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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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72화. >72.
“거절 한 이유가 뭐야? 케이블로 가서 그 딴 드라마도 띄울 자신 있다. 뭐, 그런 거야? 호승심? 자신감?”
“….”
평소에 [신데렐라 신드롬> 팀에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훤히 보인다.
‘그 딴’ 드라마라니.
거, 말씀 되게 섭섭하게 하시네.
“글쎄요.”
나는 박시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빙긋 웃어보였다.
“이유가 중요한가요. 서로 좋으면 된 거지.”
서로 좋으면 좋잖아.
너는, 내 ‘덕’에 드라마 들어갔으면서.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던 광고가 끝나고, 극장 조명등이 일제히 꺼졌다.
“….”
그와 동시에 반쯤 일그러진 박시현의 얼굴이 어둠에 묻혀 어두워졌다.
배급사 오프닝 로고가 흘러나오며 빛 무리가 눈을 비출 때 까지 박시현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야가 밝아지자마자, 박시현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양보라도 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럴 리가요.”
“건방 떨지 마. 이 새끼야.”
“….”
내 눈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반대로 심장은 빠르게 요동친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그는 내게 경고하고 있었다.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지?”
무엇을 위한 경고인지, 무엇에 대한 경고는 중요하지도 않은 듯한, 무차별적인 비난.
“지금 관심 좀 가져주는 거? 3개월이면 끝나. 누구는 안 그랬는줄 알아? 시건방진 새끼가 뭐라도 된 것 마냥…”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는 열등감 찌꺼기들에 나는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으니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었다.
‘네 앞가림이나 신경 쓰는 게 어때?’
그 때, 유경성 선배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더러운 성질머리 죽여.’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화’를 속으로 다스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데뷔한지 3년도 되지 않은 햇병아리가, 자신보다 섭외 순위가 높았기 때문에?
그런 드라마를 내가 걷어차고, 이 때다 싶어 드라마를 물었던 자신이 부끄러운 거야? 이제 와서?
“내 하나 더 말해줄까?”
다들 왜 이렇게 오지랖을 부리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왜 못 건드려서 안달이냐고.
“이 바닥에 너 좋게 보는 배우들 별로 없..”
“선배님.”
“…”
“영화 시작했습니다.”
박시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뭐?”
난 최대한 더러운 성질머리를 숨겼지만, 차갑게 식은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아니. 닥치고 영화나 보자, 라는 서브텍스트는 굳이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선이 부딪히고, 나는 의도적으로 박시현을 무시하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건방진 새끼…”
벌써 영화가 시작되었지만,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시현의 열등감 조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내가 그 드라마를 안 한 이유.
그게 궁금해?
누구에게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내게만 보이는 완성도와 점수.
(- 2)
이제껏 본적 없던 수치.
‘선택 하지 마.’
아마도, 이 작품이 내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이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남들 눈에는 그냥, 안 한 거다.
그런데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을 걸어온다.
시건방져 보여?
만약, 내가 [신데렐라 신드롬>에 참여 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똑같은 이유로 시비를 걸어왔을 것이다.
싸움은 끊이질 않는다.
입으로 신인 작가를 밟아 죽이려는 미니시리즈의 여왕이나.
자신보다 잘 나가는 후배가 아니꼬운 선배나.
매한가지 똑같은 새끼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마자, 박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비켜.”
내가 다리를 치워주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비상구로 나가버린다.
거 봐.
애초에, 영화가 목적이 아니었다니까.
*
“영화, 너무 좋지 않았습니까?”
하, 뻔뻔해도 저렇게 뻔뻔할 수가.
무대 인사가 시작되었다. 주조연급 배우들의 인사가 끝나고 객석으로 던져진 마이크.
관객 대표로 마이크를 받은 사람은 박시현.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에 극장으로 들어온 박시현은,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네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사실적인 이야기에 소름 돋았습니다. 배우들 연기도 너무 좋았고. 몰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네!”
영화는 보지도 않았으면서.
애초에 준비된 대본으로 능청스럽게 관객들에게 호응유도까지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반관객들은 박시현의 말에 크게 호응해주었다.
이런 지저분한 약속된 인터뷰와는 다르게.
영화 자체는, 훌륭했다.
편집도 잘 되었고, 메시지도 확실하다.
종장의 뻔한 신파도, 적절하게 관객들의 눈물을 자극했다.
