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08)
마법을 품다 (108)
마가렛에게 요즘은 생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좋은 고용주를 만났고, 만족스러운 대우를 받고 있었다.
특히 아들이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용주에게 인정받고, 매일 칭찬을 들었다.
아들은 천성이 성실했다. 그래서 광부 일을 할 때도 윗사람 아랫사람 가리지 않고 아들을 좋아했다.
하지만 광부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아들 옷 한 벌 지어야지.”
마가렛이 웃으며 뜨개질 준비를 했다. 바늘 코에 실을 넣으려는데, 잘 안 들어갔다.
“하아.”
바늘 코에 실을 넣으려다 몇 번 실패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쉬웠다. 정말 행복한 요즘인데, 이런 행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이가 문제였다.
마법사나 검사 같은 특출한 이들이 아닌 이상 50대가 되면 삶을 마무리할 준비를 한다. 슬슬 기력이 빠지고 몸 여기저기가 망가지기 시작하는 나이가 50대였다.
마가렛도 그랬다.
요즘 눈이 침침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에 힘이 돌지 않아서 한참이나 멍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쉽다.”
마가렛이 요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이제 아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좋은 고용주를 만나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그 행복을 오래 지켜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힘내야지. 내가 힘내야 아들도.”
요즘 마가렛은 아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슬슬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맛을 느끼는 감각도 탁월해서, 어지간한 요리는 두세 번 보여 주면 곧잘 따라 하곤 했다.
“아직 가르칠 게 많이 남았는데.”
똑똑!
“마가렛! 저 로딘입니다.”
“어? 사장님?”
노크 소리와 함께 좋은 고용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가렛이 급하게 몸을 일으키다가 순간 휘청거렸다.
“아아.”
순간 머리가 핑 돌아서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지만, 몸에 통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50대가 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아무래도 마무리할 시기가 좀 더 빨라질 모양이다.
“마가렛?”
“나, 나갑니다. 사장님.”
마가렛은 간신히 힘을 내서 문을 열었다. 다행히 고용주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마가렛, 뜨개질하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그냥 생각만 했어요. 들어오세요.”
“예. 그럼, 실례할게요.”
로딘은 마가렛의 얼굴에서 죽음의 기운을 읽었다. 그런 모습을 애써 감추려 한다는 것도 보자마자 알아챘다.
로딘은 7서클을 코앞에 둔 6서클 마법사였다. 정신이 여물지 못해서 지금은 방황하고 있지만, 타고난 감각이 어디로 간 건 아니었다.
‘나이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데.’
마가렛은 모르지만, 로딘은 남들 모르게 마가렛을 신경 쓰고 있었다.
마시는 물에 마도 제국의 비전으로 만든 질병 치유 포션을 매일 섞어서 주고 있었다. 또 밤에 자고 있을 때 한 번씩 와서 리커버리도 사용했다.
겨우 이런 도움으로 마가렛의 수명이 늘진 않는다. 하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덜 아프고 덜 고생하며 편안하게 떠날 수 있다.
지금 로딘이 마가렛에게 해 줄 수 있는 도움은 겨우 이 정도였다.
“사장님이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조언을 좀 얻으려고요.”
“조언이요? 저 같은 촌년한테 무슨 조언을 얻으시겠다고. 전 마법도 모르는데요.”
마가렛은 자신을 촌년이라고 비하했지만, 로딘은 그보다 더 심한 노예였다.
노예 인장을 지워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신분패를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넌 대체 누구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모든 정보가 거짓이었다.
“인생 경험이 필요해서 왔어요.”
“경험이요? 제 별 볼 일 없는 경험이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사람이 살아가려면 목표라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죽는 그 순간까지 꼭 이루고 싶은 뭔가가 없어요. 대체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할까요?”
“목표요?”
마가렛은 지금의 질문이 이해가 안 갔다. 얼핏 들으면 뭔가 고차원적인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하면 정말 단순한 질문이었다.
