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91)
91.
도재희와 스탭들이 미국으로 떠났지만, L&K는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지금 박찬익 팀장님이 해외 출장 중이셔서… 네. 스케줄 확인은 가능합니다. 제가 조금 있다 전화를….”
“의상을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고? 시대극인데? 잠시만. 내가 확인해볼게. 여보세요? 장 팀장!”
“누가 미국을 진출해? 재희요? 아, 좀 기다리세요. 때 되면 알려드릴 테니까.”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며, 더더욱 분주해진 회사.
대표실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무택, 권우철.
L&K 대표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홍보 팀장이 상황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미야모토 료가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기사 났어요.”
“나도 봤어.”
“미야모토네 회사인 TK도쿄 측에서는, 오디션 결과를 기다린다는 정정 기사를 냈는데도 현지 언론은 이미 확정 분위기에요. 그 과정에서 일부러 흘린 것인지, 유명 한국인 배우와 오디션 경쟁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내보냈고.”
홍보팀장의 말에 이무택 대표의 얼굴이 구겨졌다.
“미친놈들”
오히려, 도재희의 할리우드 행(行)은 일본에서부터 소식이 건너와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재희 미국 진출 설.’
‘할리우드 음악영화 오디션?’
‘발표 난 사실은 아무것도 없음.’
비슷한 시기에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오디션 발표가 확정된 이후, 확정 기사를 쏟아내 깜짝 선물을 발표하려던 계획이 물 건너 간 셈이다.
미리 언질을 좀 준다고 뭐가 큰일이냐 싶지만.
“벌써부터 누가 붙네. 누가 떨어지네. 난리에요 난리. 기자들도 계속 전화오고. ‘스타 매거진’에서는 우리한테까지 비밀로 할 거냐고 독촉이라니까요. 어떻게 할까요?”
귀찮은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발생한다.
이무택 대표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 입 다물자고. 한 일주일? 참으면 결과 발표 나잖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권우철 대표가 말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확 질러버리는 건 어때요?”
“응?”
이무택 대표가 무슨 말이냐는 듯, 권우철 대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지르다니?”
“재희, 믿으시죠?”
“믿지 그럼.”
“그럼 우리 쪽 확정 기사도 같이 내는 거죠. 홍콩 무비스타와 아시아의 유명 밴드 보컬들을 모두 누르고, 과연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할 것인가.”
“….”
“….”
권우철 대표의 말에, 사무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별론가요?”
권우철 대표가 ‘난 재밌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녹차 라떼를 들어올렸다.
“음, 이거 향 좋네. 카페 어디야? 처음 보는 로고네.”
“아, 요 앞 골목에 새로 생긴 곳이요.”
“그래? 가봐야겠네.”
“… 김 팀장 생각은 어때?”
“예?”
이무택 대표가 물어왔다.
“우철이 의견. L&K 홍보 팀장으로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음.”
홍보 팀장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양날의 검이죠. 괜히 떨어지기라도 하면, 호전적인 대중들이 물 타기 하지는 않을까… 국내 배우들 사이에서도 재희에 대한 평가가 명백히 갈리잖아요. 우상, 혹은 배알 꼴리는 후배. 지금 무결점 커리어에 상처만 남기면…”
“그렇지. 괜히 설레발 쳤다가 뒤에서 욕먹으면 큰일이지.”
“하지만, 붙으면 또 얘기가 달라지긴 하죠. 폴 안토니 감독 작품이니까요. 전작인 [포스팅 피아노>로 국내에서 재미를 본 감독이라 팬 층도 두텁고…. 재미는 있겠죠. 확실히 자극적이잖아요? 공짜 홍보효과도 가져오는 셈이고.”
장단점이 확실하다.
“으음”
대표가 둘 이라, 의견이 매번 이렇게 갈리고는 한다.
이무택 대표가 인터폰을 들어올렸다.
“2, 3 팀장들 다 불러와.”
그렇기에 독단적이고 무모한 판단은 없었다. 이것이 L&K가 업계에서 생존한 방식.
회의를 통해 단점을 파악하고, 장점만을 부각시킨다.
2, 3 팀장들이 대표실로 불려왔다. 가볍게 시작한 브리핑에서 기나긴 회의가 되었지만. 의외로 해답은 심플한 곳에 있었다.
“폴 안토니 감독 전작에 정답이 있더라고요.”
