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0)
마법을 품다 (100)
갱도부터 잔해를 헤치고 들어가던 이들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간신히 길을 뚫었다. 100명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더 긴 시간이 걸렸을 터였다.
“장로님. 길을 열었습니다. 한데…….”
“잠금장치가 있는 모양이군.”
“예. 바닥으로 난 문이 있는데, 평범한 방법으로는 열리지 않습니다.”
“흐음. 일단 확인 좀 해 보지.”
장로는 부하들이 갱도에서부터 뚫어 놓은 길을 따라서 느긋하게 걸었다.
공기가 탁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도 났다.
“공기가 안 좋군.”
“정화 마법을 썼는데도 계속 악취가 나더군요.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서둘러야겠군.”
발을 빠르게 놀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부하들이 사방을 지키고 있는 중앙에 아래로 향하는 커다란 문이 드러나 있었다.
“여깁니다. 장로님.”
“흐음. 일단 좀 살펴 봐야겠……, 음?”
“왜 그러십니까?”
“어떤 놈이 감히!”
로딘은 이 자리에서 식사했지만, 흔적을 남기진 않았다.
음식은 깔끔하게 다 먹었고, 자리도 깔끔하게 치웠다. 요리사 조각상의 조리 도구는 설거지가 필요 없어서, 흘릴 것도 없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문에 있었다. 로딘이 들어가면서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힐 때 바닥에 문이 움직인 자국이 남았다.
“넌 여기 이 자국이 보이지 않느냐?”
“예? 이게…… 무슨…….”
“문은 여기서 이런 식으로 밀리면서 열렸다. 그리고 다시 닫혔지. 여기서부터 이쪽으로 길게 이어진 자국은 문이 열렸다가 닫힌 흔적이다.”
그제야 부하들도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누군가가 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마법적인 잠금을 풀었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누군가 먼저 들어가서, 자신들이 노리는 것을 먼저 얻었다는 게 중요했다.
“대체 누가?”
“알아봐야지.”
장로가 눈을 감고 문에 새겨진 마법진을 살폈다. 그런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왜 그러십니까?”
“이상하군. 안의 마법진 파악이 안 돼.”
“대마법사조차 파악할 수 없는 마법진이라는 뜻입니까?”
장로의 정체는 7서클 대마법사 페나일. 하지만 대륙에 알려진 7서클 마법사는 아니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소수만 알고 있는 대마법사였다.
“그게 아니야. 마법진 자체가 없어.”
“예? 마법진이 없다는 얘깁니까?”
“이상하군.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 전혀 알 수가 없어.”
페나일은 대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마나를 보거나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마나로 새겨진 문의 마법진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하면 먼저 들어간 자는 어떻게?”
“그걸 모르겠군. 으음, 강제로 열어 봤나?”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습니다. 장로님께 알리는 게 먼저라 생각되어서.”
“흐음. 모두 갱도 밖으로 물러나라. 내가 강제로 열어 봐야겠다.”
명령이 떨어졌다. 페나일 장로의 부하들은 두말하지 않고 빠르게 갱도를 벗어났다.
“흐음, 어떤 놈들일까?”
페나일 장로는 설사 1명이 이 문을 통해 들어갔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다수로 몰려왔듯, 어떤 조직이 이곳에 먼저 들렀다고 생각했다.
“발리스 노바. 그놈들일까? 하지만 놈들은 서대륙이 주 활동 무대일 텐데.”
과거에는 그의 조직과 발리스 노바가 꽤 자주 충돌했다.
양쪽 모두 고대의 흔적을 쫓고, 고대의 마법을 이으려는 목적을 가진 단체. 지향점이 같다 보니, 부딪히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활동 무대가 갈렸다.
발리스 노바는 서대륙에 처박힌 채, 중앙 대륙에는 관심을 껐다. 마수림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중앙 대륙으로 손을 뻗을 여력이 없었다.
반면 그가 속한 슬라본은 중앙 대륙에 집중했다.
마도 제국의 수도가 서대륙의 마수림 근처였던 건 분명하지만, 마도 제국의 말기 무렵에는 거의 지금의 중앙 대륙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기 때문이다.
“후우, 나도 안전장치는 필요하니까. 그레이트 아이스 배리어.”
7서클 방어 마법을 먼저 사용해서, 앞에 세웠다. 그리고 바로 7서클의 공격 마법을 영창했다.
