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90)
90.
[7년의 기억> 대본 리딩이 끝나고, 내게는 약간의 공백이 생겼다.박진우 연출은 촬영 로케이션 선정에 박차를 가했고, 전주에는 병원, 회사로비, 고시원 등. 거대한 영화세트가 세워졌다.
박진우 연출의 영화 제국이 준비되는 그 사이.
나는 짬을 내어 미국에 다녀와야 한다.
그래, 오디션.
공교롭게도 날짜는 [7년의 기억> 크랭크인 들어가기 직전이다.
결과는 영화 촬영 중에나 들을 수 있으리라.
보컬 및 기타 트레이닝에만 전념하던 그 사이.
오디션용으로 쓸 곡이 정해졌다.
국내 인디밴드 에나키A.narkey의 [이름 없는 새>.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밴드도 아니고, 많은 사랑을 받은 곡도 아니다.
어디서 알았는지 보컬 트레이너 호성이 곡을 물어오더니, 내게 강력하게 추천했다.
“이 노래를 영어 버전으로 만들어서 가는 것이 어때?”
나 역시, 마음에 쏙 드는 노래였다.
“무명 밴드가 부른, 무명가수에 대한 노래네요.”
“맞아.”
유행을 따라가야만 먹고사는 무명 뮤지션의 설움을, 철 따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새’에 비유한 서정적인 가사.
이와 대비되는 유쾌한 멜로디. Zap 하면, Crap이 터져 나오는 신나는 정 박자에 기타 코드도 어려운 편이 아니다.
“어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명 영화의 OST는 아무리 잘 불러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법일 테니까. 미국인들에게 오리지날리티가 존재하는 곡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괜찮은데요.”
거기다, 작곡가이자 밴드 리더는. ‘L&K 오디션 용’ 이라는 말에 아주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고 한다.
“사실, 그걸 겨냥하고 쓴 곡이거든요. 오디션. 마음껏 쓰시고 나중에 잘 되시면, 노래 제목 언급만 한 번 해주세요. 하하!”
원곡자의 허락도 있겠다, 거절할 이유는 없다.
“좋아요. 그럼, 이걸로 할게요.”
그 뒤의 연습 스케줄은 모두 LA 행에 맞춰 진행되었다.
AR버전에 목소리를 얹는 연습을 하고, 세션들과 함께 악보 보는 법을 익혔다.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고. 스케줄을 오갈 때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아무도 몰라요. No one knows.
내가 여기 앉아있어도. Even if I sit here.
겨울이 지나도. Even after winter
아무도 몰라요. No one knows.
I`m ordinary Bird man.
I`m ordinary Bird man.
음악은, 이렇게 극적인 효과를 가져 온다.
자주 듣는 음악이라도 그 감흥은 변치 않는다.
나는 LA행 직항 A항공 퍼스트 클래스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
북쪽으로 날아가는 새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은 감정적으로 변한 기분 때문일까. 유난히 하늘이 청명하기 때문일까.
2월.
겨울의 끝에서 있는 나.
계절을 따라 이동하는 새처럼, 하늘을 날아 미국으로 간다.
익명의 번호로 날아온 문자처럼.
내 진심으로 바다 건너 있는 저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길.
“한숨 푹 자.”
재익이 형이 내게 인사하고는 이코노미로 사라졌다.
비공식 일정이었지만 혼자 여행을 하던 것 때와는 다르게 박찬익 팀장을 비롯한, 기획팀장, 재익이 형,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 까지 동행한 비행.
나는,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뒤로 눕혀 몸을 뉘였다.
아무도 몰라요. No one knows.
나는 평범한 새. I`m ordinary Bird man.
노래 가사가 눈을 감긴다.
*
미국으로 출발할 때가 오후 2시였는데.
도착하니 오전 여덟 시다.
“으아아아!”
시간을 거슬러가는 일은, 여전히 적응 안 되는 걸.
따뜻하다고 느낄만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한국에 비해 선선한 느낌이다.
