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65)
65.
레드카펫이 없는 영화제.
외면보다는 내면이 중요한 영화제.
파크 시티에 있는 극장들에서는 영화 상영과 동시에, 크고 작은 토론회가 열렸고.
후원 부스에서는 출품, 초청된 감독들의 인터뷰가 열렸다.
유타 주 파크 시티에서 열린 ‘2019 선댄스 영화제’의 시상식은 Jamaca극장에서 열렸는데, 이날 사회자로는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감독 겸 배우.
‘조셉 이든 캣맨’이 참여했다.
단편영화부터, 장편영화까지.
자국(미국), 월드(국제).
그리고 시네마(극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부문이 나눠진 섹션에서 우리 작품은 월드시네마(국제 극영화) 부문으로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권위적인 상.
이 역시, 만장일치로 의견이 통과되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는 공통된 의견이었다.
나는 영화제를 어떻게 즐겼냐고?
“아주 특별한 영화였습니다. 스몰키드들이 빅맨들을 향해 시원하게 주먹을 날렸다고! 제가 심사위원이 아니어서 표를 던지진 못했지만. Damm! 환상적이었어요!”
시상식이 열리는 Jamaca극장에서 서서 맥주를 마셨다.
또, 조셉 이든 캣맨이 하는 말이 마치,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처럼 들리는 아찔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영어 시나리오 십여 권을 흡수한 내 능력으로 인해 귀가 뻥뻥 뚫리는 경험과 동시에.
조셉 이든 캣맨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예정되어있는 순서는 이게 아닌데, 이거 눈이 마주쳐버렸네요. 나도 너무 궁금하다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대체 누구야! 특별 서비스입니다. 헤이! 올라와요!”
조셉 이든 캣맨이 내게 하는 말이 귀에 쏙쏙 틀어박힌다. 지금, 내 얼굴을 알아보고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낸 건가.
말 그대로 특별 ‘번외’ 인터뷰다.
딱딱한 시상식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축제.
기껏해야 백여 명이 모여 있는, 전문 프레스홀도 아닌 극장 무대 위.
모두가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는 축제 현장에서 무대에 한번 서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일까.
“도재희! 도재희!”
나를 연호하는 스탭들을 뒤로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크게 들어 올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왜 불렀어?’
라고 묻는 제스처였지만,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소설을 본다면 이 작가가 누군지 궁금해지고, 좋은 영화를 보면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휘이이익!”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온다.
조셉 이든 캣맨 옆에 나란히 섰는데, 키가 엄청 커보였던 것과는 다르게 나보다 3cm쯤은 작은 듯하다.
조셉은 굉장히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곳 파크 시티에 모인 영화 팬들은 모두 당신을 인정합니다. 좋아요. 인정하자고요. 나도 그래요. 대체, 저 사람은 누구야? 왜 이렇게 연기를 잘해? 오케이. 나, 엄청 긴장하면서 봤다고.”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기파 배우이자, 전천후 영화감독으로 재능을 뽐내는 유명 아티스트에게 듣는 극찬이라니.
나는 내게 마이크를 건네는 조셉에게 웃어주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온다.
나조차도 소름 끼칠 만큼, 익숙한 영어로.
“감사합니다. 나도 이곳을 인정합니다. 이런 기분 좋은 축제는 처음이라고요.”
처음 보는 동양인에게서 나온 유창한 영어에, 또 다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셉 역시, 재밌다는 듯 껄껄 거리며 웃었다.
내 마이크에 고개를 들이밀며 짤막하게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이크를 턱 끝까지 당기고 말했다.
“도재희.”
처음으로 내 이름을 해외에 알린 순간이다.
*
[킬빌> [바스터스> [장고>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을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알렸고.데이미언 셔젤은 자신을 메이저로 데뷔시켜 줄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선댄스를 통해 단편 [위플래시>로 메이저 무대에 입성했다. 지금은, [라라랜드> 같은 명품 영화로 실력을 연이어 입증했다.