“응?”
“정답은 아닌가? 어쨌든 해답?”
“뜸 들이지 말고 말해.”
“[포스팅 피아노>. 주인공 역할을 맡은 ‘앙켈’이라는 배우도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정말 어려운 곡들은 대역을 썼어요.”
“오.”
음악 영화를 찍지만.
배우의 기본 역량은 ‘연기’.
“하지만 그건 주연이고. 이번에는 조연이잖아?”
“조연들도 대부분 음악과 관계없는 배우들이었어요.”
“데뷔작이었으니까 유명 뮤지션을 섭외하기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실제로 전문 뮤지션을 쓰고 싶었다면?”
일리 있는 지적이다.
[포스팅 피아노>를 성공시키며 하이마운트 픽쳐스와 인연을 맺어 지금의 [아다지오>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전작을 싼 값에 성공시켰고, 이제 폴 안토니 감독은 좀 더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 물망에 오르는 배우들 네임벨류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솔직히 그렇게 따지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 그건, 그렇지.”
“쉽게 생각하자고요. 말 그대로 뮤지션을 뽑는 오디션이 아니니까, 가능성이 높죠. 일본인 걔가, 재희보다 연기를 잘할 수는 없을 테니까. 거기다 엘라니 오코너가 뮤직 총괄 아티스트잖아요. 재희랑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영화 OST 만드는 아티스트가 미리 점찍은 배우인걸요?”
“오, 맞아! 그걸 잊고 있었네?”
대중들은 미야모토 료의 우세를 점치지만.
실질적인 가능성들은, 도재희를 향하고 있다.
기대를 걸어보아도 좋은 상황.
“어떡할까요? 질러볼까요?”
권우철 대표의 부추김에 이무택 대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예?”
“넌, 재희가 얼마만큼 클 수 있을 것 같냐?”
“…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난 한국에서도 충분하다고 보거든. 근데, 정말 미국에서도 여기만큼 해낼 수 있을까?”
이무택 대표의 순수한 궁금증.
“이제껏 성공한 배우가 하나도 없어. 당연한 말이지만, 거긴 미국인들의 땅이니까. 조승희도 실패했고. 설강식 선배님도 3년에 한 번씩 불려 다닌다더라. 고작, 악역으로.”
그 질문의 끝이 권우철 대표에게 향했다.
“넌 뭘 보고 그렇게 믿는 거야?”
“….”
처음부터 궁금했다.
이 자식은 뭔데, 자꾸 재희 편을 드는 걸까?
권우철 대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속으로 쓰려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재희 재계약 조건이 할리우드 행을 말리지 않는 것이었는데.”
“음? 고작 그런 이유로?”
“네, 뭐… 시시한가요? 하하. 믿어야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믿는 거죠.”
그리고는 빙글빙글 여유롭게 웃었다.
물론,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도재희를 믿는 이유.
이미, 임주원과 드라마에서 시청률 싸움을 하던 시기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작은 무대에서 시청률 놀이나 할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향을 모두 갖춘 배우니까.
더러운 욕심을 숨기지만, 결코 그 자리에 만족하지 않는다.
돈 보다는 명예.
남다른 승부욕과 근성.
“재희가 얼마나 클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응. 그래. 들어나 보자.”
“사실 저도 모르겠어요. 얼마나 클지. 도무지 짐작이 안가요.”
“… 쯧. 싱겁긴.”
“하하, 그러니 지켜보자고요. 계속 믿으면서.”
대화는 마무리 되었다.
“기사 내보내자고.”
이무택 대표의 말에, 권우철 대표가 양 손을 크게 벌리며 쇼파에 드러누웠다.
“후아,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집에서 기도나 해야겠어요. 재희 오디션 붙게 해 달라고.”
“무슨 재미없는 농담이야.”
“정말인데? 자자, 시작하자고.”
홍보팀장이 말했다.
“기자들 불러 모을게요.”
*
미국 할리우드의 아침은 무언가 새로울 줄 알았건만,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할리우드 사인을 바라보았다.
으음, 저걸 보기 위해 내가 미국에 왔구나.
컨디션은 딱 좋다.
어제 저녁, 미야모토 료의 얼굴을 확인 하고나니 묘하게 자신감이 더 생긴다.
