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1)
마법을 품다 (111)
리치몬드 후작령은 18세가 되기 전까지 진검을 들고 다닐 수 없다는 법이 있었다. 이 법은 어겼을 때의 처벌도 꽤 센 편이라, 어지간히 막 나가는 이들도 18세 이전에는 날이 없는 검을 쓰는 편이었다. 아니면 단검을 쥐거나.
래리는 얼마 전에 겨우 14살이 된지라, 당연히 날이 없는 철검이었다. 래리와 맞선 이들 중 4명도 아직 18살이 되지 않아서 검에 날이 없었다.
하지만 단 1명. 도리안은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진검을 들고 있었다. 올해 18살이 되자마자 대장간에서 날을 세운 검이었다.
래리는 날이 선 진검을 든 도리안을 보며 등에서 방패를 뽑았다. 검은 아직 뽑지 않았다.
“오호, 도망자 래리. 이젠 검도 안 뽑는 거야?”
“검을 휘두를 용기도 없는 놈이었어?”
“우리 도망자 래리 씨는 검가 출신이 아니잖아. 당연히 검도 못 휘두르지.”
래리를 도망자라고 부르지만,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심했다.
도리안을 포함한 5명은 얼마 전 카르도스 검관에서 쫓겨났다. 수련생 중 1명을 심하게 상하게 해서였다.
검관은 수련생들의 다툼에 어지간하면 개입하지 않는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기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지간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도리안 일행에게 맞은 아이가 양쪽 눈을 실명한 사건이었다.
당연히 피해자의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검관까지 찾아와서 가해자들 내놓으라며 소리 지르고 난장판을 만들더니, 급기야 리치몬드 후작령에 판결을 요청하는 지경까지 이어졌다.
리치몬드 후작가는 당시의 사건을 세세하게 조사하고,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문제는 검관 역시 관리 소홀의 책임이 있다며 배상금의 30%를 담당하게 한 것이다.
카르도스 검관은 눈물을 머금고 막대한 배상금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더해서 이 일을 저지른 이들 전원을 검관에서 퇴출했다.
래리가 도망자라면, 눈앞에 선 5명은 전원 퇴출자였다.
휘이익! 터엉!
도리안이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어디 한 군데 다치게 하려는 악의가 느껴지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래리는 방패를 가볍게 드는 동작만으로 도리안의 공격을 막아 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방패가 이동할 곳에 검을 휘두른 것만 같았다.
“오호! 도망자 주제에 방패 좀 쓰는데?”
“흐음.”
래리는 대답 없이 방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막아 낸 자신의 동작을 곱씹느라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내가 막았다?’
로딘에게 검술을 배운 후, 매일매일 지쳐 쓰러질 때까지 검을 휘둘렀다. 단 하루도 편하게 쉬어 보지 못했다.
스승이 없으니,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더 몸을 혹사했다.
‘통한다. 내 방어가.’
검술을 배우고,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 하지만 부족했다.
도리안이 더 열심히 공격하길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제대로 막아 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어이, 도망자. 말하는 법도 까먹었냐?”
“덤벼.”
“이 새끼. 한 번 막았다고 기고만장하기는.”
휘익! 터엉!
도리안이 이번에도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팔 하나쯤은 잘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휘두른 일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너무 쉽게 막혔다. 도리안은 자기 실력이 퇴보했나 싶었다.
“건방지게.”
휘이익!
또다시 검이 날아왔다. 래리는 검이 휘두르는 방향을 본능적으로 읽고, 방패를 슬쩍 기울였다. 동시에 몸을 뒤로 빼, 상대의 타점도 흐트러뜨렸다.
스크엉!
기묘한 소리와 함께 검이 방패에 닿았다. 그리고 살짝 물러난 방패 때문에 검로가 크게 흔들렸다.
“어어어.”
순간 중심을 잃었던 도리안이 크게 비틀거렸다. 간신히 균형을 잡았지만, 자칫했으면 넘어질 뻔했다.
“이……, 이놈이.”
“어이, 도리안. 뭐 해? 내가 좀 도와줘?”
“꺼져. 새끼야.”
휘이익!
도리안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전보다 더 강한 힘을 담아 쉬지 않고 검을 베고 내리쳤다.
티! 티팅! 터엉! 그그그극!
하지만 래리는 도리안의 모든 공격을 다 막아 냈다. 그것도 무척이나 쉽게.
그 과정에서 도리안은 몇 번이고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다. 아슬아슬하게 나자빠지진 않지만, 보는 사람도 느낄 정도로 휘청거릴 때가 많았다.
‘통해.’
