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4)
마법을 품다 (114)
은패 용병 캔트가 트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팔 한쪽이 뜯겨 나갈 뻔했다.
“젠장!”
상단을 호위하다 만난 마수는 트롤이었다. 중앙 대륙에서도 중대형 마수로 분류되는 놈들로, 은패 용병 2~3명은 있어야 간신히 1마리를 상대할 수 있는 강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무려 5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났다. 용병 생활만 14년째인 캔트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부우웅!
팔 한 번 휘저을 때마다 파공음이 무섭게 들렸다. 어떻게든 집중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승산은 없었다.
‘1마리만 적었어도.’
헤지스 상단에서 고용한 용병 전력은 약하지 않았다.
은패 용병만 2명에 동패 용병이 31명이었다. 게다가 4서클 마법사도 동행 중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어지간한 마수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자기 몫의 마수가 없을까 봐 걱정해야 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호위로 온 용병들의 전력을 웃도는 마수들이 느닷없이 등장한 것이다.
캔트는 지금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부우우웅!
“크윽!”
방패로 팔을 비껴가도록 하고 캔트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어느새 막다른 곳까지 밀렸다. 여기서 더 밀려나면 상단의 마차가 마수의 공격권에 들어간다. 그건 곧 호위 실패를 의미했다.
‘너무 많아.’
사실 4마리만 나타나도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이 전력으로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는 트롤의 숫자는 고작 3마리였다. 4마리가 되면 용병 일부가 다치거나 죽는 걸 감수해야 했다.
그래도 패배는 면할 수 있었다. 의뢰 대상인 상단도 지킬 수 있을 테고.
“치잇!”
더 물러나지 않기 위해 캔트가 다리에 힘을 줬다.
놈의 공격을 이번에는 무조건 맞받아쳐야 했다. 흘리거나 피하면 마차가 피해를 보니까.
“와랏!”
쿠어어엉! 퍼억!
그때 달려들려던 트롤이 갑자기 엎어졌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엎어진 트롤의 머리채를 확 휘어잡았다.
“어? 어…….”
너무 놀라서, 캔트는 상대의 정체도 묻지 못했다. 그냥 멍청하게 어어 소리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캔트가 멍하게 있다가,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마차였다. 그것도 2대였고, 열린 마차의 문을 통해 어린아이도 보였다.
“도, 도망쳐요!”
“됐어요.”
캔트가 크게 경고했지만, 왼쪽 마차에 있던 로브를 입은 남자는 손을 젓기만 했다.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로딘은 제나가 트롤 1마리를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봤다. 기습이긴 했지만, 저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역시 마스터급인가?’
트롤은 4급 검사 혹은 4서클 마법사 정도로 평가받는 강한 마수였다. 갓 정식 기사나 정식 마법사가 된 이들은 혼자서 상대할 수 없는 놈이었다.
“비앙카!”
“응!”
“마수다. 네가 보고 싶어 했던 그 마수.”
“로딘 오, 오빠, 무서워.”
마수가 보고 싶다고 호기심을 드러냈던 비앙카는 이제 없었다. 이 자리에는 마수를 보고 겁에 질린 애송이 1서클 마법사뿐이었다.
“이제 마수 보고 싶다고는 안 하겠네.”
“보, 보기 싫어, 로딘 오빠. 제나 언니, 뭐 해? 저리 가!”
제나는 한 손으로 기절한 트롤의 머리채를 잡은 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비앙카가 마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제나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평소의 제나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비앙카와 장난도 곧잘 쳤다. 마치 친자매처럼 서로를 살갑게 대했다.
하지만 로딘이 따로 시킨 일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제나는 로딘 소유의 전투 인형. 로딘이 마수를 끌고 오라고 지시를 내린 이상, 그 명령을 이행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끌고 왔습니다.”
“배를 위로 오게 해서 여기 눕혀 봐.”
“예. 공자님.”
로딘은 바닥에 누운 트롤을 한참 쳐다봤다. 래리와 비앙카, 매튜가 쳐다보고 있었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다.
“트루 아이.”
로딘은 트롤의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이질적인 에너지 덩어리를 찾아냈다.
“역시. 어? 저러다 사람들 죽겠다. 누가 가서 1마리 정도만 더 처리해 줘.”
“제가 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카리스가 나섰다.
카리스는 트롤 2마리를 붙잡아 두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용병들 무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트롤의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하더니 단 한 번 창을 휘둘렀다.
서걱!
누구도 카리스를 말리지 못했다. 카리스의 창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제대로 본 사람도 로딘과 제나 정도를 제외하면 없었다.
카리스는 트롤 1마리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걸 확인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창은 이미 등 뒤에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일련의 행동들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만 같았다.
