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4)
마법을 품다 (104)
로딘은 새 1마리에 파밀리어 마법을 걸었다. 파밀리어 마법은 걸린 동물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로딘은 파밀리어를 건 동물을 통해 래리를 하루 종일 살폈다.
퍼억!
“아직도 포기 안 했냐?”
“넌 재능이 없다니까.”
“하여간, 주제 파악 못 하는 것들이 있다니까. 좋은 옷 입고 있어서 명문인 줄 알았더니.”
로딘은 래리가 괴롭힘당하는 장면을 묵묵하게 살펴봤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로딘은 꽤 분노하고 있었다. 래리가 괴롭힘당해서? 그것도 맞지만,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화가 났다.
‘후우, 어쩐다?’
래리가 괴롭힘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하나는 검술과 전혀 상관없는 가문 출신이라는 점.
리치몬드 후작령은 검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분위기라 검가가 아닌 이들은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하나는 래리의 오러 재능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특출나지 않으니, 괴롭혀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래리의 오러 재능은 일반인과 비교하면 괜찮은 편에 속했다. 괜찮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크게 욕먹지 않고 적당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도스 검관은 리치몬드 후작령 내의 3대 검관 중 1곳이었다.
워낙 좋은 인재들이 모이다 보니, 오러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너무 많았다. 이들 사이에서 래리의 오러 재능은 명백히 하위권이었다.
‘누굴 탓해야 하나?’
검관의 수련생들을 찾아서 혼내자니, 그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카르도스 검관 수련생이 대략 130명 정도 되는데, 그들 대부분이 래리를 때리고 괴롭혔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들 전부를 데려다가 혼낼 수는 없었다.
싸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리치몬드 후작령 내에서 로딘이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영주인 리치몬드 후작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몇 명이 덤비건 전부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웠다가는 리치몬드 후작령에서 지내는 건 포기해야 했다. 당연히 래리 역시 카르도스 검관에서 지낼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검관을 탓할 수도 없어.’
수련생의 일은 수련생이 알아서 해결한다.
카르도스 검관의 규칙이었다.
상대가 검을 쥘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은 카르도스 검관이 직접 수련생들을 처벌하는 일은 없었다.
‘검관은 잘못이 없고, 수련생은 너무 많고. 어떻게 해결하나?’
찾아가서 잘 타이르면 될까? 안 될 거다. 오히려 좀 맞았다고 보호자를 데려온 래리를 더 괴롭힐 게 뻔했다.
‘검술 입문이 너무 늦었어.’
비앙카나 래리, 둘 다 재능이 특출하게 뛰어난 건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간신히 검사 혹은 마법사로 행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비앙카는 래리보다 2살 어린 나이에 마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이미 래리보단 한발 앞서 있다고 봐도 되었다.
또 비앙카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로딘이었다. 마법에 관한 지식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천재가 선생이니, 가르침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와 달리 래리는 비앙카보다 2살 늦은 나이에 오러를 접했다. 이미 한발 뒤처진 상태였다.
또 카르도스 검관의 가르침은 너무 획일적이었다. 개개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뒤처진 수련생들이 앞서 달리는 이들을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그만두라고 할까?”
“나? 왜? 오늘은 공부하지 말까?”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열심히 공부해.”
“응, 오빠.”
비앙카를 대충 다독이고, 로딘은 생각을 거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카르도스 검관에서 계속 배우는 건 래리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 봐야 그저 그런 수련생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다른 검관으로 보내?’
그러자면 리치몬드 후작령을 떠나야 한다. 카르도스 검관에서 배우다가 적응하지 못해서 다른 검관으로 옮겼다는 소문은 래리에게 최악의 경력이 될 터였다.
‘검술이라……, 검술……’
로딘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공실로 내려갔다. 뒤에서 비앙카가 뭐라 뭐라 소리쳤지만, 손만 흔들어 주고 말았다.
연공실로 들어온 후, 로딘은 회중시계를 조작했다. 가리키는 시침은 무려 11시. 회중시계 수업의 마지막 바로 전 단계였다.
회중시계는 1시와 2시를 제외하면 시간과 난이도가 별 관계가 없었다. 11시 수업이라고 3시 수업보다 특별히 어려워지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가르치는 과목이 달라질 뿐이었다.
