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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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64화. >64.
연말이나 연초, 방송사나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차트’다.
사람들은 ‘순위’ 매기는 것을 좋아한다.
‘저 배우는 저 작품으로 떴군.’
‘저 배우는 뭐가 부족했어.’
‘저 배우는 20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네?’
등등.
– [스타 차트 쇼쇼쇼!> ‘2019년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 발표하겠습니다. 2018년 M모 방송사 연기대상에서 미니시리즈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대형 신인이죠. 도재희!
[스타 차트 쇼쇼쇼>라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신년 특집으로 위와 같은 항목으로 차트를 발표했는데 ‘2019년 가장 주목받는 배우’ 라는 주제로 내가 1등을 차지했다.기존의 엄청난 팬덤을 보유한 ‘윤 프린스’를 재치고 위로 올라섰지만.
나는, 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푸하, 정말요?”
그냥 가볍게 웃어보였을 뿐이다.
지금 내게 불어오고 있는 바람의 강도는, 저런 수치 없이도 얼마든지 체감할 수 있으니까.
또, 오만해질 필요도 없는 문제다.
브랜드 평판을 참고하여, 화제성과 인터넷 반응을 이용해 프로그램 작가들이 뽑은 임의의 수치.
즉, 정확한 지표도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뽑아 본 포춘 쿠키나 무료신년운세에서 ‘올해는 대길(大吉)입니다!’라고 말한다고 100% 신뢰하는 이들이 없듯 말이야.
하지만,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회사나 외부 입장은 조금 다르다.
L&K 메인에 걸리는 새로운 간판 배우로서 외부 자존심을 챙겨야하고. 이것은 나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을 충족에 직결된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선물’을 받기도 한다.
“이게 뭐에요?”
“앞으로 네가 타고 다닐 차.”
얼마 전, 내가 찍었던 M사에서 제작한 최고급 호화 리무진 밴이 내 ‘선물’ 이었다.
회사에서 내게 달아준, 헤르메스의 신발.
‘탈라리아 M’
M사에서 만든, ‘탑클래스 미니-버스’ 라고도 불리는 이 어마어마한 리무진 밴은 조승희가 타고 다니던 최고급 크래프트 밴에 절대 꿀리지 않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 정말요?”
“그럼.”
내부는 더욱 고급스럽다.
“바닥재가 우드 플로어? 뭐라더라. 하여튼 고급 요트에 쓰이는 엄청 고급재질이라더라.”
넓고 안락한 환경과 더불어, 좌석 옆에 달려있는 콘트롤러 하나만으로 스마트 TV, 냉난방 조절이 모두 가능했다.
“헐! 이거 대박!”
영미 씨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한 부분은, 운전석과 좌석 사이에 있는 개폐형 스마트 글라스인데.
“이거면 실장님이 아무리 떠들어도 안 들리겠어요?”
아예, 운전석과 뒷좌석을 막아버려 재익이 형의 투머치토크를 봉쇄할 작정이다.
“정말 이럴 거야 영미 씨?”
“실장님 운전하면서 말 너무 많이 하셔.”
흔히 ‘밴’의 급에 따라 배우의 인지도가 갈린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유명한 배우일수록, 동행하는 스탭도 많아지고 밴도 으리으리한 차량으로 바뀌게 된다.
이로서, L&K에서 올 한해 가장 밀어주는 스타가 되었다는 증명은 끝난 셈.
내가 물었다.
“이거, 재계약 선물인가요?”
“아니. CF 연장 계약을 위한 M사를 위한 선물이지. 또 회사를 위한 선물이고. 재계약 선물은 따로 있을 걸?”
일전에 권우철 대표님이 재계약 선물로 차를 언급한 적이 있다.
으음, 내가 운전할 일이 뭐가 있을까.
어쨌든.
“와! 의자 시트 엄청 푹신하네.”