“와! 카리스 아저씨. 댑따 세다. 제나 언니도 어마어마했는데.”
“대단해.”
래리는 카리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검을 잡으면서 이상향으로 꿈꿨던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당당한 걸음, 보이지도 않는 빠른 창격.
저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검과 창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래리 오빠, 눈빛이 이상해.”
“멋있지 않아?”
“멋있어. 그래도 아저씨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여자를 좋아한다고.”
“그러면 제나 언니를?”
“아니라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 로딘은 트롤의 내부를 좀 더 샅샅이 뒤졌다.
“평범한 놈이 아닌데. 윈드 나이프.”
바람의 칼날을 만들어 트롤의 복부를 베었다. 워낙 단단한 놈이라 잘 안 베어졌다.
로딘은 마력을 더 투입해 윈드 나이프를 더 강하고 예리하게 벼렸다. 그리고 명치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힘을 주어 잘라 냈다.
서거억!
그제야 배가 쩍 벌어졌다. 갈라진 트롤의 복부로 로딘이 손을 집어넣었다.
“로딘 오빠 뭐 해! 미쳤나 봐.”
“형, 형. 뭐 하는 거예요?”
비앙카와 래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로딘은 하던 일에 집중했다.
트롤의 배 속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손끝에 돌처럼 딱딱한 뭔가가 걸렸다. 검지와 중지로 단단한 뭔가를 잡고 끄집어냈다.
“어?”
“음?”
“마스터, 혹시 흑마법입니까?”
“아니. 흑마력은 안 느껴져. 그냥 마법이야. 아니, 마력이라고 해야 하나?”
로딘은 트롤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배에 마력이 뭉쳐 있는 걸 느꼈다.
마법사라면 모를까. 마수의 특정 부위에 마력이 잔뜩 모여 있는 건 자연스러운 형태는 아니었다.
“아티팩트입니까?”
“아티팩트는 아니고. 뭐라고 할까? 그냥 마나가 모여서 만들어진 마력 덩어리라고 할까?”
트롤의 심장에서 꺼낸 검고 작은 돌멩이는 마나석과 비슷했다. 차이라면 마나가 아닌 마력이 뭉친 돌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트롤을 조종한 겁니까?”
“아니. 누군가는 아니고. 이 돌이 원흉이라고 봐야지. 트롤이 숨을 쉬면서 자연스럽게 마나를 흡수하면 이 돌멩이가 마력으로 변환했어. 마치 마법사처럼.”
“돌 자체가 특이한 겁니까?”
“응. 좀 신기한 돌이네. 이런 걸 어디서 먹었을까? 트롤이.”
마나는 세상 어디에나 있다. 숨을 쉬는 공기에도, 마시는 물에도, 먹는 음식에도 마나는 존재한다.
사람은 그런 걸 먹고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마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마법사가 아니기에, 마신 만큼의 마나를 고스란히 다시 토해 낸다.
하지만 이 돌멩이는 먹고 마시면서 받아들인 마나를 마력으로 바꿔 버렸다.
마나와 다르게 마력은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것. 그러다 보니 트롤은 의도치 않게 마력을 덩어리째로 간직한 마수가 되어 버렸다.
“특별히 더 강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당연하지. 오러도 아니고 마력이잖아. 사용법을 모르면 가져봐야 의미가 없어. 수명이 좀 길어질 순 있겠네. 반대로 정신에는 문제가 생길 것 같고.”
마법사는 일반인보다 오래 산다. 7서클에 오르지 않더라도 60세 이상, 70세까지 사는 마법사들은 많았다.
“그럼, 장점만 있는 겁니까?”
“아니. 쓰지도 않는 마력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가 좀 있지. 대표적인 게 통증, 거슬림, 불쾌감. 이런 것들이거든. 아마 짜증도 늘고. 게다가 이 마력석은 불순물이 너무 많아. 빵을 하려고 반죽을 만들었는데 절반이 모래인 느낌이야.”
체질에 따라서 마력을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수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긴 했지만, 아주 드문 경우라 일단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난폭해지겠군요.”
“맞아.”
로딘은 아직도 용병들과 싸우고 있는 트롤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나 놈들의 몸에도 마력이 뭉친 곳이 느껴졌다.
‘하나가 아닌 놈도 있네.’
마력이 3~4군데 뭉친 놈도 있었다. 그 말은 이 특이한 돌멩이를 여러 개 먹었다는 뜻이었다.
“돌멩이를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응. 봐.”
로딘은 피 묻은 돌멩이를 우선 운다인으로 씻었다. 그 후에 제나에게 돌멩이를 넘겨줬다.
제나는 돌멩이를 한참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모르겠습니다. 마정석인 줄 알았는데.”