“11시 수업은 검술이지.”
래리에게 회중시계와 교재 지식이 든 반지를 줄 수는 없었다. 남에게 주기에는 프루발의 회중시계와 반지는 너무 귀한 보물이었다.
래리에겐 미안하지만, 두 동생에 대한 믿음이 아직 그 정도로 크진 않았다. 그렇다고 동생들에게 애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고한 믿음을 가지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검술……, 내가 이런 수업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땀 흘리는 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체력을 키우기 위해 애써 왔고, 요즘도 매일 1시간 이상은 운동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검술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가까이 붙어서 적과 싸우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받은 재능 점수도 차이가 컸다. 더 효율적으로 강해질 방법이 있는데, 굳이 재능이 떨어지는 검술에 시간을 많이 쏟기는 싫었다.
“매일 하는 운동을 대신할 정도면 충분해.”
프루발의 11시 환영 수업을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익숙한 선생이 나와서 수업을 진행했다.
검술 수업을 하루 만에 다 들을 순 없었다. 검술의 형을 가르치고, 그 설명을 듣는 데에만 3일이 걸렸다.
“흐음, 묘한 검술이네.”
검술의 동작. 검형은 모두 63개였다. 꽤 많았지만, 외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프루발의 환영 수업에 나온 검술은 과할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63개의 검형 중에서 공격의 묘리가 살아 있는 건 고작 10분의 1 수준인 7개였고, 56개의 검형이 방어에 치중했다.
“막고, 흘리고, 피하고, 쳐내고. 이걸로만 56개라……, 오직 마법사를 지키기 위한 검술이네.”
특히 상대를 쳐 내고, 밀어내는 동작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 32개였다. 보통 검사들은 잘 쓰지 않는 동작이었다.
상대를 멀리 밀어내는 건 싸움을 동등한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검사가 선호할 만한 방식은 아니었다.
차라리 살짝 균형을 흔들거나 강하게 때려서 무기라도 부수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를 보호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밀어내서 거리를 만들면, 마법사가 마법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래리하고 어울릴까?”
지나치게 극단적인, 밸런스가 전혀 안 맞는 검술이었다.
래리에게 선뜻 알려 주기가 꺼려졌다. 이런 걸 가르쳤다가 괜히 래리만 망치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내 몫은 아니니까.”
선택은 래리의 몫이다. ‘이런 검술도 있는데 익혀 볼래?’ 정도로 알려 주면 그걸로 족했다.
그날 밤, 래리가 카르도스 검관에서 돌아왔다. 겉은 멀쩡한데, 오늘도 몸 여기저기에 멍을 달고 있었다.
“래리.”
“어, 형? 어쩐 일이에요?”
“얘기 좀 하자.”
“그래요.”
래리가 응접실 의자에 앉았다.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 같았다.
로딘은 의자에 앉지 않고 문을 가리켰다.
“나가서 얘기하자.”
“네? 아, 예. 나갈게요.”
래리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이라고 부르지만, 풀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외곽을 따라서 나무가 심겨 있을 뿐, 중앙 전체에는 고운 흙을 깔아 놨다. 흙의 두께가 한 뼘 정도라, 밟고 있으면 살짝 푹신한 느낌도 들었다.
“무슨 일인데요?”
“칼 좀 줘 봐.”
“제 칼이요?”
래리가 잠깐 머뭇거리다가 검을 건넸다.
카르도스 검관에서 자기 칼은 남에게 맡기지 말라고 가르친다. 검을 수리하기 위해 대장간에 맡길 때를 제외하면 항상 애인처럼 끼고 있으라고 했다.
카르도스 검관에선 검을 남한테 잠깐 맡겼다는 이유로 벌을 주기도 했다. 래리 역시 초창기에 잘 모르고 검을 남에게 넘겼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로딘에겐 괜찮았다. 카르도스 검관에 이를 사람도 아니거니와, 설사 이른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검술이 하나 있어.”
“형이 검술도 해요?”
“아니. 못해. 그냥 알기만 하는 거야. 그런데 이 검술이 말이지.”
로딘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프루발 환영으로부터 배운 검술을 시연했다.
느릿하지만 군더더기는 없었고, 환영을 통해 배운 검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생기지 않았다.