나는 새로운 이동형 침대 ‘탈라리아M’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지난 주, 미국 유타 주에서는 ‘선댄스 독립영화제’가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 촬영 일정 때문에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시상이 있을 폐막식 행사만큼은 꼭 참석하기 위함이다.
굳이 시간을 내서, 영화제를 찾으려는 이유.
[믿을 수 없는 영화! 110분의 기적.] [‘선댄스’ [양치기 청년> 엔딩 크레딧 이후 무려 10분 간, 기립박수 받았다.] [미국을 들뜨게 한, 무명 감독과 무명 배우가 쓴 기적 같은 동화.]이미, 월드시네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의 수상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미국 가서 맛있는 것도 좀 먹자. 부안에서 맨날 똑같은 백반에, 밥 차만 먹었더니 기름 진 음식 당기지 않아?”
“엄청 느끼한 치즈 파스타! 쉭쉭 버거!”
“오오! 그거 좋지!”
“오예! 신난다!”
재익이 형과 영미 씨는 잔뜩 즐거운 얼굴로 소리쳤다.
사실, 이번 일정은 영미 씨 까지 동행 할 일정은 아니다.
영화제 측에서 제공한 항공 티켓도 사라진 마당이라 미국까지 사비로 다녀와야 하는 수준이었지만.
회사에서는 그 동안 고생한 ‘도재희 크루’에게 특별 휴가를 준 셈.
밀어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니까.
어둠이 깔린 밤.
공항의 야경이 눈에 꽉 차듯 들어온다.
그리고 푸르스름한 밤하늘을 날아오르는 비행기 불빛도 번쩍인다.
이거 참, 파란만장하네.
*
한국에서 시애틀을 경유해 17시간 이상 날아간 곳은 미국 유타 주(州)의 솔트 레이크 시티.
새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공항 인근에서 우리는 차량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박진우 연출의 든든한 친구이자- 제작부장님이 렌트카를 끌고 우리를 마중 나왔다.
“여깁니다!”
“아, 오랜만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대략 세 달 만에 만난 SAFA 스탭들.
변한 것은 없을 짧은 시간이지만 뭐랄까.
“동계 올림픽 열렸던 걸로 유명하잖아요. 거기다, 하명성 주연 영화. [스키점프> 배경도 여기고. 날씨가 추워서 그런가? 음식 간이 되게 짭짤해요. 살찌기 딱 좋은 느낌.”
고작 며칠 먼저 왔을 뿐인데, 이 지역에 대해 설명하는 제작부장님이 엄청 든든하게 느껴진다.
유타 주 특별 여행가이드와 동행한 느낌이랄까.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은,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구 8천명의 작은 도시.
‘파크 시티’
눈이 가득 쌓인 설산이 품고 있는 도시.
한 폭의 수채화 속에 담겨있는 작은 레고마을 같은 도시다.
자연의 힘은 위대하달까.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뻥 뚫린 하늘과 탁 트인 절경이 인상적인 느낌.
이런 자연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고층 빌딩은 없이 모두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고 예쁜 상점가로 이루어져서 그렇다.
세계 독립 영화인들과, 스키 피플들을 초대하는 환상적인 겨울 도시로 얼핏 보기에는 미니어처 같기도 하다.
“우와.”
나는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작은 도시가 품고 있는 매력을 머릿속에 담아내며 입을 쩍 벌렸다.
이제야 좀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피셔> 해외 로케이션으로 방문했던 중국은, 물론 그 나름대로 좋았지만 서울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느낌이었다면.여긴, TV 속에서만 보던 세상이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파크 시티 거리를 거닐었다.
바람은 불었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릿결을 넘겼고, 재익이 형은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이런 내 앞에서 VJ마냥 사진을 찍었다.
“후후, 팬 서비스 차원에서 이런 건 남겨놔야지.”
“대박!”
영미 씨는 커다란 클러치 백을 메고 어느새 손에 커다란 소시지를 들고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는 작고 예쁜 가게들이 즐비했고, 세계 최초의 독립영화제의 성지다 보니 온갖 실험적인 영화 포스터가 건물 내벽에 가득 붙어있었다.