래리는 공격 없이 방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오른손에 검을 들었다면, 그래서 도리안이 휘청거릴 때 검을 휘둘렀다면. 도리안이 오히려 크게 다칠 뻔한 순간도 많았다.
‘검은 쓰지 말자.’
래리는 검으로 향하는 눈을 거두고, 도리안만 노려봤다.
여기서 자신까지 검을 쓰면 진짜로 전투가 된다. 그러면 아이들 싸움이 아니라 치안대에서 나서야 하는 범죄로 치부되어 조사받아야 했다.
“덤벼!”
“이 새끼가.”
그때 뒤쪽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래리는 기척을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방패를 휘둘렀다.
터엉!
몰래 다가와 검을 휘둘렀던 카티가 오히려 방패에 맞아서 쓰러졌다. 얼굴을 제대로 맞아서, 코에서 코피가 흘러내렸다.
“너, 너……, 이씨.”
“카티!”
“에이씨, 조져!”
“쳐.”
싸움이 길어지니, 결국 5명이 한꺼번에 나섰다. 협공 좀 해 본 놈들이라, 호흡이 제법 잘 맞았다.
래리는 연신 뒤로 물러나며 방패로 공격을 막았다. 탕! 팅! 터엉! 소리가 들릴 때마다 래리의 몸이 밀렸다.
하지만 대책 없는 후퇴는 아니었다. 뒷걸음질을 치며, 상대를 항상 앞에 두는 방어의 기술 중 하나였다.
터엉! 티잉!
“이잇!”
“이, 이 새끼 뭐야?”
방패를 고작 하나만 들었는데, 도무지 뚫을 수가 없었다. 5명이 함께 온갖 공격을 다 해 봐도,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도리안은 카르도스 검관에서만 무려 10년을 배웠다. 결국 사고를 치고 쫓겨났지만, 검관 수련생 중에서 경력으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재능 있다는 이들을 많이 만나 봤고, 대련도 많이 치렀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답답하고 막막했다. 이때다 싶어서 빈틈을 보고 검을 휘둘렀는데, 어느새 방패에 막혀 있었다. 방금 본 빈틈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힘으로 몰아붙여도 소용없었다. 밀었다 싶으면 어느새 한참을 튕겨 나오기 일쑤였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
“그건 좀 곤란해.”
잠깐의 소강상태. 고요한 정적을 깨우는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누구냐!”
“쟤 형. 아! 너보단 어려. 어때? 나한테도 덤빌래?”
“마, 마법사?”
도리안 일행도 래리의 형이 마법사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이며, 용병계에서도 유명하다는 소문도 돌았다.
포션 납품하고 잠깐 돌았던 소문이었는데, 도리안 일행이 과대평가한 것뿐이었다. 소문이든 뭐든, 그들도 래리의 형과 싸우는 건 껄끄러웠다.
“래리, 어때? 더 기다려 줘?”
“형, 언제 왔어요?”
“아까 왔지. 네가 신난 것 같아서 기다렸는데. 어때? 더 기다려 줄까?”
“아니요. 시시해졌어요. 쟤들 너무 약하네요. 연습 상대로도 못 쓰겠어요.”
프루발 환영이 가르친 검술은 단순히 막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막으면서 상대의 공격 패턴을 읽는 게 핵심이었다. 그래서 전투를 오래 이어 갈수록 점점 여유가 생기고 유리해졌다.
래리도 처음에는 꽤 긴장하면서 싸웠다. 한시도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패턴을 읽고 나니, 점점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는 순간, 더는 훈련 효과도 없었다.
“그래? 그럼 가자.”
“어, 어딜.”
로딘이 래리와 함께 집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도리안을 비롯한 5명이 앞을 막았다.
“귀찮게.”
로딘은 룬어 영창도 없이, 매직 핸드 5개를 만들었다. 마법의 손을 이용해서 5명을 동시에 잡아챘다.
“어어?”
“이, 이거 뭐야?”
“이거 안 놔!”
퍼억! 퍽! 퍽! 퍽! 퍽!
들어 올린 5명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특히 도리안이라는 놈은 좀 더 신경 써서, 뾰족한 돌이 있는 곳에 처박았다.
“커억!”
“크윽!”
“이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 더 내 앞을 막으면, 그땐 죽는다.”
로딘의 음성은 작았다. 그리고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진짜로 다시 만나면 죽일 것 같은 공포가 도리안 일행을 집어삼켰다.
“예, 예. 잘못했습니다.”
“용, 용서를…….”
“가자, 래리.”
“가요, 형.”
로딘은 래리와 나란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 쓰러진 5명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 * *
출발하는 날 아침이 되었다.
