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84)
84.
TV-K 스타 어워드 2019.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메인 전광판으로 향했다.
– “내가 지금 너를 죽이면, 미래의 현실이 바뀐다고?”
– “…”
– “뭐라고 말 좀 해봐! 자꾸 뒤로 숨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직접 말 해!”
영상이 끝나자, 무대 위에서 현란한 드레스와 깔끔한 자주색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배우 출신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네! 이상! [시간의 띠> 하이라이트 영상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양익찬, 황소리, 도재희. 총 3인의 대상 후보를 모두 만나 보았는데요. 어떠셨습니까? 짐작이 되십니까?”
“전혀요. 후보들 중,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서는 플로어매니저(Floor manager)가 인 이어를 끼고 두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녹화 세트의 마에스트로. 그의 손짓에 맞춰 바주카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수십 대의 카메라가 레일 위를 움직이며 불을 번뜩인다.
“큐!”
플로어매니저의 큐 사인에 맞춰 사이즈가 돌아가고, 내 앞에 멈춰선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번쩍!
2019년 TV-K 어워드.
대상 후보, 도재희.
나는 미리 ‘준비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시선을 앞에 집중시킨다.
지금, 이 표정은 전국에 생방송 되겠지.
곧 이어 플로어매니저가 두 손을 휘저었다.
“잠시 후, 만나보겠습니다.”
광고가 나오는 시간.
카메라가 불시에 찾아올지 모르는 긴장된 녹화 생중계에서 꿀 같은 휴식시간이다.
레일 위를 움직이던 녹화 카메라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시간의 띠> 팀 배우들이 자리했는데, 선배님 한 분이 내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 불러 줄 거지?”
“선배님, 제가 받게 된다면 당연하죠. 물론, ‘받게 된 다면.’”
“에이, 왜 그래.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소식.
“재희가 안 받으면 누가 받아?”
어차피 대상은 도재희.
겸손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나는 긴장된 기색을 애써 지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석을 가득 메운 배우들.
방송 삼사의 시상식 보다 일주일 먼저 치러진 덕분에 참석자의 숫자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아마, TV-K 자체가 방송 삼사에서 실적을 낸 뒤 스카웃된 대형 PD들이 다수 모여 있기 때문이리라.
그 중 뜻밖의 손님은, 조승희.
[피셔> 이후, 만나지 못했던 조승희가 내 ‘대상’을 축하해주기 위해 무리들을 이끌고 시상식을 찾았다.“재희!”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나는 웃으며 화답해주었는데, 주변에 앉아있던 배우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내게 꽂혔다.
‘조승희랑 친한가봐.’
‘소문이 사실이었네.’
“….”
아무래도 나, 인간관계가 너무 얇은 게 아닐까.
악의적인 시선들이 너무 많이 빗발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시선들을 깔끔하게 무시해주었다.
내년부터는, 누구와 친한 배우가 아니라 ‘도재희’와 친해지고 싶은 배우들을 차례차례 만들 예정이니까.
“녹화 재개할게요!”
“30초 전!”
플로어매니저가 분주해졌다.
“스텐바이!”
“하이! 큐!”
“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TV-K 2019 스타 어워드. 마지막 대상 수상확인만을 앞두고 있는데요.”
큐 사인이 돌아가고, 시상식이 재개되었다.
긴장된 표정으로 곱게 접힌 편지봉투를 열어보는 여자 사회자.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대망의 대상 수상자는…. ”
그리고 이 시상식, 말해 무엇 할까.
“도재희! 축하합니다!”
펑! 퍼버벙!
사이드에서 터지는 꽃가루가 시상식 전체에 휘날렸다.
“축하합니다! 배우 도재희는, [시간의 띠>를 통해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데뷔 3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사회자의 인사멘트는 귀에 꽂혔다 그대로 달아나 버린다.
“축하해요!”
“역시!”
주변 배우들의 축하 인사 때문이다.
정신이 없네.
배우들이 너나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고, 나를 얼싸안고 끌어안았다.
이 비록, 모두 연출된 행동일지라도. 나 역시 진지하게 받아주었다.
달리 카메라 한 대가 서 있는 나를 반바퀴 휘감았다.
옆모습에서 천천히 앞모습으로. 일순간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내 조금씩 멀어지며 내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플로어매니저가 옆에서 손을 크게 빙글빙글 돌린다.
“큐!”
앞으로 나가야할 타이밍.
나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무대 정중앙에 섰다.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눈빛을 정면으로 맞서며 나는 마이크를 붙잡았다.
카메라 너머에서 보고 있을 수십만의 대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도재희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이거,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까.
*
파노라믹 포토그래피(panoramic Photography).
배우는 고정된 상태로 카메라가 수평으로 선회하며 원을 그리는 촬영 기법.
정면에서 느리게 선회하며 뒷모습으로. 그리고 앵글이 다시 정면에 도착하면, 완벽히 다른 공간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배우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로 포문을 연 나는, 숨을 골라냈다.
어느새, 변한 내 무대.
대종상 영화제.
객석과 연회 테이블을 메운 수많은 영화인들을 향해 말했다.
“이 상을 받을 수 있기 까지 도와주신 많은 분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매일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걱정해준 재익이 형. 임창태 감독님, 박진우 감독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2019년 대종상 영화제.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정부가 주관하는 유일한 영화 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상. 가끔 수상 논란으로 단두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곳에서 나는, 총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최우수 작품상에 [이선>
감독상에 [이선>의 임창태 감독님.
