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
마법을 품다 (1)
집 앞에 손님이 왔다. 부모님이 환한 얼굴로 뛰쳐나갔다.
희미하게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왠지 달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 이름이 안 불렸으면.’
속으로 기원하며 초조하게 문을 쳐다봤다.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로딘! 로딘! 나와 봐.”
불리지 않길 바랐건만, 이름이 불렸다. 귀라도 막고 싶었지만, 어차피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다.
“나가요.”
작게 대답하고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마차와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확 낚아채더니, 앞에 세웠다.
“이 아이예요.”
“확실해야 합니다. 우린 울고불고 어리광 부리는 애새끼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이죠. 우리 동네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아이가 우리 애랍니다.”
대화를 들은 로딘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길 바랐는데, 예상이 맞았다. 이 자리는 자신이 팔리는 자리였다.
‘하아.’
한 달 전에는 10살 많은 형이 팔렸고, 열흘 전에는 누나가 팔려 갔다. 그리고 오늘은 자신이 팔리는 날이었다.
언젠가 팔릴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날이 오늘일 줄은 몰랐다.
“흐음, 애가 너무 어린데. 진짜 어른스러운 거 맞습니까?”
“맞아요. 우리 애는 어릴 때부터 잘 울지도 않았어요. 꼭 필요할 때만 울었다니까요. 어찌나 신통방통하던지.”
“뭐, 알겠습니다. 대화해 보면 알겠죠.”
아버지와 상인의 대화에서 자신이 일찍 팔리는 이유를 깨달았다. 너무 어른스러운 게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어리광을 부릴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바로 지워 냈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지금 와서 그래 봐야 별로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았다.
“네 이름이 뭐냐?”
“로딘입니다.”
“나이가 몇 살이지?”
“다음 달에 5살이요.”
나이를 말하면서 상인의 표정을 살폈다. 너무 어린 나이이니 혹시나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한데 상인의 얼굴은 담담했다. 아니, 날카로웠다. 뭔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지금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아느냐?”
“제가 팔리나 보네요.”
“맞다. 나는 너를 사기 위해 왕도에서 왔다. 기분이 어떠냐?”
상인은 질문을 던지고 팔짱을 꼈다. 팔뚝에 설핏 드러난 힘줄이 꽤 위협적이었다.
“기분…… 좋진 않아요. 그저…… 내 차례가 됐구나 싶네요.”
“네가 처음이 아닌 모양이구나.”
“작년 내내 가뭄이었으니까요.”
대답하는 로딘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년에 이 부근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동부 지역은 오히려 풍년이라는데, 이 동네만 유독 비가 안 왔다.
흉작에 이은 혹독한 겨울.
그래서인지, 올해는 겨울의 시작부터 식사량이 팍 줄어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겨울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둘째 형과 누나가 팔려 나갔다.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구나. 만약 가뭄이 아니었다면, 팔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느냐?”
“아마도요. 그래도 언젠간 팔렸겠죠.”
로딘의 대답에 상인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환한 얼굴로 로딘의 부모를 돌아봤다.
“좋구나. 잠깐 양팔을 벌리고 서 보거라.”
“예.”
로딘은 상인이 시키는 대로 팔을 벌리고 섰다. 찬 겨울바람이 몸을 확 하고 덮쳤다. 머리끝까지 한기가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상인은 품에서 파란색의 사각형 물체를 꺼냈다. 그리고 로딘을 향해 내밀더니, 작게 뭐라고 읊조렸다.
소리가 너무 작아서 들리진 않았다. 그래도 사각형 물체에 희미한 빛이 생겼다 사라지는 건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재능이 있구나.”
“무슨 재능이요?”
사각형 물체가 재능을 알아보는 장치인 모양이다. 그런데 어떤 재능을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청소 잘하는 재능? 말 잘하는 재능? 아니면 머리가 좋은 재능?
세상에는 많은 일이 있고, 그에 걸맞은 재능도 다양할 테니까.
“나중에 알게 될 거란다. 마음에 드네요. 아주 어른스러워요. 나이가 좀 어리긴 하지만, 사겠습니다.”
“정말요?”
“얼, 얼마나?”
상인이 흔쾌히 구입 의사를 밝히자, 로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마치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들 같았다.
“마이언, 계산해.”
“예, 상단주님.”
상인은 더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뒤로 빠져 버렸다. 그 자리에 상인의 부하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로딘의 부모를 한쪽으로 데려갔다.
