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93)
93.
[국내 섭외 1순위 배우에서, ‘신인’으로 돌아간 도재희]이무택 대표는 포털사이트에 도재희를 검색한 후, 뜨는 기사들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말했다.
“섭외 1순위에서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도재희…? 기사 제목이 뭐 이래?”
“끝까지 읽으셔야죠. 도재희의 끝없는 도전! 희망차잖아요?”
[도재희의 끝없는 도전! 돌연, 할리우드 행(行). 한국과 미국 오가며 영화에만 집중.] [도재희, [포스팅 피아노>의 폴 안토니 감독의 차기작 미팅 진행 중.] [라이벌은 밴드 ‘초코버스터’ 2기 보컬. 미야모토 료.] [‘음악 영화?’ 상대가 너무 강한 것 아니냐, 의견 분분]네티즌 반응은 다수가 응원을 하는 듯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음악영화 도전? 상대가 너무 강하다.’
‘도재희 할리우드 진출은 시기상조. 제2의 조승희가 될 것.’
“실패해? 제 2의 조승희가 될 것? 이딴 평론 쓴 인간은 누구야?”
“전진조라고. 프랑스에서 영화 공부한 엘리트 출신 평론가인데… 도재희가 실패할 것이라고 난리네요.”
“생쥐 같은 놈. 물 들어왔으니 노 저어 보겠다, 뭐 그건가?”
“예상 못했던 반응도 아닌데요. 뭘.”
그래. 이 정도 반응은 딱, L&K에서도 예상한 그대로였다.
도재희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국내 인지도 때문.
원래 대어가 시장에 나오면, 꼬리 하나라도 떼먹으려는 자들이 생기기 마련.
이무택 대표는, 지난 엔터 생활 20년 간, 이런 자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래. 마음껏 떠들라고 하라고. 누가 관심이나 가지나.”
“네, 그래서 푸쉬도 안 할까 봐요. 뚜껑 까고 재희가 오디션에 붙으면. 오히려 엘리트 평론가 자존심에 스크래치 좀 생기지 않겠어요?”
“좋아. 코 한번 깨져봐야 나중에 함부로 못 떠들지. 이제 붙기만 하면 되는데…”
장작에 불은 던졌다. 기름도 확실히 부었다. 타지 않으면, 장작 탓이지만. 그 책임은 장작을 주워온 L&K도 함께 져야할 터.
“아직 연락 없지?”
“네. 지금 시간이면… 오디션은 끝났을 텐데 아직 전화 없는 것 보면… 어라? 잠시만요.”
홍보팀장이 황급히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네, 박 팀장님! 말씀하세요.”
“박 팀장? 박 찬익이?”
이무택 대표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빠르게 되물었다.
“미국이야? 뭐래?”
홍보팀장이 결연한 얼굴로 물었다.
“안 그래도 지금 대표님이랑 같이 연락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됐어요?”
*
꾸며낸 기교도, 세련된 목소리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무명 뮤지션’이 되어 진심을 다해 노래한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이 끝나자, 폴 안토니 감독은 나를 면전에 세워둔 채로 민망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군. 대체 저런 배우는 어디서 나온 거야? 왜 애초에 후보에 안 올랐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
하하, 앞에 세워놓고 민망하게.
다 들려요.
폴 안토니 감독은 엘라니 오코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 저런 배우를 어디서 찾은 겁니까? 오코너 씨 아니었으면 놓칠 뻔 했어요.”
엘라니 오코너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유튜브요.”
그리고 나를 보며, 배시시 웃어 보인다.
“유튜브?”
폴 안토니 감독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지어보였고 나는 덩달아 웃었다.
하하, 그렇지! 유튜브. 거기서 보았지!
“그거, 어디서 볼 수 있어요?”
감독은 기어코 유튜브에서 내 동영상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내가 서있자, 조감독이 내게 의자를 가져다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고였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이 플레이되는 3분여의 시간동안 나는 잠자코 앉아 기다렸다.
이번 오디션.
내 능력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내 ‘노력’을 통해 심은 씨앗이다. 이 결실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금 당장은 후련한 기분.
뭐, 사실.
“찾았다! 찾았어!”
