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queeness RAW novel - Chapter (191)
정령왕 엘퀴네스[개정판] 정령왕 엘퀴네스-191화(191/608)
제191화
에이프릴 공녀와 황제의 기사들의 만남은 숙연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마법사의 철부지 제자를 자처하던 공녀도 오늘만큼은 본래의 외모와 신분으로 돌아와 엄숙하게 기사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친위기사단의 여러분. 황제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런 날이 오다니 정말 꿈만 같네요.”
“에이프릴 공작 영애를 뵙습니다.”
공녀의 환대에 정중한 인사로 화답한 기사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야 겨우 출발점에 섰다는 사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이 몰아쳤다. 그건 에이프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련된 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지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라피스는 홀로 그곳을 빠져나와 건물이 즐비한 골목길을 벗어났다. 그가 이른 곳은 사람이 잘 오가지 않는 한적한 공터였다. 먼저 와 있던 트로웰이 기대 있던 나무 기둥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서와, 라피.”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용건은 네 쪽에서 있던 거 아니었어?”
“장난치지 마. 네가 굳이 내 앞에 나타났다는 건 할 얘기가 있단 소리잖아.”
오랜 시절 알아온 덕분에 이미 대부의 습성을 꿰고 있는 라피스는 그의 말장난에 넘어가지 않았다. 트로웰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본론에 들어갔다.
“최근에 엘하고 연락하고 지내?”
“아니. 그 녀석 내 연락 안 받은 지 한참 됐어. 귀찮다고 무시한다고.”
“용케 얌전히 있네?”
“한 번만 더 연락하면 반려석을 바다에 집어 던진다잖아. 그래서 얼마간은 참아주는 거야.”
라피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라 트로웰은 내심 혀를 찼다. 상당히 쓸모가 많은 녀석이니 계약자로서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저 성격만은 문제였다.
“근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는데?”
“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실은 요즘 물의 느낌이 심상치 않아.”
“그게 무슨 소리야?”
“정확히 어떻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 그냥 그렇게 느껴지는 거니까. 아무튼 얼마 전부터 엘의 기분이 상당히 저조한 것 같아. 뭔가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는 만남을 겪은 것 같긴 한데…….”
“흐응, 자극받을 만한 만남이라면 그걸 말하는 거 아냐?”
“뭔가 알고 있어?”
“아는 건 너겠지.”
“뭐?”
“뭐긴 뭐야. 네가 전에 말했잖아. 기대하는 인연인지 뭔지가 있다며.”
흐트러진 퍼즐처럼 난해한 형식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 사실을 짚어주자 트로웰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건 엘을 말한 게 아닌데?”
“뭐야? 엘이 아님 누군데?”
“인연을 기대하고 있는 건 그의 계약자 쪽이었어.”
“나?”
“너 말고. 인간 계약자 쪽 말이야.”
“뭐야, 헷갈리게 하지 마.”
멋대로 착각했으면서 적반하장 식으로 쏘아붙이는 라피스를 보며 트로웰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반려성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를 만났거든. 엘의 계약자는 제왕의 운명을 타고났고. 곧 두 사람이 만나게 될 것 같아서 기대했을 뿐이야.”
“그게 다야?”
“이게 단데?”
그 외에 뭐가 있겠냐며 트로웰이 어깨를 으쓱했다. 결국 큰 의미가 담긴 말은 아니었단 뜻이었다.
“그럼 엘이 무슨 자극을 받고 있는 건데? 남의 인연에 심란해질 리는 없…… 아, 잠깐만. 뭐야, 설마 엘이 그 여자한테 반한 건 아니겠지?”
“설마…….”
생각지 못한 말에 트로웰의 얼굴이 굳었다. 라피스는 아예 오물을 삼킨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정령왕인 주제에 아직 인간의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잖아. 심지어 남자로서의 정체성도 확고한 상태고. 충분히 가능성 넘치는 일이지.”
“그 앤 소녀라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아직 여자로 보일 시기가 아냐.”
“아, 젠장. 그럼 대체 뭔데. 아니, 그보다 그런 게 궁금하면 네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면 되는 거 아냐? 그게 제일 빠르잖아.”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뭐? 그게 말이 돼?”
“나도 당황스러워. 어느 부근에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한 위치를 짚을 수가 없어. 마치 일전에 네가 엘을 납치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야.”
“흠, 그럼 결계에 갇힌 건가? 그건 나도 진짜 죽을 고생하면서 만든 건데 대체 누가 또 그런 걸……야, 근데 나 납치한 거 아니거든? 그냥 소환했을 뿐이거든?”