박진우 연출에게도 크고 작은 기회가 연달아 왔다는 것은 굳이 숨기지 않겠다.
유명 영화사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고, 단편 네 작품을 모아 하나로 엮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그 중 하나를 맡아줬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박진우 연출이 만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함께 축제를 즐길 수는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가 올해 선댄스의 주인공이니까.
나는 나대로 바빴다.
인구 8천명의 이 작은 도시에서는, 지천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Hey!”
“Liar man!”
비단 이런 이유 뿐만이 아니라, 조셉 이든 캣맨이 시상식이 끝나고 나와 함께 식사하기를 원한다는 이유도 있다.
“와, 조셉이랑 밥 먹는 거야? [365일 썸머타임> 재미있게 봤는데.”
식당은 숯불돼지구이와 소시지 맛이 일품인 조그만 가든.
조셉이 나를 초대했다.
“어서 와요.”
고기가 지글지글 불판위에서 익을 동안 통상적인 인사가 오갔다.
‘영화 잘 봤다.’
‘그 장면이 너무 인상 깊더라.’
‘한국에서 지금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이런 것들은 에피타이저일 뿐이었다. 조셉이 나를 굳이 따로 보자고 한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비즈니즈 적인 이유였다.
“아까 무대 위에서 한 말 전부다 사실이에요. 난 배우이지만 감독이기도 합니다. 좋은 배우를 찾았으니, 함께 하고 싶은 거죠. 단도직입 적으로 말할게요.”
“…”
“당신과 함께 영화 하고 싶어요. 내 영화에 출연해 줄래요?”
조셉은 배우이자 연출이기도 하다.
그가 만들 예정인 영화에, 인상 깊었던 나를 쓰고 싶어 한다.
물론, 주연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은 조연이었지만.
이게 거절의 이유는 아니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아니, 많았다.
비중은 남자 캐릭터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조연이었지만, 할리우드에 파다하게 퍼져있는 동양인들에 대한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 배역이다.
촌스러운 졸부, 게임 잘하는 젊은이, 똑똑하지만 썰렁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흐리는 암묵적인 차별까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일 얘기는 머리가 아파서. 일단은 영화제의 마지막을 즐기고 싶어요.”
거절을 완곡하게 돌려 말한 것.
조셉도 내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Enjoy Festival”
조연이지만 할리우드 데뷔 기회를 걷어 차버린 것에 대해 재익이 형은 내게 따져 묻지 않았다.
모든 작품에 대한 선택 권한은 내 의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 그래도 조셉 영화인데.”
난 전혀 아닌데 말이야.
언젠가는 이 무대를 다시 밟을 것이다.
어줍잖은 배역으로 동료 스타들에게 무시 받을 사이즈가 아니라.
더욱 몸집을 키워서.
물론, 한국에서 제 아무리 잘나간다고 별들의 무대인 이곳에서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년 후의 일은 모르는 것이다.
[양치기 청년>이 얼마나 해외 영화 시장을 두드려 팰지도 모르는 일이고.*
시상식과 폐막식, 이틀간의 미국 일정을 마치고 솔트 레이크 시티로 돌아왔다.
SAFA팀은 미국에 며칠 더 머무른다고 했기에 아쉬운 이별을 하고 ‘도재희 크루’만.
미국에서 이틀, 오가는 데만 또 이틀.
벌써 사흘 후면, 또 다시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라 돌아 가야한다.
대신, 저녁은 영미 씨와 재익이 형이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치즈가 트리플로 들어간 느끼한 치즈 파스타를 먹었다.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이틀 내리 휴식을 취했다.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은 미국 일정이었지만, 17시간씩 장시간 비행기를 타본 것은 처음이라 많이 피곤했기 때문.
그리고 비행기에서 두 번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박진우 연출이 차기작으로 쓴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79/100] (+9)확실히 상업적인 목표를 세우고 썼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수정 단계를 거치지 않은 미완성 대본이기 때문일까.
이것도 물론 훌륭하지만, [양치기 청년>의 임팩트에 비하면 어딘가 부족한 느낌.