“인페르노 버스터!”
페나일 장로가 만든 7서클 화염 마법이 바닥에 놓인 문의 정중앙을 때렸다. 거대한 화염이 일어나며, 금속 재질의 문을 계속해서 가열했다.
끼아아아아! 퍼억!
“크억!”
기이한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문에서 시커먼 뭔가가 튀어나왔다.
검은 액체처럼 생긴 뭔가는 배리어를 순식간에 찢어 버리더니, 페나일 장로의 왼쪽 가슴 옆을 찢고 지나갔다.
“빌,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페나일 장로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운이 좋았다. 그레이트 아이스 배리어가 검은 액체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꿨기에 살아남았다. 배리어가 제 역할을 못 했다면, 심장이 뚫릴 뻔했다.
“후우, 리커버리. 이런.”
치유 마법을 뚫린 옆구리에 사용했는데, 상처는 거의 치유되지 않았다. 검은 액체에 치유를 막는 어떤 효과가 있는 게 분명했다.
“곤란하게 됐군.”
누군가는 저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저 안에 있는지, 아니면 벌써 밖으로 나왔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7서클 마법조차 버티고, 오히려 반격까지 하는 아티팩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었다.
“흐음. 리커버리.”
치유 마법을 다시 사용했다. 허리는 아주 느릿하게, 자연 치유보다 조금 나은 속도로 치료되고 있었다.
“돌겠군.”
페나일 장로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갱도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은 이 문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저 안에 들어간 놈이 아직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기를, 그래서 밖에서 놈을 잡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크윽!”
“장로님.”
비틀거리면서 갱도를 나왔다. 부하들이 급하게 다가와 부축했다.
“이곳을 지켜라. 만약 놈이 아직 저 문 안에 있다면, 반드시 나올 터.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장로님.”
“아! 탑으로 연락을 넣어라. 아무래도 탑주님이 아니면 저곳을 못 열 것 같군.”
“아!”
페나일 장로가 속한 조직은 슬라본.
뒷골목에 도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단체였다. 설사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슬라본의 구성원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슬라본은 중앙 대륙에서 활동하는 에크로트라는 이름의 작은 마탑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에크로트 마탑의 본거지는 메이븐 왕국이지만, 대외 활동이 활발한 곳은 아니었다. 주된 사업 역시 어린아이가 잔병치레하지 않게 도와주는 싼 아티팩트뿐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뭐 하나 특별한 게 없는 작은 마탑 에크로트.
하지만 실체는 슬라본이었고, 7서클 마법사만 무려 19명을 보유한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4대 마탑 따위는 까마득하게 넘어선 전력이었다.
“난 좀 쉬어야겠다.”
“탑주님만 요청하면 되는 겁니까?”
“나 페나일이 문을 열려다가 역공을 당했다고 알려라. 그러면 알아서 하겠지.”
“알겠습니다.”
천막으로 돌아가는 페나일 장로의 인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좀 전에 자신을 공격했던 검은색 액체를 떠올렸다.
끔찍한 공격이었다. 워낙 빨라서, 이미 다친 후에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심장을 노렸어.’
정확히는 마법의 시작점인 서클이 있는 곳을 노린 공격이었다. 금속 재질의 문에 그런 식의 명령어가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내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분명히 마법은 새겨져 있어. 흐음. 또 이런 걸 발견하다니.’
슬라본 본부에도 이런 물건에 몇 개 있었다. 아무리 뒤져도 마법진이 보이지 않는데, 마법은 분명히 새겨진 아티팩트. 모두 마도 제국의 유물이었다.
‘그런데 날 공격했던 게 액체가 아니었나?’
처음에는 액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연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옆구리를 뚫은 검은색이 바로 사라진 것만 봐도 액체는 아닌 것 같았다.
* * *
로딘은 책을 빨리 넣을 방법을 궁리하다가, 제나와 카리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공간 팔찌에 수납하기 위한 조건은 딱 하나.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손에 닿은 물건이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제나와 카리스에게 자신의 몸을 거꾸로 들게 했다. 마치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하듯, 카리스와 제나는 로딘을 거꾸로 든 채 책이 있는 곳을 휘저었다.