일본 언론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처럼, 친근감 넘치고 재기발랄한 천재 뮤지션으로 보였다면 오히려 걱정했을 텐데.
하는 짓은,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졸부스타다. 대충 수준을 짐작할 만한 내용.
나는 식사를 마치고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객실이 넓으니 이런 게 좋구나.
읏차!
찢어지지 않는 다리도 찢어보고, 샤워를 하며 잠겨있던 목도 풀었다.
스킨로션을 바르며 최대한 얼굴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이 정해준 의상을 챙겨 입었다.
흰 와이셔츠 위에 스트라이프 가디건. 짙은 자주색 롱코트에 검은 면바지. 그리고 시간 맞춰 호텔 앞으로 나왔다.
“어! 여기!”
우리 측 스탭들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미야모토 료의 크루들과, 동아시아 각지에서 오디션을 위해 모인 스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한데.
“왜 웃어?”
“음, 긴장 돼서요.”
국가대항전이라도 치루는 기분인데.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이 바람에 갈라지는 내 앞머리를 잡아주며 물었다.
“재희는 긴장되면 웃어?”
그러자, 재익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얘 가끔 이상하다니까요.”
“….”
고오맙다.
에이전트 빌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약속한 대로 리무진 밴을 두 대 끌고 나타났다.
“출발하시죠.”
“고맙습니다.”
우리는 차량 두 대로 나눠 타고 웨스트 할리우드를 벗어나 할리우드 깊숙한 곳으로 들어섰다.
미국 영화 산업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곳.
영화사 오프닝 로고마저 우리에게 친숙한, 할리우드 3대 영화사인 하이마운트 픽쳐스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투어리스트를 위한 코스도 있습니다.”
디즈니랜드처럼, 어느새 LA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인 이곳은 관광객들을 위해 개방된 공간도 존재했다.
한국에 세 개, 네 개씩 있는 거대한 스튜디오는 수십 개가 모여 있고 스튜디오 내부 길거리 곳곳이 영화 야외 세트장이나 다름없다.
이곳에서만 영화를 찍어도 각기 다른 장르 영화 여럿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영화 제국.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네요.”
“맞아, 인정하긴 싫지만…. 비교 불가야.”
한국 전주에서도 [7년의 기억> 실내 세트가 올라가고 있는데. 스케일이며 세트 퀄리티 자체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래서 할리우드, 할리우드 하는 구나.”
그 때, 박찬익 팀장이 휴대전화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재희, 오디션 보는 거 기사로 내보내겠다는데? 아마 일본에서 먼저 소스가 흘러나와서 공개하기로 했나봐. 재희만 오케이하면, 바로 기자들 소집.”
“에, 정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상관없어요. 이유가 다 있겠죠.”
“일단은, 오케이!”
오디션은 소개팅이다.
막상 뚜껑을 열었는데, 나와 맞지 않는 소개팅 상대가 아니라 실망할 수도 있고, 내 쪽에서 먼저 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결혼 상대가 이 사람 딱 하나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죽어라 싸워서 쟁취하는 거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지.
“한국에서 설레발들 장난 아니겠네. 무조건 이겨야지!”
“재희야! 가자!”
“….”
오늘의 내 싸움은 더 이상 개인의 오디션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차에서 내려 하이마운트 픽쳐스 오디션이 있는 3세트장으로 들어섰다. 3세트장 분장실을 사용하고. 오디션은 4세트에서 치룰 예정이다.
“재희야, 머리 하자.”
조금 러프하고 부스스한 느낌으로 머리를 만져주겠다는 장 팀장님의 말에 나는 분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분장실 안에는 이미 미야모토 료와 그의 크루들이 잔뜩 앉아있었다. 그리고 들어서는 우리를 보며 일본어로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다.
한껏 뽕을 집어넣은 부푼 머리. 눈에는 짙은 스모키 화장을 그리고 있는 미야모토 료.
분장만 보아도, 어떤 식으로 오디션을 치룰지 눈에 보인다.
나, 아시아의 별이야.
하지만 나는 반대다.
‘신인의 마음으로.’
완벽한 신인의 자세로 오디션에 임할 예정이다.
도재희는 한국에서나 먹히던 이름이니까.
“시작할게.”
뜨끈한 헤어드라이기 바람이 머리를 적셨다.
[ 책 먹는 배우님 – 91화. > 끝ⓒ 맛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