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68)
68.
사전제작 드라마는 망할 확률이 높다는 ‘불확실성’을 안고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이 불확실성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SBC에 미니시리즈의 ‘여왕’이 강림했다.
[요원 Mr.블랙>, [구월동 팽자매>, [상속남녀>로 연이은 메가 히트를 거두며 스타 작가 반열에 오른 미니시리즈의 여왕, 박혜숙 작가.근래 활동을 멈추고, 강연과 심사위원 활동을 주로 해오던 그녀가 근 3년 만에 [신데렐라 신드롬> 이라는 대본을 들고 방송가에 야심차게 복귀했다.
사전제작은 대다수 완결까지 대본이 나와 있는 상태라, 대본은 비밀리에 붙여진 상황.
하지만 시놉시스는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유명 동화 신데렐라를 각색하여 재벌과 대기업 여사원으로 설정하여 한국적인 상황으로 재창조해낸 극.
뻔한 클리셰라고 하지만, 이 또한 드라마의 절대 다수가 원하는 내용이다.
박혜숙 작가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드는 작가는 아니다.
대중의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이들의 입맛에 맞는 글을 쓰는 작가다.
이전 작품들 모두가 그랬다.
“반응 살벌해. 작가가 박혜숙 이라고. 못 먹어도 고라는 소리지. 드라마 안하겠다고 선언했던 S급 배우들도, 사전 제작이라는 말에 모두가 주시하는 작품이야.”
그랬기에, 대중들의 입맛이 불확실한 16부작 완결 원고에도 열광하고 믿고 찍으려는 것이다.
캐스팅 디렉터의 말에 의하면, 거론되는 배우들은 모두 S급 배우들이고, 이미 접촉하고 있는 배우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급에서 부터가 차이가 난다.
“임주원? 물론 작년에 핫 했지. 근데 주원이는 후보 5순위에도 못 들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은 주태호, 임강백 같은 배우들.”
작가 박혜숙.
주연 배우는 같은 조모임 멤버인 연기파 배우 주태호.
[삭제>의 촬영을 끝내고 휴식기 중일 임강백 같은 최소 데뷔 5년 이상 정상의 문을 두드리는 ‘탑 스타 급’이 거론될 정도면 라인업만큼은 1-2년 사이, 역대 급 드라마가 될 것은 분명하다.그런 재익이 형이 뿌듯한 얼굴을 숨기며 말했다.
“근데, 캐스팅 보드 1순위는 너야.”
“네?”
“조금 과장 보태서, 방송 삼사. 아니 케이블 까지. 지금 들어가는 종편이든 편성 예정이든. 전부다 널 찾는다고.”
단순히 기대되는 유망주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최근 확실한 ‘성과’를 거둔 배우.
물론, 약간의 ‘거품’도 끼어있을 것이다.
실력에 대한 거품이 아니라, 매체를 막론하고 얼굴을 자주 비추다보면 인지도에 대한 거품이 끼기 마련이니까.
“일단은 푹 쉬면서 시놉시스 훑어보고 괜찮은 작품 있으면 말해 줘.”
어쨌든, 칼자루가 내게 쥐어졌다는 말.
하지만.
[신데렐라 신드롬> [76/100] (-2)터무니없이 낮은 완성도에.
고작, (-2)
마이너스?
이제껏 이런 미미한 수치는 본 적이 없다. 전혀 구사할 줄 모르는 중국어라던가, 액션을 소화해야 한다던가. 하다못해 소리를 이용한 장르에서도 본 적 없었던 미미한 수치.
이 정도면, 이 드라마는 나와 전혀 다른 상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박혜숙 작가의 [신데렐라 신드롬>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케이블이라.”
케이블 방송사인 TV-K의 3/4분기 사전제작 드라마.
[시간의 띠>드라마 사상,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로맨스’를 배제한 드라마.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끝끝내 미제로 남은 연쇄살인 사건. 뫼비우스의 띠처럼 절대 만날 수 없는 시공간을 꿈에서 볼 수 있게 된 형사의 이야기.
드라마에서는 언제나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그런데 작가가 더 충격적이다.
작가 정이연.
“응? 작가님이 여기서 왜 나와?”
인터넷을 검색해 기사를 살펴보았더니, [숨 닿을 거리>를 통해 자신의 주가를 한 번에 띄운 정이연 작가는, 능력을 인정받아 TV-K에 고액 개런티로 입성한 것.
