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Magic RAW novel - Chapter (115)
마법을 품다 (115)
대상인이라고 항상 투자에 성공할 수는 없다. 때로는 실패하고, 그걸 극복하면서 상단을 키워 나가는 사람이 대상인이었다.
다니엘도 그랬다. 50년을 살면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고, 그런 실패를 극복하면서 지금의 상단으로 키워 냈다.
레녹스 왕국 5대 상단 중 1곳인 크라우드 상단은 다니엘이 시작해서 키운, 삶이자 전부였다.
그런 삶이 오늘 무너질 뻔했다. 어지간한 실패는 언젠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5마리나 되는 트롤의 공격은 예외였다.
“죽을 뻔했다.”
용병들이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면?
상행을 나가기 직전에 마법사 4서클 마법사 베트너를 대동하지 않았다면?
위험천만한 순간에 2대의 마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셋 중 하나라도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번 상행에 참여한 상인들과 직원들, 용병들은 1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로딘 일행과 크라우드 상단은 트롤과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과 좀 떨어진 자리에 야영지를 꾸렸다.
“마법사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기사님들도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아! 다른 일행분 자리도 준비해 뒀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니엘은 로딘 일행을 자리로 안내하면서, 연신 눈을 굴렸다. 복장만 봐서는 리더가 대체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누가 저들의 대표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로브를 입고, 후드를 푹 눌러쓴 사람이 대표가 분명했다.
“오늘 도움을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길을 열기 위해 나선 겁니다. 귀 상단을 돕기 위함이 아니니, 예는 그쯤 하셔도 됩니다.”
가볍게 만류하고, 안내된 자리에 앉았다. 로딘이 앉자, 다른 이들도 로딘을 중심으로 좌우에 자리를 잡았다.
카리스와 제나는 일행의 양쪽 끝자리를 선택했다. 일행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위치였다.
“은혜를 입고 은혜를 잊으면 짐승과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 저는 크라우드 상단의 상단주 다니엘 크라우드라고 합니다.”
“로딘입니다. 이쪽은 제 일행들이고요.”
“비앙카예요. 로딘 오빠 동생이에요.”
“래리라고 합니다.”
로딘의 뒤를 이어 비앙카와 래리가 다니엘 상단주에게 자기를 소개했다. 다른 사람은 소개 대열에 끼지 않았다.
매튜는 자신을 일행이 아니라 고용된 사람이라 여겼다. 상단주 외의 상단 직원들이 낄 자리가 아니듯, 자신이 낄 자리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카리스와 제나는 상단주와 그 일행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로딘이 따로 명령을 내리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소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힐끗.
‘엄청난 강자인데, 확실한 하급자다.’
다니엘이 무의식적으로 카리스와 제나를 쳐다봤다.
다니엘이 본 카리스와 제나는 엄청난 강자였다.
검술에 대한 안목이 떨어져서, 정확히 몇 급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여기 있는 이들 전부가 덤벼도 못 이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런 실력자인데 자기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중앙에 앉은 로딘이라는 마법사와 지위 차이가 꽤 나는 모양이었다.
‘상하 관계가 명확하구나.’
그러고 보니, 중앙에 앉은 마법사의 정확한 실력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 뛰어난 마법사임은 분명한데,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베트너는 5서클일 거라고 했는데.’
베트너는 이번 상행에 대동한 마법사였다. 4서클 마법사로,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였다.
“이쪽은 제 친구입니다. 트라시아 마탑 소속으로, 4서클 마법삽니다.”
“후배 마법사가 선배 마법사를 뵙습니다. 베트너라고 합니다.”
“제가 나이가 어리니 과한 예를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예의를 다하도록 하지요.”
“선배 마법사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트라시아 마탑.
중간 규모의 마탑으로 분류되는 상당이 유명한 곳이었다. 마법사의 숫자도 꽤 많고 수준도 높았다. 특히 ‘충격 흡수 마차’라는 아티팩트가 유명했다.
“혹시 저 마차가 트라시아 마탑의 아티팩트입니까?”
“예. 맞습니다.”
“잠깐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아! 마차를 파손하진 않을 겁니다.”
“아, 예.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로딘은 상단주가 탔던 고급 마차로 다가갔다. 트롤과 싸울 때 베트너라는 마법사는 이 화려한 마차의 지붕 위에서 마법을 날렸었다.
‘으음, 내가 아는 방식하곤 좀 다르네.’
로딘은 충격 흡수 마법을 경험하는 게 처음이 아니었다. 프루발의 보물이 담긴 상자에도 충격 흡수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조잡하다. 마력 효율이 너무 떨어져. 상급 마나석으로 길어야 5년?’
