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7)
마법을 품다 (107)
리치몬드 후작령과 가장 가까운 마탑은 세드리아 마탑이었다.
세드리아 마탑은 규모가 작은 곳이었지만 의외로 내실은 탄탄했다. 몇 안 되는 발동형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중앙 대륙에서 자금 사정만 비교하면 능히 10대 마탑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든든한 재정 덕분에 마법사의 숫자도 차츰 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력 있는 마법사가 부족했다.
탑주의 경지가 5서클, 장로들 역시 5서클에 머무르고 있었다. 6서클 마법사조차 없는 곳이라, 덩치가 커졌음에도 여전히 ‘소규모’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세드리아 마탑의 장로인 5서클 마법사 캔드릭이 휘하 마법사 30명을 이끌고 리치몬드 후작령에 도착한 지 10여 일.
그들은 조사를 마치고, 차기 후작이 유력한 베이크 리치몬드를 찾아왔다.
“그러니까 저주의 이름이 쇠약의 저주?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쇠약의 저주. 차츰 몸이 약해지고,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게 되는 저주입니다. 체질에 따라서 고열과 발진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흑마법사들의 소행입니까?”
“그건 모든 설명을 들은 후, 대공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대공자, 미리 말합니다만 우리 세드리아 마탑은 귀족가의 다툼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제가 앞으로 할 말은 사심 없이, 오직 저주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일 뿐입니다.”
세드리아 마탑의 조사단을 이끄는 캔드릭의 말에 베이크 리치몬드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늘 듣게 될 진실이 그리 달가운 얘기는 아닐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캔드릭 마법사님은 그저 조사 결과만 말해 주시면 됩니다. 그 후의 선택은 제가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홀튼!”
캔드릭이 문을 향해 부하의 이름을 불렀다.
흘튼이라 불린 마법사가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수레 위에는 금색으로 된 멋들어진 갑옷 1벌이 놓여 있었다.
“이 갑옷은…….”
“역시 대공자는 이 갑옷을 알고 계시겠지요.”
“모를 수가 없지요. 제 아버님이 살아생전에 입던 갑옷인데.”
황금색의 갑옷은 리치몬드 후작이 최근 몇 달 동안 애지중지 아꼈던 물건이었다. 한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서대륙에서 최후의 전투를 치를 때도 이 갑옷을 입고 있었다.
베이크 리치몬드에게 갑옷은 아버지의 유산 같은 물건이라, 시신과 함께 영지로 가져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원래 머물던 거처 한쪽에 세워 놨다.
“이 갑옷이 리치몬드 후작령 내에 쇠약의 저주를 퍼트린 원흉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말은 아버지가 우리 영지에 저주를 퍼트렸다는 말입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갑옷을 처음부터 후작 전하께서 입고 있었습니까?”
“그, 그건…… 설마…….”
베이크 리치몬드의 머릿속이 혼란에 잠겼다.
황금색의 갑옷은 작년 메이븐 왕국의 로튼 후작가를 도와주고 선물로 받은 물건이었다.
로튼 후작가는 리치몬드 후작가와 선대부터 친분을 쌓아 온 우호 가문이었다. 10여 년 전에 죽은 로튼 후작과 얼마 전에 죽은 리치몬드 후작 역시 친분을 나눈 시간이 무려 50년이 넘었다.
서로가 워낙 친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일도 많았다. 영지전에서 서로를 돕는 건 물론이고, 필요하면 대가 없이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저는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판단은 대공자의 몫입니다.”
“어떻게 그런…….”
“너무 쉽게 단정 짓지 마십시오. 그들도 모르고 준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아.”
가족만큼 친하다고 생각한 로튼 후작가에서 악의를 가지고 저주가 담긴 선물을 줬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마탑은 이 일에 더 깊이 관여하지 않습니다.”
“흑마법과 관련된 일인데도 마탑이 발을 뺀다는 말입니까?”
“시대가 달라졌지요. 지금은 흑마법이라고 무작정 배척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물론 이 일에 죽은 사람이 다수 나오긴 했지만, 그건 범죄일 뿐입니다. 범죄는…….”
범죄는 치안대나 기사단이 알아서 할 일이다. 마탑이 그 나라의 법 집행 방식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의 귀족이 개입한 일이지만, 어찌 됐든 마탑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두 나라 사이에서 전쟁이든 외교든,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었다.
“마탑의 방침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방금 조사, 얼마나 확신하십니까?”
“저주가 이 갑옷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이건 확신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흑마력을 찾는 3서클 마법 서치 이블 포스를 사용하면, 정확히 이 갑옷을 가리켰다. 흑마력을 지우는 3서클 마법 세인트 샤인을 사용해도, 마력은 이 갑옷을 공격하려 들었다.
“이 갑옷은 어찌해야 합니까?”