탁!
마지막으로 검형을 펼치고, 로딘이 검을 래리에게 건넸다. 래리는 반사적으로 검을 잡고는 로딘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그거…… 뭐였어요?”
“극단적이지?”
“예. 방어적이네요. 공격은 하지 말라는 검술 같아요.”
공격에 속하는 검형이 있긴 했지만, 방어에 속하는 검형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숫자였다.
검술이 어떤 성향인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비슷해. 내가 볼 때, 이 검술에서 공격은 오직 약한 적을 상대할 때만 쓰는 것 같아. 비슷하거나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무조건 방어야. 막고, 피하고, 흘리고, 밀어내고.”
“저도 그렇게 봤어요. 그런데 검술은 갑자기 왜요?”
“네 눈에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방금 보여 준 검술은 음…… 상당히 등급이 높은 검술이야. 밸런스 따위는 개나 줘 버린 검술이긴 한데, 검술 자체의 수준만 보면 카르도스 검관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위일 거야.”
이건 예상이지만, 반쯤은 확신이기도 했다.
프루발의 환영 수업 2시의 내용에는 ‘제왕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회중시계에 담긴 교육 과정이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라는 뜻이었다.
세상 사람 전부가 마법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위대한 핏줄을 타고났어도, 돌연변이처럼 재능이 없는 후손이 태어날 수도 있었다.
환영 수업에 포함된 검술은 그런 이들을 위한 거였다. 마법에 재능이 없는 지도자도 싸울 줄은 알아야 하니까. 당연히 수준이 낮을 리는 없었다.
“형. 혹시 들었어요?”
“들은 게 아니라 봤다. 미안하다. 나쁜 뜻으로 네 뒤를 조사한 건 아니었어.”
“하아. 형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해. 카르도스 검관에 계속 다니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 여기서 내가 알려 주는 검술을 배우고 싶다면 그것도 좋아. 네 선택에 맡길게.”
래리는 쉽게 대답을 못 했다. 복잡한 표정으로 연신 한숨만 쉬었다.
로딘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가만히 하늘만 바라보며,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줬다.
래리는 한참 만에야 입을 뗐다.
“형!”
“응. 말해.”
“저 처음 봤던 순간. 기억하죠?”
“당연히 기억하지.”
당시의 래리와 비앙카는 머리를 내밀고, 울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이동했던 어린아이들 다수는 이미 목이 잘린 채 죽었고, 잘린 머리가 래리와 비앙카가 바라보는 바닥에 굴러다녔다.
삶과 죽음 중에서 죽음에 훨씬 가까웠던 순간.
눈만 몇 번 깜빡이면 영원한 어둠에 잠길 그 순간에, 로딘이 나타났다.
진짜 강자가 등장하자, 사신이자 포식자인 줄 알았던 약탈자들은 하찮은 벌레로 전락했다.
순식간에 마법에 죽었고, 래리와 비앙카는 죽음 직전에 구원을 얻었다.
“다시는 그런 꼴을 겪고 싶지 않았어요. 비참하게 죽음을 기다리던 그 순간은 정말…… 정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 알아. 무력하게 당하는 삶은 끔찍하지.”
“그래서 참았는데. 참고 검을 휘둘렀는데. 저는…… 저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만하면 됐다. 넌 최선을 다했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지. 넌 그런 놈이니까.”
로딘은 래리를 꽉 안아 줬다. 품에 안긴 래리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형. 제게 자격이 있을까요? 형의 검술을 제가 배워도 될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내 검술이 아니야. 나도 어쩌다 알게 됐을 뿐이니까. 네가 이 검술을 배우겠다고 하면, 나도 같이 배우는 거야.”
“배울게요. 정말 열심히 배울게요. 형하고 비앙카를 제가 꼭 지키고 싶어요.”
“넌 할 수 있을 거다.”
다음 날, 래리는 바로 카르도스 검관을 그만뒀다. 워낙 많은 수련생이 있어서인지 래리가 그만두는 걸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로딘은 오직 새벽에만 래리와 함께 검술을 훈련했다. 원래 해 오던 운동을 검술로 대체한 것이다.
래리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대부분 시간을 검술에 쏟았다. 잠과 식사, 오러 연공 시간을 제외한 전부였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