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61)
61.
L&K 권우철 대표의 사무실에 대표와 마주 앉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생각.
“최근 이렇게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인 배우는 없었잖아. 딴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올해부터는 어엿한 L&K 간판 배우로 밀 거야. 이제는.”
L&K 권우철 대표가 말로 나를 띄우기 시작했다.
[숨 닿을 거리>, [피셔>, [양치기 청년>이 연속으로 쏘아올린 작은 공들은, 내게 메이저 영화 주연이라는 자리와 함께 4관왕이라는 개인 타이틀까지 선물로 가져왔다.2019년 신년의 겨울.
CF 섭외 전화가 물밀 듯이 들어오는 ‘대세’로 변모한 지금,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지.
–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리는 배우죠. 2018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며 한 해를 강타했던 도재희가, 이번에는 용포를 입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 [이선>의 뜨거운 리딩 현장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스마트폰 동영상 뉴스를 확인하던 권우철 대표는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한 잔은 괜찮지?”
동시에 내게 와인 잔을 권했다.
테이블에는 큐브 치즈에 와인 병이 올려져있다. 얼핏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와인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연습이 있어서요.”
“응? 연습? 무슨 연습? 판소리?”
“네.”
권우철 대표가 느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적당히 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오히려 연습실에 너무 오래있어서 목 상할까봐 걱정이라더라. 나도 다 보고 받고 있어. 그러지 말고, ‘오늘 같은 날’에는 쉬지 그래?”
“….”
유독, ‘오늘 같은 날.’이라는 문장에 힘을 주는 것은 나만 느끼는 의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권우철 대표에게야 학수고대하던 날이었겠지만 내게는 소리 연습이 있는 똑같은 ‘오늘’일 뿐이다.
“혹시 회사에서 그간 섭섭했던 거 있으면 얘기해 봐. 괜찮으니까.”
“없어요. 그런 거.”
“그래? 문교도 그렇고, 주원이 문제도 그렇고… 아니지. 비단 회사 내부가 아니라도 외부적으로라도 뭐가 걸리는 게 있다던가, 그런 건 없어? 지금 재익이가 담당이지? 매니저가 형이라서 불편한 점은 없어? 어린 친구로 바꿔줄까?”
대표가 나를 부른 이유, 바로 재계약.
올해 초 5월, 내 5년 계약 조건이 만료된다.
“어떤 작가나 감독의 작품을 꼭 하고 싶다던가. 그게 아니라 다른 쪽으로 바라는 것도 좋고. 아참, 아직 차는 없지? 차 안 필요해?”
“….”
나는 대답을 아꼈다.
요즘 연예기획사는 ‘탑 스타’보다는 포텐 있는 ‘신인’을 선호한다. 그 이유야 탑스타를 데려오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계약금이 필요한데다, 계약 시 조건 비율이 생각보다 회사에 큰 이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탑스타 누구를 데리고 있다면, 회사의 가시적 가치를 올릴 수 있지만- 수익은 오히려 ‘재능 있는 신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드라마, 영화, 예능을 가리지 않고 ‘끼워 팔기’를 통해 수익을 뽑아내거나, 중국 시장에서 돈을 굴릴 수도 있으니까.
또 JW가 밀어주며 주력으로 키운 ‘윤 프린스.’ 중국에서 활동하며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하여 돈을 어마어마하게 끌어 모은다는 사실은 파다하게 퍼진 공공연한 사실.
이 때문에 신인 한류스타를 발굴해 내려는 회사들이 ‘될 성 부른 신인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나도 있다.
내 계약 비율은 계약금 없이 5:5.
1년 간, 내 수익의 절반이 회사에 분배되었다.
지난 1년 사이 나는 수억 원의 돈을 벌어들였고, 그 덕에 5년간의 밥값은 다 한 셈이다.
그리고 지금 대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황금알을 낳을 거위를 묶어두기 위해 온갖 사탕발린 말로 나를 현혹하는 것이고.
내가 말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응?”
“어차피 재계약 할 생각이니까.”
내 말에 권우철 대표가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건배를 못해서 아쉽네.”
그렇게 와인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긴장이 풀린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2019년 대표 간판인데. 떨어지기 직전이잖아. 근데 이 간판을 내려야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그래.
별 문제가 없다면 L&K와 재계약을 할 것이다.
L&K에 남을 경우, 내게 있을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돋보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회사 내 그 어떤 배우들 누구보다 막강한 ‘힘’을 가질 것이라는 점.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조건?”
이미,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조건으로 제시하는 회사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JW엔터와 엄 부장.
이들은 확실히 밀어주고, 확실히 뽑아먹는다. 물론 그 과정에 ‘중국 진출’ 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어, 하고 싶은 작품을 고르는 배우가 아니라, 원금을 회수하는 기계가 되는 것이 문제지만.