“마정석하곤 다르지. 마정석은 원래 마나석이 가지고 있던 마나를 마력으로 바꾸는 거잖아. 이건 주변 마나를 흡수해서 마력으로 바꾸는 거고. 정제 과정이 빠진 탓에 불순물이 너무 많아졌어.”
“맞습니다. 그래도 겉으로 보이는 모양은 비슷합니다.”
“마정석 비전을 복원하려다가 이상한 쪽으로 변질된 것 같은데.”
마정석은 아티팩트 제작의 핵심이었다. 성공률, 지속 시간, 위력 등의 모든 면에서 마나석을 그대로 쓰는 것보다 마정석을 쓰는 게 월등히 나았다.
하지만 마정석의 제작 방법은 실전된 지 오래였다. 마탑에서도 오래전부터 마정석 제작 방법을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로딘 역시 예전에 마정석 제작 방법을 가볍게 연구해 본 적이 있었다. 사나흘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역시나 큰 성과를 내진 못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분명한 건 제가 있었던 시기의 물건은 아닙니다.”
“내 생각도 그래. 이건 마도 제국 멸망 이후의 고대 물건 같아. 어딘가에서 유적지가 열린 모양인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나와 대화하는 사이에 전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남은 트롤은 1마리뿐이었고, 용병들이 협공해서 몰아붙이고 있었다.
“전투 끝나 가네. 슬슬 이동할 준비 하자.”
“유적은 안 찾으십니까?”
“응. 호기심은 생기는데, 귀찮음이 더 커. 일단 조사를 시작하면 길을 벗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마가렛이 먼저지.”
아쉬웠지만, 로딘은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은 헤덴스 지방으로 가는 게 먼저였다. 이곳에서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나중에 혼자 이곳에 오거나, 목적 없는 여행 중이라면 그때 조사해 보기로 했다.
“가자.”
“예.”
카리스와 제나가 마차를 출발시켰다. 전투가 끝난 후, 전장을 정리하고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길을 열었다.
용병들은 누가 자신들을 살렸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은인의 앞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엄청난 실력의 검사는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마차 안에는 엄청난 실력자를 부릴 수 있는 높은 신분의 사람이 있다는 의미였다.
“감, 감사합니다.”
“감사를 받을 사람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지시받고 움직였을 뿐이랍니다.”
“아! 마차의 주인께 감사를 전합니다.”
상단의 주인은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보이지도 않는 로딘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이가 많은데도 허리를 숙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별말씀을.”
로딘은 고개를 마차 밖으로 내밀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단 주인이 급하게 손을 들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저녁이라도 드시지 않겠습니까? 곧 해도 떨어질 텐데요.”
“흐음.”
“제가 몇 번씩이나 오갔던 곳이라 잘 압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넓은 공터가 나옵니다. 그곳에서 오늘 밤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녁은 우리가 대접하겠습니다.”
“흐음.”
로딘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침음만 가볍게 흘린 후, 상단의 호위로 있는 용병과 상단의 직원들을 빠르게 살펴봤다.
‘나쁘지 않네.’
마력이나 얼굴을 보고 사람의 선악을 구별할 능력 따위는 로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대충 느낌으로 상대를 파악했는데, 악인은 없는 듯했다.
“형.”
“로딘 오빠!”
래리와 비앙카가 간절하게 쳐다봤다.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러죠. 하루 신세를 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장을 빠르게 정리해라. 부상자들은 빨리 수레로 옮겨!”
원래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던 용병들이 더 빨라졌다.
트롤 시체를 길가로 치웠다. 그러자 도축 잘하는 용병들이 후다닥 달라붙어서 살과 뼈, 가죽을 발라냈다.
부상자들은 중앙 부분에 있는 수레로 모였다. 포션을 가진 부상자는 포션을 상처에 뿌리고, 포션이 없는 부상자는 붕대를 감았다.
“으차.”
“로딘 오빠. 어디가?”
“다친 사람이 있잖아.”
비앙카는 로딘이 움직이자, 바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로딘이 하는 걸 다 지켜보겠다는 각오로 눈을 부릅떴다.
로딘은 신체 훼손이 심하지 않은 부상자들에게는 3서클 바이탈 사인과 2서클 힐링 마법을 사용했다. 피가 금세 멎고, 벌어졌던 상처도 서서히 봉합되었다.
훼손이 심한 환자에게는 4서클 리스토어 마법과 5서클 리커버리 마법을 사용했다. 내장이 보일 정도로 큰 부상이 경상으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트롤을 잡아 주신 것만 해도 큰 은혜인데.”
“별일 아닙니다. 부상자들은 좀 더 누워 있게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충 치료를 마친 로딘은 다시 마차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전장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