그래서인지 마나석을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상단에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교체 방식도 간단했다. 천장에 있는 작은 손잡이를 돌리면 마나석이 들어가는 곳이 열리는데, 거기서 다 쓴 마나석을 꺼내고 새로운 마나석을 넣으면 끝이었다.
‘이런 교체 방식도 괜찮네.’
충격 흡수 마법진을 살펴본 시간은 채 5분도 안 되었다. 오히려 마나석 교체 방식이 간편하게 만들어진 게 더 눈길을 끌었다.
“고맙습니다. 마나석 교체 방식이 흥미롭네요.”
“오, 그걸 바로 알아본 겁니까?”
“예. 정말 간편하게 되어 있네요. 아마 1서클 마법사만 되어도 교체할 수 있겠지요.”
“맞습니다. 하하하. 그 방식을 제안한 사람이 여기 있는 제 친굽니다.”
다니엘 상단주가 친구인 베트너를 띄워 줬다.
베트너는 가볍게 웃고는 고개를 숙였다. 칭찬이 민망한 듯,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런 제안을 마탑에서 받아들였습니까? 손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탑은 마나석을 교체하는 단순 작업에 너무 많은 인력을 배치해야 했습니다.”
마나석을 교체하는 작업 역시 트라시아 마탑의 수입원 중 하나였다. 아주 간단한 작업이니만큼 교체 비용은 쌌지만, 어찌 됐든 그것도 모이면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트라시아 마탑은 과감하게 베트너의 제안을 수용했다. 수입은 조금 줄겠지만, 그 인력을 다른 곳에 동원할 수 있다면 손해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트라시아 마탑은 여유 인력을 아티팩트 연구에 투입했고,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하긴. 트라시아 마탑은 역사가 오래됐죠. 그 시간만큼 많은 마차가 팔렸을 테고요.”
“예. 대륙에 풀린 충격 흡수 마차가 워낙 많으니, 마나석을 교체하겠다며 찾아오거나 요청하는 이들이 끝도 없었죠. 그래서 저희 마탑은 항상 인력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혹시 최근에 냉동 마차를 내놓지 않았습니까?”
“오,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마나석 교체 인력을 줄이고, 아티팩트 연구에 투입했거든요. 그들이 개발해 낸 마찹니다.”
로딘은 냉동 마차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내부의 마법진까지 다 확인해 봤다.
마법의 수준은 충격 흡수 쪽이 더 높았다. 충격 흡수는 3서클 마법이었고, 한기 발출은 2서클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진으로 조합한 방식은 한기 발출을 새긴 냉동 마차가 더 세련되고, 효율적이었다. 좀 더 공들여서 준비한 티가 나는 아티팩트였다.
“하하하. 마법사분들이 만나니, 마법 얘기가 빠지질 않는군요.”
“너무 우리 얘기만 했군요.”
“아! 식사가 다 됐답니다. 우선은 배부터 채우죠.”
“그러죠.”
식사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던 로딘이 걸음을 멈췄다. 시선은 북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로딘 마법사님. 무슨 문제라도 있…….”
쿠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누가 땅을 쥐고 좌우로 흔드는 것처럼 진동이 심했다.
“매직 핸드.”
로딘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사용해 일행들을 붙잡았다.
넘어지려던 래리와 비앙카, 매튜가 마법의 도움으로 균형을 되찾았다. 카리스와 제나는 마법의 도움 없이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 이게 무슨?”
“흐음.”
“로딘 오빠! 이게 뭐야?”
“마수 같은데.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다.”
로딘이 느낀 건 강렬한 존재감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요동치는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대상의 생김새가 어떤지는 로딘도 당장은 알 방법이 없었다.
“이쪽으로 오는 겁니까?”
“아니요. 저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요.”
북쪽에서 터져 나온 굉음은 북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뭔가를 쫓는 것이든, 어딘가에 쫓기는 것이든. 심상찮은 상황인 건 분명했다.
“뭔데?”
“이거 뭐야?”
“대체 어떤 괴물이…….”
땅의 갑작스러운 진동에, 다니엘 상단주는 이미 주저앉은 상태였다. 마법사인 베트너는 옆에 있던 나무를 잡고 균형을 잡았지만, 용병 대부분은 바닥에 손을 짚고 버티는 중이었다.
“전원 경계 태세. 2조는 사주 경계 시작하고. 1조는 근접 호위에 들어간다.”
“정신 차려!”
호위 중 지휘를 맡은 용병이 일어나서 지시를 내렸다. 또 다른 은패 용병이 쓰러진 용병들을 일깨웠다.
“로딘 마법사님. 낮에 봤던 트롤은 아니겠지요?”
