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2)
마법을 품다 (102)
페나일 장로는 반사적으로 귀를 막고,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냐!”
“갱도에서 누군가가 나왔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페나일 장로의 시선도 갱도 입구로 향했다.
거대한 굉음의 정체가 입구의 폭발이었던 모양이다. 갱도 입구와 그 주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놈들이다! 유적에 들어간 놈들이니, 절대 놓치지 마라.”
“그놈들이 하니라 1명입니다.”
“한 놈이든 아니든 절대 놓치면 안 된다. 놈이 간 방향은?”
“동쪽 소리엔 산 방향으로 갔습니다.”
부하가 가리킨 방향을 보며, 페나일 장로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소리엔 산은 리엔 산맥으로 이어진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곳이라, 완벽한 포위망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갱도 안에서 놈을 처리했어야 했다. 놈이 갱도를 나온 이상, 잡는 건 사실상 힘들어졌다.
‘방심했어.’
자신들이 이곳을 지킨 시간이 무려 14일이었다. 유적 안에서 사람이 오랫동안 안 나온 탓에 페나일 장로는 유적 안에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바로 어제, 경계 수준을 평상시 수준으로 낮췄다. 유적지로 들어간 자들은 오래전에 빠져나갔을 테니, 경계의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크윽!”
소리엔 산으로 가기 위해 무심코 몸을 날린 페나일 장로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금속제 문의 공격에 당한 부상이 아직도 낫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 부상은 5서클 치유 마법 리커버리 한 번이면 다 치료되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대체 뭐에 당했는지, 치료 속도가 너무 더뎠다. 이런 속도라면 완치까지 족히 반년은 필요했다.
“하아, 이대로 놓치나? 망할.”
욕을 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건 슬라본의 태생적인 문제였다.
슬라본은 탑주가 8서클 마법사였고, 7서클 마법사가 무려 19명이었다. 단일 조직으로는 발리스 노바와 함께 단연 최고였다. 서대륙의 잉그렘 제국도 슬라본보다 더 강하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문제는 숫자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19명의 장로가 거느린 부하들의 숫자는 대략 100여 명. 그 이상을 동원하려면 다른 장로의 도움을 구하거나, 탑주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탑주는 너무 높은 존재라 도움을 청하기 불편했다. 장로들끼리는 서로 견제하느라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임무는 부하들만 데리고 진행해야 했다.
이번에도 혼자서 진행하려다 보니, 사람이 부족했다. 사람이 충분했다면 경계 수준을 낮추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
불현듯 침입자가 소리엔 산으로 갔다는 보고가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탑주 역시 소리엔 산을 넘고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급하게 부하를 불러, 다시 마법 통신을 넣었다. 운이 따라 준다면 탑주가 직접 놈을 잡을 수도 있었다.
* * *
로딘은 시간을 가늠하고,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움직였다.
먼저 인비져빌리티 마법으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 주변에 3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꾸벅꾸벅 졸고 있어서, 몰래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이긴 한데, 경계를 이렇게 허술하게 서면 안 되지.’
로딘은 모르지만, 슬라본의 마법사들도 사정이 있었다.
이곳은 모우드 황무지의 갱도였다. 주변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는 페나일 장로의 입맛이 아주 까다롭다는 것.
제대로 된 음식이라도 맛이 없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하물며 건량이나 육포 같은 걸 식사라고 내놨다가는 그날 식사 당번들은 몸이 성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마법사들은 신선한 식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이틀이나 떨어진 도시를 왕복해야 했다. 그것도 매일.
아무리 마법사라도 지치는 게 당연했다.
그나마 페나일 장로가 경계 수준을 낮춰 줬지만, 그간 쌓인 피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죽일지, 그냥 두고 빠져나갈지를 잠깐 고민했다.
1명이라도 더 죽이면 뒤를 쫓을 자들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당연히 들켰을 때 위험도가 낮아진다. 대신 죽이는 과정에서 들킬 확률이 있었다.
들킬 확률을 낮추느냐, 들킨 후에 생존 확률을 올리느냐의 문제였다.
‘두자.’
살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로딘인지라, 이번에는 그냥 가기로 했다. 나중에 쫓아온다면, 그때는 최선을 다해 죽일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4서클 마법사를 경계병으로 쓰다니.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경계를 서던 셋 모두 나이가 50대는 되어 보였다. 거무튀튀한 로브를 입었는데, 어두운 곳이라 색깔을 정확하게 분간하긴 어려웠다.
‘여긴 깨끗하네.’
문 주변에는 경계를 서는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갱도를 지나는 동안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오가는 순찰도 없었다.
‘흐음, 이제 문제군.’
