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3)
마법을 품다 (103)
7서클 마법사를 대마법사라고 부른다. 또 7서클 대마법사와 마스터에 이른 검사를 초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을 넘어섰다는 의미였다.
물론 7서클 마법사가 된다고 그가 진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어서 ‘초인’이라 부르며 경외하는 것일 뿐이다.
7서클조차도 인간이 아닌 취급을 받는데, 눈앞에서 8서클 마법사를 만났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동에서 육체와 정신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다면, 보자마자 넋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8서클. 확실해.’
로딘의 예리한 감각에 상대의 심장을 돌고 있는 강렬한 8개의 띠가 감지되었다. 부정할 수 없는 8서클 마법사였다.
“허허허, 이런 곳에 여행자가 있는 줄은 몰랐구먼.”
“여행자는 아닙니다. 목적지가 있는 여정이었는데, 길을 잃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그런가? 내 잠시만 쉬어 가도 되겠는가?”
“그렇게 하십시오. 잠시 한 명쯤 더해진다고 불이 꺼지기야 하겠습니까?”
로딘은 태연하게 대꾸하며, 침낭을 움켜쥐었다. 추위를 녹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반면 카리스와 제나는 자연스럽게 로딘의 앞을 막았다. 상대가 적으로 돌변했을 때, 로딘을 지킬 수 있는 위치였다.
‘8서클. 아! 크레이트 위원장이 말한 그들이구나.’
잠깐 흘리듯 들은 얘기였지만, 로딘은 당시의 대화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슬라본, 발리스 노바.
7서클 마법사가 우르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다. 고대의 흔적을 쫓는 이들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고대. 내가 머물렀던 지하 유적지를 찾아온 거였어.’
자신의 불운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딱 한 달만 일찍 6서클에 올랐으면 저들과 마주칠 일도 없었을 텐데. 어쩌다 양쪽이 유적을 찾는 시기가 겹쳐 버렸다.
“목적지라…… 어디로 가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갑니다만. 근데 아저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왜 그렇게 노인처럼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 30대 초반으로 보이진 않았다. 어려 봐야 30대 후반, 많다면 40대 후반까지도 볼 수 있는 외모였다.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면서, 동시에 상대가 마법사인지조차 모르는 애송이를 연기해야 했다. 그러자면 나이를 적당히 건드리는 게 좋았다.
“내가 30대 초반으로 보인다는 말인가? 허허.”
“쩝. 20대였어요? 뭐, 사과하라고 하진 마세요. 20대든, 30대든 저한테는 다 아저씨니까.”
“알겠네. 사과는 나도 필요 없네. 그런데 리치몬드 후작령으로 간다고?”
“예. 거기 살거든요. 일 때문에 잠깐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에요.”
로딘은 사는 곳을 순순히 말해 줬다.
거짓말은 진실 속에 숨겨야 했다. 사는 곳마저 속인다면 거짓말인 걸 들켰을 때 다른 의심까지 받을 수 있었다.
“리치몬드 후작령? 마법사 같은데 거기 산다는 말인가? 마법사가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닐 텐데.”
“뭐, 어쩌겠어요? 제 동생이 거기 카르…… 뭐라더라? 아무튼, 거기 검관에서 검을 배우겠다는데.”
로딘이 씁쓸하게 웃으며 혀를 찼다. 그 모습이 진심으로 동생을 안타까워하는 듯 보였다.
“오호, 형은 마법사인데 동생은 검사라……, 동생의 재능은 어때 보이던가?”
“저야 모르죠. 좋은지 어떤지. 근데 왜 자꾸 꼬치꼬치 캐물으세요? 혹시 뭐, 저를 납치하려고 뒷조사하는 건 아니겠죠?”
“허허허. 오해하게 했구먼.”
“미리 말하는데, 제 옆에 있는 호위들의 실력이 좀 좋아요. 그런데 자비따위 모르는, 아주 살벌한 사람들이거든요. 허튼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로딘의 엄포에 8서클 마법사 남자가 피식 웃었다. 전혀 두려움을 느끼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런, 조심해야겠구먼.”
“아, 됐어요. 잘 거면 그쪽에서 대충 자리 펴고 주무세요. 침낭은 제가 써야 하니까. 절대 내줄 수 없어요. 이해하시죠?”
“하하하. 침낭을 뺏을 생각은 없네.”
“그건 다행이네요.”