“이름이 로딘이라고?”
“예. 로딘입니다. 성은 없고요.”
“가자.”
상인이 로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로딘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아봤다. 담 너머에서 눈만 내놓고 훔쳐보는 큰형이 보였다.
‘여기까지네요.’
5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곳을 떠날 때가 됐다. 정도 많이 든 곳이지만, 이상하게 미련이 남진 않았다.
“가요.”
로딘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상인은 그런 로딘을 잠깐 살펴보다가, 마차로 이끌었다.
상인이 말 뒤에 묶인 커다란 나무 상자의 문을 열었다. 내부는 꽤 넓은 공간이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로딘이 주춤하고, 상인을 돌아봤다. 그러자 상인이 들어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들어가라.”
“예.”
로딘이 안으로 들어갔다. 상인이 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잠갔다.
“흐음.”
내부를 둘러본 로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부는 꽤 넓었다. 누워서 손을 위로 뻗어도 될 정도였다.
거기다 추위를 피할 두꺼운 이불과 베개, 앉아서 쉴 수 있는 방석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상해.’
돈을 주고 샀다면 노예일 텐데, 노예에게 주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공간이었다. 사방이 막혀 있다는 것만 빼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집보다 더 안락했다.
‘평범한 노예는 아니구나.’
상인이 어른스러운 아이를 찾고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재능이 있다는 말도 했다. 단순한 막일에 부릴 목적으로 자신을 산 건 아닌 게 분명했다.
20여 분 후,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의 흔들림을 느끼며, 로딘은 눈을 감았다.
대략 3시간 후에 상자의 윗부분 중 일부가 열렸다. 그 사이로 빵 두 덩이와 물, 빵을 찍어 먹을 수프가 제공되었다.
“먹어라.”
“감사합니다.”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열렸던 부분이 다시 닫혔다.
나무 틈새로 비치는 햇빛을 벗 삼아, 빵을 씹었다. 상당히 부드러워서 굳이 수프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맛있다.’
빵을 찢어 수프에 담갔다가 꺼냈다. 입에 넣으니, 뭔지 모를 고기 냄새가 입안을 감돌았다.
‘아! 행복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머리가 하얗게 비는 느낌이었다. 이런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노예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느릿하게 빵을 찢어서 수프에 찍어 먹었다. 빵을 다 먹고 남은 수프는 혀로 핥았다.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해졌다.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고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마치고 대략 20분 정도 지나자, 천장의 일부가 다시 열렸다. 곧이어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릇.”
“아, 예. 감사합니다.”
수염 사내가 빈 그릇을 가져가고, 다시 천장이 닫혔다. 곧이어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5시간가량 더 이동하더니, 마차가 멈췄다.
‘식사 시간인가?’
로딘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장이 아니라 옆의 문이 열렸다. 나무 상자로 들어올 때 사용한 문이었다.
문밖은 이미 어두웠다. 대략 저녁 7시쯤. 시계는 없지만, 로딘은 시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와라.”
“예.”
로딘은 상자에서 나와서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이 들어 있던 상자와 비슷한 상자가 주변에 많았다.
‘전부 8개.’
상인의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상자의 문을 열고 아이를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어쩌다 보니 로딘이 상자에서 가장 먼저 나온 아이였다.
‘음? 아.’
로딘은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자신이 가장 먼저 나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자신과 달리, 다른 마차에 탄 아이들은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 마음을 저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의미 없어.’
어른들의 힘에 아이들이 강제로 끌려 나왔다. 울고불고 떼를 써도 소용없었다.
‘음? 나이가…….’
로딘은 다른 노예들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일 줄 알았다. 유독 어린 자신을 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자에서 나온 아이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다. 대략 8살에서 10살 사이. 대략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식사를 준비해라.”
“예. 단장님.”
상인의 지시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이들을 지키는 어른은 1명뿐이었다.
‘아이는 나까지 9명. 상인의 부하는 모두 45명.’
아이 1명에 어른 5명이었다. 바로 앞에 있는 어른이 1명뿐이라지만, 가까운 곳에 어른이 너무 많았다. 이 정도 비율이면 도망은 시도조차 안 하는 게 나았다.
아이들끼리 모여서 잠깐 있으니, 30대 남자가 와서 모닥불을 피웠다. 추위에 떨던 아이들이 모닥불 근처로 후다닥 달라붙었다.
