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queeness RAW novel - Chapter (93)
정령왕 엘퀴네스[개정판] 정령왕 엘퀴네스-93화(93/608)
제93화
“드, 드래곤 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구요?”
“뭐야, 그 표정은. 그래서 불만이야?”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말해두지만 나도 좋아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냐. 엘퀴네스가 네 곁을 떠날 수 없다고 하니 내가 온 것뿐이라고. 같은 계약자인데 너만 그를 독차지하는 건 불공평하잖아. 안 그래?”
“저, 저는 딱히 독차지를 할 생각은…….”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도 같이 다닐 거라고. 설마 반대를 할 생각은 아니겠지?”
험악한 눈빛을 받은 이사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는 라피스를 나는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었다.
“아무튼 그렇게 됐어. 미안해, 이사나. 이런 결정을 멋대로 해서.”
“으응, 아니, 괜찮아. 드래곤 님의 말이 맞아. 같은 계약자인데 네가 나에게만 신경을 쓰면 저분의 입장에선 당연히 서운할 거야. 그런데 우리를 배려해서 이렇게 친히 찾아오시기까지 하다니, 정말 좋은 분이신 것 같아.”
“……이사나, 넌 어쩌자고 이 험난한 세상에 그렇게 착한 성격으로 태어난 거야.”
“으응? 내가 그런가? 난 별로…….”
“아니, 착해. 정말 넘치도록 착해.”
그렇지 않고서야 방금 전까지 이어진 그 수많은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 라피스는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트리기 바빴다. 그로서도 방금 전 이사나의 발언이 웃기긴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은 그의 웃는 얼굴에 더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쏟아지던 시선이 그가 웃기 시작한 시점에서 한층 더 짙어진 것이 느껴졌다.
‘이래 가지고 잘해나갈 수 있을까.’
막막한 기분에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한 이후에도 라피스는 여전히 웃음기를 드리운 얼굴로 이사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마음에 들었다. 이름이 이사나라고?”
“네, 하지만 지금은 라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난 라피스라즐리다. 그냥 라피스라고 불러.”
“예, 라피스 님.”
뭘 사이좋게 통성명을 하고 있는 거야?
나만 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저절로 심통이 일었다.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량이 갑자기 대폭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헉…… 설마 라피스와 계약한 것 때문에?’
사실 그것 말고는 달리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서둘러 내 몸을 다시 점검했다. 지금까지의 마나량이 운디네 한두 마리만 간신히 다룰 수 있는 수준이라면, 지금은 수백 마리의 시큐엘을 한꺼번에 형상화시키고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드래곤의 마나가 풍부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래서 다들 드래곤이랑 계약하는 거구나.’
나는 감격스러운 기분으로 라피스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못마땅하기만 했던 녀석의 얼굴에 갑자기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불만은 이미 눈 녹듯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런 걸 속물이라고 하는 걸까? 새삼 계약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새 일행의 합류를 맞아 우리들은 앞으로의 일정을 의논했다. 사실 의논이라고 해 봤자 내가 임의로 세운 계획들을 그에게 알려주는 수준이었지만 그 역시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 필요한 과정이었다.
“신관?”
라피스의 놀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가 이내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흐응, 하긴. 치유 능력을 마음껏 쓰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겠군. 그래서 신의 문장을 받겠다고?”
“응, 엘뤼엔에게 도움을 받을 거야.”
“엘뤼엔? 혹시 형벌의 신 엘뤼엔 말이야?”
모를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라피스는 바로 그의 이름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아직 교파도 크지 않은 초짜 신이잖아. 그런 녀석의 문장을 받아서 뭘 어쩌겠다고. 정령왕이 청하면 마신이라도 나와 줄 거다. 차라리 그의 문장을 받는 게 낫지 않아?”
“교파 같은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치유 능력을 써도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마신의 사제에겐 치유 능력이 없다고 들었거든. 모처럼 문장을 받아도 그런 식이면 전혀 소용이 없잖아. 게다가 개인적인 친분을 일부러 썩힐 필요도 없고.”
“개인적인 친분? 너와 엘뤼엔이라는 신 사이에?”
“그래.”
내가 긍정하자 라피스는 다시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너 유희 이제 막 시작한 거 아니었냐?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신과 친분을 쌓았어?”
“음. 뭐, 어쩌다가 보니…….”
“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데?”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할게.”
두루뭉술한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라피스는 나를 집요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계속 회피하자 어쩔 수 없다고 여긴 듯 곧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아무튼 친분이 있다면 문장을 얻는 건 쉽겠군.”
