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70)
70.
[박혜숙 작가 차기작! [신데렐라 신드롬>. 완벽한 재벌 2세, 현실 왕자님! 박시현X윤민우 전격 캐스팅!]내가 캐스팅을 거절한 지,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올라온 캐스팅 관련 뉴스.
박시현과 윤민우.
메인 남주는 영화배우 박시현이 맡고, 서브 남주로는 나와 [피셔>에서 한번 맞붙었던 윤민우가 캐스팅 되었다.
“진짜 이 작품 하려는 배우들, 줄서서 번호표 뽑고 기다렸나보네. 어떻게 네가 거절하자마자 그 날 밤에 기사가 나가냐?”
1순위가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캐스팅 확정.
캐스팅도 의외의 캐스팅이다.
박시현은 2011년 [대수롭지 않은 수요일>이라는 드라마 이후 줄곧 영화만 찍던 배우다. 즉, 데뷔 이후 8년 만의 드라마 복귀인 셈.
거기다, ‘서브 남주’ 임을 알고서도 들어갔다는 한류스타 윤민우 까지.
나보다 절대 못하다고 볼 수 없는 유명 배우들.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귀한 조합에 팬들은 난리가 났다.
[박시현X윤민우 벌써부터 풍겨오는 훈훈한 향기]‘인지도 파워’라는 사과를 화살촉에 매달아 활시위를 당겨버린 캐스팅 기사는, 드라마가 1 테이크 슛도 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신데렐라 신드롬>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나를 향해 재익이 형은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이런 배우들 보다, 더 위에 있었던 거야 네가.”
“…”
그러게.
요즘 안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한창 시끌시끌하다.
내가 속해있는 배우들 단체 톡 방만 해도 여러 개다.
‘조모임’, ‘청춘열차’, ‘피셔’, ‘숨 닿을 거리’, ‘이선’.
이곳에 속해있는 배우들은 연예계에 전반적으로 폭 넓게 걸쳐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고 설켜 넝쿨을 형성한 것은 당연한 일.
소문은 빠르게 돈다.
배우들 사이에서 박혜숙 작가의 차기작은, 이미 뜨거운 이야기 거리였다.
‘이거, 섭외 보류 났다던데. 누가 할까?’
그리고 박시현X윤민우를 보류시킨 섭외 주인공이 ‘나’라는 소식은 암묵적으로는 비밀이었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재희, 진짜 거절했어?’
‘왜 거절 한 거야 도대체?’
‘정말? 와, 저거 무조건 될 작품 아냐?’
나는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박상인 연출과 L&K 홍보팀에서 정리하고, 오채연 기자가 쏘아올린 화살 한 방으로 모두 정리되었다.
[TV-K 사전제작 드라마, [시간의 띠>. 주연, 도재희 확정]띠링! 띠링! 띠링!
평소에는 제각기 바쁜 일상 때문에 쉽사리 울리지 않던 연기자 단체 톡방이 계속해서 울린다.
알림을 꺼놓았더니, 순식간에 300+로 찍혀버린다.
소윤, 김균오, 박청아, 조승희, 배명우, 유아름, 이태리.
나와 함께 했던 주조연급 배우들이 전부 난리가 났다.
조승희 : ????
배명우 : 왜???
유아름 : 대체 왜!????
김균오 : 형! http://starmagazine.co.kr/view.php?no=9872 이 기사, 진짜에요? 루머죠?
“….”
이런 반응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치 상종 못할 작품이라도 들어간 반응.
내가 사람이라도 죽였어?
이거, 왜들이래.
유아름 : 오빠. 정이연 작가님이랑 인연도 있고, 색다른 도전 하고 싶은 건 이해는 하는데. 조금 무리수 아니에요? 지금 좋은데 왜 굳이?
물론, 이해는 한다.
‘로맨스’를 배제하고 찍은 웰메이드 작품을 노리던 드라마들의 말로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야.
사전 제작 드라마 대본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대본이라고요.
그렇다고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을 말해줄 수도 없고.
나는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도재희 : 전 좋습니다!
*
세간의 시선들에 반전을 먹이기 위한 [시간의 띠> 연기자 캐스팅은 한창 바쁘게 달아올랐다.
