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0)
마법을 품다 (110)
마가렛이 죽었다. 로딘은 마가렛을 안치할 장소를 찾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목적을 말하고 매튜에게 함께 가자고 했는데, 예상 못 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고향으로 데려가겠다는 거죠?”
“예. 돌아가신 어머니는 분명히 고향 땅에 묻히기를 바라실 겁니다.”
“고향이 어디죠?”
“헤덴스 지방인데.”
헤덴스라는 말에 로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딘이 아는 헤덴스는 파로마 산맥과 붙어 있는 지방의 이름이었다. 레녹스 왕국이 아니라 테비아 왕국이라 국경도 한 번 넘어야 했다.
“헤덴스 지방이면 혹시 서쪽에 있는 테비아 왕국 말하는 거예요?”
“사장님은 아시는군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아!”
상당히 먼 곳이었다. 서대륙과 중앙 대륙을 가르는 파로마 산맥과 인접한 지역으로, 마차를 몰고 가면 한 달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서 그런데…… 저 사장님. 마차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담보가 필요하면 돈을 내고…….”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흐음, 잠깐만. 생각 좀 할게요.”
거리가 너무 먼 것도 문제지만, 가는 길에 세드리아 마탑이 있는 오델라 근처를 지나간다는 게 더 문제였다.
‘그 영감은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겠지?’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뒤끝이 엄청나게 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몇 배로 갚아 주기 전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매튜.”
“예. 사장님.”
“매튜도 헤덴스에서 태어났어요?”
“예. 저도 헤덴스 출신입니다. 2살 때 여기로 이사 와서 기억나는 건 없지만요.”
마가렛이 이 먼 곳까지 왜 왔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아마 일자리를 찾아왔을 거다.
리치몬드 후작령은 내륙 도시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번화한 도시였다. 먼 헤덴스 지방이라도 리치몬드 후작령의 소문은 돌았을 것이다.
거기다 리치몬드 후작령은 치안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로딘 역시 세드리아 마탑을 제외하면, 분쟁이 생긴 적이 없었다.
“혹시 매튜, 바로 가야 하나요?”
“예? 그건 왜 그러시는지?”
“며칠만 늦게 출발해도 되는지 물으려고요.”
“너무 늦으면 어머니 시신이 부패해서…… 죄송합니다. 사장님.”
이미 장례를 치르느라 이틀이 지났다. 날이 더워서 벌써 부패의 징조가 보였다.
‘손을 써야겠네.’
로딘은 어차피 곧 안장할 거라, 마가렛의 시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자연 상태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먼 헤덴스 지방까지 간다면, 시신이 부패하지 않게 손을 쓸 필요가 있었다. 로딘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공간에 넣으면 간단해. 그게 불편하다면, 상태 보존 마법을 걸어도 되고.’
매튜가 바라는 대로 해 주면 된다.
계속 마가렛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마차 하나를 붙여서 상태 보존 마법을 걸어 주고 그렇지 않다면 아공간에 넣기로 했다.
“매튜, 마가렛 시신은 제가 부패하지 않게 해 둘게요.”
“그런 것도 됩니까?”
“식재료 창고. 기억 안 나요? 음식도 안 상하게 하는데, 시신이 안 될 리가 없죠.”
“아!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매튜만 보내는 건 위험했다. 세드리아 마탑도 문제지만, 중앙 대륙이라는 곳 자체가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서대륙은 마수림이 있는 서쪽을 제외하면 마수는 없는 곳이었다. 전쟁 전에는 도적들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앙 대륙은 마수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들 덕분에 용병업이 흥하긴 했지만, 일반인에게는 서대륙보다 중앙 대륙이 더 위험했다.
게다가 잦은 영지전은 필연적으로 패가망신하는 곳을 양산하기 마련. 패배한 쪽에서 흘러나온 이들이 도적으로 변하는 일도 많았다.
“그럼, 슬슬 준비해야겠네요. 래리하고 비앙카한테도 말해야 하고.”
“작별 인사는 아침에 했습니다.”
“작별이라뇨. 같이 가야죠.”
“예?”
매튜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헤덴스 지방은 가는 데만 한 달은 걸리는 곳이었다. 그것도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갔을 때의 얘기였고, 사건 사고라도 생기면 얼마나 늘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 곳으로 함께 가자니. 최소 왕복 두 달을 길바닥에 날리는 일이었다.