“으음, 사실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 지금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거든. 일단 엘뤼엔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니 가능성은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정령왕의 요청인데 당연히 해 줘야지.”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모든 건 엘뤼엔의 의사에 달린 거니까.”
“하, 정령왕이 한낱 초짜 신의 눈치를 본다고?”
“초짜, 초짜 하지 마. 엘뤼엔은 엄연히 상급신이거든?”
“흥, 그래 봤자 태어난 지 이제 고작 25년 남짓 되었을 뿐이잖아. 교파는 신이 태어난 시점에 맞춰 생기기 시작하니까 내 계산이 얼추 맞을걸?”
“그래도 신이야. 태어난 날짜가 뭐가 중요해?”
“주신이 아닌 이상에야 신도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건 그만큼 어수룩한 부분도 많다는 뜻이지. 하긴, 이제 갓 태어난 네 입장에선 꽤나 거대하게 보이긴 하겠군.”
“그런 거 아냐! 엘뤼엔은……!”
“뭐가 아닌데?”
“……아무튼 만나보면 알아.”
라피스는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무렴.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지. 아마 엄청 놀랄 거다. 자기가 몇천 년 동안 매달렸던 그 도도한 물의 정령왕이 떡하니 신이 되어 나타났는데 놀라지 않을 녀석이 어디 있겠어?
설마 너무 기뻐서 자기도 엘뤼엔의 사제가 되겠다고 설치는 건 아니겠지. 지금의 도도한 모습을 봐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가 엘뤼엔에게 보인 집착의 세월이 길었으니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좋아 몇천 년이지, 정말 까마득한 세월이 아닌가. 사랑의 유통 기한도 3년이면 끝난다는데, 그것의 몇십, 몇천 배의 세월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바쳤다니. 지고지순이란 단어로도 그의 모습을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설마 이프리트처럼 내 엄마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만으로도 철렁한 기분에 나는 힐끔 라피스를 살폈다.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녀석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마냥 태연한 모습이었다.
무성이던 시절이면 모를까, 이제 완벽한 남성이 된 엘뤼엔을 보고서도 포기하지 않으면 정말 곤란해진다. 만약 정말 그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계약이고 뭐고 다 끊어버릴 테다!
이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데? 계획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바로 신전으로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야?”
“으응, 실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일행이 더 있었어?”
“아니, 우리를 신전까지 안내해주기로 한 사람이야. 그런데 길이 좀 엇갈리게 돼서…….”
“흐응―.”
그때 딸랑거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직도 거센 눈발을 증명하듯 온몸에 눈덩이를 잔뜩 묻히고 있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잠시간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곧 큰 소리로 외쳤다.
“저, 혹시 여기 엘이라는 손님이 계신가요?”
응? 설마 날 찾는 건가?
뜻밖에 불린 이름에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지만 선뜻 대답은 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엘이라는 이름이 그리 특이한 것도 아니고, 이런 생면부지의 땅에 날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소년이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카이테인 신관님의 전언을 들고 왔습니다. 혹시 손님 중에 엘이라는 분 계신가요?”
‘카이테인!’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소년이 한걸음에 다가오며 물었다.
“손님의 성함이 엘이신가요?”
“아, 응. 내 이름이 엘이긴 한데…….”
“카이테인 신관님과 아는 사이시구요?”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은 안도한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우와, 다행이다. 드디어 찾았네요. 실은 이번이 세 번째 가게였거든요. 마을 안에 계실 거라는 말만 들었지 정확히 어디 계신지를 알 수가 없어서 계속 찾아다녔어요. 마침 눈이 내려서 어딘가로 대피해 계실 거라 짐작했는데 역시 제 생각이 맞았네요.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 음, 그런데 카이테인 신관님의 전언이라고?”
“아 참, 그렇지. 네,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소년은 황급히 품 안을 뒤지더니 얇은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아마도 카이테인이 내게 주라고 맡긴 것인 듯했다. 왜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보낸 걸까? 봉투 안에는 작은 지도 하나와 편지가 들어 있었다. 편지를 펼치자 정갈하게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엘 님께.
눈발이 거세져 성문이 폐쇄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안으로 입성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더불어 병사들의 감시가 제게 미쳤습니다. 아마도 형벌의 신이 황제 폐하를 돕고 있다는 소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송구하지만 기다리지 마시고 먼저 가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여기, 신전으로 향하는 간단한 약도를 첨부합니다. 오렌 산만 오르시면 되니 찾기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끝까지 두 분을 보필하지 못하는 죄는 훗날 엘뤼엔 님께 청하겠습니다.
그럼 신전에서 뵙겠습니다.
―카이테인 올림.