… 이미 붙은 것 같지만.
폴 안토니 감독은, 나를 향해 미친 듯이 환호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골을 넣자, 날뛰듯 기뻐하며 환호하는 히딩크 감독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어퍼컷을 날린다.
휙! 휘익!
폴 안토니 감독은 음악을 전공한 영화감독답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하고 화끈한 구석이 있다,
“막!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요?”
엘라니 오코너가 말했다.
“후후, 감독님. 제가 말씀 드렸죠? 어차피, 오디션 볼 필요도 없을 거라고.”
“….”
응? 그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크루들 사이에서는 이미 얘기가 끝난 대화인지, 폴 안토니 감독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코너 씨, 말이 다 맞아요. 재희는 제가 찾던 배역과 완벽하게 일치해요. 오디션을 볼 필요도 없었을 만큼.”
그리고 하이마운트 배급 팀장도 UAA 에이전트를 쏘아보며 거들었다.
“무명 뮤지션을 뽑는데 왜 락(Rock)스타를 데려왔어요?”
“네?”
“그 일본 락 스타 말입니다.”
“… 그, 그게… 저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이번 일은 확실히 기억할겁니다. 그렇게 믿으라고 자신 있다고 말해놓고는… 오디션의 기본도 안 된 사람을 데려왔으니까요. 재희가 아니었으면 오디션 다시 봤어야 했어요.”
“….”
뭐라고?
잠시만.
나는 오디션에 이미 ‘내정자’가 있었다며 잔뜩 뿔이 난 채 LA를 벗어난 홍콩 배우가 떠올렸다.
나는 당연히 그 ‘내정자’라는 것이 ‘미야모토 료’ 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하이마운트 측은, ‘락스타를 데려왔다’며 에이전트에게 핀잔을 주고 있다.
그럼 뭐야. 이건….
“역시, 오코너 양의 안목은 믿을 수 있군요.”
“후후, 고맙습니다.”
“….”
설마, 내가 ‘내정자’ 였어?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엘라니 오코너가 일찌감치 점지해놓은 배역.
그 배역을 뽑는 오디션에서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주저 없이 추천했다.
음악 영화의 상징은, 역시 음악.
그 음악을 전체적으로 만드는 엘라니 오코너의 영향력은 말해 무엇 할까.
그녀의 강력한 추천. 그리고 그 추천을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내 무대까지.
‘완벽한 미장센!’
한 마디로, 예술이었다 이거지.
폴 안토니 감독이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후, 진정이 안되는 군요. 오디션 발표는 원래는 재희가 한국으로 돌아가고난 뒤, 차후에 연락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혹시라도 그 사이에 재희의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확답을 주시겠어요?”
“….”
오히려, 영화 [아다지오> 측에서 내게 영화에 참여할지 말지, ‘확답’을 달라고 말하고 있다.
10분 만에 완벽하게 판이 뒤집어졌다.
저쪽이 오히려 내게 아쉬워졌을 때, 그 때 ‘요구’해야 말에 힘이 생긴다고 했지. 내가 조금 전 다짐했던, ‘권리’가 생긴 것이다.
패를 내가 들고 있지만, 굳이 비싸게 굴 필요도 없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 영화에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내 시원시원한 대답에 폴 안토니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 한 번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예쓰!”
“푸흡.”
그 모습이 재밌어 웃음을 터뜨렸는데, 엘라니 오코너가 나를 바라보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잘 했어요.’
으음, 괜찮았나요?
그 뒤로, 본격적인 계약 이야기가 진행될 무렵, 하이마운트 직원이 말했다.
“그 락스타 일본으로 돌려보내요. 오디션 끝났다고. 그리고 한국에서 온 스탭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먼저, 교통정리를 해야지.
UAA 에이전트가 밖으로 나가 오디션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와아아!”
“재희야아아아아!”
살짝 열려있는 철문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음이 일제히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아, 이 소식을 엄청 기다린 모양이다.
그리고 박찬익 팀장과 스타일리스트 장 팀장님, 재익이 형 등. 스탭들이 당당한 걸음으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오, 자신감.
스튜디오를 런웨이로 바꿔버리는데?
