 먼저 말했어요. 차기작, 같이 하고 싶다고.”
그러자 재익이 형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알만하네.”
그리고는 담배 한 대를 연거푸 더 물고 불을 붙였다.
“너도 참… 처음 봤을 때부터, 착한 얼굴 뒤에 숨겨진 이글거리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욕심 좀 줄여. 너 그러다 진짜 언제 한번 크게 데인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
머릿속이 복잡하다.
촬영이 끝났으니, 이제 스카이라운지에서 하나씩 터지는 폭탄을 즐기며 웃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내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한 만희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가자.”
머리를 손으로 헝클이며, 차에 올라탔다.
*
쌀쌀한 10월의 공기는, 독립영화인들의 잔치인 서울독립영화제의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OCV아트하우스 역삼에서 열린, 본 행사는 시작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올 해, 유독 메이저급 배우들이 참여한 영화가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
하지만 쟁쟁한 경쟁이 예상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그 중심에는 나와 박진우 연출이 있었다.
[신예, 도재희의 스크린 주연 데뷔작 [양치기 청년> 서독제 영광의 ‘대상’ 수상] [‘2018년 올해의 독립스타상’ [양치기 청년> 도재희 수상!]서울독립영화제에서 [양치기 청년>은 그 진가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독립영화제의 특성에 맞는, 실험적이고 사회진취적이지만, 동시에 영화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은 [양치기 청년>은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경쟁부문에서 압도적인 ‘대상’ 후보에 올랐고,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거기에, ‘2018 독립스타상’을 내가 수상하며, 흔치않은 기록인 더블을 기록했다.
내 첫 번째 상이다.
‘독립스타’
첫 주연 장편 데뷔작으로 이런 큰 상까지 안았으니, 최소한의 입지는 다진 셈.
그리고
“상하나 안겨드려서 이제야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박진우 연출도 좋은 출발을 시작한 셈이다.
SAFA 출신에, 첫 장편 데뷔작부터 서독제에서 대상을 받은 박진우 연출은 벌써부터 여러 영화사에서 러브콜 명함을 받는다고 했다.
좋은 일이다.
그리고 박진우 연출은.
“앞으로 더 많은 상을 내게 안겨드리겠습니다.”
내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보답하듯 더욱 열심히 달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서로에게 기분 좋은 약속은 좋은 자극제가 된다.
저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지 않은, 자극.
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자극.
하지만 반대의 자극도 물론, 존재한다.
이번에는 제법 긴 일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레드카펫에 어울리는 고급스런 정장을 고르던 와중이었다.
재익이 형이 복잡한 얼굴로 전화를 받고,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영화가 하나 들어왔는데.”
“….”
요즘 내게 영화, 드라마 책이 들어오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일까.
그리고 나는 그 영화가 무엇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임강백 주연 작품이야.”
아.
“특별출연. 와, 진짜 들어올 줄 몰랐는데. 그 인간 독하다 정말.”
“….”
도전장이 왔다.
솔직히.
반쯤은 홧김에 저지른 소린데, 정말로 하자고 할 줄은 몰랐는걸.
[ 책 먹는 배우님 – 53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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