“헤덴스 지방까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아니. 왜요?”
“머리도 식히고. 래리를 좀 쉬게 할 필요도 있어서요.”
안 그래도 로딘은 래리의 훈련 시간을 통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냥 말로만 해서는 도저히 들어 먹을 것 같지 않아서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마가렛의 고향으로 가는 거라면 좋은 핑계가 될 터였다.
적어도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은 래리도 검을 휘두르지 못할 테니까.
그 시간에 몸을 쉬게 하고, 머릿속을 정리하는 게 마냥 몸을 혹사하는 것보다 나았다.
“아. 래리가 좀 과하게 훈련하긴 하죠. 그래도 두 달이 넘는 일정인데, 괜찮겠습니까?”
“안 괜찮을 건 뭐예요? 그냥 가면 되지. 한 이틀, 그 정도만 시간을 줘요. 여기 정리도 좀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사장님.”
집을 떠날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소풍 가는 아이의 심정이 이럴까.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로딘에겐 이런 기분이 낯설면서 신기했다.
5살도 되기 전에 팔려서 이미 새로운 세상을 봤다. 특수군 양성소에서 나와 이미 서대륙의 여러 국가를 돌아다녔다.
중앙 대륙으로 와서도 테비아 왕국과 레녹스 왕국을 거쳤다.
‘낯선 곳은 이미 돌아볼 만큼 돌아본 것 같은데.’
* * *
래리와 비앙카에게 이틀 후, 집을 떠날 것임을 알렸다. 남고 싶다면 남아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로딘 오빠, 그럼 우린 앞으로 헤덴스? 거기서 사는 거야?”
“아니. 그건 결정하지 않았어. 상황 보고 결정하려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 거네?”
“응. 다시 올 수도 있고. 헤덴스 지방에 남을 수도 있지. 아니면 아예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고.”
미리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그때 상황 봐서, 마음 가는 대로 거처를 정할 생각이었다.
“우리가 안 가면?”
“그럼, 나만 가는 거지.”
“래리 오빠하고 나도 같이 가면?”
“그러면 가재도구는 싹 챙겨서 가야지. 우리 비앙카 책상하고 침대도 챙겨 가고, 포션 제조 장비도 가져가야지.”
아공간 팔찌에 공간은 충분했다. 이 집을 통째로 넣어도 될 정도였다.
“어떻게 가져가는데?”
“잘.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러면 난 갈래. 래리 오빠는?”
“당연히 나도 가야지. 형하고 네가 없는 곳에 혼자 남아서 뭐 하겠어?”
식구들 전원 이주가 결정됐다. 어디에 정착할지는 몰라도, 일단은 헤덴스 지방으로의 여행이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준비할게.”
“응. 로딘 오빠, 내 침대는 꼭 챙겨야 해. 알았지?”
“알았다. 다 챙겨 갈게.”
로딘은 이틀에 걸쳐서 집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담벼락에 만들어 둔 마법진을 해체했다. 일시 정지가 아니라 완전 해체였다.
출발하기 하루 전에는 집 안 살림 도구들을 하나하나 아공간 팔찌에 넣었다. 고작 2년도 안 살았는데, 살림살이가 참 많이도 늘었다. 특히 조리 도구가 많았다.
출발 하루 전에는 식재료 창고의 식재료를 모두 아공간 팔찌에 넣고, 창고의 마법진을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
창고에 새겨 둔 상태 보존 마법은 아로바인이라는 귀한 재료가 들어갔다. 아로바인을 다시 구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재료가 없으면 상태 보존 마법을 다시 새기는 건 불가능했다.
‘7서클이 되면 가능할 텐데.’
당장은 다시 만들기 어려우니, 없애기 아까웠다. 그래서 마법만 일시적으로 멈춰 놨다.
어차피 마력이 아닌 마나로 만든 마법진이라,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도 없었다.
“괜찮겠어요? 매튜?”
“예. 사장님. 어차피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흔들림이 심한 마차보다는 차라리 그 아공간이라는 곳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도와주시는 사장님께 더 고맙지요.”
매튜는 마가렛의 시체를 아공간 팔찌에 넣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만약 반대했다면, 로딘은 창고에 있는 아로바인을 뜯어서라도 마차에 상태 보존 마법을 새겨야 했다. 그래야 시신을 부패하지 않게 옮길 수 있을 테니까.