LA국제공항에 도착하고 공항 로비를 벗어나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일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UAA 에이전트 ‘빌’이 고급 리무진 밴을 이끌고 마중 나와 있었다.
“웰컴….! 어라?”
하지만 에이전트 ‘빌’은 내 뒤로 줄줄이 소시지 마냥 따라 붙는 스탭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 이런, 밴 한 대를 더 준비했어야 했나요?”
고작 오디션 하나에 L&K 핵심 인원들이 대거 동행한 이유.
최고급 대우를 약속한 UAA를 향한 감시와 내 ‘기 살려주기’에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절대 가벼운 대우를 받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말해주는 것.
유치해보이지만, 이무택 대표가 꼭 필요하다며 요구한 지시사항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다.’
계약 제의가 들어왔을 때만큼은 약자일지 몰라도, 계약한 순간부터 UAA와는 비즈니스 파트너다.
서로 돕되, 절대 고개 숙이지는 말 것.
“다음부터는 차량을 두 대로 준비하죠.”
에이전트 빌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두 대로 나눠 탈 만큼 밴의 크기가 작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찬익 팀장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투 카. 투 카.”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받아내겠다는 의지였다.
공항에서 출발한 차량은 산타모니카 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더니, 선셋 스트립으로 들어섰다.
에이전트 빌은, 숙달된 관광 가이드 마냥 캘리포니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캘리포니아에서 요새 떠오르는 유흥가라느니, 낮보다는 밤이 화려한 곳이라느니. 우리의 목적지가 있는 영화사인 하이마운트 픽쳐스 HighMount Pictures가 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가까운 웨스트 할리우드라는 둥.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오전 11시까지 준비를 마치고 숙소 입구로 나오시면 픽업 차량이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웨스트 할리우드의 어느 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괜찮은데요?”
7성급은 아니지만, 5성급은 되어 보이는 깔끔한 호텔 건물.
나이트클럽, 바, 오픈 형 펍 등이 주변에 있어 밤이 되면 조금 시끌벅적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는 만족했다.
하지만 박찬익 팀장이 태클을 걸었다.
“잠시 만요. 오디션 보는 배우들이 모두 이 호텔에 묵습니까? 똑같이? 그대로 통역해줘요.”
통역사의 통역에, 빌이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대답 하세요. 앤서! 앤써!”
“왜 그래요?”
내가 묻자, 박찬익 팀장이 말했다.
“확실히 알아보라는 이 대표님 지시야. 미야모토 료가 묵는 숙소보다 싸구려는 아닌지 확인하라고.”
“….”
아이고, 이 대표님.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네. 모든 인원들이 이곳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묵습니다.”
박찬익 팀장은 원하는 대답을 얻어낸 뒤에야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오케이.”
“….”
만약, 내 오디션 경쟁자들이 더 좋은 호텔에 묵는다면 회사 비용으로라도 내 객실을 업그레이드 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눈치를 주는 거지.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라고.
“좋은 호텔을 요구하려는 게 아냐. 여기 사람들한테 미야모토 료, 그 일본 밴드 보컬보다 네가 낮게 평가되는 게 싫은 거지.”
“… 뭐, 알겠습니다.”
L&K 입장에서는 내 커리어가 달린 절박한 일 인 만큼, 확실히 하려는 모양이다.
“이 정도는 부드럽게 넘어가자고.”
재익이 형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앞장섰고 나와 재익이 형은 웨스트 할리우드의 고급 호텔에 들어섰다.
박찬익 팀장과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 기획팀장님은 빌을 따라 UAA 사무실을 찾은 뒤, 하이마운트 픽쳐스를 미리 둘러보고 올 예정이다.
“고생하세요!”
“응, 푹 쉬고. 저녁은 같이 먹자.”
“네.”
박찬익 팀장이 걱정할 필요 없을 만큼 넓고 안락한 VIP룸.
웨스트 할리우드 중심에 위치한 호텔에서 가장 넓은 객실 중 하나인 이곳은, 과장 조금 보태서 달리기를 해도 될 정도다.