누굴 납치범으로 모느냐며 버럭 거리는 라피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트로웰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뭔가 이상한 일에 휘말린 건 확실해. 예감이 별로 좋지 않아.”
중얼거린 음성이 작았다. 분노하면 할수록, 기분이 저조할수록 트로웰은 목소리를 낮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제야 라피스 역시 화내던 것을 멈추고 진지하게 말했다.
“과민한 생각이야. 아무리 어설퍼도 녀석은 물의 정령왕이야. 내가 만든 결계도 결국 그 녀석 스스로 부쉈어. 무슨 일이 생겼다 해도 알아서 해결하겠지.”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천재인 이 몸이 만든 것보다 더 강한 결계가 있을 것 같아? 게다가 그 녀석이 보호가 필요한 꼬마가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그 말을 듣고서야 트로웰은 굳은 표정을 겨우 풀었다. 그러나 그의 황금색의 눈에 서린 불안의 기운은 아직 그대로 자리 잡은 채였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어야 할 텐데.”
* * *
데르온의 경고와는 다르게 막상 시간이 지나도 던전 안에선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내려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서늘한 느낌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염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야명주의 빛도 어느 기점에서부터는 사라져서 주위는 더욱 음침해졌다. 그나마 데르온이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준 덕분에 사물을 확인하는 게 어렵진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내려가는 거지? 뭔가 되게 기분 나빠.”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리는 알리사의 말에 나 역시 속으로 공감했다. 꽤나 한참을 내려온 것 같은데 전부 똑같은 길만 보일 뿐, 어느 것 하나 변하는 것이 없었다. 주변엔 그 흔한 자연체의 정령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나로선 그다지 좋지 않은 징조였다. 적어도 이 던전 안에서는 정령왕의 ‘눈’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기 때문이다. 굳이 살벌한 장치가 없더라도 충분히 거북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이래서야 나 혼자 왔어도 마검을 찾긴 힘들었겠네.’
자연체의 정령조차 존재하지 않는 던전이라니. 대체 이건 누가 만들어낸 걸까? 치솟는 의문을 삼키며 나는 좀 더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이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더 이상 못 걷겠어.”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알리사가 가장 먼저 피로를 호소했다. 그녀의 앓는 소리를 들은 일행들이 잠시 이동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내색하진 않았어도 그들 역시 상당히 지친 기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꽤 걷긴 했구나. 못해도 몇 시간은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다니. 얼마나 깊은 던전인 거지?”
“생각보다 많이 내려온 건 아닐 거다.”
엘의 혼잣말에 데르온이 답했다. 모두의 의아한 시선이 닿자 그는 한 손으로 벽면을 천천히 훑었다.
“재질, 온도, 감촉, 형태. 모든 게 전부 다 똑같군. 지금이 다섯 번째다.”
“……무슨 뜻이지?”
그의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거슬린 듯 시벨리우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데르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았지만.
“우리가 다섯 번째 같은 장소를 지나고 있단 소리다.”
“……!”
단숨에 의미를 깨달은 일행들이 모두 얼굴을 빠르게 굳혔다. 같은 길을 계속 지나고 있다는 건 결국 이 장소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 그제야 비슷한 길이 무한정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별다른 이상이 없다 했더니 아무래도 이 장소 안에 갇힌 모양이었다.
“다섯 번째라니. 그런 건 좀 더 빨리 말하라고.”
“확실히 확인해 두고 싶었을 뿐이다. 갈림길도 없이 쭉 한 방향으로 내려오기만 했는데 미로가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으음, 하긴. 이런 건 주술이나 마법의 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런 영향권에 들어온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어.”
“나도. 지훈은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
불쑥 이어진 엘의 질문에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 그게…… 정령들이 보이지 않긴 했는데.”
“그래? 언제부터?”
“이 던전에 들어오면서부터 못 본 것 같아.”
“이런, 그럼 거의 처음부터 걸렸단 소리네.”
낭패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령이 없다는 게 이런 의미였을 줄이야. 심상치 않은 곳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내 짐작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도 정령이 보이지 않았던 적이 한 번 있었다. 라피스가 나를 소환했을 때, 그 당시에도 하급 정령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설치해둔 결계에 의해 공간이 변형되었기 때문이었지.
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걸까. 내가 미리 알리기만 했어도 일행들이 사태를 판단하기 쉬웠을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초조한 기분으로 질문하자 데르온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쉬운 건 진짜 길을 찾는 겁니다.”
“진짜 길?”
