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9)
9.
송문교는 처음에는 조금 이기적이긴 했지만, 건방진 놈은 아니었다.
“우리 셋 중에 누구 한 명 성공하면, 진짜 끌어주자. 어때?”
나와 문성이 형에게 이런 제안을 할 때 까지만 해도, 우리들 사이에선 제법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송문교는 성공과 동시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후배들을 시켜 나를 비웃었으며 회사에서 내 존재 자체를 미미하게 만들었다.
‘문교가 들어가는 작품인데, 안되겠지?’
매니저들은 송문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점점 잊혀져갔다.
묻고 싶었다.
‘너 나한테 왜 그랬냐?’
하지만 나는 병신 같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런 질문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궁금했던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개새끼야! 네가 나를 엿 먹여? 일부로 그랬지 이 새끼야!”
“…. 아오! 문교야 좀!”
잔뜩 흥분한 송문교를 말리지도 못하고, 박찬익 팀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연거푸 한 숨만 내뱉었다.
하지만 송문교는 당장이라도 한대 칠 기세로 내게 주먹을 들어보였다.
“씨발! 오디션 하나 붙었다고 눈깔에 봬는 게 없지?”
“야! 주먹은 안돼! 얼굴은 절대 안돼!”
SBC 옥상, 리딩이 끝나고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이 회식을 위해 인근 고깃집으로 이동했지만, 나와 송문교만이 여기에 묶여있다.
“그만하자.”
“뭐? 뭘 그만해 이 새끼야. 사람들 앞에서 나 개망신 시켜놓고. 뭘 그만하냐고!”
“네가 준비가 부족했던 걸, 내 탓으로 돌리지 마. 추하니까.”
“… 너, 이 새끼가… 진짜 돌았냐?”
송문교가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자, 박찬익 팀장이 송문교의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
“안돼! 얼굴은 안돼! 문교야! 폭력은 안돼!”
“이거 놔! 안 놔?”
“안된다고! 죽어도 절대 못 놓는다! 정 그렇게 때리고 싶으면 차라리 형을 때려라!”
“아오, 저 찌질이 새끼랑 같은 작품 들어가는 것도 쪽팔려 죽겠는데. 주연 체면이 이래가지고 되겠냐고! 시발! 리딩 때 나 들으라는 듯 일부로 엿 먹이는 거 봤어 안 봤어! 형은 저 새끼 캐스팅 될 때! 안 막고 뭐 한 거야!”
“….”
송문교가 나를 무시했던 이유.
‘성공’ 이라는 달달한 맛을 보니, 성공하지 못한 인간들의 삶이 한 없이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자신처럼 우뚝 일어서지 못한 나를 찌질이로 폄하하고, 내게 괜히 손 한번 잘못 내밀면 ‘뜨지 못하는 전염병’이라도 옮을까 싶은 그런 역병처럼 보였겠지.
“고작 그런 이유였냐?”
그리고 평생 자신의 밥그릇을 노리지 말고, 며칠 전의 나처럼, 바닥에서 기어주길 원했을 것이다. 패배감이나 실컷 느끼고 질투나 하면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단순한 그런 이유라니.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역겹네, 정말.”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되었을까, 따위의 시시한 감상 은 없었다.
송문교가 처음으로 열등감을 내비치는 지금.
내 눈앞에서 화를 못 이겨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모습을 보기를 바래왔었구나, 싶을 뿐이었다.
“궁금해?”
“뭐?”
“내가 왜 너를 엿 먹이려고 한 것 같은데?”
내 질문에 송문교가 거친 호흡을 들이마시며, 눈동자를 굴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이유가 뭐야?”
“있겠냐?”
“… 뭐?”
이유?
“없어.”
만들어야 한다면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딴 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구차하게 무슨 이유냐. 너 엿 먹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
“… 뭐 이 새끼야?”
“원래 이 바닥 그런 곳이라며. 선배, 선생님들 다 재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며. 잊었어? 네가 내게 해준 충고 아냐?”