주연이 임강백이 아니라 다른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지만.
[피셔> 보다는 연기도 조금 나아졌다.감독 놀이를 하며, 십 수 번씩 다시 찍었는데 좋아야지 당연히.
모르긴 몰라도, 손익분기점은 가볍게 넘을 것이다.
“객석에 또 한 명의 손님이 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시면서 다들 감탄하신 명장면의 주인공인데요. 살 떨리는 연기를 보여준 도재희!”
사회자의 말에 나는 당황스러운 리액션을 취해보였다.
취재진들의 카메라가 객석에 앉은 나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고, 메이킹 촬영 팀의 메인 카메라는 약속된 대로 나를 정확하게 비추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와아아아아-!”
여성 팬들의 비명소리가 너무 커서 오히려 무안할 지경이었다. 당황한 것은 사회자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아, 하하… 반응이 정말 뜨겁네요. 도재희 배우님, 말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배우 도재희입니다.”
“꺄아아아아아!”
객석이 떠나갈 듯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치, 내가 주연이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
임강백이 마이크를 들었을 때도 이런 환호는 안 나왔던 것 같은데.
음, 어쩐지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인걸.
“몰래 영화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하하, 짧게 말하겠습니다.”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촬영에 오래 참여하지 않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스탭 분들, 배우 분들… 정말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찍었습니다.”
임강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특히, 여기계신 강백 선배님과는 [피셔> 이후로 두 작품 째인데… 정말, 배울게 많은 열정적인 선배님입니다. 후배 연기를 디렉팅하기 위해 같은 씬을 열두 번도 다시 찍었고, 본인 역시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에는 감개무량한 얼굴로 객석에 앉은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 결과를 이제, 여러분들이 판단해주실 차례입니다.”
내 말의 진짜 속뜻을 알아차린 사람은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단 두 사람.
이 경우 연출과, 임강백 뿐.
나는 연신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영화 [삭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영화 [삭제> 흥행 1등 공신, 도재희 전격해부] [도재희, 카메오로 미친 존재감을 뽐낸 [삭제>에 이어, 이번엔 명품 사극으로.] [여름 극장가에 불어 닥친 새 바람! 영화 [이선>]7월.
영화 [삭제>의 극장 마지막 주에 영화 [이선>이 걸치듯 개봉했다.
[삭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380만 명을 돌파했다.영화의 일등공신은, 나였다.
6월, 최고 흥행작인 [삭제>의 주연인 임강백 보다 높은 브랜드 파워 순위를 기록했다.
이로써 임강백에게서 거둔, 명백한 승리.
이후, 7월의 극장가는 [이선>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삭제>에 이은 연타!개봉 첫 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76만 명이던 관객 수가 주말 이후에 99만 명까지 급증하며 2019년 가장 빠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런, 커다란 성공 뒤에 회식이 빠질 수 있나.
노원구 공릉동의 고깃집에서 영화 [이선> 팀 단체 회식이 진행되었다.
“자! 마시자고!”
관람객 평점 9.8점.
평론가 평점 8.1점.
두 개의 평가 사이에는 전혀 괴리감이 없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라는 뜻이다.
“하하! 처음에는 손익분기점만 넘기자는 목표였는데,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습니다.”
“임창태 감독님이 그림 멋지게 담는 데는 귀신이잖습니까? 이거, 천만 가지 않겠습니까?”
“개봉 일주일 만에 300만 넘겼잖아요. 다음 주면 휴가 시즌인데 더 뛰죠. 지금 입소문도 탔겠다, 이번 주 안에 500만 넘긴다니까요?”
임창태 감독님은 소주잔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배우들 덕이야. 다 배우들 덕이라고! 껄껄!”
연거푸 술잔을 비워내며 기분좋게 취하셨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오랜만에 힐링 하며 [시간의 띠> 관련 피로를 풀어냈다.
최근, 정신적인 피로감이 상당했다.
박혜숙 작가가 깔짝깔짝 공격적인 멘트를 던지는 것이나.
박시현이 등장해 내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이나.
여러모로.
그 때, [이선>의 조연출 형님이 내게 다가왔다.
“바빠?”
마흔이 넘은 임창태 사단의 기둥. 이제, 곧 입봉을 준비한다고 했던가.
“아, 형님.”
