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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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80화. >80.
“재희 유튜브 동영상… 지금 조회 수 몇이지?”
“지금요? 어디 보자, 게시된 지 일주일 지났는데 880만 넘었네요. 와… 빠르다.”
런던 트라팔가에서 즉흥적으로 버스킹 무대에 오른 한국 배우의 뮤지컬 동영상은 뒤늦게 불타올랐다.
동영상 게시자가 스트리밍 활동을 하지 않던 일반인.
또 동영상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조악한 영상이라는 점은,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채 그대로 묻히는 듯 보였으나.
‘도재희’라는 이름값이 주는 영향력은 상황을 반전시켰다.
런던의 한인들과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SNS를 통해 차츰차츰 리트윗 되더니, 이틀 뒤에는 상승기류를 타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주간베스트 순위권에 오르며 한국 포탈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끝자락에도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였다.
L&K에게 그 소식이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
“뭐? 880만?”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조금씩 이름을 알린 동영상이 되버린 ‘트라팔가 버스킹’
L&K 매니지먼트 1팀 사무실.
박찬익 팀장은 동영상을 직접 확인하며 황당하다는 듯 허허, 웃음 지었다.
“재익아, 너 이 바닥에 몇 년 있었지?”
“10년 좀 안됐죠.”
“이런 경우 본적 있냐?”
“어떤 경우요? 외국 나가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거요? 아니면, 오히려 일거리 물어오는 거요?”
“당연히 후자지. 이게 구설수야? 이만큼 건전하게 해외여행 하는 애가 이 바닥에 얼마나 있다고 그래? 잠깐, 건전한 게 아니지. 영특한 건가? 흐흐.”
대게 해외에서 출발한 SNS 소식들은, 잠시 반짝이다 마는 경우가 많다.
OO배우를 미국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사진도 찍어주고 착하더라. 라는 ‘썰’ 정도.
그 마저도 이미지 세탁을 위해 기자들과 동행하는 경우도 있으니 신뢰하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대다수 배우들의 해외여행은 극비에 붙여지는 경우가 많고, 알려지는 경우는 사고를 쳐서 스포츠 신문 1면에 오르는 경우가 다수.
오히려, 화제를 일으키며 ‘일거리’를 물어오고,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는 이런 경우는.
“당연히 처음 봤죠.”
황재익이 씨익, 웃음 지었다.
“허, 참. 될 놈은 된다더니, 이제는 길거리에서 노래만 불렀는데도 이렇게 뜨는구나.”
박찬익 팀장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근데 재희, 원래 노래도 했나?”
“아뇨.”
“그치? 아니지? 근데 왜 뮤지컬 컴퍼니에서 연락이 와? 솔직히 탑 급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서는 가창력 많이 딸리잖아”
“아무래도 티켓 때문에 그렇겠죠. 재희면 홍보에 어마어마하게 도움이 될 테니까.”
“알지, 아는데. 이 정도로는 턱도 없을 텐데? 노래라는 게 당장 배운다고 느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이다.
일반인 치고 노래를 잘하긴 했지만, 프로의 벽은 높기만 하니까. 아마추어 가수들도 이 만큼 노래하는 사람은 넘쳐난다.
“그렇긴 한데… 저는 ‘도재희’ 이름이랑 연기력이면 커버 가능하다고 보긴 하거든요…? 근데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재희가 안 해요.”
어차피, 답은 정해져있는 문제였다.
“재희가 이제부터 영화만 하겠다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확실하게 보일 수 있는 ‘무기’가 연기인데, 춤이랑 노래가 주력인 뮤지컬을 한다? 에이, 제가 재희랑 벌써 2년 넘었잖아요. 잘 아는데 안 해요. 안 해.”
“그렇지? 한창 날아오르는 시기에 뮤지컬은 좀…”
어차피, 도재희 스스로도 뮤지컬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커리어에 황금기를 맞는 이 순간에, 굳이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없는 무대에 설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한 ‘무기’는 얻었다.
기술적인 방향으로서의 ‘보컬’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접근한 ‘음악’은, 제법 근사하게 소화해낼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뮤지컬 말고….”
다른 ‘방향’ 이라면 몰라도.
박찬익 팀장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음악 영화라면 모를까.”
*
“에?”