성과도 바로바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섭외 물망에 있던 A급 연기자 몇몇이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 것.
“도재희 씨 확정이라고 기사 나갔던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아, 그럼 언제 사무실 한 번 들릴까요? 진행 상황 좀 들어보고 싶은데.”
“네, 그럼요. 언제든 오세요.”
“내일 오후 2시 어떠신가요?”
“두시요? 음, 그 때는 미팅 일정이 잡혀있는데… 저녁은 힘드실까요?”
누구와 미팅을 한다는 거지?
설마, 경쟁 배우?
일종의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그럼, 오늘 갈게요. 괜찮으시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접촉을 시작했다.
이제는 [시간의 띠>를 긁지 않은 복권 정도로 생각하는 매니지먼트도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재희가 들어갔다고? 걔 안타만 계속 치는 애 아냐? 시놉시스 다시 줘 봐.’
‘혹시 모르잖아? 이번에는 걔 후광 좀 업어서 터질지.’
던져진 ‘도재희’ 라는 이름의 미끼.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배우 이름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는 경우는 많다.
절대 크랭크인 들어가지 못할 것 같던 영화도, 탑 스타 한 명만 잘 꼬시면 투자자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곳이 이 바닥.
거기다, [신데렐라 신드롬>을 걷어 차버리고, 선택한 대본이라는 소문도 함께 불어오니.
“다시 알아 봐. 여주 지금 누구누구 찔러보고 있는지.”
“황지애 집어넣고, 신인들 몇 명 꽂아 넣으면 어떤지 딜 좀 해보자.”
어제는 못 보던. 아니, 보려고 하지도 않던 새로운 그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강풍은 꽤나 거셌다.
세부 협상이 남은 배우들이 몇 명 남았지만, 도재희를 제일 위에 올려두고 라인업을 주루룩 세워보니 얼추 그림이 나온다.
“이거, [신데렐라 신드롬>이랑 붙어도 안 꿀릴 것 같지 않아?”
2018년 가장 핫 했던 커플인 유아름X도재희.
2019년 현재, 가장 압도적인 남주 두 명. 박시현X윤민우.
이들에 비해 역대 급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라인업이 꾸려지기 시작한 것.
“꿀리지도 않을뿐더러, 기대 이상인데요.”
오히려, 별 기대 없이 찔러보았던 배우들도 홀딱 넘어왔으니 톡톡히 효과를 본 셈이다.
“PD님, 제작비는 괜찮습니까? 개런티가 너무 맥시멈인데요?”
“그럼요? 애초에 맥시멈 개런티로 이정도 잡고 시작 했는데요 뭘. 개런티는 걱정 마시고. 좋은 작품만 만들어 주세요.”
“하하!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판교 사무실 분위기는 나날이 좋아졌다.
내 개런티는, 회차 당 오천만원.
개인타이틀 4관왕에,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값은 뛰기 마련이다.
개런티는 반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급상승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L&K에서도, 내 이름을 [시간의 띠>에 넘겨주고 얻어낸 보상을 톡톡히 챙겨왔다.
“이번에 너 [시간의 띠> 들어가면서, L&K에 신인들 몇 명 끼워 넣어서 밀어주려고 하거든. 어때?”
내 협상 조건으로 회사에서 키우는 신인 배우에게 자리가 생겼다.
조연 하나, 단역 두 개.
“물론이죠.”
L&K에서 키우는 후배 밀어주기.
단순히 이 작품에서 L&K의 크기와 영향력을 불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현장에서 든든한 내 ‘편’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도재희 라인.’
하지만 내 편이 누가되느냐에 따라서 판도가 갈리겠지.
내 편이라고 들어온 놈이, 알고 보니 속이 시커먼 적이었다던가.
아니면.
“… 문교는 힘들겠지?”
“….”
중국 활동에 적응하지 못한 송문교를 조연에 집어넣는다던가.
“요즘 작품 없어서 힘들어하거든. 안되겠지?”
“….”
잠시 생각해봤다.
내 밑에 있는 송문교.
하지만 역시…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힘들죠.”