“… 너 이 새끼 그걸 아직도…”
나는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송문교가 찍었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연애, 짭짤한 썸>.
거기서 급하게 단역이 필요 했고, 도와달라는 내 제안에 대한 답변.
‘내가 왜?’
‘…’
‘여기원래 이런 곳이야. 너 같으면 자기 밥그릇 훔치려드는 놈이 곱게 보이겠냐?’
그리고 송문교는 자기 힘으로 일어나라고 내게 ‘조언’했다.
‘네 손으로 쟁취해. 버러지 처럼 배역 동냥 받을 생각하지 말고.’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만. 이 빌어먹을 새끼야, 꼭 그렇게 말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따져 묻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뭐, 이젠 상관없지만.
이유야 어쨌든,
“왜 그래? 새삼스럽게. 네 말대로 이런 게 자연스러운 세계잖아.”
“…..”
나는 이 세계에 발을 들였고, 이제는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깊게 관여해 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다. 그러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밟고 일어날 일종의 제물이 필요했을 뿐이고.
“… 너 [청춘열차> 오디션 일부러 봤냐? 나 때문에?”
“에이, 설마. 네가 뭐라고.”
송문교가 내 신경을 거슬렀을 뿐이다.
*
“왜 이제야 왔어? 얼른 들어와!”
회식 장소는 상암동 근방에서 가장 큰 고깃집이었다.
감독님 휘하, 선생님 급 선배님들이 앉은 테이블이 정중앙에 위치했고, 그 양옆으로 조연배우들과, 연출 제작부 스텝들이 자리했다. 소윤과 김균오는 감독님 좌, 우 옆자리에 앉아있었고, 송문교의 자리와 내 자리도 이 테이블이었다.
“어어 재희 군. 여기 앉아!”
‘재희 씨’ 라고 부르며 선을 긋던 오미란 선배님은 어느새, 내게 말을 편하게 하며 자신의 옆 자리로 불러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나는 환하게 웃으며 오미란 선배님 옆 자리에 앉았다. 불판 위의 고기는 어느새 노릇하게 익어있었다.
“집게 이리주세요. 이제부터라도 제가 구울게요.”
“으응? 그럴래? 그런데 문교 씨는 왜 그러고 서 있어?”
“….”
오미란 선배님의 질문에 송문교가 쭈뼛거리더니, 테이블 가장 외진 자리로 걸어갔다.
“어어? 문교 씨. 거기 테이블 고기도 다 안 익었는데? 여기로 오지?”
“속이 조금 불편해서요.”
싹싹하고 살뜰하게 선배님들을 먼저 챙겨야 할 송문교가 오히려 선을 그어버리자, 오미란 선배님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 속이 불편한데 고깃집은 왜 와?”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주연 배우가 감독님 앞자리에 앉아야지. 버릇없게 무슨 경우야.”
그런데 어째… 멘트가 조금 쌔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드라마의 흥망을 좌지우지할 주연 배우라면, 이런 자리에서 오히려 선배님들을 깎듯이 챙기며, 감독님의 말동무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송문교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계속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저 친구, 원래 저래?”
오미란 선배님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글쎄요. 저도 안 친해서요.”
“… 그래? 쯧,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될 텐데.”
그리고 눈빛을 180도 바꾸고는 내 접시 위에 고기 한 점까지 올려주시며 화룡점정을 찍으셨다.
“재희 군. 먹으면서 해.”
아주 환하고 친절한 미소로.
“… 감사합니다.”
오미란 선배.
은근히 권위의식도 있고, 여배우로서 후배들에게 바라는 바도 뚜렷하게 존재하는 사람이다.
“…..”
이 사람에게는 무조건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그 때, 감독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씀하셨다.
“자자. 잔 채우시고.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돌아가면서 건배 제의 할 거니까, 다들 멘트 준비해요?”
족히 삼십 명은 되는데, 모두 건배를 하면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시겠다는 거야.