“원하신다면 저희가 파괴할 수 있습니다. 저희를 못 믿으시겠다면,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부수셔도 되고요. 바라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아, 참. 갑옷을 부술 때, 비명이 크게 들릴 테니. 일반인들이 없는 곳에서 진행하십시오.”
중앙 대륙에서 저주와 관련된 물건의 파괴, 파기는 반드시 마탑의 주관하에 진행해야 했다. 물건을 빼돌려 악용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흑마법사는 배척하지 않지만, 흑마법이 담긴 물건은 파괴하는 게 원칙이라니. 앞뒤가 안 맞는 상황처럼 보였다.
이건 과거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 현재의 사회 분위기가 충돌한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과거에는 흑마법이 담긴 물건뿐 아니라 흑마법사도 배척하고, 터부시했다. 흑마법사의 존재를 신고만 해도 포상을 받았던 때도 있었다.
한데 흑마법사의 숫자가 너무 줄어들면서 ‘굳이 흑마법사를 배척할 필요가 있나?’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여전히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만 죽이자.’ 하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흑마법이 담긴 물건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여전히 ‘파기’가 원칙인 상황.
그런데 정작 물건에 흑마법을 담은 흑마법사는 그냥 두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갑옷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수기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영지의 기사들도 이유를 알아야 하니까요.”
“시일을 정해서 연락해 주십시오. 저희가 참관하겠습니다.”
저주가 영지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영지민에게도 보여 주는 게 좋았다. 베이크 리치몬드 대공자 역시 생각 같아서는 영지민들이 다 보는 곳에서 물건을 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물건이 하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자칫 영지민들이 오해를 할 수 있었다.
“아! 영지민들에 대한 치료는 어떻게 됩니까?”
“이미 저주에 걸린 사람 중 절반 정도는 치료했습니다. 닷새 정도면 치료가 끝날 겁니다.”
“미리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또한 의뢰비는 늦지 않게 지급하지요.”
세드리아 마탑은 의뢰를 받고 조사를 시작했다. 의뢰에 대한 대가만 받으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 참. 대공자. 저희가 오기 전에 저주를 치료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예. 맞습니다. 저희 영지의 거주민 중 1명인데, 마법사입니다.”
로딘은 세드리아 마탑에서 저주에 관한 조사를 시작한 후에도 근처에 있던 환자들을 치료했다. 마가렛, 매튜와 아는 사이라고 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10명이 넘어가니, 소문은 저절로 퍼졌다.
심지어 세드리아 마탑에서 마법사가 치료하러 왔는데도, 로딘에게 치료받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한번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사는 곳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만, 제가 강제로 만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죄인도 아니고, 그쪽도 마법사라서요.”
“그 정도면 됩니다. 만남은 제가 직접 청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알려 드리죠.”
캔드릭 장로는 클린 업 마법을 알고 있는 마법사의 존재에 호기심이 생겼다. 현재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마법이기 때문이다.
세드리아 마탑에서도 클린 업 마법의 주문을 몰랐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잘 구슬리면, 혹은 강하게 압박하면 주문을 토해 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클린 업은 고작 3서클 마법이지만 쉬운 마법은 아니었다. 3서클 마법인 주제에 룬어가 상당히 복잡한 데다, ‘치유’ 계통의 마법에 속해서였다.
치유 마법은 전투 마법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에는 전투 마법의 위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이 많았다.
전투 마법사의 경우는 더 심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치유 마법을 못 펼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 * *
로딘은 요즘 고민이 많았다. 그런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서, 매일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6서클의 한계까지 마력을 모았는데도, 좀처럼 7서클의 벽을 넘지 못했다.
딱 한 걸음. 손만 내밀면 닿을 것 같은 그 경지가 좀처럼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답답하네.”
크레이트 위원장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결국 7서클의 벽을 넘지 못하고, 노환으로 죽고 말았다.
로딘은 자신도 그와 같은 신세가 될 것만 같아서 걱정이었다. 그런 생각에 매일매일 고민하느라, 잠도 설치기 일쑤였다.
“내게 부족한 게 뭘까? 이런 고민조차 집착일까?”
생각해 보면 부족한 건 참 많았다.
재능을 타고난 덕에 빨리 성장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모든 마법사가 성장하면서 당연하게 겪어야 할 것들을 하나도 겪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해. 전투 경험, 마법을 사용한 경험, 인생 경험, 사람 경험, 상황에 대한 경험. 모두 다 부족한 것들이야.”
부족한 건 채울 수 있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지만, 살면서 저절로 갖춰질 것들이었다.
전투 경험은 당장 서대륙으로 가면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한 경험 역시 그냥 계속 마법을 써 보면 된다.
인생 경험과 사람 경험, 상황에 대한 경험까지. 나이를 먹으면 조금씩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것도 있었다.