유튜브 주간 핫 이슈에 오른 내 동영상.
880만 조회수.
알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줄기차게 회사에서 연락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제껏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간 기차 여행을 하면서, 나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은 넓고, 사건도 많으니까.
“….”
그런데 우연히 열차에서 만난 나를 한 눈에 알아본 사람.
도대체, 누구냐 넌.
“누구세요?”
내 질문에 백금발의 여자가 선글라스를 힐끔 벗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
푸른 눈동자에, 백옥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하얀 피부.
160cm도 되지 않을 듯 작고 왜소한 체격이지만.
그녀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나, 알지?’
그래, 어딘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모르겠다.
정말로.
그녀가 물었다.
“저 몰라요?”
“… 네.”
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아아?”
마치, 나를 모르는 사람은 오랜만인데? 라고 말하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장난스럽게 눈빛을 바꾸며 말했다.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
아, 그러세요.
난 당신이 누군지가 더 중요한데.
“이거, 당신 맞죠?”
그녀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여전히 휴대폰에는 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신기하네요. 이런 곳에서 다 만나고.”
차갑게 느껴지던 벽이 단번에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우연히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노래를 듣고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해서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한국 배우? 거기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마주칠 줄은…”
하지만.
“누구세요.”
나는 누군지 알아야겠다고.
내 질문에 그녀가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더니, 곧 이어 자신의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어 아이팟에 꽂은 뒤 내게 건넸다.
… 들으라는 건가?
조심스럽게 받아든 이어폰을 귀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아주 익숙한 멜로디가 귀를 간질거린다.
엘라니 오코너(Ellani O’connor)의 [My Home.>
나도 알고 있는 노래다.
영화 [인턴의 하루>의 OST로 유명한 노래로, 팝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래니까.
근데, 이게 어쨌다는 거지?
“My Home 이네요.”
내 말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휴, 다행이다. 노래는 들어봤나 보네요. 못들어 봤으면 어쩌나 했네.”
“그럼요. 이게 얼마나 유명한… 어?”
내가 설마 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맞아요. 제가 그 노래를 불렀어요.”
아, 이런.
*
엘라니 오코너 (Ellani O’connor)
자신만의 보컬 색이 뚜렷한 팝 아티스트.
뉴질랜드 계 미국인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차세대 팝의 여왕.
16세에 데뷔하고 18세에 그래미 팝 어워드에서 솔로 팝 아티스트 상을 받은 천재 싱어송라이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10년 전 이야기.
벌써, 20대 후반에 가까워진 그녀가 내게 말했다.
“못알아봐서 조금 민망했다고요.”
“미안합니다.”
알아보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엘라니에게 다분히 경계심을 드러냈으니 내가 먼저 사과했다.
하지만 엘라니는 얼굴보다 목소리가 더 유명한 가수라고.
내가 입술을 삐죽이자 엘라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후후, 농담이에요. 제가 너무 짓궂엇나요.”
엘라니도 내가 누군지 확실하게 알고나자, 처음의 그 차갑게만 느껴지던 분위기가 묘하게 풀어졌다. 나는 빳빳하게 굳어있던 어깨의 긴장을 풀어냈다.
그제야 궁금증이 밀려온다.
엘라니 오코너라니.
아메리카 팝 씬의 거물이 왜 여기 있는 걸까?
“여행 중이신가 봐요?”
내 질문에 그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스케줄이요.”
“네?”
스케줄?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환승 기차를, 스케줄 때문에 탔다고?
거짓말. LA에서 출발한 퍼스트 클래스가 아니라?
내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자, 엘라니는 웃으며 말했다.
“휴식을 취하려고 했는데, 스케줄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내용을 들어보니, 스위스에 있는 본인 별장에서 아주 짧은 휴식을 취하려는 찰나.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명 명품 패션브랜드 런칭 행사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패셔니스타로도 유명한 그녀가 가장 애용하는 브랜드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AereMang.
글로벌 스타는 뭐가 달라도 다른 걸까.
“대단하네요.”
하지만 엘라니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혀요.”
그리고 다분히 귀찮은 기색을 드러냈다.
“가수가 노래만 하면 되지.”
그리고 옆에 있는 경호원 아저씨 둘을 힐끔거리고는 내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죠?”