하지만 나는 잡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술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자! 배우님들 오늘 리딩 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눈앞에는 찰랑이는 소주도 있고, 두꺼운 삼겹살도 있다.
일단은, 먹고 생각하자.
“건배!”
짠!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고기집을 가득 채운다.
*
나는, 이틀의 휴가를 제안 받았다.
“리딩도 잘 마무리 되었으니까, 이틀 만 푹 쉬었다 와.”
“… 일종의 휴가인가요?”
“그래. 작품 들어가면 쉴 시간도 없을 거다. 그러니까 술 먹지 말고, 그냥 쉬어. 안 쉬고 놀다가 막상 촬영 들어가서 후회하는 애들 여럿 봤다.”
박찬익 팀장의 말에 내가 한 대답은.
“이제 더 이상 쉬는 것도 지겹다고요.”
쉬는 것도 지겹다.
이제껏 내가 얼마나 쉬었던가.
마음 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일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아직 세트도 짓는 중이고, 촬영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며 차분하게 기다리라고 조언해주었다.
“배우는 잘 쉬는 것도 일이라더라. 그렇게 쉬는 게 갑갑하면, 우선 이거라도 읽어보고 있어.”
“이게 뭔데요?”
박찬익 팀장은 내게 대본 몇 권을 건네주며 말했다.
“올 하반기에 크랭크업 들어가는 영화들인데, 너한테 괜찮을 것 같아서 챙겨왔다. 마음에 드는 작품 있으면 한번 골라 봐. 오디션 넣어줄게.”
이번 일로 확실히 회사에다 눈도장을 찍었는지, 이제껏 누구도 내게 권하지 않던 ‘신작 대본’을 내게 건네준다.
대본은 총 세 권이었다.
– 영화 미개봉작
[면목동 예술가들>– 영화 미개봉작
[칼의 외침>– 영화 미개봉작
[버스 드라이버>모두 깔끔하게 제본 된 영화 시나리오 였다.
프리프로덕션 진행 중이며, 조만간 배역 오디션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 감사해요.”
“너 한테 대본 주는거 처음이지? 미안하다. 이제야 알아봐서. 너 리딩 때 보니까, 연기 참 잘하더라. 이번 작품 잘 끝내고 영화 한 두 개만 하면, 어쩌면 네 이름으로 섭외도 들어오겠어.”
… 섭외.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오디션을 통해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갖기 위해 돈을 더 크게 부르며 쟁취하려 드는 것.
“… 좋네요.”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 문교도 처음 시작은 나쁘지 않았는데. 어째 얘는 경력을 쌓으면 쌓을수록 점점 꼬이냐 그래? 아주 스트레스야. 뭐, 이런 얘기 너한테 할 얘기는 아니지만.”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런데 문교랑 사이, 정말 괜찮겠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어린 애도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조심하겠죠.”
그러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천상 관심받고 싶어하고,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아직까지는 성격이 도도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푹 쉬고. 이틀 뒤에 보자.”
박찬익 팀장은 차에 올라 회사로 돌아갔고, 나는 홀로 도곡동의 외진 빌라 건물의 계단을 올랐다.
조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흡수 하시겠습니까?]손에 들려있는 세 권의 대본들은 어김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대본을 읽어보고 싶은 기대감을 애써 누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르다.
[대본 친화력이 MAX 상태가 되었습니다.] [미개방 영역 ‘완성도’가 개방됩니다.] [대본의 완성도를 측정합니다.] [완결되지 않은 대본에는 효력이 없습니다.]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세 권의 대본에는, 조그만 숫자 따위가 적혀있었다.
– 영화 미개봉작 [면목동 예술가들> [67/100]
– 영화 미개봉작 [여인의 외침> [58/100]
– 영화 미개봉작 [버스 드라이버> [62/100]
애초에 대본 인쇄에 쓰이는 잉크와는 질감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 이건.”
새로운 능력이다.
[ 책 먹는 배우님 – 9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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