다행히 매튜는 보관 장소를 개의치 않았다. 썩지 않게 고향으로 데려가는 걸 가장 우선시했다.
정리는 로딘만 하는 게 아니었다. 래리도 리치몬드 후작령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계속 집에서만 지낸 비앙카와 다르게 래리는 한동안 카르도스 검관에 다녔다. 매일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에야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오가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과일 가게의 로렌 아줌마, 대장간의 휴스 아저씨, 빵집의 레반 사장님까지.
모두 래리가 힘들 때 응원을 해 준 사람들이었다. 특히 로렌 아줌마는 검관 수련생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올 때마다 약초를 으깨어 발라 주곤 했다.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기 위해 래리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가까운 곳부터 차근차근 들러서, 마지막으로 로렌 아주머니의 과일 가게를 찾았다.
“아이쿠, 래리 아니냐? 이 새벽에는 무슨 일이야?”
“잘 지내셨어요?”
“매일 여기 나오는 게 잘 지내는 거지. 너는? 요즘은 때리는 애들 없어?”
“예. 집에서 훈련하거든요. 아! 카르도스 검관은 그만뒀어요.”
래리는 카르도스 검관을 그만둔 사실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포기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혼자서 검술을 수련하다 보니, 비교 대상이 없었다.
익히고 있는 검술이 어떤 수준의 검술인지, 자신은 지금 어느 정도에 머물고 있는지 누구도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못했다.
“이런. 아쉽지 않아?”
“괜찮아요. 집에서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어요.”
“그래. 래리 넌 어디서든 잘 해낼 거야. 누구보다 노력하잖아.”
로렌은 래리가 기특했다. 처음 봤을 때는 고작 12살이었는데, 어리광 한번 부리지 않았다.
어른도 아닌 것이, 속은 또 어찌나 깊은지. 검관 수련생들에게 그렇게 맞고도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견디곤 했다.
시장 상인 중에 래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고마워요, 로렌 아줌마. 아! 저 내일 떠나요.”
“떠나? 어디로? 설마 리치몬드 후작령을 떠나는 거야?”
“테비아 왕국으로 가는데, 일단은 2개월 일정이래요. 그런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로딘 형은 이런 쪽에선 즉흥적이거든요.”
즉흥적이라는 말은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어쩌면 오늘이 영영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에구. 진짜 가는 거야?”
“예, 아줌마. 그래도 꼭 올게요. 형이 안 오면, 제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라도 꼭 찾아올게요.”
“그래. 기다리마. 기왕이면 성공해서 찾아와. 알았지?”
“예. 꼭 그럴게요.”
과일 가게를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래리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로렌 아줌마를 바라봤다.
“또 봐요. 아줌마.”
“그래. 잘 지내.”
시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래리는 본의와 상관없이 걸음을 멈춰야 했다. 눈앞에 달갑지 않은 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오호, 이게 누구야? 도망자 래리잖아.”
“도……리안, 네가 이 시간에 왜 여길?”
카르도스 검관의 일과는 새벽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난다. 오전인 지금은 한창 체력 단련을 할 시간이었다.
“흐흐흐,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기분이 좋더라고. 왠지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웬걸. 도망자 놈을 만나게 되네.”
“맞아. 하필이면 여기서 만나네.”
이곳은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의 중간,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한낮에는 마차가 심심찮게 지나가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크크, 도망자 래리. 진짜 오랜만이네.”
“키는 좀 컸냐?”
“멍은 좀 빠졌어?”
“요즘 안 맞아서, 살판났지?”
이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래리는 이를 악물었다.
카르도스 검관에서 래리를 괴롭히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거의 공인된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중 유독 심하게 괴롭힌 5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놈들이었다.
도리안, 말리스, 카티, 루세인, 크로네일.
이 5명은 매일 래리를 패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라도 패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시간까지 지켜 가며 괴롭혔다.
래리의 괴롭힘과 왕따를 처음 주도한 자들도 앞을 막은 5명이었다.
“비켜.”
“비켜? 이야, 래리 많이 컸다. 나한테 감히 비키라고 말도 다 하네.”
“얘들아, 아무래도 저 도망자 놈이 우리가 누군지 잊은 모양이야.”
“별수 없잖아. 우리가 도망자 놈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줘야지.”
스르릉!
도리안이 먼저 검을 뽑았다. 그러자 다른 4명은 사방으로 흩어져, 래리가 도망칠 곳을 막아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