그 중에는 내 얼굴도 당당하게 자리했다.
“oh! Liar man!”
독립영화를 즐기러온 관광객들로 가득한 이곳.
외국이지만 한 편집 샵의 주인아저씨는 나를 알아보며 악수를 청해왔다.
이 머나먼 타국 땅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니. 과연, 영화의 도시.
나는 이 작은 도시의 축제에 흠뻑 빠져들었다.
선댄스는, 그리 큰 영화제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영화 ‘축제’가 어울린다.
레드카펫도 깔리지 않고, 부산국제영화제보다 작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크기가 아니라, ‘역사’가 이 영화제의 가치를 증명해준다.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미언 셔젤 같은 이름만 들어도 대표작을 떠올리는 거장들이 이 영화제를 거쳐 갔다.
잠시 걷다보니, 제작부장님이 말했다.
“여깁니다.”
파크 시티의 추위를 아늑히 막아줄 따뜻한 숙소.
아니, 영화제 측에서 제공한 일종의 별장.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팡! 팡! 샴페인 축포가 터져 나왔다.
“워!”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진우 연출이 있었다.
“환영합니다. 도 배우님.”
그리고 언젠가는 여기 있는 박진우 연출의 이름도 유명 할리우드 거장의 이름 뒤에 자리하겠지.
“감사합니다.”
이 어시스트를 내가 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영광이다.
씻고 언 몸을 녹일 새도 없이, 우리는 쇼파에 늘어지게 누워 샴페인을 마셨다.
오랜 비행 때문에 피곤했지만,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년 전, [양치기 청년> 미팅을 가졌던 날이 딱 이맘때이던가.
영화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던 감독.
커리어에 내세울 것은 없던 신인배우.
아무것도 없던 둘이 만나, 1년 전의 대화를 기억하고 많은 것이 바뀐 오늘의 만남을 기억했다.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1년 뒤의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을 하게 될까.
“아, 도 배우님 메일 주소는 안 바뀌었습니까?”
“네. 그대롭니다.”
“그럼, 뭐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세요.”
박진우 연출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부국제’ 이후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그래서 요즘 쓰고 있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좋은 인연이라 하심은….”
배급사, 투자자들.
“네. 제 영화를 좋게 봐주신 영화사가 있습니다.”
즉, 박진우 감독이 본격적인 메이저 영화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도 배우님이 제일 먼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내게 지난 1년간 지속되던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자고 말하고 있다.
단순한 캐스팅 제의지만.
뭐지.
“….”
이 벅차오르는 뜨거움에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박진우 연출이 내 태도를 오해하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부, 부담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 이렇게나 도와주셨는데… 또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냥 단지…”
“… 읽어보겠습니다.”
“예?”
“꼭 읽어보겠습니다. 부담이라뇨. 영광입니다.”
부국제를 통해 인연을 만든 차기작으로 한국 영화에 포탄을 쏠 것이고. 선댄스 영화제는 어쩌면, 해외 시장의 발판이 될지도 모르지.
벌써, 박진우 연출에게 명함을 던진 영화사도 많다고 했으니까.
“감사합니다.”
1년 뒤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단언컨대, 우리는 또 한 번 세계 영화제를 뒤엎으며, 보다 높은 별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박진우 감독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했고, 그의 영화 욕심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하고 싶은 연기도.
이루고 싶은 커리어도 너무나 많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내일 시상식 행사에 참가하려면 푹 쉬셔야하는데.”
“하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숙소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워 내일 있을 시상식과, 마지막 폐막식을 떠올렸다.
‘영화’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
제작비는 없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찍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
돈이 아닌,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예비 거장들의 축제.
그리고 그 중심에서 흘러나올.
내 얼굴. 내 영화.
오늘은 왠지 잠이 잘 올 것 같은 기분인 걸.
[ 책 먹는 배우님 – 6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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