하지만 박진우 연출이니까.
그를 믿고 시작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당장의 판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직은 기획 단계일 뿐이니까.
휴식이 끝나고, 영화 [이선>의 촬영이 있는 이른 새벽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방배동 오피스텔을 빠져나와 ‘이동형 침대’라고 이름 붙인 탈라리아M의 좌석 문을 열었다.
뜨끈뜨끈한 내부 공기가 잠을 더욱 부추긴다.
쓰러지듯 자리에 앉아 수면 안대를 뒤집어쓰려던 찰나.
투머치토커 재익이 형의 말에 몰려오던 잠이 확 달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네? 누가요?”
“주원이. 임주원. 회사에다 요청했다더라. 자기도 차 바꿔달라고.”
“….”
사돈이 땅을 사면, 꼭 이렇게 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배 아프셨어요?
“엄청 칭얼대는 모양이야. 재계약 안하겠다고 으름장도 놓고.”
최근 송문교도 중국 활동을 시작했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가 먹고 살고.
배우는 망해도, 중국이라는 좋은 도피처가 있다.
송문교는 중국에서 또 한 번 재기를 노리고, 임주원은 여전히 내 뒤를 쫓아오려 바득바득 이를 악물고 있다.
하지만.
“저 한 숨 잘게요.”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는 걸.
*
새로 장만한 내 이동식 침대에 대한 관심은 전주 촬영소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이야, 요즘 애들 활동할만하네.”
유경성 선배님은 부러운 듯 중얼거리셨고.
이태리 역시 눈을 빛내며 강아지마냥 눈을 끔뻑였다.
“….!”
그리고 주먹을 꽉 쥐어보였는데.
마치, 반드시 나도 저런 차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총 두 대의 밴에서 스탭 다섯 명을 거느리며 당당하게 등장하던 [피셔>의 조승희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태리는 나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보인다.
잘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마구마구 드는걸.
“미국은 어떠셨습니까? 조캣맨이랑 사진도 찍으셨던데!”
이태리가 말했다.
‘조캣맨’
참, 그 사람. 국내 팬들에게는 조 씨 배우로 익숙했지.
촬영이 없는 요 며칠 사이에 미국에 다녀왔다는 소식은 이미 SNS를 통해 한국에 파다하게 퍼져있던 터라, ‘조캣맨’과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그다지 비밀스러운 주제는 아니었다.
“좋았죠. 영화제를 많이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통틀어 가장 제 취향이었어요.”
“우와…!”
리액션 한 번 크네.
분장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떠들고 있었는데.
– 준비 끝났습니다.
세트 준비가 끝났다는 무전이 들려왔다.
“갈까요?”
“네!”
이태리는 걸어가는 와중에도 연신 입술을 부르르 떨며 풀고 대사를 외우는 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준비 많이 하셨어요?”
“예?”
“전에, 각오하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장난스럽게 웃자, 이태리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으아… 잊어주십시오오.”
많이 긴장한 모양이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우리 같이 잘 맞춰 봅시다.”
연출부를 따라, 전주 영화 촬영소의 실내 세트장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사방이 창틀과 창틀사이가 크로마로 뒤덮여있는 으리으리한 편전과, 영조의 침전, 동궁의 복도와 방들이 거대하게 지어져 있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
분장 팀이 내게 달려와 마지막으로 수염을 붙이고,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사진과 비교해 세밀하게 연결을 맞춘다.
이태리는 눈빛을 바꾸며, 배역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촬영할 장면은, 사도 입장에서는 기이할 정도로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혜경궁 홍씨와 감정적으로 맞붙는 장면이다.
자신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냉담한 시선으로 외면하지만.
철저하게 외가(外家)와 자식 걱정에는 목숨 걸고 매달리는 부인에 대한 서운함.
나는 눈을 감고 대사를 가볍게 중얼거렸다.
“나를 짐승으로 생각하면서, 짐승에게서 나온 자식은 어찌 그리 걱정하는가.”
[ 책 먹는 배우님 – 65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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