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
마법을 품다 (11)
용병.
돈을 받고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이다.
단순한 호위, 경비부터 마수 토벌, 전쟁 참여까지. 안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온갖 일을 다 하는 이들이라, 상대의 강약에 예민했다.
상대가 강한 사람이면 재빠르게 굽실거리고, 상대가 약해 보이면 찍어 누르는 게 일상이었다.
“용병이라…… 제법 거세게 반항했지?”
“예, 등급이 제법 높더군요. 금패 용병만 둘이고, 나머지도 은패 용병이었습니다.”
“등급이 높은데도 심문이 쉬웠나 보군.”
“용병이니까요.”
용병들은 스스로 ‘신용’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진짜 신뢰할 수 있는 용병은 몇 없었다. 더 많은 돈에 휘둘리고, 목을 겨누는 칼에 배신하는 일은 흔했다.
“처리는 어찌했는가?”
“아홉은 검거 과정에서 죽었고, 일곱은 일단 잡아 뒀습니다. 부상이 심해서 한둘 정도는 내일 아침 해를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흐음, 베로스 왕국과 패리 왕국이라…… 그 두 나라는 항상 같이 움직이는군.”
“약소국이니까요.”
잉그렘 제국과 비교하면 13국 연합 전부가 약소국이었다.
뭉쳐 있지 않았다면, 항상 타국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격차가 컸다. 하지만 약소국의 조합인 13국 연합 내에서도 강약의 차이는 있었다.
란데르트 왕국은 13국 연합 내에서 단연 최강국이었다.
리아즈 왕국보다 2배 이상 넓은 영토에 인구도 3배 가까이 된다.
반면 베로스 왕국과 패리 왕국은 13국 연합 내에서 최약소, 최약체였다. 영토, 인구, 경제력, 군사력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귀찮게 하는구먼.”
“잉그렘 제국만 아니면 진즉 처리했어야 할 곳들이죠.”
리아즈 왕국은 13국 연합 내에서 대략 4~5위 정도 되는 전력이었다. 약하진 않지만, 제멋대로 굴 수는 없는 어정쩡한 위치였다.
하지만 베로스 왕국, 패리 왕국과는 차이가 컸다. 두 나라가 힘을 합해야 리아즈 왕국과 가까스로 동수가 되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잡아들인 놈들은 아침이 되기 전에 처리하게. 시신도 태워 버리고.”
“베로스 왕국과 패리 왕국은……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통신 구슬이 발견됐으니, 여기 정보도 다 넘어갔을 텐데요.”
“문제가 될 건 없지.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나라들 기준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인가?”
특수군 양성소는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서 군인으로 키우는 곳이었다. 불법도 아니고, 다른 나라 입장으로 봐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아!”
“우리가 숨기는 건 타국의 시선 때문이 아니네. 본국의 잘난 놈들 때문이지.”
“그렇죠.”
특수군 양성소를 기밀로 하는 건 어이없지만 이 나라의 귀족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가진 계급주의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숨겨서 아이들을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귀족들이 좀 귀찮게 굴 수는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시달리는 걸 감수해야지.”
“용병들은 오늘 중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경계 수준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 수준을 유지하면 되겠지. 대신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네. 근무에 태만하지 않도록 자네들이 종종 둘러보게.”
침입자가 생겼음에도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입은 피해도 없었다.
“아! 아침에 아이들이 운동장을 뛰지?”
“예, 일곱 시부터 뜁니다.”
“그 시간에 맞춰서 죽은 용병 놈들의 시체를 처리하지. 아이들을 긴장시키는 데는 괜찮을 거야.”
“하하하, 등골이 서늘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구보 중에 시체가 수레에 실렸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그 장면을 똑똑히 지켜봤다.
예상대로 그날부터 아이들의 말수가 확 줄었다. 수업 시간의 집중도도 올라갔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 저변에 깔려 있던 긴장감은 금방 사라졌다. 원래 집중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나이인 만큼 열흘이 지나자 전보다 더 크게 웃고 떠들었다.
* * *
요즘 로딘은 고대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고대 마도 제국 얘기부터 그 이전의 용의 시대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책을 탐독했다.
‘언어를 배우고 싶다.’
신화와 관련된 서적에는 대륙 공용어가 아닌 다른 글자로 적힌 책도 많았다. 심지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모르는 글자로만 된 책도 있었다.
이런 책을 읽으려면 글자를 알아야 하는데, 아쉽게도 고대어와 관련된 내용은 심화 서고에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의 로딘은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었다.
‘여기서 막혔어. 하아.’