“그놈들하곤 본질적으로 달라요. 훨씬 크고, 강한 것 같은데요.”
낮에 봤던 트롤과는 다른 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낮에 봤던 검은 돌멩이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으로 오면 안 되는데.”
“멀어졌네요. 확인 한번 해 보겠습니다.”
로딘은 눈으로 카리스만 불러서 자리를 떴다. 제나는 일행을 지키기 위해 남았다.
* * *
로딘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피하고자 꽤 깊은 숲까지 들어왔다. 카리스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따랐다.
해가 떨어져서 암흑밖에 없는 곳에 다다른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지토, 정찰 좀 부탁할게.”
―꾸엥.
지토가 본체로 돌아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굉음이 들렸던 곳 주변을 크게 선회했다.
“크다.”
시야를 공유해서, 미친 듯이 사방을 부수고 다니는 마수를 확인했다.
거대한 크기였다. 신장은 대략 20미터, 몸무게는 가늠이 안 되었다. 또 어깨는 떡 벌어졌고,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같은데. 카리스, 미노타우로스 알아? 이족 보행하는 소머리 마수인데.”
“예. 당시와 이름은 다르지만, 소 닮은 마수는 과거에도 존재했습니다.”
“그놈 키가 20미터는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보통 4미터 정도고, 가끔 6미터에 육박하는 놈도 나타났습니다.”
마도 제국 시절에는 마수가 많지 않았다. 정확히는 많긴 했지만, 특정한 곳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인간의 영역에 마수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마력석하고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마력석이요?”
“아까 본 검은색 돌멩이.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
“예. 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놈은 마력을 담고 있는 걸 넘어서 흡수까지 했다. 과하게 흡수한 마력이 육체에 영향을 준 게 확실했다.
‘체질이구나. 마수의 특성도 작용했을 테고.’
마수의 끈질긴 생명력이 이런 일을 만들었다.
마력을 운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 과한 마력을 담으면 마력 중독에 걸린다. 마력 중독은 매튜가 걸렸던 마나 중독과 비슷해서, 의식을 잃고 몸이 쇠약해진다.
“멀어졌네. 지토, 돌아와.”
슈아아앙!
로딘의 소환에 지토가 바람처럼 돌아왔다. 역시나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신기한 환숩니다.”
“너희 시대에는 환수가 많지 않았어?”
“환수는 많았습니다. 제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환수와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지토와 같은 형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지토를 신기하게 여기는 건 제나도 같았다.
카리스와 제나는 마도 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전투 인형이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거나 물건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마도 제국 시절과 비교하곤 했다.
그들이 본 이 시대는 심각할 정도로 퇴보했다. 마도 제국 시절에 당연했던 것들이 이 시대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마도 제국 시절의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다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이 시대의 마탑이나 사람들은 일생의 과제라도 되는 듯 연구하고 있었다. 마정석처럼.
그런 흐름에 유일하게 역행하는 존재가 로딘과 지토였다.
로딘은 전대 마스터보다 마나를 느끼는 감각이 더 뛰어났다. 마나를 조작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도구 없이 마나를 움직이고 조작하는 건 전대 마스터가 간절하게 염원했던 일이었다. 그를 위해 개인 수련도 꽤 오래 했다.
결국은 실패하고, 특별한 장치의 도움을 받아서 마나를 조작했다.
그런데 당대의 마스터인 로딘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나를 움직이고 성형하고, 조작했다. 그 과정이 별로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변신 환수가 없었어?”
“변신 환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옷으로 변하는 유형은 없었습니다.”
“아. 그래?”
환수 도감에도 지토 같은 환수가 단 한 번 등장한 걸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때 사용한 이름은 엘리프였다.
물론 로딘은 실제로 지토가 긴 역사에서 한 번만 등장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아주 희귀한 환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변신 환수는 다른 동물이나 마수, 환수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닌가?”
“원래 환수가 가지고 있던 특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몸체가 단단한 환수는 변신해도 몸체가 단단했습니다. 몸체가 불로 된 환수는 변신해도 불길이 그대로 남았습니다.”
“지토는 아니라는 거네.”
지토가 본체일 때, 몸은 꽤 단단한 편이었다.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몸체를 덮고 있는데, 만져 보면 상당히 뻣뻣하고 날카로웠다.
그런데 옷으로 변했을 때는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만지고 있으면, 동대륙에서 생산된다는 최고급 실크가 떠오를 정도였다.
“돌아가자.”
“예. 마스터.”
둘만 있으니, 바로 호칭이 ‘공자’에서 ‘마스터’로 변했다. 사람들이 있을 땐 알아서 조심할 걸 알기에 로딘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오