불을 쬐면서 잠시 있으니, 어른들이 움직여서 모포 아홉 장을 던져 주고 갔다.
로딘은 자기 몫으로 나온 모포를 몸에 감고, 고개만 밖으로 내밀었다. 모닥불의 열기가 얼굴을 빨갛게 달궜다.
‘대우가 좋아.’
돈을 주고 산 노예가 분명한데도 지나치게 아이 건강에 신경 쓰고 있었다. 먹을 것도 그렇고, 모닥불과 모포도 마찬가지였다.
로딘은 5년 가까이 부모와 지내면서도 이런 보살핌은 받아 보지 못했다. 거의 방치되다시피 지내다 보호를 받으니, 괜스레 불안해졌다.
로딘이 불을 쬐는 사이, 아이들이 한쪽으로 몰렸다. 로딘만 따돌리는 모양새였다.
로딘은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불똥이 튀는 건 별론데.’
로딘은 불안한 얼굴로 아이들과 어른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왠지 저 아이들이 사고를 칠 것 같았다.
집에 있을 때는 한 달 전에 팔려 간 둘째 형이 항상 사고를 치곤 했다.
발차기 연습한답시고 집 기둥을 부숴 먹고, 담벼락에 올라갔다가 무너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순전히 재미로 옆집 어른들 집 문에 진흙을 던진 건 수십 번. 쳐다보는 게 마음에 안 든다며 다른 애들을 패기도 했다.
둘째 형이 사고를 칠 때마다 누나와 자신도 함께 매를 맞았다. 왜 말리지 않았느냐는 뜻이었다.
동생들이 억울하게 매를 맞으면 자제할 법도 한데, 둘째 형의 사고는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곤란하네.’
고민하는 사이, 코로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요리 준비가 슬슬 끝나 가는 모양이었다.
“야. 꼬마.”
“음?”
냄새에 취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때, 귀로 아이의 음성이 들렸다. 자신과 거리를 벌리고 있던 아이 중 1명이었다.
“대답 안 해?”
“왜…….”
“쉬잇! 목소리 낮춰.”
목소리를 낮춘다는 건 어른들 몰래 할 얘기가 있다는 뜻이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더니, 일을 칠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왜요?”
“너. 저 아저씨한테 가서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해.”
“흐음.”
“무서우니까. 같이 가 달라고 말하고.”
로딘은 아이들이 꾸미는 일이 뭔지 바로 감이 왔다.
도주.
자신이 가까이에 있는 어른의 시선을 돌리면 자기들끼리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자신은 당연히 미끼였고.
벌떡.
로딘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어른에게 다가갔다. 다른 어른들은 야영 준비와 식사 준비를 하느라, 근처에는 1명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냐?”
“화장실 가고 싶은데요.”
“흐음.”
살짝 숨을 내쉰 남자가 로딘을 묘하게 쳐다봤다. 마치 너희들 꿍꿍이가 뭔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관없지.’
어차피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건 사실이었다. 겸사겸사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해 주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실패하겠지.’
눈앞의 남자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노예를 거래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다. 명령에 반응하는 속도와 자연스러운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도주를 계획하는 아이들도 많이 만나 봤을 것이다.
“가도 되나요?”
“혼자 가겠다고?”
“같이 가 주실래요?”
“안 될 거 없지.”
로딘이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커다란 바위 뒤에 앉아서 볼일을 봤다.
“튀어!”
그때 일행들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자신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던 아이였다.
“아저씨. 아이들이 도망치는 것 같은데요.”
“풋, 넌 버려진 게냐?”
“제가 버린 거예요. 전 도망칠 생각이 없거든요.”
로딘은 얘기를 나누면서 볼일을 마쳤다.
몸을 일으키고 남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일행 쪽에서 아이들이 도망쳤는데도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호, 노예 생활이 좋다는 말이냐?”
“그건 모르죠. 하지만 바깥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아요.”
로딘은 남자와 대화하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모포 9개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자신의 모포를 찾아서 몸에 감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바깥세상이 만만치 않다? 바깥세상에서 살아 본 것처럼 말하는구나.”
“굳이 살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죠. 어른들도 이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굶어요. 제 부모님도 그랬고요. 제가 팔린 것도 그래서죠. 그런데 10살도 안 된 애들이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오호, 재미있는 녀석이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