비앙카는 소풍이라도 가는 듯, 잔뜩 신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래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그렇게 신났어?”
“여행이잖아, 여행. 히히히. 기대된다.”
“우리 서대륙에서 여기 온 지 2년도 안 됐어.”
래리는 카르도스 검관에 다닐 때도 매일 아침에 집을 나갔다. 카르도스 검관을 그만둔 후에도 마가렛이나 매튜를 따라서 시장에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비앙카는 리치몬드 후작가에 자리 잡은 후, 거의 외출을 못 했다. 마법 수련이 바빴던 것도 있지만, 비앙카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게 더 큰 이유였다.
이 집 안에서는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데, 밖으로 나가는 건 무서워했다. 래리, 마가렛, 매튜가 함께 나가자고 해도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비앙카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는 로딘과 함께 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로딘은 항상 바빴다. 항상 뭔가를 하고 있으니, 놀러 나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헛! 래리 오빠도 감성이 메말랐어. 로딘 오빠 닮아 간다.”
“야!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어이, 당사자 앞에서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내가 ‘그 정도’라는 말이야? 대체 그 정도가 뭔데?”
“있어요. 로딘 오빠 같은 사람.”
좀 황당했지만, 로딘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비앙카와 말싸움해서 뭐 하나 싶었다.
“준비는 다 했어?”
“응. 빨리 가자. 빨리.”
“네 침대는 챙겨야 할 것 아냐.”
“오빠가 챙겨서 나와. 난 마차에 가 있을게.”
오늘 사용한 물건들은 아직 아공간 팔찌에 넣지 않았다.
래리와 비앙카가 아침까지 사용한 침대, 식기, 오늘 갈아입을 옷은 이제 넣어야 했다. 또 매튜가 아침 식사를 위해 사용한 조리 도구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러든……, 아! 나가서 너무 놀라지 말고.”
“응.”
비앙카가 후다닥 달려 나갔다. 어쩔 수 없이 래리도 비앙카를 따랐다.
로딘은 혼자 남아서 몇 안 남은 짐들을 모두 챙겼다. 래리와 비앙카의 방에 있는 물건을 모두 넣고, 주방에서도 남은 것들을 다 챙겼다.
끝으로 매튜가 사는 별채로 갔다. 매튜가 사용하는 물건과 죽은 마가렛의 물건 몇 가지가 남아 있었다.
“하아.”
마가렛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했다.
로딘은 자신도 모르게 팔찌를 쓰다듬었다. 마가렛이 잠든 아공간이 새겨진 팔찌였다.
로딘이 마가렛과 매튜의 물건을 담던 그때.
래리와 비앙카는 낯선 2명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래리는 긴장한 얼굴로 방패를 꽉 쥐었고, 비앙카는 팔짱을 끼고 상대를 노려봤다.
“언니! 대체 누구예요? 누군데 여기 있어요?”
“어머머, 얘 봐라. 카리스, 저 앙큼한 꼬마가 나한테 언니래.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공자님의 동생들이다. 예를 갖춰라.”
래리, 비앙카가 신경전을 벌이는 상대는 로딘의 소속이 된 전투 인형 카리스와 제나였다.
로딘은 카리스와 제나를 소환해서, 하루에 몇 시간씩 마도 제국의 언어를 익혔다. 둘은 글자와 함께 발음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스승이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기 더 좋은 조건을 갖춘 건 카리스와 제나였다.
로딘은 소환해서 물어봐야 마도 제국 언어를 배울 수 있지만, 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보관소 안에서도 로딘이 말하고 듣고 보는 모든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거의 1년.
그 덕에 둘은 빠르게 대륙 공용어를 익혔다. 아직 완벽하게 의사소통할 수준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대화에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자님은 예를 갖추길 바라지 않을 거야.”
“따로 마스터에게 들은 얘기가 없다. 자중해라.”
둘은 래리와 비앙카 앞에서 로딘을 ‘공자’라고 칭했다. 예전에 로딘이 정해 준 호칭인데, 지금까지 호칭을 바꾸라는 명령을 받은 바 없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마스터,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공자’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하여간. 카리스, 넌 재미가 없어.”
“정체를 밝혀요!”
비앙카가 겁도 없이 나섰다. 제나는 웃기만 했고, 카리스는 모른 척했다.
“안녕. 반가워. 난 제나라고 해. 여기 무뚝뚝한 남자는 카리스. 우리 둘은 로딘 공자님을 모시는 사람이야.”
“로딘 오빠를 모신다고요?”
“그래. 우린 로딘 공자님의 호위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