마가렛이 아는 한 가장 똑똑한 사람이 고용주인 로딘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고작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질문인가요?”
“사장님. 꼭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알고 싶은 이유가 있나요?”
“알아야 그걸 목표 지점으로 잡고 열심히 달리죠. 전 달리기 위한 목적지가 필요하고요.”
로딘은 지금의 방황을 멈추기 위해서는 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길을 알기 위해서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고.
저 끝에 목적지가 보이고, 거기로 향하는 길이 있다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장님.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이루고 못 이루고는 예외로 두고, 단순히 목표를 위해 달리는 사람이라면 전부 아닐까요? 아! 어린아이는 아닐 수도 있겠네요.”
“아니에요, 사장님. 세상에 그런 거창한 포부를 가진 사람, 거의 없어요. 보통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마가렛은 이런 질문을 하는 로딘이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은 다른 사람이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커서 뭐 될래?’라는 질문은 목표를 묻는 게 아니었다. 최종 목표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 관한 질문일 뿐이다.
그런데 로딘은 아직 스물도 안 됐는데, 자신이 전력으로 달릴 목표를 찾고 있었다. 어른스러운 모습이지만 그걸 못 찾는 걸 보면 또 어리게 보이기도 했다.
“그냥이요?”
“물론 작은 목표는 그때그때 계속 생기죠. 저는 오늘 아침에도 ‘어제보다 더 맛있는 식사를 만들고 싶다.’라는 목표가 있었어요. 매튜를 낳았을 때는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라는 목표가 있었고, 식당에서 잘렸을 때는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찾겠다.’라는 목표가 있었죠.”
“작은 목표.”
“예. 작은 목표는 계속 세워요. 하지만 저는 매튜를 잘 키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도 아니고,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살아가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큰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를 계속 만들고 달성하고, 때로는 포기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사람이었다.
“아! 제가 너무 앞서 나갔네요.”
“사람은 그냥 살아요. 의미를 부여하면 더 멋있는 삶이 될 수 있지만, 대신 너무 힘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렇죠. 멋있는 삶을 멋있게 유지하려고 할 테니까.”
“사장님답지만, 또 사장님답지 않았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사장님은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지금 멈췄다고 느낀다면, 주변을 둘러볼 때라는 의미일 거예요.”
“고마워요, 마가렛. 정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로딘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머리가 좋은 것과 인생 경험은 별개였다. 마가렛의 경험과 조언은 로딘의 마음에 큰 울림을 만들었다.
“아니에요. 촌년이 생각나는 대로 떠든 거예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아니에요, 마가렛. 정말 고마워요.”
로딘은 마가렛의 손을 한번 꽉 잡았다. 마가렛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싱긋 웃고는 손을 마주 잡아 줬다.
* * *
마가렛의 거처를 나오는 로딘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음속에 지고 있던 큰 짐을 덜어 낸 기분이었다.
정원을 지나는데, 아직도 래리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전신에 맺힌 땀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데도 도무지 멈출 줄을 몰랐다.
“래리, 다리가 좀 흔들린다.”
“아! 그래요? 다시 해 볼게요.”
“너! 요즘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 검사는 육체가 중요해. 몸을 혹사하면 훈련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요즘 래리를 보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생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변에서 말려도 소용없었다. 움직일 여력이 조금만 있어도 나와서 검을 휘둘렀고,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가 되어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나도 다르지 않았지. 조급했어.’
마가렛 덕에 마음을 다잡았다.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이미 남들보다 한참 앞서 나가고 있었다. 지름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보다 길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하아, 아는 데도 마음이 급하네요. 비앙카는 저만치 앞서가는 것 같은데.”
“조급해할 필요 없어. 너도 이미 바른길을 걷고 있어. 어차피 네가 익힌 검술은 지키는 검술이야. 비앙카는 네가 지켜야 해.”
“예, 형. 명심할게요.”
마가렛과 같은 위로를 해 봤지만, 래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마음을 다잡는 방법도 달라야 했다.