고대 관련 서적은 대략 200여 권. 그중 절반은 완전히 모르는 글자로만 적혀 있었다. 글자를 먼저 익히지 않으면 아예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게다가 적힌 글자도 최하 5종이었다. 아예 다른 5개 이상의 고대어를 알아야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 포기.’
이번에는 수학책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학책은 한 달 전부터 한두 권씩 읽어 왔다. 오후 수업의 진도는 오래전에 넘어섰고, 조금은 전문적인 영역에 들어선 상태였다.
끄응.
높은 곳에 있는 수학책을 간신히 꺼냈다.
이 도서관은 어렵거나 전문적인 책일수록 위쪽에 보관하는 경향이 있었다. 방금 책도 최근에 키가 조금 커서 간신히 꺼냈지, 한 달 전이었으면 다음을 기약해야 했을 터였다.
매일 책을 읽는 꼬맹이는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는 조교에게도 신기하게 보였다.
청소를 하던 조교가 책장 사이를 힐끔 살폈다.
갈색 옷을 입은 3기 훈련생 꼬맹이가 책을 읽는 모습이 보였다.
“여전하네.”
보면 볼수록 감탄스러웠다.
가장 어릴 게 분명한 3기생이 매일 오전과 저녁 시간에 도서관을 이용하다니.
1기와 2기 중에서 꾸준히 도서관을 이용하는 훈련생은 1명도 없었다. 한 번이라도 도서관을 방문한 훈련생도 채 20명이 안 됐다.
그런데 3기에 도서관 단골이 등장하다니.
도서관 담당으로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집중할 분야를 못 고른 건 아쉽지만.’
저 꼬맹이는 한 가지 책을 오래 보지 않았다. 이 책, 저 책 마구 꺼내서 조금씩 훑어보기만 했다.
역사부터 수학, 약초 등등 분야도 다양했다.
명확히 선호하는 주제를 못 찾은 것 같았다. 아직 어리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이 먹으면 달라지겠지.’
* * *
대륙 공용어 시험은 하루 종일 치러진다.
오전에는 단어를 보고 발음 기호와 뜻을 적는 시험이었고, 오후에는 발음 기호를 보고 단어만 적으면 되었다.
당연히 오후에 있을 수학 수업은 취소였다.
수학을 극도로 싫어하는 대부분의 3기 훈련생들이지만, ‘시험’이라는 것 때문에 하루 종일 우울했다.
“잘 치를 수 있을까?”
“공부한 부분이 나오길 빌어야지.”
“맞아. 지금 걱정한다고 뭐 달라지나? 그냥 우리의 신, 로딘 님을 믿는 수밖에.”
3기 훈련생 전원이 시험을 치르는 교실에 모였다.
뒤늦게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놈, 자포자기하고 떠드는 놈, 눈을 감고 명상하는 놈.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시험 시간을 기다렸다. 로딘은 명상에 속했다.
드르륵!
시험 시간 5분을 남기고 문이 열렸다.
교관이 맨 먼저 들어와 교탁 앞에 서자, 뒤이어 조교들이 아이들 근처에 배치되었다. 부정행위를 하는지 감시할 인원이었다.
“다들 공책 넣어.”
교관의 단호한 어조에 아이들이 급하게 공책을 치웠다.
입소식을 하고 벌써 2개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조교들하고 꽤 친해졌다. 농담 따먹기도 하고, 양성소에서는 지급되지 않는 간식 같은 것들을 얻어먹기도 했다.
하지만 교관하고는 전혀 친해지지 못했다.
교관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무서운 존재였다. 교관이 눈만 치켜떠도, 헛기침 소리만 내도 몸이 뻣뻣하게 굳기 일쑤였다.
“시험은 12시까지다. 시험을 다 치른 학생은 답안지를 제출하고 교실을 나가도 좋다.”
조교들이 나와서 시험지를 배분했다. 아이들은 시험지를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았다.
‘흐음, 예상대로다. 흔하게 쓰는 단어가 대부분이야.’
로딘은 눈으로 문제를 훑어보고, 예상이 적중했음을 확신했다. 옆을 힐끔 보니, 헤들러의 표정도 좋았다. 뒤에 앉은 랜트와 코리의 표정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제를 어떻게 풀까?’
도서관에서 역사서를 훑어본 날, 실력을 모두 드러내진 않기로 결심했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중요한 건 얼마나 드러내느냐는 것.
‘생각 같아서는 많이 틀리고 싶지만.’
교관들이나 조교들은 자신이 오래전에 대륙 공용어 공부를 끝냈다는 걸 몰랐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 통과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
특히 함께 지내는 301호 내무실의 헤들러, 랜트, 코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점이다.