“대단하네.”
정 작가는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주 타겟이 되는 드라마에서 로맨스가 배제된 미스터리라니.
나는 이 궁금증을 해소 하고 싶었다.
“…..”
[83/100] (+13)대본은 사전제작의 ‘불확실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이미 나와의 궁합도 너무 훌륭하다.
나는 콧등을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능력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파급력은 엄청난 스타 작가의 흥행보증 드라마 복귀작.
첫 작품에서 대박을 쳐냈지만, 차기작에는 물음표가 떠오르는 신인 작가.
대본을 읽어보면 결정은 쉬울텐데.
내가 말했다.
“조금 생각해 볼게요.”
*
“왜, 하겠다니까?”
“아, 그게 알아보고는 있는데…”
“뭐야, 나 지금 까인 거임?”
“….”
영화에서는 무조건 주연.
힘든 드라마는 하지 않겠다고 공헌할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와 영향력.
영화 개런티 최소 4억 이상.
가끔 감독님들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우정출연을 한다면.
‘와 방금 OOO 나왔지?’
그 씬을 완벽하게 스틸해가는 급의 탑 스타들.
자신이 움직일 수 없는 드라마 판은 없다고 자부하는 이들의 마인드는 ‘내가 그 드라마 한번 도와줄게’ 다.
‘박혜숙’ 이라는 여왕벌의 꿀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으면서, 섭외 단계에서만큼은 온갖 고고한 척을 다 한다.
“드라마? 내가 도와주지 뭐.”
하지만, [신데렐라 신드롬>은 의외로 섭외 장벽에서 가로막혔다.
스타들 몇몇이 섭외를 역으로 던지며 관심을 보였지만.
PD와 제작사 측에서는, 여전히 ‘섭외 진행 중’ 이라는 의견을 고집했다.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도재희의 잠재적 경쟁자들.
도재희 보다 개런티가 한두 발 앞서있는 급의 배우들은, 이 예상치 못한 캐스팅 난항에 황당해하며 죄다 물만 먹었다.
“왜?”
물론, 대놓고 묻기엔 민망하니까.
매니저들을 시켜서 묻는 거다.
“박 작가님, 이번에 드라마 들어가신다면서요? 캐스팅 상황 어때요? 저희가 도와드릴 부분은 없어요? 아, 저희 작품 기다리는 배우들 많죠. 형민이도 있고. 주성이도 있고.”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아직 감독님 의견이 정리가 안 되어서요.”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캐스팅 디렉터의 말.
이쯤 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을 정도다.
“누군데? 도대체 누구를 찔러보고 있는 건데?”
도대체 누구를 찔러보고 있기에, 자신들을 거절하는 것인가.
캐스팅 디렉터는 왜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것인가.
섭외 후보가 누군지 말해주지 않는 다는 것은, 자신들 보다 ‘후배’ 일 가능성이 높다.
조승희 정도 되는 거물이라면, 이름을 먼저 불렀겠지.
‘조승희 급’을 원해서 힘듭니다, 라고.
“누군지 알아봤어?”
“알아보고는 있는데, 이게… 또 확실한 건 아니고.”
“누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도재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재희? 그, 신인?”
신인이라고 하기엔, 이제는 어색해져버린 커리어지만.
콧대 높은 이들에게 도재희는 눈엣가시 같은 신인일 뿐이다.
“으, 응. 근데 소문일 뿐이야.”
“도재희 한테 내가 밀렸다고?”
그리고 이런 눈엣가시는, 의외로 쉽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
사실 가장 답답한 쪽은, 도재희의 연락을 기다리는 [신데렐라 신드롬>의 연출팀이었다.
“아직 연락 없어?”
“네.”
“왜?”
“… 그게…”
“작가가 박혜숙이야! 썼다하면 시청률 두 자릿수 제조기라고! 그런데 고민을 해?”
“….”
여기다 화를 내면 어쩌자는 건지.
“사전 제작 드라마는 하겠다고 했다면서. 또 시놉시스는 봤다며!”
“예. 매니저 말로는 집에서 밥 먹으면서 같이 봤다고…”
“근데 뭐래? 재미없데?”
“딱히 그런 말은…”
“허! 작품 보는 눈이 그렇게 없나?”
시놉시스를 보았지만, 확답은 없다?
연출과 작가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밖에 없는 노릇.