“난 바쁜 사람이라……. 이런 많이 지체했군, 약속이 있어서 그만 가 봐야겠네.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또 보지.”
8서클 마법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로딘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무시무시한 마법사와는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표정은 반대였다. 안도보다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이 밤에 간다고요? 그러다 다쳐요. 한밤중의 산이 얼마나 무서운데.”
“괜찮네. 익숙하거든.”
“난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안 말려서 발목을 삐었니, 어디가 다쳤느니. 이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럴 일 없네. 아! 자네는 4서클 마법사 같은데…… 5서클이 되는 길을 잃은 건가?”
4서클 마법사 얘기가 나오자마자, 로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냥 침낭에서 계속 버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 지금은 반응해야 할 때였다.
“당신 뭐야? 내가 마법사인 건 어떻게 알았지? 누구 사주를 받고 온 거지?”
“허허허. 또 오해하게 했구먼. 나 정도 경지에 오르면 그냥 보이는 법이라네.”
“경지? 뭐……, 어…… 설마 나보다 높아요?”
“하하하하하. 자넨 참 재미있는 사람이로구먼. 하하하하하. 이렇게 웃어 본 게 언제인지. 난 그만 가 보겠네.”
8서클 마법사는 시원하게 웃어 젖히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그의 얼굴에서 의심은 발견하지 못했다.
‘후우, 살았다.’
뒤늦게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터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8서클 마법사는 심장 소리만으로도 상대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 괴물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심장의 움직임마저 통제해야 했다.
처음에는 마력을 동원하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괴물 마법사가 마력의 움직임을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그래서 타인이 느끼지 못하는 마나를 택했다. 주변 마나를 살살 끌어모아, 심장을 느릿하게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다행히 통했어.’
예상대로 상대는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심장 덕에 로딘이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도 몰랐다.
‘슬라본일까? 발리스 노바일까? 아니면 다른 곳?’
당장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아니, 굳이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는 보지 말자.’
오늘부로 저들과의 인연이 영영 끊어졌으면 싶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 * *
아침이 된 후에야 로딘은 천막을 걷었다. 평범한 여행자들처럼 아침을 먹고 모든 짐을 배낭에 넣었다.
아공간 팔찌를 이용하면 짐을 확 줄일 수 있지만 일부러 배낭을 이용했다. 혹여나 어제 봤던 그 괴물 마법사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였다.
카리스와 제나의 호위를 받아 이동하는 중에 상행에 나선 상단을 만났다. 이미 호위로 고용된 용병이 충분한 상단이었지만, 로딘의 합류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지금 로딘은 값비싼 옷을 입은 귀족 차림. 거기다 딱 봐도 강해 보이는 호위 2명이 붙어 있었다.
상단으로서도 동행을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로딘은 상단과 함께 움직이는 게 더 자연스러워서 합류하게 됐다. 무리에 섞여 있으면 주목을 덜 받을 테니까.
‘시간은 더 걸렸네.’
혼자였다면 하루도 안 걸렸을 거리였다. 하지만 대규모의 상단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리치몬드 후작령까지 4일이나 걸렸다.
시간을 허비했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8서클의 괴물 마법사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감시할지 모른다. 완벽하게 안전해지기 위해 이 정도 손해는 감수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다. 드디어 일상으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로딘 오빠!”
“잘 지냈어?”
“응. 나 열심히 공부했어. 마법도 쓸 수 있다.”
“그래? 어디 볼까?”
비앙카는 얼마 전까지 마법을 쓰지 못했다. 서클도 만들었고, 캐스팅의 3 요건도 갖췄다. 하지만 마력을 끌어내는 방법을 몰랐다.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전혀 없는 일은 아니었다. 특수군 양성소에는 없었지만, 로딘이 봤던 책에는 이런 경우가 기술되어 있었다.
‘100명에 1명꼴로 겪는 일이라고 했었지.’
특별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냥 마법을 쓰려고 애쓰다 보면, 저절로 깨닫게 되어 있었다.
“여기서 쓸까?”
“그러면 안 되지. 연공실로 가자.”
“응.”
비앙카를 데리고 연공실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기 무섭게 비앙카가 마법을 발현했다. 1서클 마법 중에서도 기본인 라이트 마법이었다.
“오호, 제법 밝다. 마력을 과하게 넣은 건 아니지?”
“아니야.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마력이라고!”