똑바로 쓴 글자마다 그의 차분한 성정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적힌 내용에는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설마 신관인 카이테인에게 감시가 붙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봐. 무슨 편지인데?”
“앗!”
그때 불쑥 뒤에서 큰 손이 나타나더니 내게서 편지를 낚아챘다. 라피스였다. 그는 내가 얼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태연히 편지를 눈으로 훑더니 모든 정황을 파악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안내인은 오지 못하려나 본데?”
“……나도 눈 있거든?”
“그럼 이제 우리끼리 가면 되겠군.”
가볍게 중얼거린 그는 편지를 내게 돌려주고는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잠시 그를 노려본 다음 다시금 편지를 전해준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라피스의 모습을 넋을 잃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오렌 산은 여기서 많이 머니?”
“아, 아뇨, 북쪽으로 조금만 가시면 돼요. 제일 큰 산이라 바로 눈에 띄실 거예요. 하지만 신전에 가시는 거라면 좀 걸려요. 산의 최정상에 있는데, 오르기까지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리거든요.”
“컥! 하루?”
“네, 게다가 오렌 산은 사계절 내내 혹독한 추위로 유명해요. 옷과 식량을 단단히 준비해 가셔야 할 거예요. 지금 그런 차림으로 가셨다간 얼어 죽기 딱이실걸요. 참배 드리러 갔다가 얼어 죽은 사람 여럿 봤어요.”
‘으음. 누가 괴팍한 성격 아니랄까 봐 신전을 지어도 꼭 그런 곳에…….’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 사례의 뜻으로 소년에게 금화를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소년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힌 후에야 가게를 떠났다.
“카이테인 씨는 오지 못하는 거야, 엘?”
“응, 아무래도 우리끼리 가야 할 것 같아. 산이 춥다고 하니까 외투를 좀 더 구입한 후에 바로 출발하자.”
내 제안에 이사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달리 라피스는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바로 출발한다니. 지금 밖에 눈 쌓이는 거 안 보여? 갈 땐 가더라도 눈이 좀 그치고 난 후에 가는 게 낫지 않겠어?”
“검문 때문에 안 돼. 눈이 그치면 다시 병사들이 활동하기 시작할 거야. 그전에 떠나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지금도 불안해 죽겠구만.”
“왜? 누가 신고라도 할까 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피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오버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도무지 믿지 못하는 기색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난 일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야. 이곳에 오기 전에 들른 다른 마을에서 신고당한 적이 있거든. 후드를 쓰고 있는 게 수상해 보였나 봐.”
“하아? 그러고 보니 그 답답한 후드는 왜 계속 쓰고 있는 거냐? 그냥 벗으면 되잖아. 황제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된다고.”
“얼마나 되긴. 지천에 초상화가 붙어 있단 말이야. 보면 바로 알아차릴걸?”
“아하, 그런 문제였군.”
그제야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달은 라피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사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죄지은 사람처럼 좌불안석의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별안간 라피스가 이상한 질문을 했다.
“어떤 타입이 좋아? 미소년? 미청년? 아니면 미중년? 붉은 머리? 파란 머리? 뭣하면 은발도 상관없는데.”
“그, 그게 갑자기 뭔 소린데?”
“얼굴이 다르면 알아볼 수 없을 것 아냐. 그러니까 지금 마법으로 바꿔주겠다는 거다. 이런 친절을 베푸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동료가 된 기념이라고 해두지. 의견이 있다면 반영해줄 테니까 마음 바꾸기 전에 빨리 대답해.”
“헤에…….”
그러고 보니 드래곤들은 폴리모프라는 걸로 모습을 변화시키는 거였지. 바로 그 마법을 이사나에게도 걸어주겠다는 소리였다. 설마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라 나는 속으로 매우 감탄했다. 드래곤이란 정말 편리한 존재구나.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기특한 행동을 하는 걸 보니 녀석의 모습이 조금은 예뻐 보였다.
“잠깐, 근데 왜 예를 드는 것마다 미소년, 미청년뿐인데? 눈에 안 띄려면 평범한 얼굴이 낫지 않아?”
“기각. 위대하신 이 몸은 다른 건 다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건 못 봐준다.”
“…….”
그래서 네 얼굴이 그렇게 지나치게 잘생겼던 거냐? 차마 대답을 듣기가 두려운 질문을 삼키며 나는 이사나를 돌아보았다. 지나치게 예쁘장한 얼굴은 오히려 평범한 것보다 못하다는 것이 현재의 내 지론이지만(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예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괜히 버텼다가 라피스가 마음을 바꾸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최대한 그의 의견에 맞춰야 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색깔만이라도 무난한 것으로 고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