하지만 CP며, 제작사의 강력한 어필이 있었다. 도재희를 주연으로 쓰고 싶다고.
감독 본인도 마찬가지다.
연기력 하나로 자기보다 윗 배우들을 모조리 눌렀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한 얘기다.
그렇기에 화난 기색을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회당 오천도 싫다는 거야?”
거의 곱절로 불어난 돈 때문도 아니다.
“더 필요하데? 일단, 제작 PD불러서 돈 좀 더 쓰라고 해봐.”
“개런티요? 어후,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성급하게 개런티를 올리려는 수작도 더더욱 아니고.
“그럼 문병철이한테, 도재희 연락해 보라 그래.”
SBC [청춘열차> 문병철 감독.
“문병철… 감독님이요?”
“그래! 도재희 [청춘열차>로 데뷔 시킨 게, 문 감독이잖아. 아, 아니다. 내가 직접 말해야겠다. 문병철이 회사에 있나?”
그 때, 삑삑삑삑. 삐비비빅.
현관 비밀번호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캐스팅 디렉터가 힘없는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덜컹!
철문이 닫히자 SBC [신데렐라 신드롬> 팀 오피스텔에는 적막함이 감돌았다.
캐스팅 디렉터의 얼굴에서 불안한 기색을 느꼈기 때문.
감독이 물었다.
“… 뭐야. 됐어?”
섭외 결판을 내기 전까지는 사무실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캐스팅 디렉터.
그의 임무는, 배우들의 러브콜을 뿌리치면서 어떻게든 도재희를 따오는 것.
“안됐어?”
하지만 그의 얼굴은 전투에서 연달아 깨지고 깨진 패장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아! 됐어요! 안 됐어요?!”
“후우. 실패했습니다.”
“에잇! 젠장!”
연출이 손에 들려있던 종이 파일들을 홧김에 집어던졌다.
파르르륵!
종이뭉치가 창가에 때 이른 벚꽃마냥 사무실에 휘날린다.
“이유가 뭐랍니까?”
“… 모르겠습니다.”
“하! 그 친구,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하기에 계산이 빠른 친구인 줄 알았더니!”
공격적인 말들이 빗발친다.
그리고 캐스팅 실패 소식을 듣고 가장 열불을 토한 사람은, 박혜숙 작가였다.
“제 작품이 까였다고요?”
감독도, 작가도.
성질이 불같고 자존심 쌔기로 유명한 SBC 전문 투견들.
도재희와 상성이 맞지 않는 이유.
“이런 건방진… 누가 누굴 까?”
도재희 섭외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지기를 퍼붓는다.
“섭외 리스트 다시 가져와요!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작품을, 이제 데뷔한지 이년 된 햇병아리가 어딜 감히…”
섭외 리스트가 최상단에 위치한 도재희의 이름에 빨간 줄이 벅벅- 그어졌다.
“지워버려.”
다시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리스트에 올라있는 이름만 봤을 때, 별들의 잔치나 다름없다.
일반 미니시리즈에서도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배우 탑 세 명 정도. 별 기대는 하지 않은 채 찔러보는 경우가 많은 인지도 높은 배우들. 그런 이름들이 즐비하다.
“이 친구는?”
“됩니다. 지금 제 전화 기다리고 있어요.”
“응? 그럼, 주태호 씨는요?”
“매니저 지금 1층 카페에서 대기 중입니다. 퇴근하기 전에 제 얼굴 꼭 보고 가겠다고.”
“… 뭐야. 도재희 빼고 다 하겠답니까?”
섭외 제안보다,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역으로 섭외 문의가 더 많이 들어온 희대의 관심작품.
하겠다는 배우들은, 그야말로 줄을 섰다.
S급 배우들을 데리고 농담이지만, 오디션이라도 봐야할 판국.
이 중에서 거절한 배우는 도재희 뿐이다.
“예.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죠. 어떻게 이런 작품을 거절 하는 거죠?”
캐스팅 디렉터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듯, 모자를 벗어 정수리를 벅벅 긁어댔다.
이제는, 도재희에게 밀려 자신들의 순위가 2순위 3순위로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배우들 귀에 들어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뭐야 대체…”
대화 도중 또 열불이 난 감독은 냅다 펜을 집어던지며 소리 질렀다.
“도대체 이유가 뭐야!”
[ 책 먹는 배우님 – 68화. > 끝ⓒ 맛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