“저희는 지금 변형된 공간 안에 갇힌 거니까요. 이곳 어딘가에 진짜 길과 이어진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곳을 찾아 강제로 틈을 낸다면 결계를 부술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찾죠?”
“이런 형태로 된 장소의 결계라면 범위가 지정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혹시 부자연스럽다거나, 이질적인 기분이 드는 곳은 없으십니까?”
그 말에 나는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고 주위를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예민하게 살펴도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젓자 데르온의 얼굴에 서린 그늘이 짙어졌다.
“정령왕의 감각까지 속이는 결계라니. 보통 던전은 아니다 싶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 같군요. 파훼하는 것이 쉽진 않겠습니다.”
“벽을 전부 다 부숴버리는 건 어때? 그럼 어딘가에서 틈이 나오지 않겠어?”
제안을 한 사람은 시벨리우스였다. 하지만 데르온은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함부로 건드리면 이 공간이 전부 무너질 거다. 그런 무모한 방법에 찬성할 순 없어.”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갇혀 있자는 거야?”
“사이좋게 매몰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의외로 대범하지 못하군. 마족이면서.”
“그런 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구는 건 성마이기 때문인가?”
데르온의 빈정거림에 시벨리우스의 입술이 비틀렸다. 마주 보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강렬한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동안에도 나는 계속 데르온이 말한 감각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잘못 건드리면 무너진다는 건 결국 부술 수 있는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는 소리다. 정확한 부근을 찾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볼 수가 있으니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했다.
‘가만, 구간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분명 어느 기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단 말이겠지? 그럼 이 안에서의 공기의 흐름 역시 마찬가지라는 소린데. 이걸 기체나 액체 같은 형태로 확인할 수 있으면 왜곡된 부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예를 들어 물 같은 걸로 말이다.
문득 스치는 의문에 나는 일단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의식을 집중하자 천천히 차오른 물이 순식간에 발밑을 적셨다. 그것은 곧 중력의 법칙에 따라 계단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려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바닥에서 물이 흐르자 일행들은 당황한 듯했지만 그저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내 행동을 주시했다. 서로 노려보기 바쁘던 시벨리우스와 데르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물의 흐름에만 온 감각을 집중했다. 물은 하염없이 내려가기만 할 뿐 좀처럼 흐름을 바꾸지 않았다. 마치 이곳까지 오는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묘한 기분을 느낀 것은 물의 흐르기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즈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물이 흐르는 감각이 이중창처럼 겹쳐져서 느껴지지 시작했다. 처음엔 매우 희미한 감각이 따라붙는 것 같았는데, 갈수록 선명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두 개의 물줄기가 같이 흐르는 것 같은…….’
이유를 깨닫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보이는 광경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일행들 역시 나를 따라서 고개를 들었다가 모두 그 상태로 굳었다. 천장에서 시내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 앞에서 흐르고 있는 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몰라볼 수가 없었다.
“흐음, 이제 알았네. 옆이 아니라 위였구나?”
재밌다는 듯 중얼거린 엘이 불쑥 검을 뽑아들었다.
“엘?”
“이봐, 잠깐…….”
아직 당황한 기색을 거두지 못한 시벨리우스와 데르온이 얼굴을 찌푸린 채 입을 벙긋거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엘이 검을 내지른 뒤였다. 슈우욱, 콰지지직! 퍼버버벙! 마치 폭풍이 이는 것 같은 사나운 소리가 천장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예상치 못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정작 공격을 받은 천장은 멀쩡한데, 우리가 서 있던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지반 자체가 주저앉는 느낌 같기도 했다.
“이런, 무너진다!”
“다들 조심해!”
당황한 일행들 사이에서 허둥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을 건사할 틈도 없었다. 충격을 방어하려고 하는 순간 이미 바닥에 닿았기 때문이다. 요란한 진동과 소음도 아주 잠깐이었을 뿐 순식간에 사라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엉덩방아를 찧은 것 외에 별다른 피해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추락이라고 할 만한 높이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방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던 먼지도 서서히 걷혔다. 눈앞엔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일정 간격으로 둥근 기둥이 박혀있는 모습이 마치 신전을 연상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 너머로 활짝 열려진 두 개의 문이 긴 복도를 내보이고 있었다.
“콜록, 콜록! 뭐야, 이걸로 끝이야?”
기침을 내뱉은 알리사가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 말에 대답한 건 엘이었다. 다들 주저앉은 상황에서도 그는 혼자 멀쩡히 서서 검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엘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린 나는 살짝 신음을 흘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지.”
복도의 입구 앞에서 붉은 빛들이 번쩍이고 있었다. 사납게 치켜뜬 짐승의 안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