“….”
알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대충.
아마,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 한 것이 아닐까.
스케줄이며 안전을 위해 경호원이 따라붙고. 개인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다, ‘음악’이 아닌 ‘귀찮은’ 다른 일로 밀라노로 ‘압송’ 당하는 저 기분을 나는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국내 유명 아이돌그룹만 하더라도, 스케줄이 시간당이 아니라, ‘분’당 잡혀있는데.
엘라니 오코너 같은 세계적인 팝 스타는 어떨까.
미녀, 천재, 패셔니스타, 차세대 팝의 퀸.
모든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녀는,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절정을 맞이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재희는 여행 중인가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후에는 내 여행 이야기가 주를 이었다.
2시간 조금 넘어가는 짧은 기차 여행 동안, 런던과 프랑스, 스위스를 오간 내 여행기는 최고의 안주가 되었다.
“와, 아무도 못 알아 봤다고요? 정말?”
“그럼요. 완벽한 혼자만의 여행이었죠.”
“오 마이 갓! 말도 안돼. 선댄스가 낳은 최고의 스타를 못 알아보다니? 으아! 너무했네! 정말.”
“하하! 덕분에 저는 아주 재밌는 여행을 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신기한 인연도 만나고.”
내 말에, 엘라니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쭉 혼자 여행하는 건가요?”
“네. 로마로 갈 예정이에요.”
“얼마나요?”
“사흘 정도.”
그리고 잠시 침묵.
침묵 이후에, 엘라니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미소 지었다.
“… 재희가 부럽네요.”
“….”
대수롭게 넘길 수도 있는 말이다.
그녀 같은 사람이 내가 뭐가 부럽겠는가.
이미 동 나이 대에서 누릴 수 있는 ‘성공’ 이라는 성공은 다 누려본 여자인데 말이야.
하지만, 왜 그녀의 말이 정말 ‘진심’으로 느껴질까.
아메리칸 드림은 이루었지만, 10대부터 유리 온실 속에서 자라온 작은 카나리아. 그녀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노래하는 인형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 아닐까.
그녀는, 아름답지만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제기랄, 하필 이럴 때 런칭이라니. 퍽킹 Arermang”
“….”
… 퍽킹이라니.
슬픈 눈이라는 말은, 정정.
어쨌든 뭐.
딱, 여기까지다.
2시간여의 짧은 열차 안에서 정말 우연히 마주한 인연.
이제 엘라니는 경호원 두 명과 함께 이곳 패션의 본산 밀라노에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하고.
나는 로마 행 열차로 환승할 예정이다.
“그럼, 즐거웠어요.”
“재희 즐거운 여행 되세요.”
이렇게 인사하고 나면, 아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나는 캐리어를 끌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십 분 정도 대기 한 뒤, 정오 12시 정각에 출발할 예정인 로마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좌석은 비교적 한산했다.
편안하고 조용한 열차 의자에 몸을 기대어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 엘라니 오코너라니.”
믿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때.
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눈을 비비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엘라니?”
엘라니 오코너.
그녀가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하얀 패딩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열차 내부로 들어서고 있었다.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이내 나를 발견하더니 씨익, 미소 지으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후, 여행 친구나 할까요?”
여행 친구라니.
갑자기 무슨.
“스케줄은요?”
내 질문에 엘라니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답답한 질문이네요. 도망쳤어요. 귀찮아서.”
“네?”
뭐, 이런 무책임한…
“괜찮아요. 참석하는 사람들 많아서. 어차피 저 하나 빠진다고 티도 안 날걸요?”
엘라니는 그런 것 따윈 이제 관심도 없다는 듯,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팔을 위로 쭉 뻗었다.
“으아, 신난다!”
“….”
창밖에는 이리저리 뛰고 있는 경호원 아저씨들이 눈에 들어왔고.
끼이이이이익!
열차는 정오 정각에 맞춰 출발했다.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엘라니는 신난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귀찮게 절대 안할게요.”
“….”
“로마 가봤어요? 제가 안내 제대로 해 줄게요.”
엘라니 오코너.
그녀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대사관에서 도망친 왕녀 마냥, 내 앞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나는.
“… 모자라도 쓸래요?”
내 모자를 그녀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 책 먹는 배우님 – 8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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