아쉽게도 로딘은 래리를 설득할 묘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 깨치거나, 누군가가 설득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보나 마나 말로만 명심하겠지. 쯧, 오늘은 해 떨어지면 바로 자라.”
“예? 그건 너무 이른…….”
쿵쿵!
“사람 있는가!”
정문 쪽에서 갑자기 들린 낯선 목소리에 로딘과 래리의 고개가 돌아갔다.
매튜가 안쪽에 있다가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 나왔다.
요즘 매튜는 하는 일이 정말 많았다.
어머니를 도와서 주방 보조도 하고 청소도 전담했다. 문지기 역할에 비앙카의 놀이 상대도 매튜 담당이었다. 게다가 마가렛이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요즘은 요리도 배우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세드리아 마탑에서 나왔소. 이 집에 마법사가 있다고 들었소만.”
“마법사요?”
매튜가 로딘을 돌아봤다. 문을 열어 줘도 되는지 의사를 묻는 행동이었다.
로딘은 후드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승낙의 표시였다. 그제야 매튜가 정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하늘색 로브를 입은 10여 명의 마법사가 보였다.
“실례하겠소. 우리는 세드리아 마탑에서 나왔소. 나는 4서클 마법사 홀튼이고, 이분은 우리 마탑의 장로님이신 캔드릭 님이시오. 혹시 당신이 이 집의 주인이오?”
“예. 제가 이 집 주인입니다만.”
상대가 자기들을 소개할 때, 로딘은 기분이 아주 불쾌했다. 말하는 사람의 뒤쪽에서 장로라 불린 자가 ‘마력 서클 측정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의 없는 것들이네.’
마법사들 사이에서 마력 서클 측정기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예민한 도구였다. 허락을 구하는 행위조차도 욕먹을 일인데, 상대는 허락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서클을 확인하려 들었다.
물론 6서클 마법사라는 걸 들키진 않았다.
로딘은 평상시에 항상 2개의 서클은 숨기고 다녔다. 고작 5서클 마법사는 그 어떤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6서클 마법사가 숨긴 서클을 알아챌 수 없었다.
“무슨 일이죠?”
“홀튼, 비키거라. 내가 상대하는 게 낫겠다.”
홀튼이라는 4서클 마법사가 뒤로 물러나고, 캔드릭 장로라는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얼굴에 거만함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었다.
“용건부터 말해 주면 좋겠는데요.”
“허허허, 자네는 선배 마법사를 대하는 예의를 모르는구먼.”
마법사가 말하는 ‘선배’는 나이나 경력을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오직 경지. 즉, 몇 개의 서클을 가졌느냐가 선배와 후배의 가르는 기준이었다.
5서클 마법사인 캔드릭은 자기 경지가 로딘보다 높다고 확신했다.
마력 서클 측정기로도 이미 확인한 데다, 상대의 목소리도 무척 젊게 들렸다. 저런 목소리로 설마 5서클 이상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그건 모르겠고. 함부로 서클을 측정한 노망난 노인을 대하는 법은 압니다.”
“감히.”
“감히? 5서클 마법사쯤 되면 마법사들의 예의는 안 지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세드리아 마탑이 그런 곳인 줄은 몰랐네요.”
어지간하면 언성을 높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늘은 마가렛에게 조언을 듣고, 마음에 여유도 생긴 좋은 날이었다. 상대의 나이도 한참 많으니 대충 상대하고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의 태도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하위 서클의 마법사에게 이딴 대우를 받고도 참으면, 마법사 자격이 없는 거다.
몇 달 전에 본 그 괴물 8서클 마법사쯤 되면 모를까.
“이놈!”
“그 손 치우고, 모으고 있는 마력도 푸는 게 좋을 겁니다. 영감이 마법을 쓰면 저도 더는 참지 않습니다.”
노인은 대꾸 없이 계속 룬어를 영창했다.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로딘은 마력의 조합과 구조를 통해 노인이 캐스팅하는 마법이 뭔지 파악했다. 5서클 마법 파이어 스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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