“내겐 목표가 없어.”
살면서 인생의 목표라는 걸 세워 본 적이 없었다. 대마법사? 물론 되고 싶지만 그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었다.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노예가 되기 전, 아주 어릴 때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목표였다.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살아남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땐 ‘살아남기’라는 목표라도 있었지. 지금은 뭐지?”
아무래 생각해도 모르겠다. 로딘은 자신이 앞으로 뭘 하고,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10년 후에 난 뭘 하고 있을까? 20년 후에는? 50년 후에는?”
예전에는 책만 읽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그저 책 내용에 집중하면, 다른 상념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책을 펼쳐 놓고도, 멍하니 보낼 때가 많았다. 이런 상황이 뭔지 로딘은 잘 알고 있었다.
“방황이구나. 길을 잃은 거야.”
이럴 때마다 자신이 어리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머리는 좋지만, 정신은 단단하지 않았다. 그래서 쉽게 흔들리고, 작은 실수에도 자책이 심했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구나.”
스승이 없는 게 아쉬웠다.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다면, 뒤따라 걷는 자신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텐데. 로딘은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 했다.
“로딘 오빠! 뭐해?”
“고민 중.”
“고민 그만하고. 이거 좀 봐 봐.”
비앙카가 냄비 같은 걸 들고 와서 보여 줬다. 당연히 음식은 아니었다.
“며칠 된 거야?”
“5일.”
“볼까?”
비앙카가 내민 냄비 안에서 주황빛이 도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살짝 온기가 돌지만, 뜨거운 액체는 아니었다.
“잘됐네. 그런데 마력이 과하다. 조금 빼도 되겠어.”
“그래? 마력이 과하면 안 좋아?”
“일정 이상의 마력은 더 넣어 봐야 달라지는 게 없어. 효과가 더 좋아지지도 않는데, 마력을 더 넣는 건 너한테 손해지.”
비앙카가 내민 액체는 질병 치료 포션이었다. 정확히는 아직 미완성인 제작 초기의 포션 원액이었다.
“아하, 조금 빼야겠구나.”
“하루 종일 포션만 만들 건 아니잖아. 마력은 최대한 아껴야지. 그래야 남은 마력으로 마법 연습이라도 하지.”
“응. 더 노력할게.”
비앙카는 로딘에게 질병 치료 포션 제작법을 배웠다.
특별한 비전은 아니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질병 치유 포션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 포션을 제작하는 방법이었다.
로딘은 지하 유적지에서 얻은 책을 통해, 마도 제국 시절의 질병 치유 포션 제작법을 알게 됐다. 이미 한 번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3서클의 비전이었다. 아직 1서클 마법사인 비앙카가 넘보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았다.
“그래. 힘내라.”
“근데 오빠는 대체 무슨 고민이 있는 거야? 하루 종일 말도 잘 안 하고. 얼굴은 이렇게 해서는.”
비앙카가 자기 눈을 아래로 쭉 내렸다. 하루 종일 어두운 표정이었던 로딘을 흉내 낸 얼굴이었다.
“내가 그랬어?”
“응. 완전히 구겨져 있었어. 로딘 오빠가 이렇게 있으니까, 래리 오빠도 눈치 보잖아.”
“그랬구나. 내 실수네. 앞으로는 티 안 내도록 노력할게.”
로딘의 실수였다. 아무리 고민이 많아도, 함께 사는 이들한테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나도 어리구나.’
이럴 때 나이가 느껴지다니. 로딘은 자책하며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지 말고. 고민 있다며? 그러면 마가렛 할머니한테 말해 봐.”
“마가렛?”
원래 비앙카는 마가렛을 ‘마가렛 아줌마’라고 불렀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마가렛은 활력이 넘쳤다. 얼굴에 주름은 많았어도 매사 의욕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요즘은 ‘할머니’라는 호칭으로 변했다. 마가렛이 급격하게 늙으면서, 누가 봐도 할머니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고민 상담은 원래 어른한테 하는 거랬어.”
“어른이라…… 그렇구나. 왜 생각을 못 했지? 나도 조언을 구할 사람이 있었는데.”
비앙카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라,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가려고?”
“응. 마가렛을 봐야겠다.”
“응. 로딘 오빠, 힘내.”
“그래.”
정원을 지나, 마가렛이 사는 별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원 구석에선 땀에 흠뻑 젖은 래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무리하는 것도 안 좋은데.’
래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나와서 땀을 흘렸다. 아침 식사 전에는 로딘과 함께 고된 훈련을 했다. 아마, 점심 식사 후에도 똑같이 몸을 혹사할 것이다.
“쯧.”
당장이라도 말리고 싶지만, 왠지 오늘은 나서기가 꺼려졌다. 지금은 래리보다 자신의 불안한 정서를 안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