시나리오 상에는 [양치기 청년>의 박진우 연출.
남우주연상에는 도재희.
벌써부터 기자들이 시끌벅적하게 기사를 써내는 소리가 들린다.
논란에 또 논란을 낳을 만큼, 압도적이지만.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나’를 위한 영화제.
“너무나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2019년에 저를 도와 주셨듯이 2020년에는 이 상에 보답할 수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수금(收金)’이다.
물 들어오면 노 젓는 뱃사공처럼.
바람이 불어오면 돛을 펴는 윈드 서퍼처럼.
나는 연말 시상식에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며, 상을 휩쓸었다.
감격스러울 법도 하건만.
“감사합니다.”
피가 끓어오른다.
환희, 엑스터시(Ecstasy:황홀경) 같은 감정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 인정하자.
나, 그렇게 쿨한 인간은 아니잖아.
카메라 너머에서 보고 있을, 여전히 내 자리를 부러워하는 적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준다는 마음이 더 크다.
송문교, 임주원, 윤민우. 박시현 등. 이제껏 나를 향해 수군댔던 배우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다음 작품에서 뵙겠습니다.”
기억하자.
지금 받는 상들은, 잠시 공을 치하하는 상패 쪼가리에 불과하지, 탄탄하고 안정적인 연예계 생활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자리가 높을수록, 도전은 계속되고 수많은 위협이 동반한다.
매번 그래왔듯.
내가 신인이든, 아니든.
달라진 것은 없다.
*
성탄 연휴와 새해 연휴에 맞춰, 아버지와 어머니는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새해를 외국에서 보내는 것이 처음인 것은 당연하고, 해외여행 자체가 처음이신 부모님은.
“새해인데 혼자 괜찮겠어?”
“저는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이래도 되나 모르겠네…”
혼자 남겨질 나를 걱정하셨지만.
“그럼요. 이러셔도 되시죠. 재희도 여행 다녀왔는데. 짐 이리 주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이, 고마워라.”
재익이 형의 도움으로 인천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한 후, 한 장의 인증 사진과 함께 출국하셨다.
아주 환한 얼굴로.
올 해 연말은 이렇게 나 혼자 보내게 되었다.
쇼파에 푹 늘어진 상태로.
지이잉! 지이이잉!
– 재희야! 대상 축하하고! 새해 복 많이 받고^^
– 재희 선배님! 올 해의 영화배우 상 수상하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뭐.
스쳐지나간 배우들의 수많은 축하 문자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었지만, 어딘가 서글퍼진다.
이들은 결국, 인간 도재희가 아니라, ‘배우 도재희’와의 친분을 원할 뿐이니까.
하지만, 죽으라는 법도 없다.
‘인간’ 도재희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박진우 연출이다.
내 인맥이 그렇지 뭐.
– 캐스팅 때문에, 영 골치가 아파서 말입니다. 소주에 껍데기 어떠십니까?
나는, 미국 [아다지오>의 오디션과 동시에 박진우 연출의 영화 [7년의 기억>에 참여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캐스팅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 어디에서 볼까요?
*
집 인근에 있는 조용한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동행한 인원은 재익이 형, 나, 박진우 연출과 SAFA에서부터 쭉 인연을 쌓아온 제작부장 김민희님 총 네 명.
“이거, 쑥스럽지만…”
박진우 연출이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어?”
명함에는 [너울>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영화사 로고가 찍혀있었고. ‘총 연출’ 이라는 직함 옆에는 ‘박진우’ 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영화사군요. [너울>이라…”
“맞습니다. 우리말로 바다의 큰 물결이라고 하더군요. 한국 영화에 물결을 일으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거대한 물결.
대종상 영화제에서 함께 나란히 수상하고 [양치기 청년>이 311만 명이라는 ‘기적’에 가까운 흥행을 거둔 직후의 만남.
단 한 작품으로, 박진우 연출은 완벽하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축하드립니다. 이거, 이제부터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아닙니다. 사무실은 영등포에 있습니다. 언제 한번 들려주십시오.”
역시, 술은 마음 편한 사람들과 마셔야 하는가 보다.
결국 이 자리도 일 얘기 때문에 만났지만, 주문한 고기를 전부 비울 때 까지 그 누구도 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소주 한 병, 두병을 비워나가던 무렵.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실은, 부탁 하나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부탁입니까?”
박진우 연출이 내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을까.
“캐스팅 관련해서 조언을 좀 얻고 싶습니다.”
“아, 조언이요.”
내가 영화사 [너울>의 [7년의 기억>에 참여하면서 신인 배우풀은 L&K가 독점하다시피 가져왔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배우 몇몇이 충족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
박진우 연출은 내게 그 ‘권한’을 함께 고민하자고 말했다.
“배역 오디션에 함께 참관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아.”
“배우가 배우를 보는 ‘눈’을 믿습니다. 물론, 도 배우님을 믿는 것이지만요. 하하.”
조금 뜻 밖의 제안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탁.
오디션 참관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관 정도야… 어렵지 않지요.”
“감사합니다!”
박진우 연출이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들었다.
“보시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필 사진들과 배우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있다.
나는 배우들의 프로필을 들어올렸다.
어딘가 기분이 이상해지는군.
내가 [피셔>에서 조승희의 눈에 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 책 먹는 배우님 – 84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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