입구 근처까지 왔다. 입구 주변에는 무려 6명이나 경계를 서고 있었다.
‘자는 놈이 1명도 없네.’
마법사는 마력에 민감한 존재. 투명화 마법을 쓴 상태로 안 들키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어차피 들킬 거라면…… 제대로 화려하게.’
마법은 입구에서 먼 갱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사용했다. 수인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6서클 마법 3개를 차례대로 만들었다.
썬더 스톰, 플레임 스트라이크, 베쿰 익스플로젼.
모두 6서클 마법 중에서 파괴력으로는 수위에 꼽히는 마법들이었다. 특히 썬더 스톰과 베쿰 익스플로젼은 난이도가 높아서 6서클 마법사 중에도 못 쓰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가자.’
입구 쪽으로 달렸다. 그리고 갱도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경계를 서는 마법사들에게 썬더 스톰을 날렸다.
츠츠츠츠츠!
“크어어어.”
“으으으.”
“크으으.”
순식간에 감전된 마법사들은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그 자리에 쓰러진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고전압에 목숨을 잃었다.
삐이이!
아쉽게도 썬더 스톰은 경계를 서던 6명의 마법사 중 3명만 맞혔다. 물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까지 맞히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마법을 날렸다.
“적…….”
“무슨…….”
콰아아아아앙!
플레임 스트라이크와 베쿰 익스플로젼이 동시에 적들을 휘감았다.
주변을 순식간에 태우는 어마어마한 열기와 진공의 폭탄이 만나며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을 만들었다.
삐이이이이!
“헉!”
직접 마법을 사용한 로딘도 충격을 받았다.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파괴력과 귀에 이명을 일으키는 거대한 소음은 로딘의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귀는 여전히 잘 안 들리지만, 일단 서쪽으로 달렸다. 앞에 구조물이 보여서, 플라이 마법으로 몸을 띄웠다.
한참을 날아가고 있으니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힐끗 돌아보니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들 10여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쉽지 않은 상대들이야.’
6서클 마법사 1명에, 5서클 마법사가 3명, 4서클 마법사 다수가 섞인 조합이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4대 마탑 중 한 곳이라도 온 건가?’
뒤를 따라온 자들은 하나같이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서대륙처럼 거대한 전쟁이 아니면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자들이 마법사였다. 특히나 5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어지간한 영지를 다 뒤져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 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저들은 어찌어찌 상대할 만했다.
‘진짜 위험한 자는 따로 있어.’
입구에서 느낀 강렬한 기척. 그건 자신의 경지보다 위 줄에 있는 자의 마력 흐름이었다.
‘최소 7서클. 맞서 싸우면 진다.’
일대일로 싸워도 승산이 낮은데, 상대에게는 부하들도 있었다. 포위되고 7서클 마법사와 싸우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전투 인형 둘을 소환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전투 시간도 몇 분이면 충분할 터였다.
하지만 카리스와 제나는 최후까지 숨기고 싶은 무기였다. 섣부르게 드러낼 순 없었다.
‘그나저나 위력이 엄청나게 높아졌어.’
생각해 보면 썬더 스톰도 예상했던 위력보다 훨씬 강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와 베쿰 익스플로젼도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위력이었다.
쓔우웅!
뒤에서 마법이 날아왔다. 로딘은 아이스 배리어만 뒤로 펼쳐 두고 계속 달렸다.
츠캉!
간단하게 만든 3서클 방어 마법인지라, 공격 마법 한 방에 부서졌다.
로딘은 뒤에서 마법이 부서지건 말건 무시했다. 지금은 7서클 마법사가 있을 걸로 예상되는 놈들의 진영에서 멀어지는 게 먼저였다.
즈즈즈.
또다시 뒤쪽에서 마력이 뭉치는 느낌이 들었다. 숫자가 많으니, 돌아가면서 마법을 쓰는 것 같았다.
“귀찮게. 파이어 월.”
로딘은 가는 길에 불의 벽을 세웠다. 추격자들의 발을 약간이나마 붙잡을 수 있다면 성공이었다.
“쳇.”
6서클 마법사와 5서클 마법사는 플라이 마법으로 불의 벽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잠깐도 멈칫하게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4서클 마법사는 파이어 월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동시에 물 계열 마법으로 불을 껐지만, 그 약간의 시간에 조금이나마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그라비티, 파이어 링, 아이스 링, 체인 라이트닝.”
뒤이어 중력을 올리는 마법도 펼쳤다. 그 위로 적들이 지나갈 때, 쉬지 않고 4서클 마법을 쏟아 냈다.
콰콰쾅!
‘좋아.’