“우선 3년. 계약금 없이 8대 2. 개런티 뻥튀기를 위한 의미 없는 중국행은 거절입니다. 또 작품을 선택하는 문제는 오로지 제가 가졌으면 합니다.”
재계약은 하겠다.
하지만, 마스터키는 내가 쥔다.
내가 던질 미끼는, 정산 비율 재조정과 앞으로 내가 작품을 선택하고 어떤 시장에서 움직일지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는 것.
“세부 조항으로?”
“네.”
목표는 중국이 아닌, 할리우드.
동양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일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지만, ‘빅애플’이 되지 못하고 한 두 작품 반짝에 그치며 동양인의 무덤이 되는 이유도 명확하다.
인종과 언어. 이미 확고한 동양인에 대한 이미지가 잡혀있다. 단순히 실력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적인 부분.
그렇기에 회사는 ‘돈 안 되고 불확실한’ 할리우드보다 안전하고 수익이 큰 중국 시장을 선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고.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목표는 확고하다.
계약에는 그 점이 명시 되어있어야 한다.
‘내 선택에 발목 잡지 않고, 100% 밀어줄 것.’
권우철 대표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힘을 주며 말했다.
“하지만 배우 ‘도재희’의 몸 값 흥정은 내 몫이야.”
즉, 출연료 협상은 여전히 회사 몫이라는 의미인데.
나야 뭐.
“좋습니다.”
그러자 권우철 대표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그야, 당연하지.”
그래.
그 누구도 탐을 내지 않을 수가 없는.
붙잡을 수밖에 없는, 그런 배우가 될 것이다.
*
기업은 이미지로 먹고산다.
그 이미지의 얼굴이 되는 것은, CF 모델들이고. 모델의 인기는 해당 제품의 인기와도 상당부분 겹치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업의 가치도 뛰고- 모델의 가치도 덩달아 뛴다.
내게 비즈니스 파트너를 제안한 기업.
M사 자동차의 [불칸> SUV.
일전에 내가 [술김에>에 출연했을 때와는 상상할 수 없는 큰 금액이 오가는 협상 테이블.
재익이 형이 내게 말했던, 6개월에 2억 2천에서 6천만원이 훌쩍 뛴, 2억 8천에 협상 테이블이 끝났다.
[술김에> 이후,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몸값은 네 배 이상 불어났지만 여전히 이와 흡사한 금액들로 섭외가 들어온다.새해를 맞이해 새로운 얼굴을 찾는 수많은 유명 브랜드.
M자동차, G초콜릿, Y영어 학원.
모두가 국내외로 이미 이름을 넓힌 업계 인지도 퍼스트 브랜드들.
내 이미지에도 하등 문제가 생기지 않을, 돈을 가득 품은 복주머니들.
“이 정도면 스타트로 딱 좋아. 다음 CF에서는 또 올리고, 올리고, 계속해서 올리는 거야.”
회사에서는 5:5 계약 기간 동안, 최대한 돈을 뽑기 위해서라도 CF를 계속해서 넣을 것이다. 전작 개런티가 기준이 되는 업계에서, 개런티를 올리고, 또 올리고. 계속해서 올리겠지.
뭐, 내게 투자했던 금액들을 회수하는 과정이니 나 역시 얼마든지 오케이지만. 이럴 때 마다, 말년에 고생하고 있는 유경성의 모습이 스친다.
“개런티 높인다고 아웃되지는 않겠죠?”
내 장난스러운 질문이 순수하게 느껴졌는지, 재익이 형이 푸핫핫!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유경성 선배 말하는 거야? 별 걱정을 다 한다. 이런 건 너는 걱정하지 마. 그 때 기획사랑 지금은 수준자체가 틀리니까. 그리고 그분이랑 너는 다르잖아.”
그래.
‘나’는 다르다.
확실히, 최근 들어 기분이 많이 ‘업’된 것은 사실이다.
오전에는 여유롭게 일어나 연습실에서 영화 준비를 하고, 점심에는 간단한 브런치와 함께 콘티 북을 확인하며 CF를 골라내는.
꿈에 그리던 모습이 되었으니까.
이럴 때, 더욱 조심해야한다.
욕심을 계속해서 눌러야 한다.
유경성이라는 존재를 떠올리며 나 역시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나조차도, 스스로 성공했다고 느끼는 이 순간을 의심해야한다.
내가 정말?
왜?
아직 멀었지 않아?
잠시 이 맛에 빠져버리면 만족하게 되고. 무서워지게 된다. 그러다 괴물이 되고.
돌이 킬 수 없는 덫에 빠지고 만다.
*
국내 M자동차 2019년 신형 SUV [불칸-2019>의 광고 촬영은 순조로웠다.
크로마 세트장에서 인물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 모델은 오직 나 혼자.
단독모델이다.