가볍게 지적했을 뿐인데 비앙카는 발끈했다. 서럽기라도 한 듯, 눈물마저 글썽거리고 있었다.
“알았다, 녀석아. 소리 좀 치지 말고.”
“힝. 어때? 내 마법?”
“좋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마법사가 되겠다.”
비앙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비앙카가 기분 좋게 웃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히히히. 드디어 마법사다.”
“아직은 아니야. 정식 마법사 소리를 들으려면 3서클은 되어야 한다. 열심히 노력해.”
“응. 절대 포기 안 할 거야.”
비앙카를 격려해 주고, 1층으로 올라왔다. 마법 연습을 더 하려는지, 비앙카는 연공실에 남았다.
“아! 사장님. 오셨어요?”
“마가렛, 별일 없었어요?”
“아! 래리가 요즘 자주 다치는 것 같던데.”
“그래요? 많이 다쳤어요?”
“많이 다치진 않았는데, 안 보이는 곳 위주로 멍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아요.”
로딘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래리는 훈련이 재미있고, 카르도스 검관 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알아봐야겠네요. 아, 오면서 보니까 후작령에서 사람을 모으는 것 같던데.”
“서대륙으로 갈 병력을 모집한다고 하더라고요. 급여가 후해서 신청한 사람이 많대요.”
“흐음, 혹시 매튜도? 설마 아니겠죠?”
마가렛의 아들인 매튜는 이제 30대 초반이었다. 한창 피가 끓을 시기. 전쟁에 참전해서 영웅이 될 꿈을 꾸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요. 매튜는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사장님이 급여도 많이 주고, 위험한 일도 없고요.”
“다행이네요. 이번에 돌아다니면서 들은 얘긴데, 전쟁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아요. 피해가 상당히 클 거예요.”
“그래요? 후작령에선 연전연승이라고 하던데요?”
“승리는 맞아요. 하지만 피해가 커요. 용병으로 부족해서, 모병을 해야 할 정도로.”
중앙 대륙이 서대륙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선언한 건 반년 전이었고, 직접 병력을 파병해서 전쟁을 치른 지는 이제 3개월째였다.
중앙 대륙의 전쟁 참여 목적은 13국 연합의 승리가 아니었다. 전선의 고착화, 그래서 잉그렘 제국이 서대륙을 통일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 목적만 생각하면, 중앙 대륙의 참전은 성공적이었다. 중앙 대륙의 5개국이 전쟁에 참전하면서 서대륙의 전쟁은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한 채로 정체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중앙 대륙 5개국의 피해가 너무 컸다.
레녹스 왕국의 경우, 고용해서 보낸 용병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정예병 중에는 20% 사상자가 생겼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테비아 왕국은 사망자가 20%였고, 부상자를 합한 사상자는 50%에 육박했다. 고용한 용병은 진즉에 궤멸했고, 나머지 용병들은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매튜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아, 참. 혹시 매튜가 말을 관리할 수 있나요?”
“말이요? 음, 잠시만요.”
마가렛이 어딘가로 가서 매튜를 데려왔다. 청소를 하고 있었는지, 매튜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아!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예. 매튜도 오랜만이에요. 매튜, 혹시 말을 키울 수 있나요?”
“키우는 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련은 저도 할 줄 모릅니다.”
“훈련은 괜찮아요. 전투마(戰馬)로 키울 것도 아니고. 래리하고 비앙카가 말 타는 연습이나 할 수 있으면 되거든요.”
래리와 비앙카가 탈 말도 필요하고, 로딘 역시 말이 있는 게 좋았다.
몇 번 리치몬드 영지 외부를 돌아다녀 보니 말이 없는 게 은근히 불편했다.
마법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지만, 남들 보는 곳에서 마법을 펑펑 쓸 수는 없었다.
“그 정도면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렛하고 매튜도 타고 다닐 수 있으니, 수레를 끌 말도 함께 키우죠. 으음, 저까지 셋에 수레를 끌 말까지. 대략 5마리면 되겠네요.”
“제가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예. 고마워요, 매튜.”
“아닙니다.”
말을 키우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날 바로 시작할 수는 없었다. 말을 키우려면 마구간이 있어야 했고, 말에 필요한 여러 장구류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그사이에 로딘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해진 시간 동안 프루발 환영 수업을 들었고, 남는 시간에는 공동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연공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틈틈이 6서클 마법 연습도 해야 했다.
‘슬슬 래리 문제를 해결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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