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
마법을 품다 (10)
코리는 사전의 두께를 보더니, 또 한숨을 쉬었다. 보기만 해도 갑갑한 모양이다.
“코리. 솔직하게 말해 줘. 대체 왜 이것밖에 못 본 거야? 열심히 했는데 이 정도인 거야? 아니면 열심히 안 한 거야?”
“놀았어.”
“하아, 그럼 그렇지.”
아이들에게 ‘자율’을 줬을 때 이런 문제가 생길 줄 알았다. 알아서 공부한다는 게 말이 쉽지,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른도 어렵지.’
집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봤다.
어머니는 ‘열흘에 한 번씩 청소해야지.’ 하고 계획만 세우지, 제대로 지킨 적은 거의 없었다.
비 오기 전에 배수로 정비할 거라던 아버지도 항상 비가 오고 나서 부랴부랴 손대기 일쑤였다. 이건 큰형과 작은형도 마찬가지였다.
“코리. 앞으로 한 달 동안 네가 열심히 공부하면 어디까지 볼 수 있겠어?”
로딘이 단어 사전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사전에 표시해 달라는 의미였다.
코리는 단어 사전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책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대략 중간 정도였다.
“좋아. 그 정도. 알았어. 랜트. 넌 지금 어디까지 봤는데?”
“코리랑 비슷해.”
“너도 손으로 짚어 봐.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하면 어디까지 볼 수 있어?”
“이 정도.”
코리보다 조금 부족한 정도였다. 이미 본 분량이 대략 10%, 앞으로 한 달 동안 볼 수 있는 분량이 대략 30%. 합치면 40%였다.
“헤들러 넌 됐어.”
“난 왜?”
“내 생각이 맞는다면, 넌 더 공부 안 해도 통과할 수 있을 거야.”
“어? 난 이 책에 있는 단어 반도 모르는데?”
헤들러는 귀족가의 자제로 선행 학습을 했음에도 단어 사전의 단어를 반도 채 몰랐다. 헤들러가 모르는 단어는 어린아이의 어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단어라고 보면 되었다.
“자, 생각해 보자. 어차피 너희들이 남은 시간 동안 사전을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해. 인정하지?”
“인정.”
“나도.”
“맞아. 불가능해.”
가장 좋은 건 다 외우는 것. 하지만 남은 시간으로 보나, 동기들의 지적 능력으로 보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남는 방법은 도박이 되더라도 범위를 좁히는 것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다 외우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문제를 낼 만한 단어들만 외우는 거지.”
“어? 교관님들이 어떤 문제를 낼지 어떻게 알아?”
“모르지. 내가 시험 문제를 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그래도 생각한 건 있어.”
말을 끊고 로딘이 주위를 환기했다. 어쩌다 보니, 4명 모두 서서 얘기하고 있었다.
“일단 앉자.”
“응.”
동기들이 다 앉은 걸 확인하고, 로딘이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할게. 만약 내 생각이 틀렸다면, 너희들은 시험을 망칠 거야. 아마 절반도 못 맞히겠지.”
“괜찮아. 어차피 대책도 없다고. 말해 줘. 네가 생각한 거.”
“좋아. 말해 줄게. 저 사전 안에 있는 단어 중에는 일상에서는 쓸 일이 없는 단어도 많거든. 아마 교관님들도 모르는 단어가 엄청나게 많을 거야.”
“설마.”
“진짜야. 전문 용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단어도 많고. 말로는 안 쓰고, 글을 적을 때만 사용하는 단어도 많아. 난 그런 단어들을 다 제외해도 된다고 생각해.”
로딘의 생각은 간단했다. 일상에서 쓰는 단어,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단어만 외우자는 거였다.
“그게 많아?”
“그런 단어가 몇 개나 되는데?”
“우리가 한 달 동안 다 외울 수 있을까?”
“잠깐만. 생각 좀 해 보자.”
로딘은 눈을 감고, 사전에서 봤던 단어들을 떠올렸다.
수만 개의 단어가 빠르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중에서 많은 단어를 버리고, 일부만 골라서 따로 분류했다.
“6,000개. 외울 수 있겠어?”
“6,000개면 얼마나 되는 거지?”
“랜튼하고 코리가 대충 이만큼 봤다고 했지? 여기 있는 단어들을 다 합하면 대략 3,000개 정도일 거야. 그러니까 두 배라고 보면 돼.”
랜튼과 코리는 단어 사전의 약 10% 정도를 이미 공부한 상태였다. 단어 사전에 적힌 모든 단어가 정확히 33,669자. 그중 10%면 3,000자 이상이다.