[불칸 2019>의 슬로건은. [신사, 그 속의 숨길 수 없는 야성.]마치 한 마리의 황소를 연상케 하는 차량 전면의 압도적인 비주얼. 남자다움이 느껴지는 외관과, 반대되는 내부의 고요함.
사막의 흙길을 달리는 SUV 차량.
차량에 타고 있는 정장을 입은 남자.
폭풍의 눈을 향해 돌진하는, 한 마리의 황소가 불칸 SUV로 디졸브 되며 모습이 변하고. 폭풍 같은 그 어떤 위협도 신사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는 컨셉.
“자! 이번에는 폭풍을 보았다고 가정하고, 조금 놀라는 것처럼 해볼까요?”
이미 한 번 해보았던 CF 연기다.
잘해낼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최대한 완벽한 연기에 중점을 두었다.
빈틈없니 차려입은 체크무니 정장. 머리는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기고, 얼굴에서는 이제껏 영화나 드라마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모던함’ ‘시크함’에 중점을 뒀다.
연기의 요점은 다양하지만, 모두 간결하고 정확하게.
“오케이! 지금 눈빛 좋거든요? 폭풍을 보았다! 아 좋아요. 보았는데, 오히려 속도를 낸다. 맞붙어 버린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연기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감독의 디렉팅에 맞춰, 정확하게 해내는 것이 원 오케이의 포인트.
크로마 세트 촬영이 끝나고, CF 연출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재희 씨. 혹시 모델 출신이에요?”
“네? 아뇨.”
“아니죠? 그런데 모델 출신처럼 표현이 되게 자유롭네요. 너무 잘하셔서 놀랐어요. 대사 없이 하는 CF는, 은근히 힘들어하는 배우들 많거든요.”
대사가 없는 CF의 경우 ‘연기’ 라는 측면보다는 ‘쇼’의 개념이 강하다.
“특히 30, 40대 남자 배우 분들이 그래요. 익숙한 지문은 거의 없고 콘티 그림이 대신하니까요”
표정, 눈, 당당함.
그래서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자기PR’이 익숙한 아이돌이나 모델들이 잘 해내는 경우도 많다고.
물론, 이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괜찮았나요?”
“그럼요. 그림 아주 잘 뽑힐 것 같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콘티가 완벽하게 그려져 있거든.
콘티대로만 나온다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
M자동차. [불칸 2019>의 메인 모델.
CF는 정확히 영화 [이선> 크랭크인 날짜에 처음 공개되었다. 먼저 일일드라마 방송 시작 전 CM으로 첫 공개되고, 인터넷에도 순차적으로 풀렸다.
‘넥타이가 너무 섹시하잖아!’
‘으아! 도졌다!’
‘앞머리 올린 모습도 너무 멋있잖아여. ㅠㅠ’
반응은 상당했다.
국산 자동차 중에서도 고가에 해당하는 M사의 불칸 시리즈 신형. 거기에다, 재익이 형의 말마따나.
“‘불칸’에 도재희가 더해졌는데, 반응 안 터지고 배겨?”
실시간 톡톡 동영상 조회 수는 급상승 1위를 기록했고, 어지간한 아이돌만큼이나 댓글수도 많다.
“으으, 가끔은 안 믿긴다니까요.”
영미 씨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잘생기기만 한 오빠였는데.”
“….”
나도 영미 씨와 이렇게 오래 일할 줄은 몰랐는걸.
우리는 어느새 전라북도 부안에 도착했다.
영화 [이선>의 크랭크인 첫 촬영을 위해 전라북도 부안의 어느 테마파크에 차를 주차한 순간, 나는 당황스러움에 창문을 내렸다.
지이이잉.
“다시 한 번 말해 봐요!”
“시끄러워.”
슬쩍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이선>의 트러블메이커인 유경성 선배님과 홍봉한, 강삼재 역할을 맡은 조연 배우들이었다.
“아이고, 두야.”
조연출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재익이 형이 중얼거렸다.
“뭐야, 싸우는 거야?”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작은 다툼이 생긴 것 같은데.
싸우는 이유는 대충 감이 온다.
‘유경성’ 선배님이, 내게 한 조언과는 반대로 더러운 성질머리를 드러냈기 때문이리라.
“흐음.”
나는 가볍게 입술을 삐죽였다.
분명,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 벼와 신사라고 했는데.
젠틀한 얼굴로 허허, 웃으며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혈기왕성한 나나, 임강백을 보는 듯 했다.
나이를 떠나 이들 모두 배우이고, 남자들.
아무래도 이번 영화, 아버지뻘 되는 우리 귀여운 선배님들 양 손을 꽉 붙잡고, 중심을 잘 잡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주연이 나서야지. 촬영장 분위기 메이커.”
“맞아요 오빠. 오빠가 가서 말려봐요.”
“….”
주연이 무슨 슈퍼맨이냐.
[ 책 먹는 배우님 – 61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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