로딘은 손을 쫙 펼친 채, 손에 닿는 모든 물건을 수납했다. 먼지가 끼어들어 가기도 했지만, 무시했다. 정리는 나중에 조용할 때 하면 되었다.
그러다 외부에서 들리는 굉음을 들었다.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입구 쪽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못 들어올 거야.”
금속제 문에는 마나를 이용해 만든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마나를 보거나 느낄 수 없다면, 마법진을 파훼하는 건 불가능했다.
“주변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로딘은 벽에 가득 채워진 룬어를 슬쩍 쳐다봤다. 저 많은 방어 마법진이라면, 외부의 어떤 공격도 상당히 오래 버텨 낼 것이다.
“할 일이나 하자.”
카리스와 제나를 움직여 다시 책을 열심히 수납했다. 중간에 또 몇 번 식사를 했고, 잠깐 몸을 푼 후에는 다시 책 수납을 이어 갔다.
“드디어 끝이군.”
책을 전부 아공간에 수납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카리스와 제나가 아니었으면 2배는 걸렸을 것이다.
“남은 건 벽인데.”
로딘은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서부터 마법진을 읽어 나갔다. 역시나 모르는 룬어가 너무 많아서, 한 번에 다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이게 상태 보존 마법 같은데.”
상태 보존 마법을 경험하는 건 이번이 2번째였다. 처음은 프루발의 보물이 든 상자를 분석할 때 봤다.
“달라. 비슷한 룬어를 사용하지만, 마법진을 구성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어.”
로딘은 이곳의 아티팩트와 벽에서 본 마법진과 프루발의 보물에 새겨진 마법진을 비교해 봤다.
마법의 수준은 이곳이 더 높았다. 무려 아공간 마법이 든 팔찌라든가, 전투 인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로딘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니, 현시대의 모든 마탑이 침을 질질 흘릴 정도로 높은 수준의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을 구성하는 방식을 보면 프루발이 위였다. 한 수, 아니 세 수 이상 프루발의 보물에 새겨진 마법진의 수준이 높았다.
훨씬 효율적이고 세련되었다. 그러면서도 견고했다.
비교하자면 수십 년을 망치질해 온 대장장이와 재능은 있지만 배운 지 몇 년 안 된 초보 대장장이처럼 둘은 수준 차이가 컸다.
“나중에 책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겠지.”
자신이 본 아티팩트가 양 진영이 만든 아티팩트의 정점이라고 볼 순 없었다. 수준을 논하기에는 아직 양쪽의 정보가 부족했다.
로딘은 의문을 접고, 다시 룬어에 집중했다.
모르는 룬어가 수시로 등장했다. 그럴 때마다 앞뒤 수십 개의 룬어를 함께 묶어서 통째로 머릿속에 담았다. 나중에 떠올려 보고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아!”
절벽 한쪽을 다 보고, 다음 벽으로 넘어가기 직전. 로딘은 벽과 벽 사이에서 틈을 발견했다. 길게 세로로 생긴 균열인데, 이 때문에 마법진 일부가 깨져 있었다.
“이거구나. 마나가 새어 나왔던 이유.”
이곳 벽에 새겨진 모든 룬어는 마나를 흡수해서, 그 힘을 에너지로 사용해 가동된다. 그 때문에 벽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압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벽에 긴 균열이 생겼다. 이때 마법진은 일시적으로 기능을 못 했고,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마나의 상당 부분을 외부로 분출했다.
“마나를 마구 쏟아 냈을 거야.”
하필 그때 매튜가 이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농도의 마나를 덮어쓰면서 마나 중독에 걸리게 됐다.
하지만 마법진은 자체 복원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간 균열 때문에 정상 기능을 못 했던 마법진은 며칠, 혹은 몇 달에 걸쳐서 스스로 마법진을 복구했다.
잠시 뱉어 냈던 주변의 마나 역시 다시 회수한 상태였다.
“화산이구나.”
균열에 손을 대 보니, 온기가 느껴졌다.
마력이 아닌 마나를 모아 간단한 투시 마법을 사용했다. 벽 너머에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시뻘건 액체가 보였다.
“이거…… 오래 못 버티겠는데.”
방어 마법진도 대단하지만, 아직도 끓고 있는 용암의 열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매튜가 마나 중독에 걸린 지 3년이 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이만한 열기가 유지되고 있다면, 화산의 규모가 보통이 아닐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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