조교들이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서 자신이 공용어 공부를 일찌감치 끝냈다는 걸 안다면? 그런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시험에 통과한다면?
실력을 숨긴다는 걸 들킬 게 뻔했다.
‘다 맞히긴 좀 그렇고.’
로딘은 문제를 차분하게 풀었다. 속도를 늦춰서, 12시에 아슬아슬하게 끝내도록 했다.
문제를 너무 빨리 풀고 교실을 나가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과하게 튀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끝났다.’
시험 종료 시각 직전에 문제를 다 풀었다.
100개의 문제 중에서 의도적으로 4개의 문제를 틀렸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높은 점수였다.
‘그래도 다 맞히는 것보단 덜 주목받겠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험이 재개되었다.
로딘은 이번에 2개의 문제만 틀렸다. 단어를 보는 시험보다 발음 기호를 보는 시험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됐어.’
답안지 작성을 마치고 손을 뗐다. 기다렸다는 듯, 교관이 교탁을 두드렸다.
탁! 탁!
“그만! 조교. 걷어라.”
“예.”
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조교들이 뒤에서부터 앞으로 가며 답안지를 걷어 갔다.
“으아! 끝났다.”
“자유다.”
“정말 자유일까?”
시험이 끝났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절망적인 얼굴로 문제를 다시 되짚어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잘 쳤어? 이번 문제가 전부…….”
“일단 나가자. 나가서 얘기해.”
헤들러가 신나게 떠들려고 하기에, 로딘이 바로 제지했다.
지금 교실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굳이 시험을 잘 봤다는 얘기로 아이들 속을 긁을 필요는 없었다.
헤들러와 로딘이 움직이자, 뒤에 앉아 있던 랜트와 코리도 따라붙었다. 넷 모두 얼굴이 밝았다. 크게 웃고 싶은데 억지로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아, 살겠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나도. 교실에선 숨도 편하게 못 쉬겠더라.”
“배고프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일행들은 식당으로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시험을 잘 쳤어?”
“아유, 요 예쁜 것.”
헤들러가 몸을 홱 돌리더니 달려들었다. 로딘은 랜트 뒤로 몸을 피했다.
“아, 왜!”
“접촉 금지.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
“뭐, 오늘은 다 받아 주지.”
“시험 잘 쳤나 보네.”
표정만 보고도 시험을 잘 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공부할 때 진도가 가장 느렸던 랜트조차 오늘은 입이 귀에 걸린 상태였다.
“통과. 확신.”
“나도 통과할 것 같다.”
“나도다.”
다행히 모두 시험을 잘 쳤다.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답안지를 작성하면서 큰 실수만 안 했다면, 모두 통과이지 않을까 싶었다.
“먹자!”
그리 빨리 나온 게 아닌데도,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아직 교실에서 절망하고 있었고, 교실을 나온 몇 명도 교실 근처를 서성이는 중이었다.
시험 결과는 5일 후에 발표되었다.
시험에 통과한 아이는 고작 7명. 무려 45명이 다음 달에 다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와, 랜트. 아슬아슬했잖아.”
“통과했다. 그거면 돼.”
대륙 공용어를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헤들러가 9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코리는 88점으로, 통과 점수인 70점을 넉넉하게 넘겼다.
하지만 랜트는 71점. 3문제만 더 틀렸으면 재시험을 치를 뻔했다.
“와, 근데 배신감.”
“뭐가?”
“저기 저놈 말이야. 60번.”
60번은 처음 모였을 때, 리더 역할을 했던 드록이라는 아이였다. 앞 순번인 만큼 키가 컸고, 요즘 잘 먹은 덕에 덩치도 좋았다.
“쟤가 왜?”
“나한테 뭐랬는지 알아? 공부 하나도 안 했고, 앞으로도 안 할 거라고 했다고. 때릴 테면 때려 보라고. 막 큰소리치고 다녔다니까.”
“다 그런 거지.”
“저기 저놈도 공부 안 했다고 했는데 통과잖아. 와!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이라니.”
통과자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 로딘과 다르게 헤들러는 생각보다 통과자가 많다며 놀라워했다. 진짜로 한두 명만 통과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로딘은 대략 20명 정도는 통과할 줄 알았다.
단어 사전을 외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고, 시간도 2개월이나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산만하다는 걸 미처 생각 못 했어.’
아이들은 뭘 하든 금방 싫증을 냈다.
심지어 노는 것도 그랬다. 같은 놀이가 계속되면 지루하다며 다른 새로운 놀이를 찾기 일쑤였다.
그런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