“아! 할 수 있어. 그 정도는.”
“놀면서 하면 안 돼. 시험 범위를 임의로 좁힌 만큼 골라 주는 단어는 완벽하게 외워야 해.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
“나는? 나는?”
헤들러가 끼어들었지만, 로딘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골라 주는 단어는 대부분 네가 아는 단어일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도 봐 두는 게 좋긴 하겠지만.”
“그럼, 그 단어는 어떻게 추릴 건데.”
“내가 적어 줄게. 너희들 공책 다 꺼내 봐.”
헤들러, 랜트, 코리가 자기 공책을 꺼냈다. 한 달 전에 적어 준 발음 기호가 적힌 공책도 보였다.
로딘은 공책 하나를 골라서 단어를 적어 내려갔다.
단어 사전과 마찬가지로 한 면에 30개의 단어를 적었다. 단어와 발음 기호는 기본. 조금 헷갈릴 수 있는 단어는 뜻까지 적었다.
한 면을 다 쓰고, 공책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새로운 공책을 꺼내 새로운 단어를 적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나 1명씩 잡고 공부해. 시간 없잖아.”
“아!”
30개의 단어가 적힌 첫 번째 공책은 랜트에게 넘어갔다. 랜트는 곧장 책상으로 가더니, 공부를 시작했다.
헤들러는 공책에 적힌 단어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 아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 * *
작업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로딘은 주로 오후에 진행하는 수학 시간을 이용해서 단어를 적었다.
지금 가르치는 교관의 수학 수업은 도서관에서 진즉에 공부한 내용이었다. 워낙 기초라, 로딘에게는 복습의 의미조차 없었다.
‘아, 힘들다.’
단어 36,000자가 넘는 단어를 읽는 건 금방이었는데, 직접 쓰려니 상당한 중노동이었다.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서,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로딘은 양손을 쓰는 걸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왼손으로 30개의 단어를 적고, 오른손으로 다시 30개의 단어를 적었다. 쓰지 않는 손은 아래로 축 늘어뜨려서 최대한 쉬게 했다.
“너 왼손도 써?”
“뭔 소리야? 로딘은 원래 왼손으로 식사하는데.”
“아닌데. 오른손으로 식사할걸. 내가 로딘이 오른손으로 식사하는 걸 분명히 봤다고.”
오후 수업이 끝나고 식사하러 가는 길에 코리와 헤들러가 별 희한한 걸로 언쟁을 벌였다. 워낙 친하니, 저런 언쟁으로 감정이 상하진 않을 거다.
“그만. 그만. 나 두 손 다 써.”
“어? 그게 돼?”
“식사할 때 사용하는 손이 진짜 손이래. 넌 어떤 손으로 먹어?”
“어디 앉았느냐에 따라 달라. 왼쪽에 사람 있으면 오른손으로 먹고, 오른쪽에 사람 있으면 왼손으로 먹어.”
오른쪽에 사람이 있을 때 오른손으로 식사하면, 팔이 걸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반대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항상 상대와 먼 쪽 팔을 주로 썼다.
로딘에게 양손잡이는 딱 그 정도 가치였다.
조금 편해져서 좋다고 할까. 거창한 가치는 부여하지 않았다.
“나도 양손잡이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돼?”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로딘은 양손잡이가 되겠다고 억지로 노력한 적이 없었다.
그냥 됐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손을 사용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경우였다. 그래도 억지로 원인을 찾자면, 가정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엄마가 왼손잡이였다. 그래서 왼손을 사용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
“신기하다.”
“공부는 다 했어?”
“아, 아니.”
“식사할 때도 공책은 빼 먹지 말고. 알았지?”
“아! 또 잔소리다. 도망치자.”
“어딜 도망가.”
요즘 내무실이 있는 3층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뒤늦게라도 공부하려는 내무실은 엄청난 공부 열기로 뜨거웠다. 반대로 자포자기한 내무실은 완전 놀자 판이었다.
로딘이 있는 301호 내무실은 명백히 전자였다.
공책을 손에서 놓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골라 준 단어 대부분을 아는 헤들러도 모르는 단어를 찾아 가며 공부하고 있었다.
“난 간다.”
“또 도서관?”
“응, 열심히 공부…….”
콰아앙!
그때, 건물 뒤편에서 굉음이 울렸다. 식사를 마치고 쉬던 아이들 전부가 몸을 움찔할 정도로 큰 소리였다.
“뭐, 뭐야?”
“음?”
“마법이다! 마법이 확실해.”