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내며 빙그르르 몸을 뒤로 돌렸다.
“후!”
객실에서도 보이는 할리우드 사인(The Hollywood Sign)
영화의 메카, 할리우드!
드디어 입성이다.
나는 미니바에서 맥주와 감자 칩을 꺼내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우와.”
네 명이 누워도 충분할 더블 킹킹 사이즈 침대.
나는 늘어지게 누워 기지개를 켠 후 과자를 집어 들었다.
주린 배를 과자로 채우려는데, 그러기 무섭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영어와 한국어 사이를 고민하던 나는.
“… 형?”
자신 없는 한국어로 대답했고, 곧 바로 재익이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0분 뒤에 식사 올 거니까, 밥 먹고 푹 쉬어 알았지? 어디 나가고 싶으면 꼭 전화하고.”
“아, 네. 형 고마워요!”
식사가 룸으로 들어오는 모양이다.
나는 마시려던 맥주를 내려놓고, 곧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물기를 털어내고 있으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문이 열리고 가운을 두른 호텔리어가 음식을 놓아주었는데, 내 얼굴만큼 커다란 햄버거와 피쉬 앤 칩스가 놓여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Thank you”
*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한참을 드러누워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눈 떠보니 어느새 선셋 스트립에 석양이 깔려있었다.
미국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잠만 자다니.
참, 많이도 잤다.
“으음”
나는 가볍게 세안을 마치고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7시에 식사를 하기 로 했던가.
식당은 호텔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
시간 맞춰 재익이 형이 내 객실을 찾았고, 나는 깔끔한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La Seine이라고 레스토랑이야.”
“오, 고기.”
식당의 한 귀퉁이에는 박찬익 팀장을 비롯한 스탭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좀 쉬었어?”
“네. 하이마운트는 잘 다녀오셨어요?”
“응. 별 거 없더라고. 그냥 좀 크다는 정도?”
하지만, 별 거 없었다는 말 치고는 무용담이 끊임없이 나온다.
“하이마운트 픽쳐스. 완전 영화 왕국이라니까? 안에 스튜디오가 몇 갠지도 모르겠어. 세어볼까 했는데, 입구에 있는 스튜디오 번호가 21인거 보고. 포기야, 포기.”
“….”
아, 그러세요.
식사는 코스 요리였다.
식전 빵에 버터가 나오고 입맛을 돋우는 버섯과 과일을 적당히 익힌 에피타이저, 스프와 해산물 튀김 샐러드. 파마산 치즈 가루가 뿌려진 부드러운 감자 요리에, 적당히 익힌 소고기 스테이크에 레드 와인까지.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려는 무렵.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이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킨 채로 말했다.
“저기, 맞지?”
“응?”
박찬익 팀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와, 맞네. 맞네.”라고 중얼거리며 턱짓을 하기 시작했다.
응? 뭐지?
나는 고개를 돌려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같은 호텔에 묵는다는 에이전트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네.”
“….”
그래.
박찬익 팀장의 말처럼, 아시아의 별이라고 불리는 미야모토 료가 자신의 스탭들을 거느린 채, 같은 식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 역시 우리들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
나와 미야모토 료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 내일 이후에.
한 명은 며칠 더 할리우드에 남고.
한 명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디션 전에 시답잖은 기 싸움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다시 고개를 돌리려했다. 하지만.
“…”
미야모토 료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무슨 재미있는 얘기라도 들은 것일까, 싶었지만 미야모토 료의 눈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조롱, 도발?
“뭐야. 저 새끼.”
나이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은 재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깔보는 듯한, 저 눈은 뭐야? 머리는 촌스럽게 길러가지고.”
스타일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말이 시원시원해서 좋다니까.
아무튼.
나 역시, 한껏 조소를 머금은 채 미야모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눈웃음 지었다.
안녕, 나 알지?
[ 책 먹는 배우님 – 90화. > 끝ⓒ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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