“꺄! 재희!”
장 팀장님이 앉아있는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껴안을 기세로 달려왔다.
“고생했어!”
“하하…”
… 숨 막혀요.
이것 좀 놔요.
“잘 했어!”
“내가 뭐랬어? 걱정 하지 말랬지?”
내 쪽을 향해 윙크를 날리고,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제가 재희 담당 매니지먼트 L&K 팀장 박찬익입니다. 그대로 통역해줘요.”
‘위엄’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일’ 얘기에 들어가면 눈빛을 바꾼다.
정말 프로들이라니까.
그래, 우리가 아쉬울 것 없다고.
*
저녁에는 하이마운트 픽쳐스 측과 식사 약속이 잡혔다.
식당은, LA Baltaire.
할리우드 스타들과 셀레브리티 들이 자주 찾는 고급 레스토랑.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에 예쁜 초와 조명들. 고급스러운 식기들이 놓여있는 곳인데,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입구부터 ‘상류층’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폴 안토니 감독과 엘라니 오코너, 에이전트 빌이 동행한 이번 식사 자리.
에피타이저가 나오기 전에 샴페인부터 나왔다.
“여기, 해산물이 아주 좋습니다.”
아, 해산물 때문이구나.
푹 익혀 발라진 대하에 레몬 즙을 뿌려 차갑게 먹는 음식.
내 스타일은 아닌데.
그리고 에피타이저로 문어무침과 듣도 보도 못한 소 뼈(?) 요리가 나왔다.
다른 이들은 맛있게 잘 먹는데, 나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먹는 거야?
“입맛에 안 맞으세요?”
“아, 아닙니다.”
그 뒤로는 생선살을 여며 동그랑땡처럼 나온 생선 필렛과 스테이크가 나왔는데.
“후후, 입맛에 너무 잘 맞아요.”
고기는 진리지.
역시, 내 입맛은 너무 단순하다니까.
소금 팍팍 뿌린 삼겹살에 자글자글 끓인 된장찌개에 소주가 땡기는 밤이지만.
그런대로 이런 고급 식당의 잔잔한 분위기에도 함께 취해갔다.
샴페인, 그리고. 나를 향한 달콤한 ‘말’에도 함께.
“대본은 아직 못 받아보셨죠.”
“네.”
“동양인 뮤지션 배역이름이 ‘Kim’입니다. 주인공 밴드에서 메인 보컬을 맡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죠.”
“보컬이요?”
보컬? 서브 보컬도 아니고 메인?
당연히 주인공이 보컬이 아닌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으려고 했는데, 박찬익 팀장이 더 빨랐다.
“자, 잠시 만요. 시놉시스에는 분명… ‘천재 아티스트’지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는 주인공이 따로 존재한다고 나오던데요? 그런데 재희가 메인 보컬인가요?”
“네, 치명적인 결점이 바로 목소리입니다. 말을 할 줄 몰라요. 노래도 당연히 못하죠.”
“….”
뭐? 주인공이 노래를 못해?
“대신 극 중에서 밴드 마스터와 작곡을 맡습니다. 물론, 실제 작곡은 여기 오코너 양이 해주시지만. 후후…”
“…..”
말 못하는 주인공이라니.
조금 마이너 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폴 안토니 감독은 주인공을 흉내 내며 어필했다.
“악! 흡! 읍! 이런 단음을 통해 감정을 끌어내죠. 극의 중요한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게 주인공이라면, 재희 씨가 맡아줄 ‘Kim’ 역할은 주인공의 꿈을 함께, 혹은 대신 실현시켜줄 매개체입니다.”
“….”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어딘가 부족한 이들이 모여 결성한 게 밴드 아다지오! 어떻습니까?”
글쎄, 의미는 좋은데.
주인공이 말을 못하는 것은 조금 충격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벙어리는 아니라고 한다. 극의 후반부엔 밴드 공연을 하며, 말이 터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를 심어줄 것이라고.
엘라니 오코너가 양 팔을 들어올렸다.
마치, 처음 알았어? 라고 묻는 듯 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처음 알았어.
“그래서, 재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
이거 주연이나 다름없는 거 아냐?
ⓒ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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