내 의중을 알아차린 재익이 형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래그래. 미안. 그냥 한 번 물어봤어. 지금 일 없는 애들 많아. 다른 애 넣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마.”
굳이 똥물에 있는 속이 시커먼 놈에게 손을 뻗을 필요는 없다.
왜 굳이 ‘기회’라는 점을 부각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가.
지금도 충분한데.
*
[압도적 존재감, 황길강! [시간의 띠> 섭외 확정!] [그룹 Yoki-Girl 배소현, 연기자 이미지 굳히기 성공. TV-K 드라마 [시간의 띠>에서 도재희와 한 호흡] [김균오. [청춘열차> 이후 도재희와 재회에 “재희 형은 진짜 배우. 영광.” 감격. 단독 인터뷰.]극단 ‘청라무대’의 대표이자, 인상파 배우로 유명한 황길강.
수많은 걸그룹 출신 중, 가장 성공적인 배우 커리어를 보내고 있는 국민여친 배소현.
[청춘열차>에서 한번 호흡을 맞췄던, 모델 출신 배우이자 10대들의 라이징 스타 김균오 까지.거기다, 짧고 비중 있는 악역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하나씩 준비되어 있기에, A급 배우들의 카메오출연도 줄줄이 예약되어있다.
불과 열흘 전만해도, 보이지 않는 벽에라도 막힌 것처럼 콱! 막혀있던 상황이 단번에 타파되었다.
“해 볼만 하다!”
그래서 그 어느 때 보다, ‘대본 리딩 현장’의 분위기는 뜨겁게 고조되었다.
오전 9시 30분.
판교 사무실의 넓은 회의 홀에 모여든 배우들이 저마다 어색하다는 듯 인사를 나누었다.
“오! 재희 씨! 이야, 실물로 보니 더 잘생겼네.”
‘형사반장’ 역을 맡아주실 황길강 선배부터.
“선배님! 으앗, 팬이에요!”
‘여경’ 역할의 배소현.
“형! 진짜, 오랜만이에요.”
영혼의 듀오, 파트너 형사로 만난 김균오 까지.
이들을 이 드라마로 불러 모은 구심점 역할을 했기 때문일까.
내 등장과 동시에 어색하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박상인 연출이 자리하고 본격적인 리딩에 들어가기 앞서, 몇 가지 이야깃거리가 나왔는데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편성을 따내느냐 못 따느냐다.
“편성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사전 제작 드라마는 ‘불확실성’을 안고 간다.
흥행에 대한 여부도 그렇지만, 예정 시기에 방영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거 사례들이 말해준다.
겨울에 찍은 전쟁 드라마를, 여름에 방영해 시청률을 토막내버린다던가.
편성이 밀리고 밀려 3년-4년 뒤에 방영된 경우도 있다.
또, 아예 방송사에서 거절되어 다른 방송국을 알아봐야하는 특수한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는 듯, 박상인 연출의 표정은 밝았다.
“아마도, [신데렐라 신드롬>과 시기가 겹칠 것 같습니다.”
즉, 애초에 예정되어있던 날짜와 거의 흡사하다.
“금토 드라마로 편성될 것 같고. 지금 방영중인 [러브 썸 아일랜드> 차차기 후속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국장님 컨펌이니, 아마 확실할 것 같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사실 좀 걱정했거든. 사전 제작이라고 하면, 이렇게 인식들이 안 좋아서 말이요. 하하!”
“이게,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고요?”
박상이 연출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덕분에요.”
그리고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작사 쪽에서도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훌륭한 배우 분들이 너무 많이 모여 주셔서요. 감사드립니다.”
내게만 표한 감사인사.
그리고 속 시원한 답변.
리딩에 들어가기에 앞서, 묵은 걱정들이 말끔하게 해소되자 리딩을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나는 리딩에 앞서 16권의 대본을 바라보았다.
코팅표지에 배우 ‘도재희’ 라고 새겨져있는 나를 위한 대본.
많긴 많구나.
하지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머릿속에 다 있는데.
“….”
음, 읽는 척이라도 해야겠지.
[ 책 먹는 배우님 – 70화. > 끝ⓒ 맛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