4서클 마법의 연계에 상대 쪽 5서클 마법사의 몸에 작은 상처를 남겼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일단 다리를 추격을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다.
‘금세 따라오겠지.’
그래도 거리를 벌렸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어차피 마력은 남아돌았다. 지금 로딘은 6서클 마법사이면서 마력 양만큼은 대마법사 이상이었다. 4서클 마법 정도는 마구 써도 티가 안 났다.
“놈! 놓칠 성싶으냐?”
“흐음.”
6서클 마법사가 끈질기게 따라왔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거리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로딘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굳이 얼굴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그나저나 6서클 마법은 좀 불편하네.’
6서클 마법사가 되자마자, 모우드 황무지로 왔다. 6서클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마법사인데도 6서클 마법을 써 본 경험이 너무 적었다.
‘그래도 써야지.’
입으로 룬어를 영창하며, 소매 속에 가려진 손으로는 수인을 맺었다. 6서클 마법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완성되었다.
‘아이스 브레스.’
얼음의 숨결을 뒤로 뿜어냈다. 극한의 한기에 상대가 주춤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6서클 마법사라도 같은 수준의 마법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쉽게 막아 내지도 못해서, 다리를 멈춘 채 방어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무빙 캐스팅이 어설프구나.’
상대는 움직이면서 고위 마법을 쓰지 못했다. 무빙 캐스팅의 숙련도 문제일 수도 있고, 전투 감각이 별로일 수도 있었다.
‘됐다.’
6서클 마법 한 번으로 거리를 꽤 벌렸다. 7서클 마법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잡힐 일은 없었다.
‘산이다.’
산에는 몸을 숨길 곳이 많았다.
길고 두껍게 자란 나무, 무질서하게 놓인 바위, 굴곡진 지형까지. 모두 도망치는 사람에게 유리한 요소였다.
‘됐군.’
속도를 올려 소리엔 산 깊숙하게 들어왔다. 이제 쫓아오는 자들의 시선까지 완벽하게 피했다.
“흐음, 그나저나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갱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던 자들을 무작정 피해 움직이느라 동쪽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면서 소리엔 산이 있다는 게 떠올랐고, 어쩌면 추격자들을 떨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도망치면서 마법으로 적들의 움직임을 늦췄고, 소리엔 산에 들어와서는 추격자들의 눈을 완벽하게 피했다.
하지만 리치몬드 후작령은 모우드 황무지의 서쪽에 있는 영지였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결국 방향을 반대로 틀어야 했다.
“지토, 옷 바꾸자. 전에 마법 물품 상점에서 봤던 귀족 옷차림 알지? 그걸로 바꿔 줘.”
―꾸엥.
로딘이 입고 있던 회색 로브가 귀족들의 화려한 옷차림으로 변했다. 후드를 벗은 상태라, 얼굴도 드러나 있었다.
“마법은 4서클까지만 공개하고.”
2개의 서클을 과거에 개량했던 하이드 마력 서클 마법으로 가렸다. 과거 3서클 마법사일 때, 6서클 마법사였던 크레이트 위원장까지 속인 마법이었다.
“카리스, 제나.”
[마스터를 뵙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마스터.]카리스와 제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카리스는 공손하면서 묵직했고, 제나는 공손하지만 밝은 성격이었다.
“앞으로 호칭은 공자님으로 통일하자. 이유는 알지?”
[예, 마스터.] [그래요, 공자님.]로딘은 아공간 팔찌에서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꺼냈다. 그리고 메고 있던 공간 확장 배낭에 차곡차곡 넣고, 한쪽으로 내려놨다. 발로 두어 번 차서, 살짝 더럽혀진 모습도 연출했다.
아주 간단하게 원래부터 야영을 준비해 온 사람으로 변했다. 추격자들은 로브만 입은 모습으로 기억할 테니, 당시와 다른 지금의 모습을 보고 동일인이라 생각하진 못할 것이다.
“시작해 볼까?”
[어디로 가시나요?]“안 가. 여기서 야영할 거야.”
로딘은 거침없이 움직여 주변의 나뭇가지를 주웠다. 그리고 마법으로 불을 일으켜, 주변을 밝혔다.
쫓기는 듯한 기색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전투 인형이라 겁이 없는 카리스와 제나 역시 태연한 표정이었다.
모닥불을 활활 피우고, 침낭에 들어가 누웠다. 카리스와 제나를 위한 야영 장비가 없어서, 그들은 옆에 앉은 채 불침번을 섰다.
[공자님.]“쉿!”
산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로딘은 상대를 보자마자 몸이 굳는 느낌이었다.
‘미친. 말도 안 돼. 8서클이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