귀족 출신이라 마법을 직접 본 적이 많은 헤들러가 굉음의 정체를 파악했다. 로딘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의견이었다.
“찾아!”
“넌 동편. 우린 서편부터 뒤진다.”
교관 1명이 조교들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당황하던 조교들이 즉각적으로 퍼져 나갔다.
“어이, 훈련생들! 당장 내무실로 들어간다. 지금 당장!”
“예,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고, 내무실로 돌아갔다. 로딘도 오늘만큼은 독서를 포기해야 했다.
“무슨 일이지?”
“몰라. 혹시 누가 도망친 거 아냐?”
“그건 아닐 거야. 훈련생이 도망친 정도로 이런 혼란이 벌어질 리가 없어.”
교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심각했다. 조교들도 당황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누가 들어온 거야. 확실해.”
“마법사가 침입한 거야?”
“아니. 마법사는 이쪽 사람일 거야. 아까 났던 소리도 교관 중 1명의 마법이 낸 소리일걸.”
로딘도 헤들러의 말에 동의했다.
좀 전에 들린 굉음은 상당히 컸다. 낮은 서클의 마법사가 만들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고서클 마법사는 꽤 귀한 자원이다.
고작 이런 곳을 침입하기 위해 고서클 마법사를 투입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외부 침입이면 잉그렘 제국이겠지?”
“잉그렘 제국이라…….”
로딘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리아즈 왕국보다 훨씬 강대국인 잉그렘 제국이라면 양성소를 침입하겠다고 고작 몇 명을 보낼 리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을 투사해 확 밀어 버리거나, 세작을 투입해서 내부 정보를 몰래 빼내는 정도로 끝냈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왕국일까?’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았다.
특수군 양성소는 같은 나라의 귀족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비밀 시설 같았다. 당연히 다른 나라도 이곳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그러다 아주 작은 힌트를 얻은 나라가 나타났고, 그들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면?
오늘 일어난 소란이 대충 설명된다.
‘리아즈 왕국보다 약한 나라일 거야. 아마…… 베로스 왕국?’
로딘이 꼽은 가장 가능성이 큰 곳이었다.
베로스 왕국은 리아즈 왕국보다 훨씬 작은 나라였다. 영토도 그렇고, 인구도 절반밖에 안 된다.
‘역시. 연합이라고 해도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어.’
아마 20여 년 전의 전쟁에서 힘들게 점령한 땅 대부분을 다시 내준 이유도 이 때문일 거다.
13국 연합 사이의 미묘한 대립과 경쟁. 이런 요소가 서로를 견제하게 했을 게 분명했다.
‘나중에 벌어질 전쟁도 같은 꼴이겠군.’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이기고 있으면 이기고 있는 대로 잿밥에 눈이 멀어서 문제가 될 것이다. 지고 있으면 자기만 살겠다고 각자도생할 테고.
‘하아, 문제야.’
자신은 패배 확률이 높은 전쟁에 직접 참전해야 하는 처지였다.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상황 해제! 상황 해제!”
그때 문밖에서 조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침입자를 잡은 모양이다. 굉음이 들리고 대략 50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저기. 도서관 가도 됩니까?”
“물론이다. 평소와 같다.”
“감사합니다.”
로딘은 환하게 웃으며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헤들러가 미친놈 보듯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 * *
소란이 가라앉고, 위원회의 6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앙 건물 최상층이었다.
위원장 크레이트가 맨 먼저 착석했고, 뒤이어 다른 위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끝났는가?”
“예, 16명 모두 처리했습니다.”
특수군 양성소에 낯선 이들이 들어왔다는 걸 알아낸 건 대략 점심 무렵이었다. 조교를 통해 보고가 들어왔고, 교관들의 인솔하에 수색을 시작했다.
원래는 조용히 찾아서 조용히 잡아들일 목적이었는데, 막판에 문제가 생겼다. 침입자 중 1명이 주변을 단단히 틀어막는 방어형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이다.
5서클 마법사이자 위원회의 위원인 크세르가 급히 투입됐다. 그리고 시끄러워질 걸 각오하고 아티팩트가 만든 실드를 강한 화력의 마법으로 깨부쉈다. 아이들이 들은 굉음은 이때 발생했다.
그때까지 남았던 놈들은 아티팩트가 깨지자마자 사방으로 도망쳤다.
“배후는?”
“베로스 왕국과 패리 왕국 같습니다.”
“쉽게 불던가?”
“예. 제대로 훈련받은 요원이 아니라 용병이었습니다. 고문 도구만 보고도 술술 불더군요. 아! 통신 구슬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