옆 자리에 슬그머니 앉은 그는, 내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요즘 드라마 찍는다며?”
“네.”
“피곤하겠네? 한 잔 하자.”
잔을 비워냈다.
[이선>을 촬영할 때에도, 조연출과는 술을 자주 마셨다.나이 차이는 열 살이 나지만, 지난 3개월 사이에 무척이나 가까워진 사람 중 한 명.
조연출이 말했다.
“소개 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괜찮을까?”
“누구요?”
“아아. 영화사 후배인데, 너랑 꼭 인사 나누고 싶다고 하더라고.”
“아, 그럼요. 가능하죠.”
“이리 와.”
조연출이 손짓하자, 연출부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안경을 쓰고, 약간 어리숙하게 생긴 남자.
연출부 테이블에 앉아있었지만, [이선>의 스탭은 아니었다.
“인사 해. 여긴 재희 씨고. 여긴, 내 후배. 원래 우리 영화사에서 일하다가, 자기 영화 찍어보겠다고 나간 놈이야. 회식 있어서 오늘 데리고 왔지. 단편영화 감독이고 이름은 윤제훈.”
“안녕하세요.”
내가 꾸벅 인사를 건네자, 윤제훈이라고 말한 사람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직 감독은 아니고, 단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배우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일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뵀습니다. 먼발치에서지만.”
부산독립영화제.
“아, 그런가요? 감독님으로?”
내가 되묻자 조연출이 말했다.
“얘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봉사활동 했거든. 거기서 [양치기 청년> 보고 팬 됐다고 하더라고. 회식에 너도 온다고 하니까, 꼭 인사하고 싶다고… 제발, 자기도 좀 데려가 달라고. 얼마나 애걸복걸 하던지.”
“아이, 선배님. 무슨 그런 얘기 까지.”
봉사활동으로 영화제에 참석했지만, 이 사람도 엄연한 임창태 사단이다.
임창태 감독과, 조연출 밑에서 인물 조감독으로 일하던 그는, 단편영화를 찍겠다는 일념으로 영화사를 뛰쳐나왔다.
이후, 유명 드라마 작가에게 작품 검수도 받고, 수업도 받으며 3개월을 넘게 공들여 쓴 대본 이름이 바로,
단편 [아드리안의 하루>.
그리고 부푼 청운의 꿈을 안고 [아드리안의 하루>를 영상으로 만들기 위해 단편영화 지원금을 신청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하하… 실패한 영화인입니다.”
“실패라뇨. 반드시 기회는 올 겁니다.”
덜 익었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한 명의 영화인.
그리고 나와, 박진우 연출의 팬.
이것만으로 함께 술잔을 기울일 이유는 충분하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정말 팬입니다. 연기를 너-어무! 잘하세요. 거기다, 그 박진우 연출님? 그 분도 꼭 뵙고 싶습니다. 그분 정말 천재 아니십니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상 타시는 거 보고, 완전 흠뻑 빠졌습니다. [양치기 청년> 그 영화 세 번이나 봤어요.”
윤제훈이라는 남자는, 순수한 면이 있는 남자였다.
우연한 기회에 마주한 재미난 인연이다.
이후, 몇 잔의 술이 오갔다.
술이 약한지 금세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윤제훈이라는 남자는.
“잠시만요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 고깃집 구석에서 자신의 가방을 들고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거…”
A4 용지가 집게에 꽂혀있는, 책이었다.
“이게 뭔가요?”
나는 긴장하며 종이뭉치를 받아들었다.
“[아드리안의 하루>?”
“예.”
윤제훈 감독이 썼다는 [아드리안의 하루>의 대본이었다.
섭외인가?
하지만, 이는 기우였다.
그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다해 말했다.
“실패한 아마추어의 영화요, 글입니다만… 꼭 한번만 읽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도 배우님이 한번 읽어주시면, 속 편히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패한 단편영화 대본.
내가 읽는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 만은.
감독은 본디,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고 일전에 박진우 연출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이 글을 읽음으로써 이 영화인의 가슴에 맺혀있는 무언가가 풀릴 수만 있다면, 두 번 세 번 읽을 수 있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윤제훈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다시 한 번, 종이뭉치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안의 하루>이 때 까지만 해도 몰랐다.
윤제훈이 내게 건넨 이 작품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를.
[ 책 먹는 배우님 – 72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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